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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정책은 ‘증거 기반 정책’이 아니라 ‘정책 기반 증거’로 만들어진다.”

유럽의 이민 정책 실무자와 연구자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다. 이는 데이터에 기반해서 분석을 통해서 이민 정책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전에 실시하기로 결정한 이민 정책이 있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되는 데이터만 선별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최근 다문화가족 지원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지켜보며 이 말이 떠올랐다. 이주민 지원이 적절한지, 사회적 합의가 있는지에 대해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공론의 장에서는 막연한 감정이나 추측이 아니라 ‘정확한 팩트(사실)’에 근거해서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4년 ‘국민다문화수용성’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한국이 이주민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답했다. 과연 실상도 그러할까? ‘살기 좋은 나라’라는 평가에 앞서, 우리가 편견에 가려 보지 못했던 몇 가지 통계적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분투재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분투재단.

우리는 이주민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23년 국민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46.7%는 국내 이주민 중 결혼이민자가 가장 많을 것이라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국적 동포와 외국인 근로자가 차지하는 규모가 더 크다. 

이주민 수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도 댓글과 민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드러난 반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같은 조사에서 이주민이 줄어야 한다는 응답은 22.3%였고, 늘어나야 한다는 응답은 41.9%였다.

여론에는 기대와 우려가 함께 존재한다. 2024년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에서 이주민 증가가 복지 체계에 부담이 된다는 응답은 73.1%였지만,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도 78.3%에 달했다. 이주민이 인구 감소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복지 부담에 동의하는 비율도 높았다.

게티이미지.

일정한 조건 아래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동의도 적지 않다. 세금을 내는 등 조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것에 대하여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는 63%가, 인권의식 실태조사에서는 75%가 동의했다.

이러한 결과를 단순히 모순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민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고민하는 모습일 수 있다. 국민들은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합리적인 기여와 혜택의 균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이민 정책 연구소(MPI)는 이민에 관한 여론이 찬반 이분법보다 복합적이며, 사안과 조건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는 ‘중간층’이 두텁다고 분석한다. 목소리의 크기를 사회 전체의 합의로 받아들이기보다, 시민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구체적으로 읽어야 한다.

다문화가족은 한국인… 하지만 맞벌이가구보다 낮은 가점

다문화가족 지원을 외국인에게 주는 혜택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다문화가족은 한국인 배우자와 한국 국적 자녀가 함께 살아가는 엄연한 ‘한국인 가족’이다.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과 취약보육 지원은 단일민족 의식에서 비롯된 편견과 차별, 언어와 문화 차이로 자칫 생애 초기부터 뒤쳐지기 쉬운 아동에게 ‘동등한 출발선’을 마련해주기 위해 도입되었다.

다문화 가족의 0~2세 자녀 어린이집 이용률은 45.4%로 전체 평균에 비해 낮다. 일각의 주장처럼 ‘특혜’로 보육 시장을 잠식하지 않는다.

우선순위 배점만 봐도 다문화가족은 100점이지만 맞벌이 가구는 200점, 3자녀 맞벌이는 700점이다. 30대 결혼이민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5.2%로 일반 국민 82.3%보다 낮아 맞벌이 가점을 받는 가구는 많지 않다.

게티이미지.

외국인 어머니는 결혼 후 평균 2.5년 만에 첫아이를 낳는다. 한국어와 생활문화에 적응하는 시기에 출산과 양육까지 시작하는 셈이다. 한국의 양육 방식을 잘 모른다면 아이는 다른 또래보다 생애 초기부터 취약한 자리에 놓일 수 있다. 제4차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이 ‘동등한 출발선 보장’을 첫 목표로 내건 이유다. 

물론 모든 다문화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지원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사회 적응과 양육을 돕는 제도의 필요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 꾸려진 가족이 겪는 혼란과 불안의 시간을 줄이는 일은 아동의 성장과 사회 전체의 안정과 연결된다.

외국 국적 아동 앞에 놓인 다른 벽

외국국적 아동은 다문화가족 아동과 상황이 다르다. 13만 명이 넘는 ‘외국 국적 아동’은 이러한 지원에서 철처히 배제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보육료 지원도 되지 않아, 보육비 부담 때문에 자녀를 본국에 두었다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아동이 한국어와 학교생활에 적응할 기회는 늦어진다. 부모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 상태에서 부모보다 늦게 입국한 아동은 6개월을 기다려야 가입이 가능하다. 부모의 가입 형태와 아동의 입국·체류 조건에 따라 공백이 발생한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가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규정하지 않은 입법공백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를 두고 출생등록을 하면 체류자격과 각종 복지 혜택이 자동으로 주어진다는 잘못된 정보가 돌기도 한다.

출생등록은 아동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기록하는 절차일 뿐 체류 자격 부여나 개별 복지제도의 수급 자격과는 구분된다. 오히려 이러한 오해는 태어난 아동을 등록했다면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할 것이라는 시민의 기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

본국으로 보내는 액수보다 근본 원인 먼저 알아야

이주노동자가 번 돈을 본국으로 보낸다는 사실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송금은 가족이 어디에 사는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2025년 이민자체류실태및고용조사를 분석한 결과,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민은 월평균 총소득의 56%를 본국으로 보냈다. 배우자와 자녀가 모두 한국에 있는 집단의 송금 비중은 27%였지만, 가족이 본국에 있는 집단은 60%였다.

고용허가제 비자(E-9)는 가족 동반을 제한한다. 농업 분야 외국인력은 계절근로자, 고용허가제 노동자 등을 합쳐 10만 명이 넘지만, 가족 동반이 가능한 숙련기능인력 자격으로 체류하는 사람은 723명에 그친다.

게티이미지.

노동자는 한국에서 일하고 가족은 본국에서 생활하니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내는 것이다. 송금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설명하기 전에 가족과 함께 살기 어려운 제도적 조건을 살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한국 내 소비와 정착이 늘기를 기대한다면 가족과 함께 살아갈 길을 넓히는 방안을 먼저 논해야 한다.

한국도 해외로 나간 국민의 노동과 기여를 통해 성장한 경험이 있다. 1962년 해외이주법은 국민의 해외 진출을 장려해 국민경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목적을 담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일하며 가족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우리는 지금도 자랑스럽게 기억한다.

외국인, 오히려 재정에 기여…가혹한 임금체불과 죽음

외국인이 복지를 축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공공부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며, 무상보육 역시 외국인 아동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1개월 가입 후 119개월 추납’ 논란도 단 1명의 수급 사례에 불과한 과장된 왜곡이었다.

오히려 외국인이 한국의 재정상황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외국인 근로자가 납부하는 근로소득세만도 연간 약 1조 2천억 원에 달한다. 2025년 기준 건강보험 전체 흑자는 4,996억 원, 외국인 부분의 흑자는 1조 128억 원이었다. 단순히 계산해도 외국인을 제외하면 5천억 원이 넘는 적자였다.

정작 우리는 이들의 노동과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2025년 외국인 임금체불액은 1,548억 원으로 전년 대비 43.6% 급증했고,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산업재해로 숨진 이주노동자는 463명이었다. 그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애도와 노동환경 개선이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장난으로?

포용하지 못하는 한국, 외국 인재에게 매력 낮아진다

2024년 국민다문화수용성 조사에서 응답자의 73.5%는 이주민 통합이 장기적으로 필요한 투자라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가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응답은 52.6%에 그쳤다.

이주민과의 관계에 대한 태도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랐다. 이웃이나 직장 동료로서 이주민을 불편해한다는 응답은 15~18% 수준이었지만, 간병인으로는 39.3%가 불편하다고 답했다. 이를 단순한 찬반으로만 읽기보다, 몸과 가족을 맡기는 밀접한 관계에서 어떤 신뢰와 제도적 조건이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 서로를 알아 갈 시간, 서비스의 질과 책임을 보장하는 장치가 함께 필요하다.

이제 이주민 수용은 단순한 시혜나 구호가 아닌 ‘국가 간 인재 유치 경쟁’이다. OECD 인재 매력도 지표에서 한국은 38개국 가운데 포용성 23위, 가족 생활 여건 33위에 머물렀다. 차별과 배제가 팽배하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어려운 나라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우수한 인재가 오지 않는다. 한국이 원하는 이주민을 유치하려면, 이주민이 살고 싶어 선택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청와대.

지난 10월 27일 의결된 제1차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은 전략적 인재 유치와 정주기반 강화, 국내에서 성장하는 이주아동의 포용 등을 포함한 ‘열린사회 상생 시스템 구축’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 계획이 실현되려면 일관된 제도 개선과 지속적인 집행이 필요하다. 강경한 태도를 보여주는 조치만으로는 이주민 통합의 성과나 시민의 신뢰를 만들기 어렵다.

30년 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서는 지금의 이주배경 아이들이 이웃과 동료로 함께 할 것이다. 그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내국인과 이주민이 함께 사는 조건을 만들고, 권리와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주민 정책에는 더 깊고 폭넓은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제도의 실제 모습과 당사자의 삶을 함께 살펴야 한다. 정책에 맞는 근거를 고르는 대신,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인구 위기 속에서 인구 전략 기본계획을 마련한 정부가, 약속한 포용적이고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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