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슬로우스크립트] 이창용 한은 총재, “핵심은 재정 건전성,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게 진짜 문제… 스테이블 코인은 독립적 통화정책에 위협.”

이창용(한국은행 총재)이 “재정은 한 번 위기에 빠지면 바로잡기 매우 어렵다”면서 ‘재정 건전성’ 대비를 주문했다.

이창용은 지난달 13일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 차 출국했고, 출장 기간 중인 지난달 16일 코리아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 회장 토마스 번(Thomas Byrne)과 한국 경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한미 상호 이해 증진과 우호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1957년 설립한 미국 비영리단체다. 한국은행은 지난 6일 대담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세계 경제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재정 적자 문제는 세계 경제의 관심사다.
  •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 피치 등 주요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경제 선진국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에 질문이 있었다. “각국 재무장관은 지속 불가능한 재정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 이창용은 “대부분 정부가 문제 해결을 계속 미뤄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창용은 “스웨덴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이후 엄격한 재정 준칙을 도입한 그 결과 다른 유럽 국가보다 재정이 건전하고 거시경제정책 운용에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이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두 사람 대담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은 미 워싱턴 D.C. 출장 중이던 지난달 16일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토마스 번과 한국 경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사진=한국은행 유튜브 화면 갈무리.

‘엄격한 재정 준칙’ 스웨덴을 주목하라.

토마스 번(이하 번): “많은 국가가 겪고 있는 지속 불가능한 재정 문제를 묻고 싶다. AAA 등급을 유지하는 국가가 점점 줄고 있다. 주요 신용평가사 세 곳이 미국 신용등급을 AAA등급에서 하향 조정했다. 프랑스, 영국도 더 이상 AAA 등급이 아니다. 각국 재무장관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이창용(이하 이):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해결책을 알고 있다. 실제로 해결하는 일은 어렵다. 지속 불가능한 재정의 주요 원인은 의료, 연금 등 의무 지출에 있다. 이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리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가능한가’가 문제다. 대부분 정부는 문제 해결을 계속 미루려 했고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 재정 문제가 일정 위험 수준을 넘어서면 이자 지급이 신규 국채 발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면 재정 정책이 매우 경직된다. 한 번 위기에 빠지면 이를 바로잡기 매우 어렵다. 나는 한국 정부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스웨덴은 문제를 잘 해결한 좋은 사례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이후 엄격한 재정 준칙*을 도입했다. 그 결과 다른 유럽 국가보다 재정이 건전하고 거시 경제 정책 운용에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이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까지 한국은 재정 건전성을 잘 유지해 왔다. 그것이 우리의 큰 강점이었다. 앞으로도 강점이 잘 유지되길 바란다.”

재정 준칙:

국가의 재정 운용에 있어 목표와 한도를 명확히 정해 법제화한 규범. 재정 수지, 국가 채무, 재정 지출 등 총량적 재정 지표에 일정 수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하여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이를 테면, 재정 준칙을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는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내에서, 국가 채무는 GDP의 60% 이내로 관리하고자 했다.

번: “미국의 경우 연방 정부의 이자 지급 비용이 약 1조 달러에 이르렀다. 국방비보다 많은 금액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자 비용이 문제는 아니었다. 재정 영역이긴 하지만, 한국은행 총재도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한국 경제에 관해 묻고 싶다. 한국은행 전망은 어떤가?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다소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가는 안정됐나? 리스크 요인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이: “현재 물가상승률은 2%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큰 문제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성장률이 문제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0.9%로 전망했다. 원인은 계엄령 선포 후 예상치 못한, 불필요한 정치적 불안정성에 있다. 내년 성장률은 1.6% 정도로 회복할 걸로 전망하지만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수준이다. 관세 문제, 지정학적 긴장 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이것이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이자 리스크 요인이다.”

번: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어떤가?”

이: “현재 빠른 고령화로 인해 2%를 소폭 하회하는 수준이다.”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9월 23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의 무능을 질타했다. 사진=백악관 제공. 

“물가안정 위해선 한국은행 독립성이 필수.”

번: “미국에선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중앙은행 독립성이 ‘중앙은행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중앙은행 독립성’은 어떤 의미이며 왜 중요한지 말해 달라.”

이: “중앙은행 독립성은 한국은행 책무인 물가 안정 달성을 위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높을 때 금리 인상은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독립적이고, 물가 안정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있다면, 정치적 압력과 관계 없이 ‘이것이 우리 책무고 필요한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물가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 독립성은 필수다. 중앙은행에는 다른 기능도 있다. 위기 시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 역할을 수행하고 금융기관 구조조정도 맡는다. 이때는 정부 및 타 규제 당국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독립성은 중앙은행 일부 기능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다른 기능에서는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도 필요하다.”

번: “미국의 경우 닉슨 행정부 지시에 따라 중앙은행이 움직였을 때,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웃음) 다른 국가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1차 책무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목표를 채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은 EU의 일반적 경제 정책과 균형적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한다. 2차 책무로는 환경의 질을 개선하고 보호하는 것을 채택했다. 한국에도 이런 논의가 이뤄지고 있나? 한국은행도 물가 안정 외 다른 책무 도입을 고려하고 있나?”

이: “우리도 ECB와 비슷하다. 우리의 주 목표는 물가 안정이다. 2차 목표는 한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금융 안정이다. 최근 우리가 인구 고령화와 부동산 가격 등 구조적 이슈를 자주 언급하다 보니 날 ‘이상한 총재’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가 다루는 모든 이슈는 한국은행의 주된 목표와 무관하지 않다. 일례로 한국의 최근 경제 성장 둔화를 보면 주 원인은 경기순환적 요인보다 고령화와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같은 대내외적 구조에 있다. 적절한 통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경기 요인과 구조 요인을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구조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우리 책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번: “한미 정부가 관세 및 대미 투자에 관해 협상 중(편집자 주: 대담 당시에는 한미 관세 세부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가 3500억 달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약 4000억 달러 수준의 한국 외환보유액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대외 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검토하고 있나? 대외 유동성 관리, 대외 안정성, 환율 안정 등을 우려하는지 궁금하다.”

이: “협상이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다만 처음 이런 제안이 나왔을 때 한국과 일본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전달했다. 대규모 금융기관이 많은 일본은 해외에도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달러화 자금 조달도 큰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 환율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3500억 달러를 조달·투자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미 투자 협정을 맺는대도 우리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미국 측도 한국과 일본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번: “대미 투자 협정이 한미 통화 스와프 등으로 뒷받침될 가능성에 관해 논의 중인가?”

이: “내가 협상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다.”

번: “2008년 당시 한국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미 재무부와 각각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당시 협정은 달러 유동성 확보와 미국의 금융 안정이 목적이었다. 2008년에 효과가 매우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 “이번 사안은 장기 투자라는 면에서 그때와 상당히 다르다. 미 연준이 관여할 여지가 없다.”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토마스 번이 이창용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유튜브 화면 갈무리.

“민간 스테이블코인 도입? 부작용 불가피하다.”

번: “(스테이블코인 등 암호자산 규제와 관련) 미 정부는 국제적 사안에 다자적 접근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제결제은행(BIS), 금융안정위원회(FSB) 등에서는 새로운 금융 시장 및 금융 상품 규제를 조율하려는 것으로 안다.”

이: “스테이블코인*에 관해 미국 입장이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르다. 현재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전체 98% 이상 점유하고 있고, 이는 미 국채 수요를 늘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확대에 우호적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독립적 통화정책에 위협이 된다. 한국의 경우 자본이동 관리정책을 우회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다른 나라 간 시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스테이블코인:

가격 변동성이 없는 안정적인(stable) 가상 자산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원화 가치를 1:1로 연동하여 가격 변동성을 줄인 디지털 화폐다. 해외 송금이나 디지털 자산 거래에서 환전 없이 실시간으로 저비용 결제를 가능케 하는 혁신적 금융 수단이다.

번: “‘한강 프로젝트’를 묻고 싶다. 디지털 통화 관련 시범 프로젝트로 안다. 올 초 단기간 시행됐다고?”

이: “한강 프로젝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BIS도 그렇게 관측하지만,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프로젝트는 통화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디지털 화폐의 프로그래밍 기능과 같은 기술 발전도 활용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약 1년 반 정도 됐다. 다소 기술적 용어이지만, 기관용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와 예금 토큰*(tokenized deposits)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런데 미국의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 이후 한국 정치권과 핀테크 업계에서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급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에 다른 생각이 있지만,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한강 프로젝트 1단계 내용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관용 CBDC와 예금 토큰 논의를 계속 이어가는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비은행이 아닌 은행이 발행하도록 설득 중이다. 또 중앙은행이 구축한 블록체인 안에서 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국회에서 도입 논의가 이뤄질 것인데, 한강 프로젝트 2단계도 아마 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한강 프로젝트:

한국은행과 주요 시중은행이 협력하여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실거래 테스트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대규모 파일럿 프로젝트. 기존 은행 예금을 ‘예금 토큰’(Deposit Token)으로 전환, 전자 지갑을 통해 다양한 온·오프라인 상점에서 결제할 수 있게 한 시범 사업.

예금 토큰: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토큰 형태로 변환한 것을 의미. 기존 은행 예금을 1:1 비율로 디지털 자산화하여 블록체인 기반에서 지급 결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

지니어스 액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규제하는 최초의 연방 법률.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감독 체계를 마련해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성을 도모하는 법안.

사진=PIXABAY.
번: “참여 기업들 반응은 어땠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면 결제 지연이 없어 업체에 이득이 된다고 알고 있다. 유동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국내 결제 인프라 측면에서 보면 개선할 여지가 많지 않다. 한국은 이미 신속자금이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모든 결제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국가 간 지급 결제의 거래 비용을 낮출 여지는 크다. 내 요점은 이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거래 비용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금 토큰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역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서로 다른 가격을 가진 복수의 통화를 도입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우리 목표는 통화정책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국가 간 거래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번: “이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역임했다. 이런 경력이 한국은행 총재 역할에 어떤 영향을 줬나?”

이: “과거 경험은 내게 엄청난 자산이다. 여러 다자 기구에서 재직했기 때문에 국제 감각이 생겼다. 어떤 문제를 검토할 때 국제적 시각에서 바라보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처방이 국제적으로 검증된 방법인지 생각한다. 번 회장 같은 매우 중요한 국제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국제 네트워크가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여러 나라 금융위기를 지켜보며 느낀 건, 금융 안정이 전통적 인플레이션 목표에서 오는 상충관계*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충관계(trade-off):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이나 정책 당국은 낮은 실업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달성하고자 하나 상충관계로 인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업률을 낮추려 하면 인플레이션이 올라가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려 하면 실업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통화정책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번: “총재 임기가 얼마 안 남았는데 현재 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이: “임기 종료 전까지 별 탈 없이 내 임무를 마치는 것이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