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3분의 1 가격 수입 꽃, 검역도 느슨… 국산 농가 보호할 의지 있나. (⌚6분)
유통업자: “우리도 국산 쓰고 싶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 솔직히 에티오피아 장미랑 비교하면 국내산은 가격이 몇 배 이상이다. 알맹이도 에티오피아 절반 수준이다.”
화훼 농민: “유통하는 그 동네를 위해 화훼(花卉) 농가는 다 없어져야 한다는 건가. 여기서 그런 말이 옳은가?”
가시 돋친 말이 서로를 찌르며 장내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지난달 31일 민주당 의원 김영환 주최로 국회서 열린 화훼 산업 발전 토론회는 전국의 화훼 단체 대표들과 농가, 소상공인 단체들이 모인 자리였다. 외국 꽃과 조화(造花·가짜 꽃)가 물밀듯 수입되면서 국내 화훼 농가는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암울한 상황이다.
국내 화훼업계 목소리는 수입 꽃과 조화에 과세를 제대로 매겨야 한다는 걸로 모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농림축산식품부, 관세청, 국세청 과장들은 화훼 농가들의 성토에 진땀을 뺐다.

이게 왜 중요한가: 먹거리 아니라 FTA 협상 제물로.
- 국내 화훼 산업 몰락은 해외 시장과 비교해 가격과 품질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농업이 FTA 같은 국가 간 무역 협정으로 보호 장벽이 허물어졌을 때,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 도매 기반의 무역 기업 케이플로라 대표 이광진은 “화훼 생산·유통은 이미 수입 꽃으로 기울어졌다. 우리의 3분의 1 가격으로, 우리보다 더 좋은 품질로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수많은 수입 꽃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라고 개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꽃은 먹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FTA 협상할 때 외국에 쉽게 던져줄 수 있는 먹잇감으로 활용했다. 정부가 그동안 관세 협상을 하며 주고받고 할 때 화훼 산업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 아닌가 싶다.”
관세 0원, 가짜 꽃 수입 연간 2000톤.
- 화훼 재배 면적, 농가 수, 생산액 모두 2005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22년 재배 면적(4400ha)은 2005년(8000ha)의 절반 수준이다. 생산 농가 수도 1만2859호(2005년)에서 7134호(2022년)로 45% 감소했다.
- 반면, 수입은 빠르게 늘었다. 2010년 약 4400만 달러에서 2023년 약 1억2000만 달러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가짜 꽃(조화) 수입은 한 해 평균 2000톤이 넘게 들어온다. 가짜 꽃의 99.84%가 중국산이다.
- 수입 조화 관세는 제로다. 관세청 조사총괄과장 이광우는 “조화의 경우 미국, EU, 중국과 FTA가 체결돼 있어서 무관세인 상황”이라고 했다. 수입 생화 관세는 가격에 세금이 붙는 종가세로, 수입 업자가 수입을 신고하고 가격을 제출하면, 8% 또는 25% 관세를 부과한다.
- 소비자는 꽃 시장 개방으로 편익이 늘었다. 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김윤진 자료를 보면, 현재 13개가 넘는 나라에서 화훼를 수입하고 있다. 품종도 50종 이상이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화훼 시장에는 네덜란드의 튤립, 칼라, 남아공의 프로테아, 이탈리아의 미모사, 콜롬비아의 카네이션 등 다양한 원산지의 특색 있는 품목이 유통되고 있다.

쟁점 1: 수입 국화, 세금 제대로 걷고 있나.
- 경남 창원에서 국화(菊花) 농사를 짓고 있는 60대 정태식이 한 말이다. 농식품부가 ‘수입 농산물 유통 이력 관리 대상’에 수입 꽃을 포함하지 않는 것에 격분하며 말했다. “1%의 극소수 농가도 국민이다. 다른 농산품은 되는데 왜 화훼는 안 되는 것인가.”
- 수입 농산물 유통 이력 관리는 외국산 농산물이 국내산으로 둔갑해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유통 단계별로 거래 내역을 신고하는 제도다. 부가가치세법상 국내산 생화는 면세 상품인데 반해 수입 생화와 가짜 꽃은 과세 대상이다. 하지만 시중 화원에서는 수입 생화와 가짜 꽃도 면세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 경남절화연구회 부회장 양성배는 “국화의 경우 수입산이 85%고, 국내산은 15%뿐이다. 한 해 수입 국화가 1억8000만 본(꽃모종을 세는 단위)이 들어오는데 여기에 부가세가 제대로 매겨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국세청에 ‘쌀 화환’을 문의하니 쌀을 제외한 나머지는 부가세 대상이라고 한다. 쌀 10kg이 4만 원 정도 하는데 쌀 화환은 10만 원에 유통된다. 나머지(10만 원-4만 원=6만 원)에는 부가세가 붙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 시중에 유통되는 약 500만~700만 개 화환 대다수가 수입 꽃과 조화다. 규제 당국이 관리·감독 의무를 방기하면서 화환 제작·유통업체의 탈세가 일상화했다는 비판이다.
- 국세청 부가가치세과장 김용재는 “플라스틱 조화를 많이 유통하고 있는 업체들, 또 그들과 거래하는 도·소매업체들을 파악하여 제대로 과세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쟁점 2: 느슨한 검역이 만든 역차별, 비관세 장벽이라도 제대로 세워라.
- 한국의 느슨한 검역 절차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케이플로라 대표 이광진의 말이다.
- “일본에 꽃을 수출할 때 검역을 한번 당하면 꽃도 주고 돈도 줘야 한다. 일본의 검역에 꽃은 형편없이 망가지고 마이너스 계산서를 받게 된다. 대한민국 수국(水菊·동아시아 원산의 갈잎떨기나무)을 수출하면, 일본 검역원들이 하얀 종이를 깔아놓고 15번 정도 때려 댄다. 그렇게 해서 벌레알이나 유충이 한 개라도 나오면 불합격이다.
-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수입 물량 22%가 검역을 받았는데 폐기물은 0.2% 밖에 안 나온다. 물 소독을 하는 건가? 비관세 장벽이라도 제대로 세우는 게 정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쟁점 3: 국립공원에 플라스틱 꽃, 말이 되나.
- 국립묘지를 포함한 공원묘지에서 플라스틱 가짜 꽃 사용을 금지하자는 요구도 빗발쳤다. 플라스틱 꽃은 생화보다 훨씬 저렴하고 차례·참배 후에도 오래 버틴다는 이유로 공원묘지에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 한국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 회장 이기성은 “우리 선조가 묻힌 현충원을 참배할 때 가짜 꽃을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플라스틱 조화를 폐기하면 탄소가 발생해 환경에도 매우 좋지 않다”고 했다. “농식품부가 수입 폐기물을 규제할 수 있는 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김해시는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과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2022년 전국 최초로 공원묘지 내 플라스틱 조화 반입을 금지하는 시책을 시행했다.
- 농식품부 원예경영과장 신지영은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이 조화보다 생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이 지난주 법사위를 통과했다”며 “이 법이 통과되면 (생화 사용을 위한) 지자체의 조례 제정 등 추가 노력이 뒤따를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쟁점 4: 3배 비싼 국산 꽃, 유통 구조가 문제다.
- 화훼 유통업계를 대변하는 한국화원협동조합연합회 회장 이영석과 생산 농가를 대변하는 경기도장미연구연합회 회장 정수영의 설전도 인상 깊었다. 화원협동조합은 전국 1200여 곳의 꽃집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 이영석은 “수입 꽃은 우리가 소비자에게 권하고 있다. 우리 연합회에서 쓰는 꽃만 해도 수입이 90% 이상”이라면서 “품질도 품질이지만 단가 차이가 크게 난다. 3배 차이다. 수입 꽃은 요즘 한 달에 4500원~5500원인데, 국산은 1만2000원~1만6000원까지 간다. 유통업 입장에서 국산 꽃은 경쟁력이 결코 생길 수 없다”고 토로했다.
- 정부 및 공공기관마저 화환으로 가짜 꽃을 찾는 현실에서 부가세 부과 등이 국내 화훼 산업 보호에 실효적이냐는 질문이다.
- 반면, 정수영은 “유통하는 그 동네를 위해 국내 화훼 농가는 다 없어져야 한다, 결국 그 이야기 아닌가. 여기서 그런 말이 옳은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한 화훼 농업인은 “우리나라 유통 구조도 잘못됐다”며 “농가에서는 최상품이 5000원~6000원인데 중간 상인이 있고 마진이 붙다 보니 소비자 가격은 1만 원이 넘는다. 유통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론: 화훼도 농업, 애국 마케팅이 통할까.
- 소비자 입장에서 국산 꽃을 사야 하는 이유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 및 농수산물과 비교하면, 원산지에 대한 관심과 민감도가 떨어진다.
- 화훼 농가도 이 점을 잘 안다.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 회장 서용일은 “수입산이 더 싸고 품질도 뛰어나다. 수입산은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꽃의 볼륨이 크다. 경쟁이 전혀 안 되고 있다. 단돈 10원이라도 민감한 게 장사꾼이다. ‘국내산을 구매하는 게 애국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 정태식은 소비자 건강과 안전성 이슈를 꺼냈다. “중국이나 베트남은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에 고독성 농약을 치지 않으면 병충(病蟲)을 잡을 수 없다. 그런 꽃들을 만지거나 가까이하면 피부 알레르기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저독성이라는 점에 장점이 있다.”
- 양성배는 ‘가치 소비’를 내세웠다. “최근에는 특정 색감의 꽃을 달라는 등 다양한 소비자 요구가 있다. 비록 국내 화훼 농가가 축소했지만 꽃의 다양성을 좀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플라스틱 조화는 폐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한다. 조화보다 생명은 짧지만, 향기로운 국내 꽃에 대한 소비가 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다는 가치 소비로 나아가야 한다.”
- 서울여대 교수 김윤진은 “플라스틱 조화는 토양 오염을 유발하고, 생분해되지 않고 폐기물로 남는다”며 “플라스틱 조화에 대한 환경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꽃 시장은 더 열린다. 대한민국과 에콰도르는 2023년 한·에콰도르 전략적 경제협력협정(SECA·세카)을 체결하고 현재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다. 에콰도르는 세계적 꽃 수출국이다. “세카가 발효하면 국내 장미는 물론 절화(折花·꺾은 꽃) 시장 전체가 전멸할 수 있다.” 화훼 농가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