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인터뷰] 임명묵은 슬로우뉴스의 오랜 필자다. 그가 조선일보 칼럼(‘우리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노인을 존중해 왔나’)으로 논란의 장본인이 됐다. 청년(작가) 임명묵에게 그 칼럼을 쓴 이유, 그가 생각하는 2025년 한국을 물었다. 그리고 그에게 비친 한국의 모습을 정리했다. (⏰40분)

들어가며

인간은 평면이 아니다. 아무리 단순한 인간도 입체이고 모순이며 이율배반이다. 나는 구성주의자다. 인간은 구체적인 시공간의 조건, 욕망과 지적 성찰과 감성적 흔들림이라는 조건 속에서 매 순간 구성된다. 한 철학자는 ‘어제의 나’를 들어 ‘오늘의 나’를 고정된 것으로 규정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물론 그런 인간의 모순, 입체성, 이율배반과 아이러니가 어떤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 발언에 대한 알리바이가 되어선 안 된다. 행위, 특히 지식인이라는 좌표로 규정된 특정한 시공간의 인간이 그 시공간의 질서에 관해 이야기하는 ‘말’ ‘언어’ ‘글’은 그 자체로 모두에게 비판과 대화의 재료가 되어야 하고,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그것은 지식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받아야 들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임명묵이라는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서른 살쯤 된 남자를 둘러싸고 페이스북이 잠시 시끄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임명묵이라는 사회적 아이콘의 크기와 위상은 별론으로, 그가 ‘조선일보’라는 여전히 정파적으로 민감한 ‘도화지’에 그린 하나의 그림(칼럼)이 작지 않은 파장으로 페이스북이라는 세속적이고 호사스러운 소셜에 공명했다. 나는 그런 지적 호사에 별 관심이 없지만, 그럼에도 2025년 3월을 통과하는 지금, 서로 점점 더 단단하고 거대하게 깊고 어둡게 갈라지는 세계, 그 속에서 청년의 목소리에 조금은 관심이 생겼다. 그건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죄책감이다.

나는 절반 이상은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별다른 세속적 의욕이 없는 허무주의자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기성세대의 책임 일부를 기꺼이 나의 것으로 긍정한다. 이제는 식상해진 정치적 잠언처럼, 악이 번성하기 위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다. 그 악이 번성할 때 그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한 착한 사람들은 과연 착하기만 한 사람들인가. 그리고 그 ‘선한 사람들’이야말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또 다른 악에 불과하다면, 그때는 어떻게 그 멀고 먼 섬(島)에 가야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내가 옳기 때문에 싸워야 할 때인가,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품어야 할 때인가.

다음 세대의 미덕은 항상 배은망덕이었고, 그것을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언어는 저항 혹은 반항이었다. 하지만 2025년 남한을 떠도는 ‘극우’와 ‘청년’이 서로 결합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이끌리는 듯, 흘러가는 그 구름 같은 풍경은, 그 반항 혹은 저항은 세상에 대한 거의 모든 설렘과 놀라움이 사라진 나에게조차 너무 불쾌하고 두려우며 낯선 것이다.

이 인터뷰는 임명묵의 조선일보 칼럼, 특히 다음 문단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우리 대화의 ‘실마리’다. 그리고 이 대화, 임명묵의 대답이 또 다른 대화의 실마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요컨대 이것은 한국인의 유교적 무의식을 자극하는 일종의 영적 체험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관에서부터 부정선거 의혹에 이르기까지, 노년층이 주류 정치와 무관하게 발전시켜온 서사와 세계관을 그대로 흡수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반대 진영에서 ‘극우화’라 부르는 변화가 일어난 메커니즘이었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아마 이것을 ‘충효화’라고 부르고 싶어 할 것이다.”

조선일보,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우리의 민주주의는 노인들을 얼마나 존중해왔나,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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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로 2025년 2월 14일(금)에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지만, 이후에도 서면과 전화 등으로 보충했다.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에 맥락화했고, 본문은 임명묵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임명묵과 협의했고, 임명묵이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답변을 보완하고 퇴고했다.

🌈 편집자의 말

나는 이 인터뷰를 다양한 2030의 목소리를 듣는 좀 더 큰 기획의 일부로 구상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SKY와 4년제 대학과 같은 사회적으로 ‘과잉 대표’되는 어떤 유형화된 그룹의 청년을 넘어 좀 더 생생한 생활 속 이야기, 그 삶 속에서 생겨나는 고민을 들어보고 싶었다. 방송과 신문 바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기획을 실현하기가, 일단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더 다양한 2030의 목소리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 목소리를 나누고 싶은 2030의 기고와 제보, 인터뷰 요청을 기다린다. editor@slownews.kr


조선일보 ‘충효’ 칼럼

논란의 칼럼은 온전히 내가 쓴 것이다. 조선일보 편집 과정에서 이런 칼럼이 유도된 것도 아니고, 간섭도 오히려 평소보다는 없었다(보통은 문장이 어렵고 개념어가 많다고 수정 요청이 들어온다). 주제는 당연히 내가 설정했고, 일부 구성상 편집이 있긴 했다. 그리고 칼럼을 쓸 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지면이다. 결과적으로는 지면의 제약(부피의 제약)으로 인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그 점은 아쉽다. 이 칼럼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조선일보,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우리의 민주주의는 노인들을 얼마나 존중해왔나, 2025.02.05. 갈무리.

‘태극기 이데올로기’를 집회에 참석한 청년층이 내면화하는 메커니즘을 내재적 관점에서 최대한 드러내고 싶었다. 내가 참고한 자료는 두 가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내러티브의 변화상, 그리고 집회 현장에서 내 눈으로 본 풍경들. 해당 칼럼에는 이 두 자료를 보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중국 부분은 편집 과정에서 들어갔다. 원래는 그 대신에 집회 현장 풍경을 묘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집회에 나가게 된 동인(動因)을 조금이라도 넣어 달라는 부탁에, 풍경 묘사를 빼고 동인을 넣었다. 집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그들의 심리적 동기를 온전히 중국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역시 지면의 제약으로 여러 동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중국을 골랐지만 당연히 불충분한 설명이다. 한정된 지면에 하고 싶은 얘기를 더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내 능력 부족이다.

‘극우’라는 말

우리는 자유주의, 구체적인 제도로 말하자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보통선거에 기반한 선거 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시스템을 표준으로 생각하고 산다. 이 시스템은 1989년 이후에 전 세계에서 완전한 보편성을 인정받았다. 한국의 자유주의 체제는 당연히 같은 시기 탈냉전의 공기 속에서 형성된 1987년 민주화를 통해 들어선 6공화국 체제다.

하지만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자유주의는 결코 인류의 표준이 아니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경쟁자가 있었고, 자유주의의 시선에서 이 둘은 자유주의의 보편성을 거부하는 극단주의자였기에 각각 ‘극우’와 ‘극좌’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한다는 함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극우, 극좌, 혹은 파시스트, 빨갱이는 자유주의 정치에서 반대편의 입을 틀어막고 진지한 소통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기 위해 매우 편리하게 소환되는 언어였다.

한국의 경우에는 냉전과 분단 과정에서 극좌, 용공, 빨갱이라는 개념을 반대 세력의 정치적 시민권 박탈을 위해 편리하게 사용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물리적인 배제의 근거로 쓰기도 했다. 극우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에 도전하거나 자유주의의 재해석을 추구하는 우파 정치의 특정 경향에 일단 ‘극우’라는 말을 붙여서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하고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게 매우 편리하면서 일반적인 전술이 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극우라는 개념의 남발은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그렇게 생산적인 행위는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해서 극우화를 자극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극우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냐? 아예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냐? 극좌라는 개념이 사용할 가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우라는 개념도 현상을 포착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극우’ 혹은 ‘극우적 경향’이라고 할 때는 다음을 의미한다. 국가 혹은 민족 공동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사회유기체설을 바탕으로, 유기체의 근간인 전통과 가치를 우선적인 수호 대상으로 삼고, 사회를 ‘타락’시킨다고 판단되는 대상을 정화해야 한다고 믿는, 제도 정치에 대한 도전과 전복 의식을 갖춘 지향, 이념, 사상, 정치 세력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한국의 탄핵 반대 대중운동은 우파 포퓰리즘으로 볼 수 있고, 국가를 타락시키고 위협한다는 세력에 대한 정화를 요청하며 제도 전복과 폭력 사용을 긍정하는 급진파들은 극우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21세기 들어 지구적으로 매우 폭넓게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1920-30년대에 전 세계에 파시즘을 비롯한 극우 사상이 퍼져나간 것, 1950-70년대에 제3세계에서 사회주의와 민족 해방 운동이 결합한 극좌 사상이 퍼져나간 것, 1980-9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퍼져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차원의 변동을 바라보아야만 한국에서 극우의 부상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현재 한국은, 탄핵 반대 운동이라는 ‘우파 포퓰리즘 대중운동’의 주류는 제도 전복과 폭력까지는 명시적으로 긍정하고 있지 않아서 극우보다는 강경 우파 포퓰리즘 정도로 규정해야 할 것 같고, 그 내부에 극우라고 간주될 급진파들이 있으며, 이들의 상대적 비중은 이후의 정치적 전개 과정에 따라서 굉장히 크게 변동할 여지가 있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싶다.

반중 음모론

중국이 막대한 부와 인구, 그리고 세계 전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사회를 잠식해 가고 있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게 반중 음모론의 골자다.

스토리 자체가 조악하더라도, 이게 한국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무언가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현실이 없지는 않은 것이다. 역사학자 유리 슬료즈킨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문제는 농경 사회의 정주민이, 여러 정주민 사회를 중개하며 상업적 이득을 챙기는 유동민에 대해 느끼는 반감이라고 할 수 있다.

슬료즈킨은 그리스 신화와 태양계로 비유하여 정주민을 태양인(아폴로니언), 유동민을 수성인(머큐리언, 헤르메스)이라고 한다. 민족적으로 다른 정주민 지역으로 이주한 이 수성인들은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서 상업 영역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낸다. 때로는 범죄 집단과 연계되기도 한다.

유럽의 유대인, 중동의 아르메니아인과 레바논인, 인도의 파르시, 동남아시아의 화교가 대표적인 수성인이다. 태양인들은 이 수성인이 제공하는 상업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자신들과 섞여들지 않고 자신들의 도덕율을 공유하지 않는 이질적인 집단의 존재를 언제나 불편하게 여기며, 그 반감이 음모론으로 발전하고 포그롬(러시아어: погром, 영어: pogrom. 특정 민족집단, 특히 유대인을 상대로 한 학살과 약탈을 수반하는 군중 폭동)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그러했고, 중동의 반아르메니아 폭동, 동남아시아의 반화교 폭동도 마찬가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 한국 정치가 ‘글로벌 사우스'(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 위치한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말이 많다. 사실 오만한 말이다. 달리 보면 동유럽, 중동, 동남아시아는 제1세계 선진국이 겪게 될 미래를 먼저 선취한 이들이었다. 계층 격차가 커지고, 그 중간 지대에서 상업과 금융에 능한 외부 민족이 영향력을 확대한다. 현재 한국의 반중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동남아시아 사례를 더 많이 연구하고 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의 경우에는 이 수성인 집단이 그 어느 나라보다 거대한 본국을 지닌다는 점에서 특히 경계의 대상이 되기 좋다. 세계 2위의 경제력과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규모는 본국 인구가 수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 아르메니아, 레바논, 이스라엘과 차이점이다.

사실 이런 수성인에 대한 반감은 우파 포퓰리즘, 나아가 권위주의의 정서적 원천이기도 하다.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에 대한 반감은 터키 아타튀르크 정권 수립과 큰 연관이 있다. 독일 나치즘은 가장 폭력적으로 드러난 사례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폴란드나 헝가리 민족주의도 반유대주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5년 한국 사회는 어떨까? 중국은 노인의 경우에는 냉전적 세계관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과거 소련 자리를 오늘날 중국이 대체한 것이다. 청년층은 온라인 영역에서 마주칠 일이 많다. 대중가요, 드라마, 게임 등. 사실 노동 현장과 자영업 세계에서 중국 이주민과의 마주침이 한국 대중에게 어떤 정서로 전환되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어떤 연구가 있는지 조사를 안 해보았지만 이 영역은 아마 연구가 어느 정도 되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중 양국의 국제적 위상 교차도 대중의 위기감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했다. 한국의 발전은 정체되고 있는 것 같고, 공동체는 쇠락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위치를 노리고 있으며 한국 산업과 문화를 위협할 것 같다는 느낌이 두려움을 키운다. 중국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이 ‘일치단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의 반공 민족주의와 완벽히 일치하는 구도다.

2023년 6월 19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담했다. 중국정부, 신화통신

일본에서도 유사한 재일교포 음모론이 있는 것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재일교포 음모론을 설명할 때 일본은 정체해 있는데 한국이 급속히 성장해서 일본과 대등한 위치로 올라서고 있다는 불안감은 항상 주요 원인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한국이 아무리 성장해도 규모로 일본을 압도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한국을 규모로 압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기감이 비교가 안 되게 클 것이다.

물론 이런 정서가 진보 진영에 없는 것도 아니다. 노재팬으로 표출된 강력한 반일 정서 동원은 보수의 반중 정서와 비교하기에 좋은 소재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구별하는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세계 인식 차이, 그리고 공통점도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마스터 내러티브

나는 문화의 장기 지속과 중층성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 세계를 살지만 지역에 따라서 그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고, 사람들이 근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문화와 심리도 제각각이다(한국에도 소개된 조지프 헨릭의 책들을 추천한다).

한국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유교다. 중동의 이슬람이나 서구의 기독교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가치 체계의 뼈대는 유교라고 생각한다. 보통 한국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되곤 하는 시험공화국 유교를 빼놓으면 설명할 수 없다. MIT 황야성 교수도 ‘중국필패’라는 책에서 중국에서 과거제가 갖는 문화적 장기지속을 이야기한다. 한국도 고려 시대에 과거가 도입되어 조선 500년 동안에는 인적 자원 분배는 물론이고 사회적 권위 획득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이 과거제는 동아시아 유교가 유럽보다 먼저 선취한 근대성이라는 해석도 있을 정도로 선진적인 시스템이다.

혈통과 신분의 제약보다 모두에게 열린 능력주의를 제도화한 혁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한성에 사는 부유한 가문 자제가 합격자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시험공화국 대한민국에서도 강남 등 부촌 자제들이 명문대를 가서 계층을 대물림한다. 하지만 보편적 능력주의가 원칙이며, 혈통과 신분은 변칙이라는 인식은 중세 봉건제 위에서 능력주의 시스템을 근대에나 받아들인 유럽이나 일본과는 다른 한국 사회만의 특징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제는 우리 사회에 깔린 유교 문화의 장기 지속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초이며 예시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예컨대 여초 커뮤니티를 가면 과감한 성적 표현에 불편함을 표하며 ‘우리는 유교걸’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자신들 내면의 문화적 보수주의 정서에서 ‘유교’를 찾은 게 그냥 인터넷 밈일까, 아니면 여전히 우리가 유교의 자장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일까.

충효화란 무엇인가

일본에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라는 지식인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일찍이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글을 썼다(‘아시아주의의 전망’, 1963.08). 일본의 중국 연구자인 다케우치는 일본에서 중국을 바라볼 때도 서구의 기준과 언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에 의아함을 품었다.

다케우치는 중국과 일본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때 두 사회의 특징을 더 명확히 알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이렇게 환원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긴 한데, 어쨌든 비서구적 언어와 개념을 그 자체로 하나의 방법론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은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 1953. CC0.

그런 차원에서 저 태극기 집회에 나간 청년들의 심리 상태를 한국 전통문화와 연관된 개념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자 했던 것 같다. ‘충효’라는 단어 자체는 1월 18일 서부지법 집회 당시에 청년과 노인이 삼삼오오 모여서 돌아다니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다가 무섭게 목청을 높여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보고 문득 떠올랐다.

단순히 지적 유희 차원이 아니라 현상을 설명할 때 있어서도 시사점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폭력은 강렬한 이데올로기의 폭발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폭발시키려면 정서(sentiment)가 움직여야 한다. 전통문화의 장기 지속을 중시하는 내가 보기에는 집단 차원에서 공유하는 정서가 요동치려면 역사적 기억으로 내려오는 코드와 기호가 필요하다. 그 코드를 유교라고 본 것이다.

진보 진영에서 나온 책 중에서 4.19에서 유교의 역할을 분석한 책들이 있다. 유림의 정치 참여를 보여준 ‘군자들의 행진’이나 한국에서 발전한 유교적 근대성이 서구적 근대성인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특히 후자의 책에서는 맹자 전통에서 발전한 민본 사상, 역성혁명론, 의를 추구하는 지사 등이 민주화 운동과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설명은 내가 전공으로 공부한 이슬람 지역학이나 소련사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 혁명이나 소련 해체러시아 농촌의 평등주의 전통이나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 전통이 끼친 영향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슬람 세계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이슬람교의 언어를 정치적으로 동원해 내는 이슬람주의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처럼 전통문화의 영향력이 근대 정치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분석한 책들이 내게 큰 영향을 줬다. 그래서 동아시아, 특히 한국을 볼 때 샤머니즘이나 유교문화의 장기 지속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서부지법 사태를 바라볼 때 뭔가 문화적인 코드가 작동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3인칭인가 1인칭인가, 관찰인가 참여인가, ‘그들’인가 ‘우리’인가

일단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이들에게 ‘너는 왜 여기에 왜 나왔어’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파시스트라서 나왔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진보 진영에서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나는 그들의 정서를 ‘내재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었다.

민노씨가 언급한 송두율 교수는 이름만 안다(송두율은 북한에 관한 내재적 연구로 유명하다. 편집자). 그러나 골자는 비슷하다. 나는 북한의 6.25 남침에서 이어지는 적화 통일 욕망을 비난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절대 윤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내재적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현상이나 푸틴주의도 마찬가지다. 윤리적 정당성이 있는가 없는가를 제쳐놓고, 사안에 관해 이해하고 상대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내재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물론 내재적 접근에는 언제나 윤리적 상대주의의 위험성, 특히 내재적 접근을 하다가 분석 대상의 입장에 관찰자가 아예 공감하게 된다는 비판도 따라온다. 북한에 관한 내재적 접근론에 있어서도 늘 따라오는 비판이다.

그러니 그런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1인칭 시점이 개입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슬로건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고, 특히 폭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하지만 어떤 인구 집단이 한국 사회에 대해 강렬한 불만을 느끼고 있고, 그 불만이 폭력이라는 형태로까지 폭발해버리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 6공화국 체제가 기능부전 상태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탄핵 반대 세력과 인식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해법은 ‘윤석열 복귀’로 귀결되는데,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돌아온다고 해서 현재 한국이 처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란 세력’을 색출한다고 바뀔 것은 역시 없다). 현 체제를 넘어설 새로운 기획을 가진 정치 세력이 등장하면 그때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것이다.

2025.1.19 서울서부지방법원 극우 폭동 사태.

공화국의 적? 그건 내전하자는 이야기

기본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가 그들(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청년과 노인)의 불만을 충분히 대변해 주지 못했고, 다른 대안을 통해 해소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대중 운동이라는 형태로 분출된 것 아닌가. 그걸 그저 단순하게 ‘공화국의 적’으로 단언하면, 그건 내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를 보면 내전도 분명한 정치적 선택의 하나였다. 원칙적으로는 우리가 내전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진보 진영이 내전을 감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 그들을 공화국의 적으로 규정하고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하고자 하면 내전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을 공화국의 시민으로 인정하고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거나 지금의 갈등 구도를 초월하거나 조정할 새로운 슬로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무조건 배제하고 악으로 규정하면서 내전을 피하는 편한 선택지는 불가능하다.

탄핵 반대 집회는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이다. 그들의 세계관에는 중국에 매수된 타락한 엘리트가 ‘진짜 국민’, 대중을 팔아넘기고 있다는 정서가 깊게 깔려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이라서 비도덕적이고 반민주적이며 파시스트라고만 몰면, 포퓰리스트는 더욱더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세계관을 강화하기 마련이다. 역사 속에서 파시스트를 분쇄한 것은 언제나 그에 버금가는 폭력 사용의 의지를 불태운 공산당이었다. 공산당이 되어 파시스트를 분쇄하거나, 자유주의자로 남은 채 의회에서 무언가 조정을 이루어내거나. 한국 진보 진영은 오랜 기간 이 두 입장 사이에서 갈등해 온 것 아닌가.

포퓰리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전기톱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 당시 아르헨티나 대선 후보 유세 현장. 2023년 11월 15일. 밀레이 인스타그램.

불만의 요체? ‘노태우 패러다임’ 붕괴

결국은 한국의 상황 자체다. 큰 틀에서는 노태우 패러다임의 붕괴라고 보고 있다. 노태우는 92년 한중 수교를 통해 중국 시장을 열었고, 수도권에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했다. 노태우 패러다임 하에서 한국 사회의 정상성이란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자.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경제적 부를 쌓는다. 그 부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세계화에서 얻은 수혜를 배분하는 것이다. 개인은 그렇게 쌓은 부를 아파트라는 자산으로 전환하고 정상 가정을 이루어 중산층에 진입하고 자녀를 자신과 같은 중산층으로 남을 수 있게끔 노력했다.

그런데 이 모델이 점점 작동이 어려워지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자유무역의 시대는 끝나고 있고 중국은 한국 산업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었다. 노인들은 중년의 자산 소유 계층 위주의 사회 시스템에서 소외되었고, 청년층은 ‘노태우적 정상성’을 획득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나는 여의도에 탄핵 집회에 참석하고 남태령으로 향한 청년 여성층도 현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에 거리로 나갔다고 생각한다.

아스팔트 우파의 세계관은 현 체제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명명백백한 적을 설정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 한국이 세계 속에서 얻어낸 지위가 이들의 위협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불안. 그리고 기성 정치가 자신들의 불만을 비이성적 포퓰리즘으로 치부한다는 데서 오는 불만. 이런 정서가 섞이면 기성 정치인이 중국에 매수되었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심리가 확산한다. 미국에서 트럼프 현상이나 유럽의 포퓰리즘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두 당 모두 현상 유지 정당이고, 정치적 야합을 하며 교착 상태 속에서 이득을 찾는 이들이라는 제도권 정치를 향한 불신이 커진다. 그러면 그 교착 상태를 깨뜨리는 ‘파격적 영웅’을 찾게 된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 신화화의 심리적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실제 어떤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사람의 인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아스팔트 우익의 인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현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을 드러낸 혁명가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청년 극우’ 딱지에 대하여

크게 스트레스받기는 했다. 물론 억울함은 없다. 그럴 줄 알았으니까. 다만 이 정도 폭발력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가장 큰 불만, 짜증, 아쉬움은 텍스트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고 나의 태도와 ‘본색’을 계속 얘기하며 빈정거리는 것이다. 이들이 얘기하는 ‘본색’에는 조선일보에 글 쓰는 놈이라는 딱지가 항상 붙는데, 조선일보가 이들의 세계관에서는 절대악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조선일보의 꼭두각시는 아니다. 그냥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 얘기를 조선일보 매체 성격을 고려해서 기고할 뿐이다. 다른 매체에서는 내 생각과 그 매체의 성격을 고려해서 조금 다른 얘기를 하겠지만 그 모두가 ‘내 얘기’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쨌든,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딱지 붙이기'(라벨링)보다는 내용에 관해 토론하면 좋겠다. 비판해도 되고, 인신공격도 어느 선까지는 수용하겠지만, 아예 내용에 대한 비판을 거의 접하진 못한 것은 충격적이다. 그래서 적어도 나에게 크게 와닿는 비판은 없었던 것 같다. 여러 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제일 뼈아픈 비판은 인신공격도 아니고 내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내용 전체를 무너뜨리는 논리적 치명타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혹은 아쉽게도? 그런 비판은 찾지는 못했다.

유찬근의 비판

우선은 고마움을 느낀다. 조선일보만 보고 칼럼의 일부 표현만을 라벨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지적 경로를 찬찬히 옆에서 지켜본 동료로서의 진지한 비판이랄까, 그런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그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찬근 게시물 중 일부 캡처.

유찬근의 비판 요지는 우리가 과연 유교적인가? 라는 반문이다. 일견 이해가 간다.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세속화를 겪은 국가다. 명절에 차례 안 지내고 해외여행 가는 게 오히려 새로운 정상성이 된 시대다. 사실 서구권에서 동아시아를 설명할 때 너무 지적으로 게으르게 오만군데에 유교 딱지를 붙인 역사를 생각하면 동아시아에서 유교의 장기 지속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테마도 맞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일부 개신교 기독교에 좀 더 주목해야 하다고 비판했다.

박사모 탄핵 반대 집회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물론 나는 여전히 문화적 심층에서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유교가 중요하다고 본다. 세속화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빠른 속도의 세속화도 유교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가장 심각한 저출산을 겪는 문화권이 모두 동아시아에 집중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국 우파와 유교의 장기 지속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은 세종시가 된 연기군 양화리의 부안임씨 집성촌에서 나고 자라셨다. 아버지가 전해준 60년대, 70년대의 마을 문화는 문중과 의례라는 키워드를 빼면 설명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70년대까지 한국인들은 문중과 가계, 관혼상제의 의례, 가족관과 국가관에 이르기까지 유교의 영향력이 그야말로 생생했다.

반세기가 흐른 2020년대에는 그것이 당시만큼 생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구화와 세속화로 인한 많은 침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서구화와 세속화도 최소한 70년대까지는 생생한 유교 영향력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을 때 과연 ‘유교가 사라졌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나는 한국 우파의 이념에서 유교의 장기 지속에 관심이 많다. 기독교를 제외하면, 한국 우파의 이념에는 장개석의 중화민국 사상과 일본 제국의 천황제 파시즘 사상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선 여러 연구가 보여주듯 동아시아 근대 정치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인 메이지 유신부터가 유교의 영향력 하에서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이후 장개석도, 일본 제국도 유교적 개념어를 통해서 권위주의적 근대화를 추구한 정권이었다. 한국의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애초에 만주군관학교를 다닌 사람 아닌가. 박정희의 유교에 대한 태도도 흥미로운 소재 중 하나다. 1960년대까지 박정희는 유교를 한국 역사의 타성과 낙후성의 근원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아마 일본식 상무 문화를 더욱 높이 샀던 것 같다). 그러나 1970년대가 되었을 때 박정희는 ‘거듭난 유교인’이 되어서, 유신 체제하에서 유교의 덕목과 가치를 논하는 정부 주도 담론이 매우 크게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 ‘충효’는 태극기 집회의 현장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박정희와 유신 정신의 영향력을 담고자 선택한 단어이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겪은 노인들은 박정희 시대를 18년 동안 살았고, 박정희가 죽은 뒤에도 박정희를 ‘모셨다’. 하지만 이후 세대도 박정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을 만들어낸 세계관과 정서는 맥락 없이 서구 자유주의를 각성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박정희가 행한 권위주의적 국민 교육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정권 반대의 언어로 전유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박정희는 좋든 싫든 대한민국을 조형한 사람이다. 민주화 세대도, 이후 세대도 박정희의 장기 지속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고 민주당 세계관을 거부하는 청년층은 한국 역사를 다시 들여다볼 때 민주당 세계관에 반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도구로 다시 박정희를 찾을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민주당 세계관이 박정희 체제를 뒤집으면서 등장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박정희 세계관과 은연중에 정서적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노인의 재발견, 노인과 청년의 만남

인터넷 공간의 커뮤니티, 가령 디씨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에서 ‘노인의 재발견’이라고 부를 만한 청년의 체험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 탄핵 반대 청년층의 여론을 주도하는 커뮤니티라서 관찰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탄핵 반대 청년층의 정서가 자기 고백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여기서 탄핵 반대 집회가 본격화될 무렵, 집회에 참석한 뒤에 작성된 ‘간증문’이 정말 많이 올라왔다. 내용 구조는 대체로 이렇다. 진보 성향이라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보수 진영 입장에서 보면 운동권 간증문이나 2008년 광우병 집회 간증문도 만만찮게 우스꽝스럽다).

“집회 다녀왔는데 굉장히 짠했다. 저 노인들을 보며 안쓰러움과 고마움, 미안함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들을 절대 다시 홀로 서게 두지 않겠다.”

우익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의 ‘간증문’ (핵심 요약)

나는 ‘K를 생각한다’에서 청년층이 정치적 주체화가 되기보다는 탈정치화, 탈가치화되어 간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고, 직접 나가서 노인과 청년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저 소회가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구나 느꼈다.

나도 집회 구경을 끝내고 친구와 카페에 갔는데 옆자리 할머니 두 분이 우리보고 집회 다녀오는 길이냐며 대화를 먼저 걸어왔다. 우리 손을 맞잡으며 너무 고맙다고, 빵이나 커피라도 더 사줄까라고 연신 물어오는데, 집회에 참석한 많은 청년층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조선일보 칼럼에서는 그 부분을 편집(삭제)하고 중국 얘기를 넣게 돼서 조금 아쉬웠다. 노인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화되는 존재다(대상화되고 객체화된다는 취지. 편집자). 노인을 향해 도시 시민 사회의 교양이 없는, 전근대적인 후진국의 잔재라는 멸시의 정서가 얼마나 많이 표출되었나.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농촌 마을이나 시장에서 어른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이 품고 있는 따스함은 이상화, 낭만화된다.

정치적 존재로서 노인을 바라보는 입장은 결국 그 두 이미지 사이에서 갈린다. 진보 진영은 전자를 강조하고 최근에 형성된 보수 청년은 후자의 낭만화, 이상화를 따른다. 결국 노인들은 정치적 분개의 정서를 강렬하게 터트리고, 집회에 나온 청년들에게 이미 노화되어 연민을 유발하는 신체를 전시하고 농촌적 따스함을 통해 정서를 흔들며 보수 정치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반공 민족주의의 부활: 그리고 윤석열의 ‘국체’

탄핵 집회 반대에도 이론적 사상적 기반은 있다고 생각한다. 반공과 민족주의다.

최근에 한국 우파의 이념을 공부해보고자 양성익이라는 학자가 하버드 대학교 박사논문으로 쓴 [한국의 파시스트 순간: 해방, 전쟁, 남한 권위주의의 이념: 1945-1979]라는 글을 읽었다. 이 논문은 구한말의 국난, 일제 식민지와 해방을 거치면서 폭발한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를 우파가 어떻게 자신들의 이념으로 삼았는지를 다룬다.

한국 우파는 반공을 통한 대한민국 국체의 수호를 민족주의와 결합했고, 좌파를 소련과 중국의 앞잡이로 비난했다. 실제 소련의 지원 아래 수립된 김일성 정권이 남침을 시작하며 반공 민족주의는 매우 타당성 있는 이념으로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다.

반공 민족주의는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자유무역에 참여하고, 북한이 고립되고 약화되자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동아시아는 어떤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고, 한국 산업을 위협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했다. 반공 민족주의가 부활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국제 질서의 격변을 얘기하지 않고 한국 우파를 설명하려 하는 시도는 헛될 수밖에 없다.

한편, 윤석열이 “자유민주주의의 국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표현하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국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말 그대로 그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정치체를 의미하는, 내셔널 폴러티(‘national polity’)로서의 국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일본 제국이 주로 썼던 용어로서 더 많이 논해진다. 영어권에서는 아예 고쿠타이(Kokutai)라고 고유명사로 표기한다. 당시 일본은 천황제라는 국체를 신성시하고 종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국체를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폭력이 정당화되었다.

단순한 내셔널 폴러티(national polity)로서 국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보다 일본 국체론이 한국 현대사에도 여전히 밑바닥의 정서로 지속된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내가 현재 우파를 파시스트라고 낙인찍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님은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체는 반공이다. 반공을 통한 대한민국의 건국과 6.25 전쟁이라는 호국 투쟁은 절대로 잊을 수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되는 민족의 근간이다. 그러니 의회 다수당을 차지했다는 이유로, 헌법을 들먹이며 ‘국체’를 공격하는 건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파 대중 운동은 ‘국체가 반공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대화 상대로 간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으로도 이 셋을 묶기란 쉽지 않지만, 반공으로는 잘 묶인다. 반공으로 이룬 삼위일체.

원심력과 구심력: 민주당, 국민의힘, 한국인

이재명 일극체제? 그건 민주당의 선택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이 지금의 강력한 일극체제에 어울리는 정치적 청사진,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나? 그저 보이는 것은 집토끼 대신 산토끼 잡겠다는 중도층 어필 전략이다. 나는 현 체제가 지속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체제 유지를 목표로 행정적인 이야기들만 하는 정당은 지지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천하대세와 자신들이 믿는 한국 현대사의 정통과 국체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전면적 변혁을 이루어낼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정당은 아니지 않은가. 소위 ‘중도 보수론’은 노태우 패러다임을 통해 정상성을 획득한 상류 중산층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배분하겠다는 말로만 들린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안온하게 안주하면서 그것이 계속되기만 바라면서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상상력도 전무하고, 적당히 국가 자원을 빨아먹으려는 세력 아닌가? 지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에 대한 명확한 입장도 없고 기회주의적으로 현상 유지만 골몰하며 안락함을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보수 대중이 윤석열을 연호하게 된 데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작한 현상 유지에 한 방 먹였다’는 정서가 크게 자리해 있다.

현실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에도 한국인이라는 일종의 소속감이랄까, 그런 건 일상적으로 늘 느낀다. 1월 18일 집회를 구경 갔을 때, 누군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모두가 따라서 노래를 부를 때는 나도 큰 소리로 애국가를 부르게 되더라.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의 극심한 경쟁시스템에서 느껴지는 극한의 스트레스에서 오히려 느낄 수 있는 동질감, 편안함…(웃음) 그런 게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희망? 그래도 그들은 21세기를 이야기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한국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한다. 중국의 시진핑이나 미국의 트럼프에게서 차라리 바뀐 시대에 적응하려는 ‘기획’들이 보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시진핑의 내륙 개발과 농촌 개발, 디지털 전환 프로그램을 보면 중국 공산당의 기획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팔란티어와 미국 연방 정부의 제휴도 주목하고 있다. 적어도 산업 시대에 만들어진 사민주의-신자유주의라는 두 커다란 흐름은 점점 종언을 고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적 조건에 맞는 새로운 국가 시스템과 인간 삶에 대한 해석이 등장해야 한다. 오히려 100년 전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그 점에서는 더 상상력이 컸던 것 같고, 그래서 요새는 그 시기를 다룬 책들을 재밌게 보고 있다.

트럼프나 시진핑 혹은 머스크를 정치적 희망의 롤 모델로 제시한 게 ‘기득권 중심적 사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체제를 유지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자원을 ‘배급’하면 사회가 개선된다는 믿음이 더 기득권 중심적이지 않나(웃음). 당연히 미국이나 중국에서 진행되는 기획이 기득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 모델 대신 21세기 모델을 얘기한다는 점에서는 그 자체로 가산점을 줘야 한다. 정녕 기득권을 타파하고 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싶다면 트럼프와 시진핑을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기획을 들고나와야지 않겠는가. ‘트럼프 싫어요’, ‘시진핑 싫어요’만 외치면 세계화 전성시대인 25년 전으로 돌아가거나 사민주의 전성시대인 1960년대로 돌아갈 수 있는가?

납치와 살상을 예비했는데 계몽령?

탈진실의 시대 아닌가(웃음). 객관성을 보장한다고 여겨진 매스 미디어 공급자(지식인, 대형 언론, 문화 엘리트)의 독점이 깨졌고, 그들은 상향식으로 올라오는 뉴미디어에 권위마저 빼앗겼다. 이렇게 미디어 지형이 파편화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되고, 사실에 근거한 차분한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2008년 광우병 시위를 생각해 봐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히려 이번 비상계엄은 ‘결과론으로 보면’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점에서 ‘계몽령’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나온 셈이다. 그걸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만, 적어도 믿는 사람들에게서 그걸 부정하게 만들 수는 없다.

얼마 전에 트럼프의 책사로 유명한 스티브 배넌이 그런 말을 했더라. “우리 음모론이 좌파 음모론보다 뛰어나다.” 대형 언론의 권위를 무너뜨리고자 한 진보 진영의 여러 시도는 광우병 음모론, 천안함 음모론, 세월호 음모론, 성주 사드 전자파와 후쿠시마 오염수 음모론을 낳았는데, 이제 스티브 배넌 말마따나 역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중도층과 시소의 항상성(중용)

윤석열 탄핵은 별 이변이 없으면 인용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인용 이후 정치적 후폭풍은 예측이 안 된다. 민노씨 말처럼 조기 대선의 캐스팅보트는 중도층이 행사할 거다. 이들 중도층는 ‘항상성'(안정)에 관한 욕구가 크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전히 여전히 선거에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한국 내부도 그렇고, 국제 사회도 그렇고 더는 ‘항상성’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서 중도-중산층이 염원하는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특히 국제 문제, 외교 문제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그리고 내치도 문재인 시기처럼 커다란 구조 개혁 없이 기업에 걷은 세금으로 국가 자원 배분하고, 기존 이해관계자의 정치적 반발을 감수하지 않는 반쪽짜리 분배 정책으로 시장 왜곡을 한다면 그렇게 전망이 밝지 않을 것으로 본다.

Seongbin Im, Balance, CC BY SA

돌이켜보면 문재인 시기가 정권 입장에서는 참 호시절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지금은 삼성이 흔들리고 트럼프가 돌아왔다.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분배 정책을 딱히 추진하지 않고 정말로 ‘중도보수’답게 현상 유지에만 골몰해도, 과연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걸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새로운 정치 기획을 발굴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극우에 빠진 내 아들’ 프레임에 대하여

오늘(2.27) “극우 유튜브서 아들을 구출했다”는 ‘구출 방법론’을 공유하려고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가 MBC에 출연했다. 일단은 ‘구출’이라는 표현부터 웃기다.

결국에는 독립적 주체로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계몽’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아닌가? 그 계몽의 방법론이 자신 말에 따르면 차분한 대화와 여러 다양한 경험이었다는 건데 오히려 자녀를 자기 뜻대로 조형하려는 것 같아서 조금 오싹했다. 설령 그게 옳다고 하더라도 많은 자산을 가진 상류 중산층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해냈다는 (좋아하는 개념은 아닌데) ‘아비투스'(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 체계) 과시를 무비판적으로 한 것도 한국 민주화 세대 상류 중산층의 표상이라고 생각되어서 우스웠고.

게다가 남성 또래집단에서 과연 엄마 말을 너무 잘 듣는 착한 아들이 어떻게 인식될지 생각해 보면… 결국 세대를 이끄는 이들은 그 안에서 기성세대를 대체하겠다며 도전을 주도하는 이들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청년 남성층이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것도, 우파 청년 남성들이 그들을 체제에 순치된 이들로 멸시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극우에 빠진 자녀’를 ‘구출’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좌익이든 우익이든, 지금의 민주화 세대(60~70년대생)가 듣기에 끔찍하게 불편한 얘기를 하는 이들을 양산할 것이다.

민노씨 지적처럼 ‘미성년’ 자녀가 교육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훈육과 계몽의 ‘대상’이라는 게 관습이나 제도나 윤리에서 문제 되는 건 아니다. 미성년자 아들에게 부모가 주입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 체계를 가르치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자신의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독립적인 사고의 주체로서 인정할지는 여전히 몹시 회의적이다.

그리고 가정 안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니 가풍에 맞는 주입식 교육이나 훈육도 당연히 그들의 자유이기는 하다. 그런데 상류∙중산층이 집요하게 행하는 가정 내부의 교육∙훈육을 전체 공동체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는 건 여전히 좋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간단하게 두 가지 인상이다. 첫째로는 직관적으로 ‘숨이 막힌다’(따라서 그 자체로 윤리적인지 아닌지는 굳이 판단하지 않겠다. 그 집안 사정이니까), 둘째로는 ‘구출한다고 해도 별로 효과 없을 것 같다’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다.

이대를 공격한 일부 유튜버에 관한 사건에 관해서는 ‘노코멘트’.

기성세대 유감: 반미냐 반중이냐

청년이 기성세대에 품는 반감은 기본적으로는 탈냉전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 아닐까. 과거 한국은 지금에 비해서 부유하지도 않았고, 야만적 폭력도 훨씬 많이 횡행했다. 60~70년대생들은 산업화 세대가 쌓아 올린 부의 기반 위에서 정치적, 문화적 자유화를 추구했다. 그리고 이들이 활약한 시대는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하고,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1991년에 소련이 망하고, 1992년에 덩샤오핑이 남순강화에서 개혁개방에 역진은 없다고 선언한 시대다.

1992년 1월 2월, 당시 88세였던 덩샤오핑은 반은퇴 상태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상하이를 거쳐 광저우로 향했다. 그리고 중국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남순강화'(남부순회연설)를 남긴다. 타이완 뉴스.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가 합의한 궁극적 발전 방향이라고 믿었던 때다. 한국 권위주의도 냉전이 끝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기는 지정학적 갈등도 거의 없었고, 국제 무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중산층에 편입된 다음에 문화적 자유를 누리는 안온한 시기였다.

노년층은 북한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한국에서 냉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식을 품고 있고, 탈냉전 민주화 세대의 자유를 방종으로 받아들였다. 우파 성향 청년층은 중국의 성장을 보면서 냉전이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이대로 규율이 사라지면 중국과의 경쟁을 버텨낼 수 없다고 본다. 두 집단 모두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질서와 규율의 회복을 원한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은 이유는 탈냉전 자유주의가 영속할 것으로 민주화 세대가 믿었기 때문 아닐까. 그들은 반공을 명목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냉전의 논리가 돌아오는 것을 소스라치게 싫어했다.

물론 나는 지금 펼쳐지는 지정학적 국면을 냉전과는 굉장히 다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동아시아에서 냉전 체제는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정학적 갈등은 냉전과 결부되어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 그렇기에 우파 청년층은 ‘탈냉전 자유주의는 끝났다. 새로운 냉전에 생존하기 위한 시스템의 개편이 필요하다(어떻게 개편해야 할지는 그들도 모르지만)’고 주장한다.
  • 반면 민주화 세대는 자신들이 만든 이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탈냉전 자유주의는 끝날 리가 없다, 설령 그런 시대가 오더라도 한국은 어떻게든 편하게 살 방법이 있다(역시 방법은 그들도 모르지만)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 차이가 기성세대를 향한 반감의 주요 원천이라고 여겨진다.

중국에 대한 입장에서도 이런 차이가 드러난다고 여겨진다. 내가 관찰하기에 386 세대는 중국에 대해서 여전히 호감이 크고, 미국에 대한 반감이 꽤 있다. 그런데 X세대(70년대생)로 내려오면, 다르다. 이 사람들은 2002년에 죄다 반미 시위에 뛰쳐나갔던 사람들이고, 미국이 황우석의 엄청난 줄기세포 연구를 약탈한다고 믿었으며, 2008년에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을 유발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느새 상당한 친미주의자들이 되었다.

(미국을 좋아하다가 이제 몹시 비판적인 내 입장에서는 이 역전이 좀 기묘하다) 그래서 우파에서 민주당을 친중이라고 비난해도, X세대는 ‘우리 민주당이 진짜 친미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올라간 건 다 잊었나?’라고 응수한다. 실제로 그들도 중국을 대체로 싫어하고 마블 영화를 열심히 시청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X세대는 중국이 그렇게까지 미국 중심의 체제를 위협할 수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즉, 이들의 대중관에는 여전히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기에 형성된 ‘후진국 중국’의 인상이 작용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우파 청년들 역시 미국에 대한 믿음은 매우 강고하다. 그러나 그들도 옛날에 인터넷에서 ‘대륙의 기상 시리즈’ 같은 것을 보면서 중국을 무시했지만, 그럼에도 중국이 한국을 위협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그 무시의 정서를 압도한다. 중국은 둘 다 싫어하지만, 그 싫어함의 요체가 무시에서 끝나면 현 체제를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고, 공포가 크게 작용하면 현 체제는 바꾸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2016년 탄핵과 유로마이단, 아랍의 봄과 탑골공원

2024년 끝 무렵에 촉발된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결국 2016년 탄핵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정치학자 마크 베이싱어의 ‘혁명의 도시'(Revolutionary City) 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양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농촌 게릴라가 주도하여 계급 관계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사회 혁명은 사라지고, 대신에 빠른 속도로 도시 광장에 모인 거대한 군중이 권력 기관을 압박하여 정권을 퇴진시키는 ‘도시 시민 혁명’이 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2016년 촛불 혁명은 전형적인 도시 시민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베이싱어는 도시 시민 혁명이 응집력 있는 정치적 기획을 만들지 못하고, 정권 퇴진과 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저놈을 끌어내려라’가, 시위에 나온 수많은 군중의 차이를 희석해 결과적으로 더 많은 군중을 동원할 수 있는 구호가 된다. 그렇게 정권을 한 번 끌어내리고 나면, 새롭게 들어선 정권은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차이를 메우지 못하고, 기존의 권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게 된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이 상황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이익을 얻는 집단은 중산층이다. 도시 시민 혁명에 참여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도시 중산층은 사회적 힘을 가지고, 도시 시민 혁명을 주도한 정치 세력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시 시민 혁명은 역설적으로 중산층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혁명을 촉발한 사회경제적 위기는 오히려 악화하는 경향을 띤다.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이 혁명은 부패한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을 몰아내는 혁명이었지만, 그 결과 등장한 포로셴코 정권은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에 더 긴밀히 통합되고자 했던, 키예프에 거주하는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우크라이나의 고질적 부패와 약한 국가 문제를 해결할 새 정치 세력은 등장하지 못했다. 그 결과 포로셴코 정부도 무너지면서 다시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포퓰리즘을 통해 등장했는데 그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다. 우크라이나의 사회학자 볼로디미르 이시첸코은 ‘심연을 향하여’ (Towards the Abyss)에 그 과정을 잘 기록했다.

2014년 1월 19일의 유로마이단 시위, 사실상 내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적 진압과 저항이 오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유로마이단 혁명의 실패가 초래한 포퓰리즘의 선택은 정치적 아웃사이더였다.

한국도 ’16년 박근혜 탄핵으로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수도권에 자가 주택을 보유한 중년 중산층의 헤게모니가 더 강화되었지 않은가. 그들은 미국-중국 사이에서 무역을 통해 벌어온 돈을 주택 자산으로 전환하고 정상 가정을 꾸렸다는 점에서 6공화국 노태우 패러다임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한 이들이었다. 이 체제에 소외감을 느낀 이들이 8년 동안 꾸준히 민주당 지지세에서 이탈하고, 아예 반대 정당인 국민의힘 지지로 유입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태극기 집회에서 일종의 ‘아랍의 봄’과 유사성을 느꼈다. 사회학자 아세프 바야트는 아랍의 봄을 다룬 책 ‘혁명가 없는 혁명'(Revolution without Revolutionaries)에서 이집트나 튀니지의 신자유주의 전환이 아랍의 봄을 어떻게 촉발했는지를 분석했다. 카이로나 튀니스 등 신자유주의에 따른 도시 공간 재편으로 도시 소외 계층이 복지 네트워크와 사회적 연결망을 찾아서 광장으로 향했다(광장에 존재하기만 하는 것은 공짜니까).

그들은 정권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을 넘었을 때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는 광장을 대규모 집회의 공간으로 만들어냈고, 이 소외 계층의 공간에 정권에 불만을 느끼던 다른 집단이 계속 유입되면서 아랍의 봄은 혁명으로 발전했다. 나는 광화문이나 탑골공원 등지에 그저 존재하기를 선택한 소외 계층 노인들에 청년층이나 다른 우파 지지자들이 합세하게 되는 과정이 이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다.

물론 아랍의 봄도 유로마이단과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이들 역시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뒤에 이집트나 튀니지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기획을 만들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포퓰리즘의 파도는 이집트에서 중산층의 공포를 만들어내었다. 대신 아랍의 봄에서 터져 나온 ‘나은 삶’을 위한 열망을 접수한 무슬림 형제단은 역시나 신자유주의를 수용했고, 문화적 포퓰리즘을 빼면 기존 군부 정권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대안이 되지 못했다.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도 현 체제를 뒤집고 싶어 하며, 체제의 주류보다는 체제의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이들이다. (6공화국 체제 내의 보수 엘리트들은 이들을 대체로 공포와 경멸로 대한다) 그러나 그들이 윤석열 복귀라는, 도시 시민 혁명에 필요한 최소주의(minimalist) 구호를 제외하고 현 체제를 극복할 정치적 기획이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이 포퓰리즘 에너지를 흡수해서 정권을 언제 다시 재창출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면 에너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른 채 반대 세력(민주당)의 극단적 반감만 더 키울 것이다.

즉, 나는 탄핵 찬성 측이 중산층이 주도하는 유로마이단에, 탄핵 반대 측이 체제 소외자들이 주도하는 아랍의 봄(타흐리르 광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나친 단순화와 도식화지만, 양측의 성격을 고려하면 전적으로 틀린 비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통점은? 현 체제를 넘어서는 기획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 탄핵 찬성 집회는 넥타이를 맨 중년 중산층보다는 청년 여성과 진보 진영의 사회 운동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산층 주도성을 강조하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혹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2016년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권의 경험을 미루어 볼 때, 지금의 탄핵 찬성 운동과 정권 교체가 중산층 주도성으로 귀결되고, 진보 진영의 여러 의제는 민주당의 중년 중산층 정상성이 허락하는 한에서 ‘취사선택’ 당할 것을 예측하는 것은 역시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AI 시대에 웬 퇴행적 정치 과잉이냐고? 천만의 말씀

이것만큼 AI적인 것은 없다. 당장 좌와 우가 소비하는 미디어 채널도 알고리즘에 의해서 완전히 분리되고, 그 결과 공통의 소통 공간이 아예 사라진 것 아닌가? 게다가 현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은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한 국민 국가 내의 계층 분리,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촉발된 미디어 혁명으로 변한 우리의 심성을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다.

초기에 완전히 밀렸던 것처럼 보였던 탄핵 반대 진영의 기세가 다시 반등한 것도 AI의 영향력이 컸다. 청년층 문화 생산자들이 우파 진영에 합류하면서 AI를 통해 음악과 이미지를 생성해 내 뿌린 게 초기 기세를 불태우는 데 꽤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정치적 갈등도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대 전환의 일부를 구성한다. 또 반대로 AI가 지금의 정치적 갈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고.

사실 AI라는 것은 좀 더 장기적 시야로 보면 1970년대 말부터 꿈틀댄 정보화의 연장에 있다. 그리고 지금의 정치적 구도는 뉴미디어의 확산과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 해체, 그에 따른 팬덤 정치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AI를 포괄하는 인터넷 문화 위에 수립했다. 이 인터넷 문화에 안티조선 운동과 딴지일보, 노사모를 대입하면, 2025년의 일들은 이미 2000년에 다 먼저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AI의 발전이 만들어낼 계층 격차, 그에 따른 불만이 공격적인 미디어 생산과 소비로 향하는 사반세기 동안의 흐름에 두 정치 세력 모두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정치적 갈등은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를 그대로 직격하며 우리가 서 있는 주소와 좌표를 제대로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혹여 AI가 대화와 타협 혹은 조화와 화합의 매개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까지 정보화가 보여준 것은 부족주의적 분열이 더 심화하는 것이긴 했다. 일단 현재로서 가능한 것은 AI를 포함한 기술의 질주가 만들어낼 새로운 시대에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논하고,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남녀, 좌우, 세대 데탕트가 이루어진 대신에 ‘또 다른 적’으로서 외국(인)에 더 큰 공격성과 배타성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사해에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시대를 전망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정치 권력의 전략적 젠더 갈등 조장. 역사에 남을 정치 선동 ‘여성가족부 폐지’

전광훈과 전한길, 극우 상업주의와 일타강사의 변신

전광훈 목사에 대해서는 극단주의를 선동하며 노년층으로부터 돈을 긁어모은다는 등 여러 비난이 있지만, 적어도 소외된 노인층을 그가 조직해 낸 것 자체는 한국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어쨌든 그는 누구도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 소외된 노인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사람들이 납치를 당해서 강제로 돈을 낸 게 아니고, 전광훈 목사가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관과 공동체 네트워크에 무언가 충족되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돈을 낸다.

누군가가 전광훈 목사보다 이 소외된 노인을 품고 그들에게 삶의 의미와 공동체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그가 이렇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보 언어로 말하자면 풀뿌리 조직화의 실패고 시장주의 언어로 말하자면 소비자를 둘러싼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저는 자유대한민국이 좋습니다’ㅣ전한길 강사ㅣ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 부산, 2025.02.01.

전한길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그는 일관해서 국민통합과 좌우 통합, 지역 통합, 세대 통합 등 통합의 언어를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이 노사모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실제로 그의 언어에서 노무현주의자들과 굉장히 유사한 정서와 구도를 나는 자주 느낀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안창호, 플라톤, 김대중의 인용구들을 보자.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 진보 진영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주구장창 인용하는 말들이다. 그의 연설을 들어보면 ‘기득권 엘리트’를 ‘대중의 정치 참여’로 이길 수 있다는 신념도 아주 많이 등장한다. 요컨대 기득권 엘리트가 국민을 분열시키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하나로 통합되어 정치에 직접 참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참여를 독려하는 영웅을 따라야 한다는 세계관이다.

그가 노무현주의의 언어를 확실하게 전유했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아주 명확하다. 물론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무현 정신, 노무현 정치, 노무현주의, 뭐라 표현하든 간에 2000년 어름에 등장한 그 현상이 무엇인지를 또 다른 시각에서 평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 한국인은 노무현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노무현은 어떤 인물이었기에 좌는 물론이고 우까지도 모두 최종적으로 노무현주의를 따르게 되었을까?

2002년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선거 유세 중 승리의 ‘브이'(V)를 들어보이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 노무현사료관.

결국에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인 박정희와 노무현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계속해서 토론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박정희는 우파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노무현도 좌파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 둘을 평가하는 일은 종국적으로 한국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까지 닿을 것이다. 그 한국인의 대표로서 전한길을 분석하는 것도 해볼 만한 일 아닐까. 지금이야 정치화된 인물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는 이 사태에 참전하기 전까지는 ‘국민 일타강사’였으니까.

증오와 갈등의 풍선이 크고 아름답게 부풀어 오른다

원론적이긴 하지만, 들으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박정희는 그 공과를 한 번 더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2016년 박근혜 탄핵으로 표출된, 박정희를 전면 부정하려는 시도가 반발을 불러온 것 아닐까. 그러나 진보가 박정희를 뛰어넘는 기획과 청사진을 제시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박정희를 부정하는 것은 모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다. 박정희를 인정하거나, 박정희를 뛰어넘거나. 단순 부정만 해서는 갈등만 증폭될 것이다.

이번엔 김이 빠지더라도, 현 체제가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새로운 국가 청사진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김은 다시 매섭게 올라올 것 같다. 2020년에 트럼프가 패배했지만 2024년에 돌아오지 않았는가. 어쩌면 풍선을 터트리는 에너지가 진보에서 올라올 수도. 물론 그 가능성은 작게 보지만.

외로움과 포퓰리즘

외로움과 포퓰리즘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가설로 생각한다. 끈 떨어진 노인이든, 소외된 청년이든 서로 참여하고 서로에게 상실감을 채워주는 과정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본다. 물론 그게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대중이 피부로 느끼는 불만을 실제 정치적인 결과로 바꾸어낼 기획이 없으면 대중 운동은 언제나 실패한다.

나오며

며칠 전 부천 변두리의 깊은 밤, 수영 다녀오던 길에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오랜만에 들었다. 그리고 ‘아들에게’라는 시가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그리고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가 만든 공기 속에서 숨 쉬고 시의 풍경 속에서 잠시 머물며 사는 거라고 느꼈다.

TTS 기계음은 끔찍했지만, 그 끔찍한 기계음으로 흘러나오는 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펐다. 슬픈데 따뜻했다. 그 시 속 풍경이 마치 지금 여기 내가 통과하는 시간 같이 느껴졌다. 나에겐 딸도 아들도 없지만, 그 시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 시 일부를 옮기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중략)

사랑은 응시하는 것이다. 사랑은 빈말이라도 따뜻이 말해주는 것이다 아들아
빈말이 따뜻한 시대가 왔으니 만끽하여라 한 시대의 어리석음과
또한 시대의 송구스러움을 마셔라 마음껏 마시고 나서 토하지 마라
아들아 시를 쓰면서 나는 고향을 버렸다 꿈엔들 네 고향을 묻지 마라
생각지도 마라 지금은 고향 대신 물이 흐르고 고향 대신 재가 뿌려진다
우리는 누구나 성기 끝에서 왔고 칼 끝을 향해 간다
성기로 칼을 찌를 수는 없다 찌르기 전에 한 번 더 깊이 찔려라
찔리고 나서도 피를 부르지 마라 아들아 길게 찔리고 피 안 흘리는 순간,
고요한 시, 고요한 사랑을 받아라 네게 준다 받아라

이성복, ‘아들에게’ 중에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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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댓글

  1. 저들이 탈냉전 자유주의가 끝났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의 탈을 쓰고 앞장서서 자유주의를 끝내고 과거로 회귀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구분을 하셔야 할 듯.
    의도적으로 조센징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급의 중국인 음모론을 유포하고 99인 중국인 간첩설을 흘리는 사람들을 포장하려는 노력이라고 밖에 안보이네요. 그러면서 정작 나라를 중국 북한처럼 만들려다가 실패한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쓴소리 못하는 현실을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네요.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표들을 구속하고 입법기관을 정지시키려고 누구보다도 공화국의 적이 할 법한 행동 들을 옹호한 사실이 엄연하게 기록이 다 남아있습니다.

  2. 진짜 참다참다 말하지만.. 이제 아무도 없는 페이스북 아이돌의 비대해진 자아를 보니 구역질만 납니다..
    인터뷰하신 분은 이 글에서 희망하셨던 대화의 실마리를 찾으셨는지 모르겠네요..

  3. 글이 길군요. 읽었습니다. 잘 읽었다고는 못 하겠고.

    SNS 타고 넘어와서 읽었습니다. SNS에 올리실 때, 슬로우뉴스 측 계정이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 더군요. 링크 타고 넘어와서 보니 본문에는 0, 1, 2가 있지도 않던데, SNS에서는 그거 열심히 붙여 가면서 정성들여 글을 쓰셨더군요. 그것 때문에 이해하기에 별로 수월했습니다.
    그래서 1. 공화국의 적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하려느냐, 2. 그들을 시민으로 인정하고 합의점을 찾느냐 따위의 선택지만 주시네요.

    아주 허울 좋은 말씀이십니다. 이런 묘안이 있으셨다면 2024년 12월 3일 이전에 윤석열에게 해 보시지 그러셨어요. 동료 시민 처분 대상 여러분들께 같잖은 소리 하지 말고 윤석열에게 말하고 국민의짐에게 말하셨어야죠. 몇 달씩이나 늦어가지고 고작 하는 짓이 김매기 연장을 벼에 들이대는 겁니까?

    가소롭습니다. 나라가 디비졌는데 동료 시민들에게 선택지가 고작 그것밖에 없을 것 같습니까? 설령 그러한들, 저렇게 줘 놓고 암묵적으로 모두 다 무엇에 찬성해야 한다 식으로 불판 까시는데, 오만하십니다. 여기가 평양입니까? 바야흐로 수도 서울이 윤석열그라드가 될 뻔했던 도시인가요? 오히려 윤석열그라드가 못 되어서 아쉬우시겠습니다? 윤석열그라드에서는 ‘모두다 찬성투표’ 하니까요. 이젠 이북에서도 그 따위로는 안 한다던데.

    다시 SNS로 돌아가서, 당신네들 결론대로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마냥 1타강사 빙의해서 번호 붙여 가며 둘 중에 하나뿐이라고 홍보는 무지막지하게 하시던데, 우리가 왜 그래야 하죠? 극우 파쇼 유튜버들에게 생각하는 기능과 신념을 죄다 외주를 준 놈들이 준동해서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됐는데, 우리가 너네를 어떻게 믿고 생각을 외주 줘서 너네들 결론대로 해 줘야 하죠? 그 따위니까 여기 뉴스가 못 크는 겁니다. 머리 굴리는 방식과 하는 짓거리가 기성 언론과 다를 게 없는데 어떻게 체급의 차이를 극복할 레버리지를 만듭니까?

    규모 생각하면 SNS 담당자가 여기 댓글창도 관여할 법한데, 깨닫는 바가 있으셨으면 좋겠지만 내 알 바는 아닌 것 같군요. 우리가 고쳐 만든 공화국에 얹혀 사는 역할밖에 못 하실 테니까.

  4.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제강점기 포교종교들이 종교협의회나 어떤 모임 가진다고, 종교주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그리고 주권없이, 일본 강점기 강제 포교종교도 같이 믿는 현상이 생겨남.@일제가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신도(불교 후발 일본 국지적 신앙으로,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만 종교로 하여, 강제 포교한 것도, 미군정당시부터 무효가 된 것입니다. 한가지 주의할것은, 서유럽에서 왕족.귀족의 역사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기반에서 형성된 서강대가 속한, 가톨릭 예수회는, 해방후 미군정을 거친 한참후에 들어와 한국에 그 교당이나 신자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중을 위한다는, 가톨릭 외방전교회가 들어와 활동했는데, 수천년 왕조국가 전통의 한국에서는 지배층의 성균관대와 성균관.양반들이 인정할 수 없던 계파였습니다.@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5. 독일은 공화국의 적, 즉 반헌법 범죄에 대한 것이라면 기본권의 정지까지 가능하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당신 논리라면 독일은 내전국가여야 하는데, 우리보다 평안하기만 하죠. AfD가 시끄럽긴 하지만.

    우리는 공화국에 얹혀사는 공화국의 적들에게 베풀 자비 따윈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전을 치르지 않고도 법치주의로도 가능합니다. 은근 슬쩍 저들의 땡강에 손 들어주시지 마시죠. 그것 또한 공화정의 적이 되는 행위라 봅니다.

  6. 허허 님께

    인터뷰어 겸 편집자입니다.

    말씀하신 조항을 알 수 있을까요? 진심으로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독일은 나치 시절 악명 높은 형법 2조(건전한 독일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행위는 처벌할 수 있다)의 오류와 상처를 바탕으로 현대적 ‘죄형법정주의'(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형벌도 없다)의 역사적 교훈을 몸소 체험한 나라입니다. 물론 유럽 전반에서 극우가 득세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만.

    비슷한 시절 소련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법 규정이 있었고, 독일과 마찬가지로 국가 권력이 자신의 정적과 반대파를 ‘인민의 적'(혹은 건전한 독일 국민의 정서에 반한다는 추상적인 명목으로) 마구잡이 숙청하는데 악용했습니다.

    말씀하신 “반헌법 범죄라면 기본권의 정지까지 가능하도록 헌법에 규정”이 정확히 어떤 규정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혹시 다시 들르실 일이 있다면 제 궁금증 혹은 오해 또는 착오를 풀어주시길 바라봅니다. 부탁드립니다.

  7. 허허 님께서는 독일연방기본법 제18조 언급하고 계신 것 같은데 참조하시고요,
    https://www.gesetze-im-internet.de/gg/BJNR000010949.html

    독일 법이라 접근성이 낮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상기 제18조 및 제21조는 한국 웹에서 접근성이 매우 높습니다. 소위 “장작”위키라고 불리는 모 사설 위키 연방헌법수호청 항목에서도 인용할 정도니까요. 나치 형법에 정통하시면서 현대 독일 법률에는 선택적으로 무지하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기우겠죠?

  8. 칼럼과 기사 모두 잘 읽었습니다. 또한 필자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노년층이 집회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는 사회적 소외로부터 벗어나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사실상 집회 참여를 통해 목적을 가진 실외활동을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또래집단, 더 나아가 다른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물리적인 지원까지 얻을 수 있다면 이것이 하나의 복지 형태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곳도 댓글이 험해졌는데.. 자신이 조금 더 이성적이고 식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의견을 가진 자를 소위 ‘적’ 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이기도 하며.. 양측 모두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니.. 자중을 부탁할 따름입니다.

  9. 여태까지 슬로우뉴스에서 본 중에 가장 별로인 글, 잘 보았습니다.
    중얼중얼 말이 길다고 논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잘 새기고 갑니다.

  10. 민노님께,

    허허님께서는 아마도 독일 기본법 제 18조의 기본권 상실 제도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제18조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공격할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 특히 출판의 자유(제5조제1항), 강의의 자유(제
    5조제3항), 집회의 자유(제18조), 결사의 자유(제9조), 서신, 우편 및 전신의 비밀(제10조), 재산권(제14조)
    또는 망명권(제16조제2항)을 남용한 자는 기본권을 상실한다. 상실 여부 및 정도는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하
    여 결정된다.

  11. 안녕하세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적당히 국가 자원을 빨아먹으려는 세력 아닌가?지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에서 물음표 뒤 띄어쓰기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2. 이젠 시마 테츠오가 되셨네요. 영민하셨던 선생님이니 머선 말인진 감 잡으시리라 믿십니다. 그 시절이 그립네요 후후

  13. merong 님께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새로 알았습니다.

    1.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헌법으로 평가되면서도 동시에 그 시기에 나치 정권이 탄생한 이율배반의 역사적 아이러니를 품은) 바이마르 헌법의 상대적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방어적 민주주의’를 반영한 조항이라고 평가되는 조문이네요.

    2. 우리나라 헌법 8조 위헌정당해산제도가 1949년 독일기본법의 21조를 직접 계수했네요. 저 개인적으론 김석기 국회의원 자격 발탁은 별론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굳이 이야기하면 저는 통합진보당에 매우 비판적인데요) 해산은 민주주의 역사의 오점으로 생각합니다.

    3. 방어적 민주주의의 역설(하버마스): 그 설정,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 이 문제는 좀 더 살펴보고 싶은 테마네요.

    4. “기본권 상실에 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 판례가 없다. 그 이유는 추측에 따르면 기본권 상실 제도의 결함을 인식한 연방 정부 내의 법률가들이 연방 헌법재판소에 기본권 상실 신청을 아예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일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은 전체주의로 인한 과거가 독일에 큰 오점과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라 추측한다”(나무위키, 방어적 민주주의)

    나무위키의 서술이라서 (매우 요긴할 때도 있지만, 정확성 신뢰성에서는 흠결이 있을 때가 종종 있죠…) 교차 검증 필요성이 좀 더 크겠습니다만, ‘허허 님’께서 말씀하신 취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네요.

    5. 독일기본법상의 기본권제한의 구조와 체계에 관한 고찰: 우리헌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표명환, 제주대, 2013)이 그나마 가장 주제에 부합하는 논문으로 보이는데, 짬날 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조언과 댓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4. … 님께

    교정 사항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오타(띄어쓰기 포함)는 당대에 발견되지 않는다는 명언(?)이 있는데, 여러 번 퇴고하고, 정리하고, 맞춤법 등을 살펴봤는데도 그런 오류가 있었네요.
    바로 정정하겠습니다.

  15. DJ 님께

    네, 기우입니다.
    제가 무슨 영광을 기대하면서 그런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겠습니까. ^^;; (저 아는 사람이 들으면 제발 좀 그렇게 살라고 하겠습니다만…)
    그냥 그 부분에 관해 무지해서이고요(농담, 농담유골…).
    이런 부분 말고도 모르는 게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만큼 많습니다. (물론 아는 분야도 조금 있습니다.)
    굳이 부연하면, 독일 형법 2조는 이재상의 ‘형법총론’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이라서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고요.
    그 책에 ‘방어적 민주주의’에 관한 부분도 나오긴 하는데, 기억이 희미했습니다(독일기본법 18조가 언급되는지는 책을 찾아봐야 하는데 책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뿐입니다. ^^

  16. “전광훈 목사에 대해서는 극단주의를 선동하며 노년층으로부터 돈을 긁어모은다는 등 여러 비난이 있지만, 적어도 소외된 노인층을 그가 조직해 낸 것 자체는 한국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어쨌든 그는 누구도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 소외된 노인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사람들이 납치를 당해서 강제로 돈을 낸 게 아니고, 전광훈 목사가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관과 공동체 네트워크에 무언가 충족되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돈을 낸다.

    누군가가 전광훈 목사보다 이 소외된 노인을 품고 그들에게 삶의 의미와 공동체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그가 이렇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보 언어로 말하자면 풀뿌리 조직화의 실패고 시장주의 언어로 말하자면 소비자를 둘러싼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전광훈에 대한 분석이 너무 평면적이라 좀 실망했습니다. 노인들 대상으로 전광훈같은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 게 사실상 범죄이고 사기인 줄 알기에 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만은….저런 논리라면 사기꾼들은 다 면죄부를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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