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을 이렇게 구출했다”는 권정민(서울교육대학교 교수)의 글이 페이스북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슬로우뉴스에 기고 형식으로 실을 계획이었으나 이 글과 관련된 논쟁도 의미가 크다고 판단해서 다양한 견해를 함께 묶어봤다.

내 아들을 이렇게 구출했다: 권정민의 글.

  • 스스로를 깨어있는 진보적인 교육학자라고 소개하는 권정민은 아들을 깨어있는, 진보적인, 인권 감수성이 높은 남자로 키우기 위해 열정적으로 교육했다고 한다.
  • “어릴 때부터 매일 2~3시간 토론을 하고, 전 세계를 데리고 여행다니며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고, 시사 문제들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고, 예술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클래식, 발레, 뮤지컬, 국악, 미술관과 박물관 안 데려간 곳이 없고, 설문조사지 만든다고 하면 편향되지 않은 설문지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함께 생각하고, 역사적 사건들과 종교적 신념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자연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바다로 산으로 협곡으로 사막으로 안 가본 곳이 없다. 이보다 더 애들 교육을 잘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아들이 극우 유튜브에 빠졌다. 어느날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여자는 왜 군대 안 가? 여자도 똑같이 가야지.”
  • “우리 사회는 남자를 너무 차별하는 것 같아.”
  • “여가부는 폐지해야 해.”
  • 권정민은 아들이 조던 피터슨 같은 극우 유튜브 채널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가르치지 않은 가치에 대해 아이가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 “애를 빼내는 방법은 끊임 없는 토론 밖에는 없었다. 왜 여가부 폐지가 남자인 너한테도 손해인지. 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차별이 심한지. 왜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불러줘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얘기하는 ‘페미’와 진짜 페미니즘은 어떻게 다른지. 진짜(학문적 철학적) 페미니즘은 장애인 인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인권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극단주의를 알아보는 방법.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방법. 차별금지법 등등..”
  • “수개월 동안 온 정성을 다해 아이와 열심히 토론을 했다. 극우 유튜버들이 애 머리에 심어놓은 생각이 어디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애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논리를 매우 치밀하게 분석해서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찾아내야 했다. 남녀의 문제를 개인의 경험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관점에서 보도록 수없이 설명하고 가르쳐야 했다. 한번으로 안되고 여러번 반복적으로 토론해야 했다. 조던 피터슨의 논리와 생각이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하게 짚어서 비판해야 했다.”
  • 그렇게 해서 권정민이 아들을 극우 유튜버들이 심어놓은 사상에서 빼내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생각보다 극우 사상은 접착력이 강했고 잘 안 떨어지더라”는 결론이다.

권정민이 제안한 세 가지 해법.

  • 첫째, 학교 교육을 바꿔야한다. 비판적 사고력 교육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토론 교육과 역사교육,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둘째, 건전하고 민주적인 가치관을 가진 진보 유튜버가 늘어나야 한다. 매력적인 유튜브 방송이 더 많아져야 한다.
  • 셋째, 입시에 논술과 토론을 반영해야 한다.
  • 권정민은 “우리 아이들을 극단주의와 파시즘으로부터 보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권정민의 코멘트.

  • “‘구출’이라는 표현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극단주의는 ‘혐오’의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구출하는 심정을 가지게 된다.”
  • “민주주의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혐오의 반대편에 서야 한다.”

권정민의 글에 대한 비판.

이 글이 유독 뜨거웠던 이유.

  • 첫째, 권정민처럼 자식 교육을 챙기지 못하는 부모가 많고 설령 아들이 극우에 빠졌더라도 권정민처럼 할 수 없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구출’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겠지만 언뜻 권정민의 자기 자랑으로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 둘째, 부모가 챙기지 않은 아이들이 극우에 빠진다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다. 물론 권정민이 그렇게 이야기한 건 아니다. 다만 권정민의 글을 읽고 나서 충격과 함께 무력감이나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 자식 사이에 토론이란 게 애초에 불가능한 집이 대부분이다.
  • 셋째, 권정민이 내놓은 해법이 와닿지 않았다.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결국 어떻게 바꿀 것이냐의 문제다. 매력적인 진보 성향 채널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도 공허한 주장이다.
  • 넷째,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과 그래도 극우는 안 된다는 것의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자는 왜 군대를 안 가느냐”는 질문에 극우라는 딱지를 붙이고 “구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와 대화나 토론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 다섯째, 아들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태도의 문제를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았다. 아들 입장에 감정이입을 해보면 이 가족의 경우가 매우 특별한 케이스라는 걸 알 수 있다.

생각해 볼 부분.

  • 권정민의 글은 ‘나는 내 아들을 이렇게 빼내왔다’고 자랑하는 글이 아니다. 실제로 아들이 빠져나왔는지 권정민의 글만 보고는 알 수 없고 여전히 권정민의 착각일 수도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잘 모른다.
  • 다만 권정민의 글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꿀 정도로 강력하다는 사실, 그리고 한 번 고정된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민하게 한다.
  • 극우 유튜브는 사회적 문제다. 단순히 유튜브 알고리즘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보는 채널은 알고리즘의 추천의 결과지만 우리의 취향과 선호를 반영한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을 가둬두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강제로 보게 만들었던 건 아니다.
  • 이른바 ‘이대남’이 빠져 있는 ‘안티 페미니즘’이나 공정 담론을 탄핵 반대 집회의 부정선거 음모론과 같은 선에 놓고 보는 것도 위험하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명백한 거짓과 선동에 맞서야 하지만 다른 생각을 배척하고 교화와 교정의 대상으로 규정하면 대화도 타협도 꼬이게 된다.
  • 권정민처럼 부모 자식 사이에 신뢰 관계가 확고하다면 아들을 ‘구출’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우리를 ‘구출’해 줄 엄마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공론의 장이다. 본질을 일깨우는 좋은 언론도 필요하다.
  • “내 아들을 구출하기가 이렇게 어려웠다”는 권정민의 경험은 우리가 빠져 있는 각자의 반향실(에코 체임버)이 얼마나 강력한가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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