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코리아 칼럼] 영남 산불은 재난 안전 체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기후위기는 재난의 상수, 재난 예방·회복 위한 생태적·공동체적 방법론이 필요하다. (허승규/녹색당 안동시 공동운영위원장) (⌚8분)

산림청이 심은 리기다소나무림이 불타는 모습. 2025.03.24. 의성. 사진 제공 최병성(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지난 3월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의성군을 지나 안동시,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을 휩쓸었다. 이번 의성-안동 산불은 정부 수립 이래 발생한 단일 산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은 인명·재산 피해를 낸 산불로 예상된다. 산불 피해 지역민으로서 피해 주민들과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산불 재난과 녹색 정치의 역할을 말씀드린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생계가 절실한 이들은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자가격리부터 자녀돌봄 문제까지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방역조치의 무게가 달라진다. 모든 재난에는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 산불 재난도 그렇다. 산지가 많은 지역은 대부분 농산어촌이며, 인구가 적고 노인 비율이 높다. 이번에 희생된 이들도 대부분 농산어촌의 노인들이었다. 특히 노인들은 혼자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재난 상황에 취약한 지역의 교통 약자들

지난 3월 25일 화요일 오후 급속도로 산불이 안동 도심으로 접근해오면서 내가 살고 있는 강남동에도 다른 지역으로 대피령이 떨어졌다. 연기는 자욱했고 주민들은 동요했다. 잠시 아파트 정전이 되었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니 엘리베이터 사용을 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9개월 전에 승용차가 생겼다.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15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가서 10~15분 거리에 있는 강 건너 본가로 대피하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지인의 할머니가 인근 아파트 15층에 혼자 살고 계셨다. 80세 이상 할머니가 15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갈 수 있을까? 설령 내려갔어도 자욱한 연기 속에서 택시를 잡고 이동할 수 있을까? 그나마 동사무소에서 동네 구석구석을 돌면서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실어날랐기에 강남동 주민 피해는 없었다.

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가 아닌 농촌지역일수록 교통이 불편한데, 교통 약자 비율은 높다. 교통 약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교통이 불편한 역설이다. 교통 불평등은 곧 지역 불평등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어르신 교통기본권은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및 무료버스 정책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통 복지가 발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획일적인 면허 반납 정책을 넘어, 고령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공공교통 강화라는 관점에서 안전장치 지원, 시니어카·서포트카 등의 이동수단 지원, 한정면허제도, 수요응답형 교통과 마을버스 결합 등의 다층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긴급한 재난에 비추어 이런 정책은 한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재난과 위험도 다층적이다. 어르신 이동권 개선은 전반적인 재난 대응 역량을 높이고, 일상적인 기본권을 보장한다.

산불 원인 갑론을박? ‘모 아니면 도’ 식의 접근을 넘어

최근 산불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의 규모가 커지고 기간이 길어지는 원인으로 기후·녹색운동 진영과 일부 과학자들은 기후위기를 꼽았다. 최근에는 기후위기를 원인으로 보는 입장을 비판하면서 산림청의 정책, 특히 소나무 중심의 조림 정책이 가장 큰 문제라는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런 주장이 화제가 되자 침엽수림 정책을 악마화하는 것에 대한 반박과, 산주들의 입장에선 소나무를 많이 심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방송에선 대피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레기를 소각했던 주민의 사례를 들면서 어르신 세대의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산불 원인 통계를 보면 70% 이상이 인위적 요인인데, 30%가 넘는 비율이 입산자 실화다. 입산자 실화에는 등산객, 성묘객들도 포함된다.

산불 예방을 위해 성묘문화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산불도 성묘객 실화로 시작되었다. 산불 예방을 위해 봄 가을 성묘를 금지해야 할까? 묘지 이장을 장려해야 할까? 불에 타기 쉬운 소나무를 심지 말아야 할까? 기후위기를 산불 변수에서 제외해야 할까? 담뱃불 실화도 원인이니 산 근처 금연령 선포가 더 시급할까?

2025년 3월24일 밤 의성. 소나무로 조성된 산림에서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있다. ‘비화(飛火)’ 현상. 사진 제공 최병성(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기후·산림·소방·예방문화 정책 개선이 함께 가야

현실의 많은 문제는 한 가지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한 가지 해법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의 원인을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접근하는 일이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기후위기는 기후의 불안정성을 높이므로 자연 재난의 주요 요인이다.

각종 자연·사회재난에 기후위기는 상수가 되고 있으며, 산불 재난도 기후위기라는 요인을 제외할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로 겨울이 따뜻해지고 봄에도 고온 현상이 나타나며 강수량이 줄어든다. 고온의 건조한 기후와 높은 일교차로 인한 강풍은 산불에 취약하다. 물론 기후위기는 산불 발생을 높이는 원인이지만 단기간에 기후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산불 재난의 성격에 맞는 산림 및 소방정책 등의 점검과 개선이 함께 요구된다.

한편 하늘에서 떨어진 정책은 없다는 것도 직시해야 한다. 산림정책은 산림과 관련된 이해당사자 집단의 요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산주들의 이해관계도 고려된다.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산림정책과 산주들 또는 임업 관계자들이 원하는 산림정책이 불일치할 수도 있다. 산불 재난 대응과 관련한 산림 정책 개선의 방향은 공공성과 재난 예방이란 관점을 깔고, 산림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토론해서 탐색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노후한 장비를 개선하고, 산불 예방 인력에 더 많은 예산 지원을 하는 등의 소방정책의 영역이 있다. 산림청과 소방청의 산불 대응 체계와 역할 분담 등에 대해서도 토론해볼 필요가 있겠다. 한편 개인의 부주의만 탓해선 안 되겠지만, 교육과 문화를 개선하고 부주의한 행동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산불 재난과 지역 소멸의 문제

마을 전체가 거의 타버린 안동시 임하면 주민이 울분에 차서 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이 오래 유지되면 좋겠는데, 자기 집이 타버린 어르신들 가운데 누가 자기 돈을 들여서 새로운 집을 마을에 지을 수 있겠냐”면서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면 결국 마을 자체가 사라지지 않겠냐”고 한탄을 하셨다.

지금의 농촌과 지역 현실을 고려하면 산불로 탄 집을 새롭게 지을 수 있는 개인적, 공동체적인 역량이 부족하다. 임하면의 60대 부부도 말년을 농촌에서 보내고자 10년을 공들인 주택이 모두 전소했다. 이 부부는 “재난보상금액이 실제 집을 지었던 금액과 너무 차이가 나면 이사를 가야 할 수 있다”면서 “빨리 실태조사와 보상금액을 알고 싶다”고 했다.

안동시에서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 지원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체육관과 마을회관에서 계속 머물 수 없기에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후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주거는 불확실하다. 개별적인 주거 지원 보상이 한계가 있다면 공동주택 형식의 이주 대책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을 전체가 화마에 휩싸인 경우나 복지시설까지 전소된 마을에는 한두 집만 먼저 돌아오기 어려울 수 있다. 개별적인 보상과 함께 정치와 행정, 지역사회가 함께 주거 회복 로드맵 및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논의하는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재난 이후 일상 회복: ⑴ ‘정치’의 역할

이미 발생한 산불을 끄는 일에선 행정이 우선 역할을 한다. 재난 이후 일상을 회복하는 일과 산불 재난을 예방하는 일에 정치가 나서야 한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며, 우리의 자원을 공적으로 나눠 쓰는 결정을 한다. 피해 복구에 어느 정도 예산을 지원할 것인지, 산불 예방을 위해 어떤 정책을 우선할 것인지 결정한다.

우리는 모두 안전한 사회를 말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많은 시민들은 피해 지원에 정부가 힘쓰길 바라지만 구체적인 지원 금액으로 들어가면 이웃에게 관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재난 당사자가 될 수 있고, 피해 주민들에 대한 지원 기준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기에, 이번 산불의 피해를 특정 지역을 넘어 국가적인 연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재난 이후 피해 주민들이 겪는 많은 문제를 기존 체계에만 맡겨 두면 탁상행정에 머무를 수 있다. 피해 주민들에게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제적인 조치를 해나가야 한다. 재난 예비비와 추경 예산 논쟁도 키울 필요가 없다. 필요한 지출에 합의하면 용처가 중요하지 않다. 정치권은 산불 재난이 급격한 지역소멸로 이어지지 않도록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지역사회 공동체의 역할

재난 대응과 예방에 있어서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교한 재난예방체계를 마련해도 정치와 행정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공백을 이웃 공동체가 채울 수 있다. 전기와 통신이 마비된 마을에서 이웃 주민을 대피시켰던 것은 평소에 알고 지낸 이웃과 공무원 등이 직접 찾아왔기에 가능했다.

임하면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본인 집도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웃 어르신을 대피시켰다. 자식들이 데리러 온다면서 집에서 기다리던 어르신과 실랑이를 하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재난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마을이라고 했다. 이웃사촌 미담을 전하는 것을 넘어, 주민공동체의 역할도 재난 대응과 예방 체계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재난 이후도 마찬가지다. 산불 재난 전후로 하루하루 급변하는 상황에서 행정의 대응이 늦을 수 있다. 산불 진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만난 안동시 남선면 여성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인근 농협에서 먹거리를 어느 정도 지원해줬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인원이 늘어나면서 자체적으로 식사를 해먹기 어려웠다.

그런데 안동시 지정 대피소가 아니면 식사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안동시 지정 대피소는 대부분 시내에 있는 체육관이었는데 임하면은 주민들의 요구로 임하면 소재 복지회관이 추가로 대피소 지정을 받아서 삼시 세끼 공급을 받고 있었다.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임하면 사례를 공유하고 민원을 대신 행정에 전달했다. 행정에서는 초반에는 안전 문제로 면 지역 대피소 지정을 하지 않았으나, 이장을 통해서 의견이 들어오면 대피소 추가 지정을 시에 건의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끼리 서로 챙기고 돌보는 모습은, 행정이 비어있는 틈을 주민공동체가 메우는 장면이었다. 주민공동체와 함께 재난 대응과 재난 이후 회복을 세심하게 소통하는 일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마을의 회복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녹색정치, 각자도생 아닌 연결된 힘을 믿는다

이번 산불 재난을 통해 기후위기, 지역소멸, 재난예방체계 등의 다양한 과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재난으로 확인된 과제를 개선하고 재난 이후 일상을 회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자. 기후재난 시대, 다양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생태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자.

생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어떤 개체 간의 관계성과 연결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재난 상황에서 나와 이웃,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지방과 중앙, 인간과 자연, 뭇생명이 연결된다. 재난을 맞아 각자도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은 소수다.

녹색정치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결된 사회의 힘을 믿는다. 나의 이익만 내세우다간 공멸하며, 상호의존에 기반해 함께 사는 길이 나에게도 이롭다고 믿는다.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에서 더 많은 개인이 살 수 있으며,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가 재난 예방의 가장 큰 백신이다.

재난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재난 이후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길에 우리의 역량을 모으자. 산불 재난을 맞아 녹색정치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불이 지나간 곳에서 벌써 농사를 시작하는 농민들을 보았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틔우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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