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칼럼] ‘미친’ 사람들의 도전이 만든 새로운 경쟁 공식, 한국은 가능할까. (⏳4분)
중국의 AI 기업 딥시크(Deepseek)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오픈AI와 맞먹는 성능의 AI를 제대로 된 낮은 사양과 낮은 비용으로 만들어냈다. 엔비디아 주가가 17%까지 폭락했고 전력 산업과 천연가스 가격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전 세계 투자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앞으로의 AI 개발에는 엔비디아 AI칩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는 거대한 인프라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시장이 흔들렸다.

경쟁 공식을 바꾼 게임 체인저.
강화학습을 중심으로 한 비지도 학습방법과 여러 개의 작은 고성능 지능 모듈을 만들어 활용하는 운용 모델이 딥시크의 다른 접근이었다. 엔비디아의 저성능 AI칩을 연결해 고성능 학습을 시킬 수 있었다거나, AI칩 수입 봉쇄에 구멍이 있었다거나 하는 다양한 해석과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차차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미국 빅테크 중심의 거대 인프라와 초거대 모형 구축이라는 한 방향으로 완전히 정리된 듯한 AI 산업 판에 격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AI칩 확보도 여의치 않았을 중국이 어떻게 이런 격동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이 기업의 설립자였다. 딥시크의 설립자는 1985년생의 퀀트 투자자 량원펑이다.
딥시크를 2023년에 설립했지만, 이미 2015년에 AI 기반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High-Flyer)을 설립해 운영 중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미적분 천재였던 그는 저장대 시절 투자할 주식을 골라주는 AI 알고리즘을 개발해 성공시키기도 했다. 서른 살에 두 명의 대학 친구들과 함께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를 설립한다.
초기에 돈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알고리즘 투자로 꽤 돈을 벌어 초기 운영자금을 대지 않았을까? 또한 중국에서는 ‘정부 가이던스 펀드’라는 전략 산업 공공투자 자금이 있다. 아마도 AI 연구를 내걸고 이런 자금을 받지 않았을까?
퀀트 투자로 출발한 머신 러닝 연구.
어쨌든 초기에 성과를 인정받았는지, 그의 펀드는 빠르게 성장해 투자자 1만 명(주로 기관일 것으로 추정)에 운용 자금이 12조 원 규모가 됐다. 중국 헤지펀드 중 최대급이다. 처음부터 머신러닝을 활용한 AI 투자를 내걸고 있었으므로, 2019년부터 하이플라이어는 이미 엔비디아 칩을 사들여 컴퓨팅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챗GPT가 출시된 시점에는 이미 1만 장 이상의 고성능 칩을 가진 몇 안 되는 중국 기업 중 하나가 됐다. 아직 딥시크는 설립도 되지 않은 때였다.

“AI칩은 피아노와 같아요. 일단 돈이 있어야 피아노를 사죠. 하지만 그것보다 피아노치고 싶어 미치겠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자꾸 더 사게 되는 겁니다.”
기가 막힌 비유다. 하이플라이어는 투자회사였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모델링에 미친 젊은 녀석들이 모인 회사였다. 사실 퀀트 투자와 머신러닝은 통한다. 있는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해 패턴을 발견하는 일이다. 당연히 모델이 클수록 더 잘 맞는다. 더 큰 모델을 돌리려는 욕구가 너무 크다 보니 자꾸 더 좋은 칩을 더 많이 사게 됐다. 어쨌든 투자할 돈은 있었다.
‘미친’ 사람들의 도전, 무한 ‘삽질’의 조직 문화.
딥시크는 출발 전부터 이미 두 가지 핵심 인프라를 갖고 있었다.
- 미친 사람들.
- 그리고 미친 듯이 놀아볼 수 있는 자원.
이 ‘미친 녀석들’은 어디서 왔을까?
- 첫째, 문제 해결 중심의 채용 철학. 량원펑은 경험이 장애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 뒤 2년 이하 경력만 가진 이들만 채용했다. “경험 많은 이들은 고민 없이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만, 경험 없는 이들은 반복적으로 여러 방법을 탐색하며 실제 상황에 맞는 문제 해결 방법을 제안한다.” 채용 전략의 이유였다.
- 둘째, 삽질 끝의 혁신. 이건 아주 전형적인 스토리다. 투자모델 만들려고 AI 연구에 심취하다 보니 ‘생성 AI는 왜 못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챗GPT를 뜯어보다 보니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엔비디아와 이야기하다 보니 여러 칩을 연결해 어느 정도 고성능을 내는 컴퓨팅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 제약조건 아래서 돌릴 수 있는 모델을 만들려고 여러 밤을 새웠다. 그리고 사무실에 침대가 있다. 많은 삽질 끝에 불리한 제약 조건 아래서 폭발적인 성능을 내는 방법을 발견했다.
- 셋째, 오픈소스 문화. 량원펑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픈AI와 미국 빅테크를 한 방에 보내는 멘트를 날린다.
- “기술자는 자기가 낸 결과를 남들이 따라오는 게 엄청난 성취감을 느낀다. 오픈소스는 바로 이런 문화이고, 이런 오픈소스 원칙을 따르면 기술자들 사이에서는 존경을 얻게 된다.”
폐쇄형 AI 시장에 던지는 오픈소스의 패기.
오픈AI의 GPT 모델들을 포함한 많은 실리콘밸리 AI모델은 폐쇄형이다. 그들은 그들만이 가진 레시피로 수십조 수백조 원대 투자를 받으려 사우디로 소프트뱅크로 날아다닌다. 그러나 딥시크는 이번 모델을 오픈소스로 내놓았다. 누구나 다운로드해 연구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고, 변형할 수 있다.
량원펑의 멘트는 한때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이 날리던 멘트였고, 한국의 창업가들이 신봉하던 멘트였다. 하지만 정치와 손잡고 스스로 거대 권력이 된 실리콘밸리와, 관료제와 반과학적 음모론의 늪에서 허덕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가 됐다. 경험 없는 미친 녀석들에게 자원을 몰아주고 실패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일, 어쨌거나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가능했다는데, 한국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