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텍스트] 성별 연령 직업 등 반영한 대표자 120명 선발, 참여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로… 시민들 권고 받아들일 의지와 결단 있나.
경기도가 기후도민총회를 개최한다. 참여 도민을 20일까지 모은 뒤 오는 30일 첫 총회를 연다.
경기도 기후도민총회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의 기후 정책 공론 기구다. 경기도는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반영할 정책을 위해 ‘경기기후도민회의’를 운영한 바 있다. 그해 7월에는 ‘경기도 기후도민총회’를 설치·운영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근거 법규를 마련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기후시민의회처럼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공론조사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
왜 이게 중요한가.
- 조례로 명문화한 기후정책 숙의공론조사 기구는 전국 최초다. 지난해 경기도가 운영한 기후도민회의는 청년 중심으로 기후 정책 과제를 도출했던 공론장이었다면, 기후도민총회는 도민 대표자들의 입법 제안 기구에 가깝다.
- 공론조사 기구는 시민, 전문가,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숙의와 토론으로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2017),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2018),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조사(2023) 등이 대표적이다.
- 공론조사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다양한 정책을 발굴할 수 있다. 경기도 측은 “그동안 기후 위기 대응 정책 수립을 위해 독자적 탄소 중립 추진 체계를 운영했지만, 한정된 계층의 의견 수렴으로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 경기도는 기후 정책 수립과 이행 과정에 도민이 참여하면 정책 신뢰도와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적 의견 수렴과 숙의를 통한 사회 갈등 완화도 기대했다.
- 경기도는 지난 2월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을 경기도 기후도민총회 사업의 수탁기관으로 선정했다. 사업비는 4억5000만 원이다. 진흥원은 공론조사 등 행사 운영에 관해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와 1억8000만 원의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4000명 몰린 기후도민총회 열기, 대표로 120명 선발.
- 지난 9일부터 모집한 결과 17일 기준 3700명이 신청했다. 연령, 성별, 학력, 직업, 지역 등을 고려해 120명의 기후도민총회 대표를 최종 선발한다.
- 30일 출범식을 거쳐 8월부터 10월까지 학습과 총 3회의 총회를 통해 경기도민이 체감하고 공감하는 기후 정책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 올 12월 성과 보고회를 개최해 총회가 만든 기후 위기 대응 정책(입법)안 등을 도지사와 도의회에 권고문 형태로 전달한다. 결과 보고서도 기후도민총회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 미래 세대, 에너지, 도시·건축, 교통, 농축수산·산림, 자원 순환, 기후 격차 등이 의제로 논의될 전망이다.
- 경기도 기후환경에너지국장 차성수는 “도민들이 스스로 만드는 기후 정책이 지속가능한 변화의 시작”이라며 “경기도 기후도민총회가 대한민국 기후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기후시민총회 사례 톺아보기.
- 기후 위기 대응에 선도적인 유럽의 경우 2010년대 후반부터 시민의회 프로그램이 조직됐다. 가장 큰 규모로 시행한 사례는 프랑스의 기후시민총회(CCC, Convention Citoyenne pour le Climat)다.
-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조끼 운동’에 대한 대응으로 출범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노란조끼 운동의 요구 사항을 수용한다는 취지에서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기후 위기에 관한 공론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2019년 10월 총리 에두아르 필립(Edouard Philippe) 요청에 따라 프랑스 기후시민총회가 설립됐다.
-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프랑스 기후시민총회는 선거인 명부에서 무작위로 시민 150명을 추첨해 패널을 구성했다. 프랑스 인구 구성에 비례해 남성 48%, 여성 52%를 선발했다. 프랑스 인구의 연령, 학력, 직업 구조가 반영되도록 안배했다. 참가자들은 하루 86.04유로(한화 14만 원) 수당을 받았다.
법적 구속력 없는 구색 맞추기 공론화가 안 되려면.
- 프랑스에서는 참가자들이 소비, 생산, 이동, 주거, 음식 등 5가지 분야를 나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방안을 토론했다. 총회는 2020년 6월 29일 최종적으로 권고안 149개를 정부에 제출했다.
- 정부는 시민총회가 제안한 권고안 중 “석유 및 석탄 보일러 설치 금지”, “공공장소 및 카페에서의 실외 난방 금지”, “알자스 지역 등의 자연보호구역 조성” 등을 채택했다.
- 실제 입법 과정에서 15개의 권고안(채택률 10%)만이 채택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론화 단계의 결정 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시민과 정부·의회 사이 추가적 합의가 필요하다.
합리적인 정보 공개와 전문적 지식 공유가 필수.
- “우리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회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시민입니다. 우리에게는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 프랑스 기후시민의회 보고서 서문에 담긴 말이다. 프랑스는 형식적 의견 수렴을 넘어 실제 국회가 일부 제안을 받아들여 실행하고 있다. 경기도 기후도민총회가 성공하려면 도 의회의 전향적 태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경기도지사 김동연의 의지와 결단이 뒷받침해야 한다.
- 시민 공론화 프로그램 운영에는 큰 비용이 든다. 프랑스 기후시민총회는 1년간 운영에 550만 유로(약 81억 원)를 썼다. 독일 기후시민의회엔 190만 유로(약 30억 원), 아일랜드 시민의회엔 150만 유로(약 22억 원)가 지출됐다. 회의 기간과 개최 횟수에 비례해 전체 운영비가 증가했다.
- 국회입법조사처는 공론조사 기구 성공 요건에 관해 “시민 역량과 더불어 투명하고 합리적인 정보 공개와 전문적 지식 공유가 요구된다”며 “정책 결정자나 대의 기관 책임을 회피하는 제도로 잘못 운용할 경우 책임 정치 실종과 포퓰리즘이나 중우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도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