[이원재 칼럼]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는 단임제 규정한 1987년 헌법에 위배… 한국 사회 초엘리트집단의 계속되는 권력 장악 시도.
1일 오후 3시에 조희대 대법원장의 판결문 낭독 생중계가 시작됐다. 오후 3시 25분 파기환송심 취지의 주문이 낭독됐다.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약속한 듯 오후 4시에 한덕수 대통령직 권한대행의 담화문이 문자로 전송됐다.
“제가 할 수 있는 일,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자 저의 직을 내려놓기로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한덕수 대행은 ‘중책을 내려놓고 더 큰 책임을 지는 길’을 언급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이다.
대법원은 정치개입을 선언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법원’ 시대는 끝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10명의 대법관이 이재명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의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판사의 정치적 주관이 재판에 끼치는 영향을 주저없이 드러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서울고법의 이재명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 직후 이 재판을 대법원 전원합의부로 넘겼다. 혹시라도 무죄 확정 의견을 가진 대법관의 의견이 최종 판결에 반영되지 않도록 단속할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례적인 속도전으로 유죄취지의 판결을 내리는 데 성공했다.
한덕수는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후 세 차례의 연성 쿠데타를 시도했다. 한 차례의 쿠데타를 시도했다 좌절된 윤석열보다 어쩌면 더 책임이 무겁다.

한덕수의 첫번째 쿠데타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 직후 한덕수-한동훈 체제로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신 본인이 최고권력자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유사권력 수립을 자임했다. 누가 봐도 윤석열의 기획이었다. 다행히 국회의 신속한 탄핵 추진으로 이 체제는 무위로 돌아갔다.
한덕수의 두 번째 쿠데타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덕수는 12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여야 합의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탄핵이 이미 가결된 뒤였다. 대통령직 권한대행은 소극적 권한만 수행해야 하므로 임명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였으니, 영영 임명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이 아예 좌초될 뻔했다. 한덕수 탄핵으로 첫 쿠데타가 저지되고 윤석열 재판이 열리며 파면에 이르게 됐다.
한덕수의 세 번째 쿠데타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던 한덕수는 돌연 자신이 대통령몫 재판관을 임명하겠다며 윤석열의 측근인 이완규 전 법제처장을 지명했다.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 퇴임 뒤, 헌법재판소를 윤석열의 입맛에 맞는 재판관으로 채워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권한대행은 소극적 권한만 행사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은 거꾸로 뒤집혔다. 헌법재판소가 이 지명을 중단시키면서 두 번째 쿠데타도 저지됐다.
한덕수의 대선 출마는 네 번째 쿠데타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제를 단임제로 규정하고 있다. 권한대행이 출마할 수 없다는 조항은 명시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단임제의 취지는 명확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행정적 권한을 남용해 자신의 당선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는 일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1인 독재를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1987년 쓰여진 헌법이다.
그런데 한덕수는 행정조직을 동원해 사실상 대선출마 선언을 했다. 이전 몇 주간 이미 윤석열 정부 퇴직관료들을 빛의 속도로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고위직으로 보내고 있었다. 행정조직의 수장이라는 권한을 남용한 행위이고, 조직을 동원하기 위한 일종의 뇌물로 여겨질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12.3 계엄사태 뒤 대한민국을 초엘리트층이 쿠데타를 되살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 5월 1일은 법조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의 결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날이다.
법조 엘리트는 자신들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검찰과 법원이 대통령 후보 자격도 심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여기서 나온다. 검찰은 기소하고 법원은 맞장구를 친다. ‘장모는 십원 한장 받지 않았다’는 당선자 윤석열의 확정된 거짓말을 검찰은 기소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가 협박했다’는 낙선자 이재명의 불분명한 발언은 기소했다.
관료 엘리트는 자신들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누구든 자신들이 정부를 운영한다고 생각한다.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그들이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한 걸음 더 나가 보면, 그들만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덕수의 출마는 그런 사고의 정점에 있다.
윤석열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그는 이 초엘리트집단들의 꼭대기에 있던 사람이다. 검찰총장이었고 대통령이었다. 법조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 10명의 대법관을 임명해 대법원을 장악해 두었다. 한덕수를 통해 측근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며 헌법재판소마저 장악하려 시도했다.
윤석열에게 군 장성 정도는 몸종 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후배들을 군 주요 직위에 임명한 뒤 폭탄주를 몇 잔 돌리면 거사 계획은 완성된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꼭대기에 있었다. 윤석열은 자신이 군을 부려서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면 손쉽게 국회를 제압하고 법조와 관료 엘리트들과 국가를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만의 하나 이 계획이 좌초되더라도 국민의힘이 자신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탄핵되더라도 사법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들이 자신을 구원해 다시 세울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윤석열이 장악했던 사람들은 초엘리트 집단이었을 뿐이다. 그 바로 아래 사람들의 소극적 저항으로 쿠데타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영관급 장교들은 특전사 헬기 이동 승인을 지연시키는가 하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멋대로 묵살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뒤에는 명령 없이 병력을 철수시켰다. 시민들은 그 한밤중 국회로 몰려갔다. 현장의 하사관들은 시민들의 저항에 당황하며 태업했다.
게다가 초엘리트 집단 안에도 균열이 있었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까지 포함해 탄핵을 가결시켰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의 훌륭한 변론(그는 분명히 훌륭했다고 생각할 것이다)에도 전원일치로 파면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초엘리트 전체가 쿠데타 세력은 아니다. 1일 대법원 선고에 대한 두 대법관의 반대의견 요지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 방식이 검사의 기소편의주의와 결합할 경우 민주주의 정치와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가해지는 위험은 심각할 수 있습니다. 선거의 공정성을 내세워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적용을 매개로 수사기관과 법원이 선거 과정에 개입하는 통로를 넓게 여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축소로 선거의 자유를 해칠 뿐만 아니라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하는 요소를 끌어오게 됩니다.
정치적 영역에서 해소되어야 할 정치 집단 사이의 상호 공방을 법정으로 가져와 법원 심판대에 올려 놓음으로써 사법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불러오게 됩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확장해 온 선례의 태도는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하므로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들의 반대로 윤석열류의 쿠데타는 삐걱거렸다. 그러나 삐걱거리면서도 계속 되살아난다. 국민의 70%는 계엄을 일으킨 윤석열은 탄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국회의원의 70%는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법조 관료 엘리트그룹에서는 그 비중이 정반대로 뒤집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대법관 비율처럼 10대 2로 윤석열에게 공감하는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삐걱거림을, 소수의 쿠데타 반대 초엘리트가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다수의 쿠데타 옹호 초엘리트과 싸우며 민주주주의 복원의 여정을 천천히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나는 소리라고 해석한다.
지금 쿠데타를 마무리짓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압도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우리 헌법의 탄력성을 믿는다. 그러니 큰 틀에서는 평화적인 다수의 길을 가야 한다고 본다. 1987년에도 2017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2025년에도.
물론 삐걱거림을 감수하며 돌출적으로 튀어나오는 저항은 제압해야 한다. 명백하게 반헌법적 행위를 한 국무위원은 탄핵해야 한다. 하지만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은 취임 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다만 대법관 탄핵은 지금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계엄은 최악의 ‘제도 남용’ 이었으므로, 제도 남용으로 보이는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도 국민의 판단은 냉정할 것이다.
국민들은 때로 무심한 것 같아 보이지만 다 보고 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판단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국민들은 다시 뛰쳐나와 도울 것이다.
신중해야 한다. 신중해야 이긴다. 험난한 길이지만, 거의 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