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어렵게 배우는 컨템퍼러리 가정식] 오늘 배울 음식은 ‘토르티야 데 파타타’ (9분)

여러분은 스페인 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빠에야? 감바스? 유명한 요리들이긴 하지만 사실 이들은 스페인을 아우를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진 요리는 아니다. 무슨 말이냐? 이들은 특정 지역의 토속 요리에 가깝다. “한국음식은 뭐가 유명한가요?”라고 물으면 “돼지국밥이 유명합니다.”라고 대답하는 느낌과 비슷하달까. 돼지국밥은 모두가 아는 음식이긴 하지만 주로 부산 및 경남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지역색 강한 음식이다. 한국을 아우를 수 있는 음식을 대려면 차라리 순대국밥이라고 대답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빠에야는 정확히 Paella valenciana로 스페인 남부 쌀농사가 발달한 발렌시아 지방의 토속요리다. 스페인 전역에서 Paellera(빠에야 조리용 팬)으로 쌀요리를 하긴 하지만 그것을 누구도 Paella라 부르지 않는다. 보통은 “~한 재료가 들어간 Arroz(쌀) 요리” 이렇게 이름 짓는다. 몇몇 유명 스페인 요리사는 인스타그램에 Arroz요리를 해놓고 알면서도 일부러 Paella라고 항상 적어두는데, 댓글창을 열면 “XXX야 빠에야를 모욕하지 마라.”라고 외치는 수많은 성난 발렌시아인들을 볼 수 있다. 역시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욕먹는 걸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이런 데서 쓸데없이 느끼곤 한다.

감바스는 더하다. 감바스는 단지 ‘새우’를 의미하며 우리가 아는 새우와 넉넉한 올리브 오일, 그리고 다량의 마늘이 들어간 요리는 ‘감바스 알 아히요’라고 부른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요리는 스페인에서 전혀 대중적인 요리가 아니다. 내 경험상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지방의 캐주얼한 타파스바에서 가끔 발견될 뿐이다. 확신컨대 한국인들의 맹렬한 마늘 사랑에 의해 높은 인기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된 메뉴라고 생각한다. 

웅녀의 후손인 우리에게 마늘은 차라리 야채에 가깝게 사용되나, 서구권에서 마늘은 지극히 향신료의 일종으로서 필요시 소량 사용되는 데 그칠 뿐이다. 감바스 알 아히요에 마늘이 들어가는 양을 생각하면 애초에 스페인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긴 힘든 메뉴다. 종종 우리의 인식과 현실의 격차가 이렇게 큰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한국에서 세계적인 축제처럼 알려진 발렌시아의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 (La Tomatina)가 실제로는 스페인에서 발렌시아 사람 빼고는 잘 알지 못하는 소규모 지역 축제인 것처럼 말이다. 

스페인은 독특한 나라다. “스페인은 없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스페인에 가면 스페인 사람은 없고 카스티야 사람, 바스크 사람, 카탈루냐 사람, 갈리시아 사람, 안달루시아 사람만 있다는 말이다. Castellano(표준 스페인어)를 포함해 공식 언어만 해도 4개다. 그만큼 스페인은 각 지방의 정체성이 매우 강한 나라다.

필자 또한 5년이 조금 모자란 시간 동안 카스티야(살라망카), 바스크(산세바스티안), 카탈루냐(바르셀로나) 세 곳을 거치며 살았는데 길거리 분위기부터 건축, 음식, 사람까지 모든 부분에서 굉장히 큰 차이를 실감하며 보냈다. 이런 강렬한 지역색이 국가적 관점에서 때때로 극렬한 분열로 드러나면서도, 동시에 문화적 관점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그 각각의 개성이 모여 스페인이라는 한 국가의 풍성한 식문화를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 스페인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바로 스페인 역대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인 [8개의 바스크 성씨] (Ocho Apellidos Vascos)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한국에서는 [Spanish Affair]로 번역되었다. 첫눈에 반한 여자를 찾아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안달루시아 남자가 스페인에서 가장 보수적인 바스크에 도착해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표현한 영화다. 정말 재밌으니 스페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보시길 바란다. 

여기서 스페인의 식문화를 관통하는 한 대사가 등장한다. 바스크 전통 레스토랑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의 아버지와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얘는 Clemente(바스크 지역이 아닌 스페인의 성씨)니까 딱 봐도 빠에야 같은 거나 시키시겠구먼”. 뭔 말이냐? 북부에서 빠에야 따위는 아무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스페인 북부에서 빠에야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여러분이 스페인행 비행기 안에서부터 “오리지널 빠에야랑 감바스 한번 박살 내고 와야지” 하신다면 방문하는 지역에 따라서는 여행 내내 메뉴판에서 오로지 눈에 익숙한 하몽과 샐러드만 주구장창 드시다 올 수도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각각의 지역색이 이토록 뚜렷한 스페인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요리는 몇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내가 소개할 요리가 바로 이 몇 안 되는 요리 중 하나인 ‘토르티야 데 파타타(Tortilla de Patata)’다. ‘토르티야’하면 우리는 케밥을 싸는 얇은 밀가루 빵의 형태를 떠올리겠지만 스페인에서 말하는 토르티야(tortilla)는 ‘두께에 관계없이 넓게 부치거나 굳힌 형태’의 음식을 통칭한다. 우리의 계란말이, 어묵 등도 그들은 토르티야(tortilla)라고 부른다. 파타타(Patata)는 감자를 뜻한다. 그래서 토르티야 데 파타타(Tortilla de patata)를 의역하면 ‘계란이 들어간 스페인식 감자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드디어 처음으로 스페인 요리를 소개하게 되었다. 지난 우리 한국의 감자전에 이어 스페인판 감자전으로 의도치 않게 감자 특집이 되고 있다.

이 감자 토르티야는 스페인에서 국민 요리의 위치를 차지한다. 스페인 전역 대부분의 카페나 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빵을 곁들여 주로 점심으로 많이 먹는다. 조금 든든하게 먹고자 하면 늦은 아침으로도 찾곤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어디서나 사랑받는 요리다. 정서적으로 글쎄, 약간 우리에게 떡볶이 같은 느낌이랄까? 근데 재미있는 점은 이 감자 토르티야는 길거리 카페부터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까지 모든 레벨의 미식씬에서 나름의 창의성이 결합된 다양한 형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감자와 계란이라는 뻔하디뻔한 재료로 만든 이 단순한 요리가, 어떻게 스페인 미식을 통합하는 음식으로써 군림할 수 있을까? 말이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 직접 만들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자. 한국에 없는 요리이니 조금 낯설 수 있지만, 레시피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토르티야 데 파타타 (스페인식 감자전)

  • 재료: 감자(작은 것 10개), 계란(10개), 올리브오일 (+캐러멜라이즈 양파)
  • 필수 준비물: 손바닥 크기에 약간의 폭이 있는 팬 (토르티야 조리용)

적당히 얇은 두께로 감자를 썰어 준비한다. 너무 얇아서도 두꺼워서도 안된다. 언젠가 요리에서 두께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재료의 익힘 및 결과물의 식감과 풍미의 관점에서 오늘은 특히 중요하다. 그리고 썰어둔 감자에 소금 간을 충분히 한다. 잘 섞어주며 감자에서 빠진 수분은 걸러내도록 하자.

움푹한 팬에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붓고 준비된 감자를 익힌다. 예전에 요리는 “익었냐 안 익었냐”가 아니라 “어떻게 익었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중불에서 천천히 익히도록 한다. 바글바글 기포들이 올라오는 상태로 천천히 감자의 수분이 날아가면서 맛이 응축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드문드문 옅은 갈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익히면 딱딱한 ‘감자칩’이 되어버려 감자의 부드러운 맛이 사라지니 맛을 봐 가며 적당히 익히도록 하자.

감자가 완전히 익었으면 체에 기름을 거른다. 설마 걸러진 올리브 오일을 버리시는 건 아니길 바란다. 엄마한테 등짝 맞지 말고 곱게 거른 오일은 재활용하도록 하자. 중약불에 익혔기 때문에 기름이 크게 산화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감자향도 배어서 다른 요리에 활용하기도 좋다.

기름을 빼는 동안 계란을 풀어서 준비하자. 소금 간을 충분히 하고 혹시 준비된 캐러멜라이즈 양파가 있으면 지금 투하해서 잘 섞어두자. 어차피 입에 다 같이 들어오는데 소금 간은 계란이나 감자 둘 중에 한 군데 몰빵 하면 안 되나? 싶겠지만, 안 된다. 종종 음식에서 뭔가 맛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나는 이유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나 간은 모든 요리의 과정에서 조금씩 개입해 최종 맛을 함께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감자에서 기름도 빠지고 적당히 식었으면 이제 준비된 계란에 투하해 잘 섞는다. 이때 계란과 감자의 비율이 상당히 중요한데, 정답은 없다. 어떤 곳은 계란을 감자 조각들이 겨우 붙을 만큼만 넣는 곳도 있는 반면, 어떤 곳은 거의 계란찜에 감자가 들어갔나 싶을 정도로 계란을 많이 넣기도 한다. 스타일의 차이인데 개인적으로는 그 중간 정도를 선호한다. 감자가 살짝 으깨질 수 있도록 강하게 섞어주는데 감자와 계란들이 맛들을 ‘공유’하며 한 몸이 될 시간을 조금 주도록 한다.

준비물에 언급한 손바닥만 한 작은 팬을 불에 올리고 아까 걸러 뒀던 기름을 넉넉히 두른다. 감자 토르티야 조리의 핵심 포인트가 지금이다. 바로 “어떻게 익힐 것인가?”이다. 토르티야의 경우 익히는 방식은 요리사들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오랜 시간 익혀 아예 단단하게 굳히는 형태부터 거의 모양만 유지할 정도로 약하게 익혀 계란이 완전히 흐르는 스타일까지 정말 다양하다. 미식적 관점에서는 당연히 내부가 촉촉이 흘러내리는 스타일을 ‘고급’버전으로 친다. 당연히 그게 훨씬 더 어렵기도 하고. 수준 높은 우리는 당연히 고급버전으로 간다.

팬이 중불에서 잘 달궈졌으면 믹스를 붓는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팬에 거의 딱 들어차는데 이때 팬을 가만히 두지 말고 몇 번 흔들어 아래의 익은 부분들이 나머지 부분들과 약간 섞이도록 한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잠시 둔다. 계란이 잠시 굳는 시간을 두는 것이다.

지금이 하이라이트다. 팬에서 익고 있는 감자 토르티야를 뒤집어야 한다. 어떻게? 접시를 이용한다. 이 시점에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숨을 죽이게 되는데, 마치 우리가 팬을 돌려 전을 뒤집을 때 묘한 긴장감이 도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적절한 크기의 접시를 활용해 토르티야를 뒤집고 다시 팬 속으로 넣어 익힌다.

무사히 이 과정을 거쳤다면 취향에 따라 더 익히고, 덜 익히는 과정만 남았다. 또 이 시점이 은근히 중요한 게 자칫 방심한 사이 잘못하면 한쪽을 태울 수 있는데, 그래서 요리사들은 일부러 탄 쪽을 뒤집어서 예쁜 쪽을 위로 올리곤 한다. 아주 유용한(?) 꼼수다. 우리의 ‘토르티야 데 파타타’가 완성되었다.

내부를 살펴보면 우리의 의도대로 올리브 오일을 한껏 머금은 촉촉한 감자가 굳기 일보 직전의 계란과 함께 섞여 용암처럼 흐르는 형태를 띤다. 중요한 맛 포인트는 역시 확실한 간이다. 맛을 열어주는 것은 소금의 힘이다. 특히 이 요리는 간을 실패하면 되돌릴 수가 없다. 뒤에 소금을 따로 뿌려서는 진정한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저온에서 오래 익히는 동안 맛이 응축되고 마이야르 반응이 더해진 짙은 풍미의 감자가 계란의 풍성함과 합쳐져 재료들 본연의 소박함과는 달리 아주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

만약 양파를 넣었다면 단맛과 야채의 감칠맛이 더해서 훨씬 미식적인 뉘앙스가 더해진다. 나도 참 먹을 때마다 느꼈지만 “이게 도대체 왜 맛있는 거지?”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무슨 맛인지 뻔히 아는 재료들의 만남이지만 1+1이 시너지를 일으켜 3 이상의 효과를 내는 느낌이다. 요리는 단순히 재료들을 조합하는 행위가 아닌,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제3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창작활동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곤 한다. 

이토록 맛있어서일까? 감자 토르티야가 스페인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면 먼저 호불호를 타지 않는 재료들의 무난함을 들 수 있겠다. 감자와 계란이라는 필수적이면서도 구하기도 쉬운, 그러나 미식적으로 굵직한 재료들이라는 점에서 대중성을 쉽게 획득한다. 근데 세상에 감자랑 계란 없는 나라도 있나? 이것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감자 토르티야가 스페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조리의 ‘단순함’과 그에 따른 ‘콘텐츠’의 확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토르티야 데 파타타’는 전통적인 레시피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매뉴얼에 불과할 뿐 스페인의 레스토랑 수만큼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한다. 실제로 매 해 전국 최고의 토르티야 레스토랑을 선정하고 명예의 전당에 올리기도 한다. 계란을 완전히 익히니 마니, 감자를 어느 정도까지 익혀야 하는지, 나아가 어떤 지역의 감자, 어떤 종류의 계란이 좋은지를 일상에서도 흔하게 논한다. 무슨 애들도 아니고 이 바쁜 세상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할 일인가 싶겠지만, 양파를 넣니 마니 하는 위 사진의 주인공들은 스페인을 넘어 오늘날 미식 그 자체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셰프들이다. 이런 쓸데없는 토론과 논쟁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미식문화가 일상에서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이자 궁극적으로 음식을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두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소박한 요리가 스페인을 하나의 온전한 나라로 묶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그 ‘단순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감자와 계란이라는 소박한 재료들의 한계선 안에서 일상다반사로 흐르는 소소한 논의와 창의성이 더해져 파생되는 수많은 변주들을 나는 보았다. 역설적이게도 ‘한계’가 있음으로 ‘창의’가 생겨난다. 그리고 ‘단순함’이라는 한계는 결국, 그 모든 복잡함을 관통해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진다. 콘텐츠와 브랜드, 나아가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가장 본질적인 힘은 ‘단순함’에 있다.

분열의 역사를 겪으며 여전히 오늘날 각각의 색깔로 존재하는 스페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원동력은 그래서, 바로 ‘미식’만이 가지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계란이 조각조각난 여러 감자들을 하나로 묶어 제3의 맛을 그려내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8개의 바스크 성씨]의 세상 가볍기 그지없는 남자 주인공과 험상궂고 보수적인 여친 아빠가 결국엔 마음을 나누고 마는 장면이 필요했었더라면, 아마 그 식탁에서는 반드시 ‘토르티야 데 파타타’(Tortilla de patata)가 올라야 하지 않을지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