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인터뷰]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거버넌스 논의에 던지는 질문, “창업주의 1주와 단기 투자자의 1주가 동등하다고 볼 수 있나.” (⏰17분)
오스코텍 창업주 김정근(65)은 지난 4일 미국 출장 중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국산 1호 글로벌 항암제 ‘렉라자’를 탄생시킨 인물로 한국 바이오 벤처 기틀을 닦은 선구자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에서도 성과를 냈다. 오스코텍은 당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상태였기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정근은 오스코텍 지분 12.45%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자회사 제노스코의 ‘중복 상장’ 문제를 놓고 2대 주주 및 소액주주 연대와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 중복 상장: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증시에 상장된 상태를 뜻한다. 국내 증시에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사례는 상장 모회사가 수익성 좋은 사업부를 분할해 자회사를 만들고 이를 다시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다. 이 경우 모회사 주가는 하락하고, 주주 가치가 분산된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오스코텍 창업주의 화려한 업적과 위상 이면엔 취약한 소유 지배구조가 자리했다. 바이오업계 특성상 외부 자본 유치는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 김정근과 특수관계자의 합산 지분율은 12% 수준으로 떨어졌다. 점점 더 외부 주주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제노스코 상장을 추진하자 소수 주주들이 반발했다. 주주들은 모회사인 오스코텍의 기업 가치 희석을 우려했다. 김정근은 지난해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 연임에 실패하며 이사회에서 쫓겨났다. 오는 3월 주총에서는 김정근과 신약 개발을 함께 해온 이사들도 축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적 기업가 정신은 보호해야.”
- ESG·의결권 분석 전문기관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65)는 이렇게 말했다.
- “신약 개발처럼 10~20년 게임을 하는 섹터에서, 명백한 탈법 행위가 아닌 지배구조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서 해당 분야에서 기념비적 성과를 이뤄온 창업자를 보드(Board of Directors, 이사회)에서 축출하는 거버넌스가 과연 바람직한가?”
- 류영재 질문은 의미가 있다. 이재명 정부·민주당 주도로 ‘소수 주주 보호’ 명분으로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지배 주주는 좋게 말하면 ‘개혁 대상’, 나쁘게 말하면 ‘적폐’로 간주되고 있다. 복잡다단한 기업 경영을 도덕적으로 양분할 수 있는가. 창업주의 1주와 일반 투자자의 1주가 동등하다고 봐야 할까.
- 류영재는 “나쁜 지배구조는 지속적으로 바로 잡아 나가되, 혁신적 기업가 정신은 구조적으로 지지하고 보호해주는 보다 열린 유연한 자본시장과 자본주의로 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류영재를 지난 13일 서울 남산스퀘어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경영자 편이냐, 소액주주 편이냐’ 이분법을 경계하며.
— 오스코텍에 관해 페이스북 글을 썼다. 이를 언론이 인용해 보도하는 등 화제가 됐다.
“한국 정치는 진영화해 있다. ‘너는 어느 편이냐’며 쉽게 편을 나눈다. 거버넌스 논의도 ‘너는 경영자 편이냐, 소액 주주 편이냐’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문제가 있다. 나는 사실 소액 주주 편이다. 난 증권회사에서 14년 근무했다. 그 이후에도 현재까지 투자 자문업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40년 동안 주식 투자를 해왔다. 그 과정에 지배 주주의 여러 사익 편취 행위, 이를 테면 일감 몰아주기, 합병과 분할 등 각종 자본 거래로 손해를 많이 봤다. 누구보다 소액 주주의 분노와 원한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소수 주주권이 강화하는 과정에서 경영자들 가운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 자회사를 중복 상장하면 모회사 주가는 떨어진다. 모회사 소수 주주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또 제노스코에는 김정호 아들의 지분(14%)이 있었다. 제노스코 상장 추진은 아들에게 비상장 자회사 주식을 무상으로 증여한 후 상장으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종적으로 거래소 심사에서 거부됐다. 중복 상장 등 지배구조 문제로 창업주와 주주 간 신뢰가 훼손됐고, 2대 주주 측이 표를 모아 지난해 주총 때 김정근 고문의 이사 연임을 좌절시켰다. JYP, SM도 박진영, 이수만씨 같은 탁월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주가 있었고, 그들의 기업가 정신, 이른바 ‘앙트레프레너’로 지금껏 성장한 것이다.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자금 조달은 불가피하다. 그러다 보면 기업의 성장 엔진이라 할 수 있는 창업자의 지분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거버넌스 관련 실수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시비비하지도 않고 프레임을 씌워 축출하고 쫓아내는 것이 해답인가. 여기에 의문이 있다.”
📌 앙트레프레너:
프랑스어 ‘entrepreneur’에서 유래. 혁신적 기업가 또는 위험을 감수하며 새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뜻한다.
— 그런 관점에서 “장기 혁신형 섹터에서 도그마적인 1주 1표의 주주 민주주의 룰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지 질문을 던져 본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장기적으로 보면 경영자 및 지배 주주와 소수 주주 이해는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기업 주가가 상승하고 돈도 벌면 적절하게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고 배당도 주고, 또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발굴하여 다시 주가를 높이고, 그러다 보면 배당 성향도 높아질 것이다. TSR(Total Shareholder Return, 총주주수익률)이 좋아지면 주주에게도 좋다. 그러나 ‘단기’를 고려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소수 주주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2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못지 않을 거다. 소수 주주들은 짧은 보유 기간 내에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유인을 갖는다. 기업에 돈이 들어오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고, 소수 주주들은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팔고 바로 떠난다. 이런 구조가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 TSR:
주주들이 일정 기간 얻을 수 있는 총 수익률. 배당 소득과 주식 평가 이익을 더해 계산한다. 단순 주가 변동 비교보다 유용해 경영자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주주 민주주의? 포퓰리즘에 빠질 수도.”
— 창업주 1주와 투자자 1주는 다른 가치가 있다?
“‘1주 1표’는 ‘1인 1표’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표방하지만 김정근은 28년 전 회사를 만들면서 자기 집을 팔아 투자금을 대는 등 온갖 고생을 다했다. 투자만 하는 사람은 모를 헌신이다. 클릭 하나로 주주가 됐다가 다시 털고 나가는 단기 참여자들과 비교할 수 없다. 창업자는 회사가 조금 잘못됐다고 지분을 털고 나갈 수 없다. 단기 투자자들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뭐라도 뽑아 나가려 한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키우기 보다 배를 가를 생각부터 한다. 투자자는 전략적 투자자(Strategic Investors; SI),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s; FI)로 나뉘는데, 앙트레프레너는 SI와 또 다르다. 앙트레프레너는 기업 경영에 관해서는 세대를 뛰어넘는 ‘타임 호라이즌’(Time Horizon)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손가락으로 ‘주주’ 됐다가, ‘안 주주’ 됐다가 하는 소수 주주와는 DNA부터 완전 다르다.”
📌 타임 호라이즌:
특정 목표나 계획을 평가·실행하는 시간적 범위 또는 계획 기간.
— 외국에는 차등 의결권이 있다. 필요하다고 보나?
“워렌 버핏은 1965년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후 60년 동안 경영권을 행사하고 최근 은퇴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했던 투자자였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차등 의결권을 통해 버핏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했다. 회사를 키운 워렌 버핏과 찰리 멍거를 떼어 내면 평범한 회사가 되기 때문이다. 고가의 클래스 A주는 저가의 B주에 비해 의결권이 막강하다. 창업주가 가진 정보와 경험·통찰 격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일반 주주들은 제한된 정보만 갖고 회사를 평가하지만 내부에는 외부에 공표할 수 없는 영업 기밀과 경영의 노하우, 암묵지 등이 녹아 있다. 외부 주주들은 ‘주주 민주주의’ 논리로 목소리 높여 압박하지만, 그러다가 민주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포퓰리즘 문제에 빠질 수 있다. ‘1주 1표’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예외를 둬야 한다.”
— 소셜 미디어등장 이전과 이후로 자본시장 판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원활한 소통을 기대했다. 현실은 진영 내 소통은 강화됐지만 진영 간 소통은 더 어려워졌다. 되레 양극화와 진영화가 가속화했다.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이 닮은 꼴이다. 정치인이 이슈 파이팅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유권자 표를 결집하듯, 행동주의도 주주총회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노출을 극대화한다. 정치와 행동주의 모두 표를 더 얻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상당수 정치인이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포퓰리즘으로 치닫고 선동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처럼 일부 주주 행동주의도 플랫폼을 만들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하고 주주 표를 유인한다. 자본시장도 진영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나 바이오 및 딥테크 쪽 연구자들은 더 멀리 내다봐야 하는데, 주주를 선동하며 표를 끌어들이는 행동주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 창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제도랄 게 있나?
“미국에는 차등의결권(Dual Class Stock) 제도가 있다. 알파벳, 버크셔 해서웨이, 메타 등이 대표적이다. 창업자의 혁신력과 비전을 보호하고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행동주의를 포함해 시장의 단기 수익 압력으로부터 창업자와 핵심 인재들이 축출되는 걸 방어하여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호하는 제도다. 창업가의 경영권을 안정화해야 향후 10~20년을 내다보고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소수 주주들은 이런 타임 호라이즌을 갖고 있지 않다.”
법으로만 거버넌스 개혁 강제하면 탈이 난다.
— 행동주의 순기능도 있지 않나?
“경영을 못하는 기업의 주가는 디스카운트될 것이다. 내재 가치는 1만 원인데, 주가가 5000원 밖에 안 되면 행동주의가 들어와서 공격을 한다. 능력 없는 경영자를 내쫓고 새 경영자가 들어와 경영을 개선하면 주가가 내재 가치에 수렴한다. 이를 기업경영권 시장(Market for Corporate Control)의 순기능이라고 이야기한다. 단, 이는 주식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현실의 주가가 효율적인가? 워런 버핏은 이를 부정한다. 주가가 효율적이라는 말은 기업 가치를 정하는 모든 정보가 주가에 이미 반영돼 있다는 뜻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창업자가 그리는 미래, 상상력 역시 주가에 효율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 기업 경영권 시장:
기업의 경영권이 주식 거래나 M&A를 통해 이전하는 시장. 부실 경영 기업을 외부 인수자가 저가에 매수해 효율화하는 외부 통제 장치로 작동한다.
— 지배구조 논의의 격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지배구조 논의는 왜곡돼 있다고 보는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 자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또 원활한 자본시장이 뒷받침해야 한다. 투명한 거버넌스도 요구된다. 지난해 상법 개정을 두 차례 했다. 이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도입하려 한다. 문제는 법으로만 거버넌스 개혁을 강제하는 데 있다. 자사주 소각이 왜 필요한지, 그것에 관한 연구는 국내외적으로 상당 부분 축적돼 있다. 이 제도가 왜 필요한지, 그것만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법으로만 강제했을 때 다른 역효과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1차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세워졌다. 낚시에 비유하면 저인망을 깔아 놓은 셈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입법 취지에 맞게 사법부가 판결을 내려주느냐다. 그런데 법을 위반한 경영진이 전관이나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을 쓰면, 법 그물망에서 다 빠져나온다. 이런 사법 현실을 도외시하고 거버넌스 관련 법만 강화하면 정상적으로 경영하는 선의의 사람만 피해를 입는다. 거버넌스 개혁도 중요하지만 반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 이걸 바꿔야 한다. 판사들이 기업 사건에 너무 어두운 것도 문제다. 전관을 통해 법망을 무력화하는 대형 로펌 문제도 반드시 짚어야 한다.”
— 지난해 민주당이 주도한 1·2차 상법 개정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개정한 것은 기념비적 성과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판례가 나와야 한다. 이사회가 주주 이익에 충실하지 않은 의사 결정을 했을 때, 법적 책임을 지는 일이 벌어져야 한다. 지금은 계속 피해 나가고 있다.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EB) 발행을 하는데, 자본 투자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거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하지만 EB를 주식으로 교환하여 특정 우호 세력(백기사)에게 넘겨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쓴다면 이는 상법 개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이런 의사 결정을 했던 사람이 법적 책임을 지는 판례가 축적된다면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전자투표도 주총 접근성을 높인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 대부분 주총이 3월 셋째 주, 넷째 주 금요일에 몰려 있다. 여러 곳에 투자한 투자자는 다 가볼 수 없다. 전자 주총으로 물리적 제약이 해소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 교환사채:
Exchangeable Bond.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발행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 주식과 교환할 수 있는 채권. 일반 채권과 주식 투자 장점을 결합한 증권. 투자자에게 안정적 이자 수익은 물론 주가 상승 시 추가 수익을 얻을 기회를 제공.
📌 백기사:
White Knight. 적대적 M&A 상황에서 현 경영진을 지원하는 우호적 인수자를 지칭.

자본시장도 ‘주주의 책임’을 이야기해야 한다.
— 현재 거버넌스 논의가 “주주권 강화만 말하고, ‘주주의 책임’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배주주의 막강한 권한으로 소수 주주 목소리는 외면 받고 있는 게 국내 자본시장의 현실”이라는 반론이 돌아온다. ‘주주의 책임’보다 ‘주주권 강화’가 우선이라는 취지다.
“소수 주주권을 보장해줘야 소수 주주들이 계속 자본 시장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해외 주주들도 소수 주주권에 민감하다. 이들은 한국 자본시장이 소수 주주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 판이 커지려면 소수 주주권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소수 주주권 보호에 100% 찬성한다.
그러나 주주권을 강화하는 것과 주주 책임은 다른 얘기다. 권리가 제고하면 대칭적으로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책임과 권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학생 인권이 없던 시절이 있었고,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학생 인권 조례가 제정됐다. 이후 자기 자식만 귀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학부모가 제도를 악용해 선생을 괴롭히고,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책임의 부재 탓이다.
자본시장도 책임 있는 주주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영미나 유럽의 경우 책임 투자(Responsible Investment, RI) 운동이 30~40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이런 움직임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확산됐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ESG 투자,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 등 개념이 여기서 비롯했다.”
📌 스튜어드십 코드:
연기금, 자산운영사 등 기관 투자자가 주주 자산을 집사처럼 관리하며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행동 지침. 국내 자본시장은 2016년 12월 도입.
📌 ESG 투자: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요소를 재무 성과와 함께 고려하여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하는 방식.
📌 유니버설 오너: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초대형 기금을 의미. 유니버셜 오너는 시장 전체의 위험과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개별 경제 주체가 간과하는 다양한 외부 효과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일본공적연기금(GPIF)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업과의 건설적 대화(Engagement)에 나서면서 일본 기업의 배당이 증가한 것이 대표적.
— ‘거수기 이사회’ 비판이 적지 않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한국 기업은 크게 오너 및 지배 주주가 있는 기업과 지배 주주가 없는 소유분산 기업으로 나뉜다. 후자는 KT, 포스코, 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한국 기업 대부분은 지배주주가 있는데, 이 경우 사외이사 대부분은 ‘거수기’에 다름 아니다. 반면, 최근 KT 사태에서 보듯 지배주주 없는 회사의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가 ‘기중기’ 노릇을 한다. 책임성과 전문성 없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셀프 연임과 과도한 의전 등 권한을 오남용하는 행태를 보인다는 뜻이다.
상법 개정으로 사외이사 명칭이 독립이사로 바뀌었는데, 이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전문성과 독립성이다. 월급 받는 사내 이사들은 이사회에서 회사 결정에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또 교수, 고위 전직 관료들은 경영 현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의사 결정 주체로 참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주요 선진국 이사회를 보면, 사외이사는 주로 기업인 출신이 많다. 20~30년씩 현업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들어간다. 우리도 업계 사람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정당도 상향식 공천을 하듯, 주주에 의해 추천되는 사외이사도 더 많이 나와야 한다.”
— 국내에서도 선임 사외이사(Lead Independent Director)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있다.
“주주에 의해 추천된 사람을 선임 사외이사에 앉혀 주주와 긴밀한 소통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주주들 의견을 잘 걸러 이사회 석상에 올려놓는 역할이다. 연임을 생각하다 보면 소신을 펼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임기 4~5년의 단임제로 운용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국민연금이 지배주주 감시해야 하는 이유.
— 국민연금 등 연기금, 장기투자자 역할은 무엇인가?
“국민연금의 투자 원칙은 크게 6가지다.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독립성, 유동성, 지속가능성. 지속가능성이 ESG다. 6가지 원칙을 고려해 기금을 운용하게 돼 있다. 국민연금과 달리 일반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은 수익성, 안정성만 보면 된다. 문제는 1500조의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역들은 거의 다 여의도에서 포트폴리오 운용만 배운 친구들이다. 이들한테는 공공성이나 지속가능성 개념 자체가 없다. 오로지 위험조정수익률*(Risk-Adjusted Return)을 어떻게 하면 높일까만 고려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유니버셜 오너(Universal Owner)로서 안정적으로 나아가야 할 국민경제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투자자다. 일반 여의도 투자자들은 주가와 포트폴리오 수익률 상승만 보면 되지만, 국민연금은 국민 경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그래서 지속 가능성, 즉 ESG가 중요하다. 특히 거버넌스 문제의 경우 투자 대상 기업의 지배 주주가 사익을 편취하는지 감시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국내 투자를 해서 18.7%라는 폭발적 수익률을 냈는데 거버넌스 개혁이 일조한 것이다. 거버넌스 개혁이 이뤄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일정 부분 해소되면서 재평가가 이뤄진 결과다.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작년 국내 주식 부문에서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향후에도 디스카운트에서 프리미엄 시장으로 갈 수 있도록 국민연금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작년과 같은 초과수익률이 시현될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운용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 위험조정수익률:
투자 수익을 발생 위험 수준에 맞춰 평가한 지표.
— 국민연금 역할론을 논하다보면, ‘연금 사회주의’ 비판과 마주한다. 이런 비판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연금이 스튜어십 코드를 이행하거나 주주권을 행사할 때 보수 진영에서는 ‘연금 사회주의’ 프레임을 가동한다. 잘못된 프레임이다. 국민연금은 1500조 가운데 국내 주식에 250조 정도를 투자했다. 국내 기업의 주주로서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다. ‘연금 사회주의’가 아니라 ‘연금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게 정당하다. (기자: 왜 그런 비판이 나올까?) 복지부 밑에 있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에 잘 갇히는 것 같다. 난 15년 전부터 국민연금 거버넌스를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 국민연금 거버넌스 개혁이 가능한가?
“쉽지 않다. 복지부가 자기 밥그릇 절대 안 내놓을 거다. 온갖 언론 플레이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로비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은 복지 차원에서 노후 소득 보장성(급여 수준)을 강조하고, 국민의힘 등 보수 쪽은 투자 차원에서 수익률과 재정 안정성을 강조한다. 기재부는 국민연금을 자기 부처 밑으로 가져오려 한다. 모두들 동상이몽이다. 캐나다연금의 경우 1990년대 말 CPPIB(Canada Pension Plan Investment Board)를 별도로 분리·설립했는데, CPPIB 이사회를 전문성 있는 인사로 채웠다. 우리도 이를 벤치마크하여 기금운용부문을 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처 이기주의와 우리 정치 실력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진 모르겠다.”
📌 CPPIB:
Canada Pension Plan Investment Board의 약자. 캐나다 연금 계획 기금을 운용하는 공적 투자기관.

“삼성물산 합병 찬성하라는 압력에 잠 못 이뤄.”
— 일본 공적연금(GPIF)의 CIO를 5년여간 역임했던 히로 미즈노가 최근 한겨레 포럼에서 발표를 가졌다. 후기를 포스팅하기도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인사이트를 얻었나?
“그는 자신의 미션에 대해 ‘100년 이상 GPIF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은 상반기, 하반기 성과 평가를 한다. 즉, 6개월 그 이상을 내다보지 않는다. 우리와 비교하면 GPIF의 100년은 굉장한 롱터미즘(long-termism, 장기주의)이다. 또 단기적 포트폴리오에서의 이익만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유니버설 오너’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이 때문에 스튜어십 코드가 중요한 것이고, ESG를 고려한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단기로만 보면 저탄소 경제로 가야 할 유인이 없다. 하지만 30년, 아니 10년 뒤 우리 모습을 상상해 보자. 앞으로 강화할 글로벌 기후 규제 등을 고려하면, 요새 잘 나가고 있는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여의도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지만 지속가능성이 운용 준칙인 국민연금은 ESG를 이행해야 한다.”
— 최근 의결권 자문 활동에서 가장 주목한 기업 지배구조 사례는 무엇인가?
“최근은 아니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인 2015년이 떠오른다. 굉장히 기념비적 사건이다. 당시 우리가 국민연금에 의결권 자문을 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합병을 반대했는데, 회사 문을 닫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직·간접적으로 찬성하라는 여러 압력을 많이 받았다. 잠을 못 이루던 시절이다.
삼성과 이렇게 척을 지면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더 할 수 있을까, 회사 생존을 위해 현실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 고민이 들었다. 최종적으로는 합병에 반대했다. 그때 만약 찬성했다면 우린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못하게 됐을 거다. 누가 우릴 공정하다고 보겠나? 의결권 자문업은 공정성이 핵심이다. 몇 날 며칠 잠을 못 이뤘지만 지금까지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엔 그때 선택이 있다.”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맞바꾸는 합병을 결의했다. 삼성 오너 승계 작업을 위해 제일모직 가치는 높게, 삼성물산 가치는 낮게 합병 비율(1대 0.35)이 책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정권 외압으로 부당 합병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은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7월 무죄를 확정했다.
—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 교수의 경우 주주 자본주의 강화로 인해 한국 자본시장이 미국처럼 빚 내서 배당하는 등 주주 환원에 잠식 당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우리도 미국이 겪고 있는 극단적 주주 자본주의 폐단을 걱정해야 할까?
“장하준 교수 주장은 오버센스(over-sense)라는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 소수 주주들이 지난 40~50년 동안 지배주주들한테 얼마나 많은 착취를 당했는지, 그 애환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건 뜯겨보면 안다. 소수 주주권은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 이에 비춰보면, 이재명 정부 방향성은 분명히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수 주주가 피해자라 해서 꼭 바람직한 투자자는 아닌 것이다. 피해자 중에는 악인도, 투기꾼도 있을 수 있다. 소수 주주권은 격상돼야 하지만 주주의 책임도 필요하다.
히로 미즈노도 테슬라 이사 시절 주주로부터 당했던 소송 경험을 술회했다. 그는 ‘주주들 주장의 상당수는 기업 가치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 영양가 없는 얘기, 다른 말로 ‘소음’인 것이다. 스튜어십 코드를 한다고 해서 그런 요구에 일일이 응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다만 그 회사에 오랜 주주였고, 앞으로도 계속 장기 투자할 주주하고는 같은 배에 탄 파트너라 생각하고 의견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장기 주주들 역시 책임 투자 원칙에 입각해 기업 경영에 관여해야 한다. 기업 앞에 놓인 몇 천억 원을 두고 단기 주주는 ‘빨리 나눠달라. 그 돈으로 아파트 사고 차 사야 한다’고 할 것이고, 장기 주주는 새로운 투자를 통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제고하길 바랄 것이다.”
2030세대, 마라톤하듯 저축하듯 투자하라.
— 2030 젊은이들은 ‘포모 증후군’을 앓고 있다. 빚 내서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조언한다면?
“지금 가장 큰 문제가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금융 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거다. 사실상 금융 문맹들이다. 유튜버로부터 금융 교육을 받는다. 유튜버를 모두 매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당장 이렇게 투자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나? 사람들은 그런 얘기에 솔깃한다. 40년간 투자를 해오면서 얻은 결론은 ‘마켓 타이밍 투자’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시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단기는 더 예측할 수 없다. 외국 펀드 매니저들을 보면, 한 1~2년 성과가 좋으면 좀 쉬게 한다. 한 번 맞히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기를 확신하게 된다. 어쩌다 장님이 문고리를 잡은 격이다. 유튜브가 위험한 이유다.
(기자: 그럼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워렌 버핏처럼 투자하라. 그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나. 워렌 버핏의 6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0%에 육박한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1년에 10%만 돼도 복리를 고려하면 30~40년 뒤 어마어마한 스노우볼이 만들어진다. 젊은 사람들은 30~40년을 내다보고 스노우볼을 만들어 간다 생각하고, 마라톤하듯 저축하듯 투자하면 된다. 그러면 복리의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포모 증후군:
FOMO(Fear Of Missing Out)는 소외나 뒤처짐에 대한 강한 불안감을 뜻하는 심리 상태. 주식 투자에서 기회를 놓칠까 봐 느끼는 불안으로 충동 매매를 유발한다.
— 그런데, 왜 내 주식만 오르지 않을까?(웃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 삼성전자 주가가 최고가를 연일 경신한다는 소식에 초연해지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주식은 상대적 게임이 아니라 절대적 수익률을 추구하는 게임이다. 내 포트폴리오에 확신을 갖고 1년에 수익률 10%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라. 레버리지 빚투(빚을 내서 투자하는 행위)로 10배씩 단기 수익을 낸 사람들은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다시 주식시장으로 돌아온다. 한때 요행으로 쉽게 번 돈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아니 결국 그 이상을 토해내게 되어 있다. 단기 마켓 플레이는 마약과 같이 위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