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색다른 진보]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의 주장과 다르게,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하면 또 다른 집단 이기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내가 DSA를 비판하는 이유, 두 번째. (⏳5분)
🎠 내가 DSA를 비판하는 이유
1. 미국서 열풍 DSA, ‘생산’ 빠진 ‘분배’ 포퓰리즘의 한계.
2.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하면 사회가 더 나아질까.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고, 입사할 때 채용 조건이 달랐는데 일률적으로 같은 선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 2026년 5월.

2036년, 이제 삼성전자는 민주적인 노동자 소유 기업이다. 주주가 아니라 삼성전자 직원이 이사회를 선출한다. 당연히 정직원은 모두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한다. 직원들은 대표단을 별도로 선출한다. 직원 대표단이 사규나 임금 인상 등 큰 방침을 정하고, 이사회가 경영 실무를 맡는다. 물론 실무라고 하더라도, 공장 확장이나 구조조정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사회는 직원 대표단과 협의해야 한다. 과연 민주적인 삼성전자는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사회 전반에 경제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노동자 소유였다면?
민주적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쥔 직원들에게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2026년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챙길지도 모른다. 동시에, 삼성전자와 하청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과 그곳에 속한 노동자들의 처지는 그대로일 수 있다. 민주적 삼성전자 안에서도 단기 계약직이나 비조합원 노동자가 늘어나고 경영 참여권을 가진 노동자만 부유해질 수도 있다. 심지어 민주적 삼성전자의 이익을 위해, 하청 업체에는 더 낮은 가격을, 소비자에게는 더 높은 가격을 강제할 수도 있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의 공상과 다르게, 노동자 소유는 결속된 집단 이기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혐오자의 냉소가 아니다. DSA와 거리가 먼, 더 뿌리 깊은 전통을 공유하는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100여 년 전부터 우려하던 일이다. 대표적 인물이 독일 수정주의와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다. 민주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뚜렷하게 나뉘지 않은 시기, 베른슈타인은 저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노동자를 공장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주의와 관련 없다고 단언했다. 사회주의는 사회 전반의 이익을 위한 것인데, 노동자가 공장 주인이 되는 순간 사회 전반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은 이렇다. 공장 주인이 된 노동자가 최대한 많은 돈을 벌려면, 가능한 한 가격을 올려야 한다. 반면 소비자는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얻기를 바란다. 여기서 사회 전반의 이익에 더 가까운 것은 공장 주인들이 아니라 소비자다. 베른슈타인 표현을 빌리면, 모든 사람은 소비하지만 모든 사람이 생산하지는 않는다.
즉 소비자가 노동자보다 더 큰 범주다. 따라서 공장 주인이 된 노동자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면, 자연히 소비자의 이익, 다시 말해 사회 전반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베른슈타인은 노동자들이 개별 기업 단위로 임금을 협상하는 데도 반대했다.
“공장 노동자들은 일반 대중에 비해 특별한 이익을 얻기 위해 싸울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임금 인상의 대가로 기업주들과 연합하여 높은 가격으로 일반 대중을 착취할 수도 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이는 19세기 사상가들만의 지적이 아니다. 21세기 캐나다 철학자 조지프 히스 역시 미국의 여러 협동조합을 관찰한 후, 협동조합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반적인 주식회사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리라는 법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히스에 따르면, 협동조합에서는 기존 조합원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즉 신입에게 이윤을 나눠주지 않기 위해 고용을 망설이거나 경영권 없는 노동자를 채용할 유인을 갖는다. 같은 이익을 10명이 나눠 가질 때보다 5명이 나눠 가질 때,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몬드라곤 과반, 경영 참여 못하는 노동자.
실제로 2006년 몬드라곤 조합원들은 자회사에 속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한 경영 참여권을 주자는 안건을 두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논의가 미뤄지는 동안 글로벌 경제위기가 일어나는 바람에 경영 참여권 확대는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2007년에서 2015년 사이, 몬드라곤은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체 인력의 28%를 줄였다. 같은 기간 동안 조합원은 8%만 줄었다. 다시 말해, 몬드라곤도 모든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다른 기업처럼 해고하기 쉬운 직원들을 대량으로 채용했다가 위기일 때 내쫓으며 생존했다.

조합원 비중도 1990년대부터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2018년 몬드라곤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8만 명 정도였는데, 이 가운데 회사를 소유하는 조합원 노동자는 2만 6000여 명에 불과했다. 협동조합 몬드라곤에서 일하는 사람 과반이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임금 노동자다. 물론 그 중에는 임시직도 포함돼 있다. 몬드라곤은 노동자 협동조합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모범 사례로 통한다. 노동자 소유를 비판하면 ‘몬드라곤을 보라’는 반응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몬드라곤이 다른 자본주의 글로벌 기업과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이런 사례는 몬드라곤 외에도 많다. 물론 노동자 소유 기업들이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도록 정부가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DSA 역시 정부가 기업 활동을 더 엄격히 규제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DSA가 바라는 경제 민주주의와 정부로부터 규제받는 자본주의 기업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노동자 소유 기업도 결국 정부로부터 규제받아야 한다면, 민주적 기업이라고 해서 더 나으리라는 법이 없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공공 재정을 들여서 노동자 소유를 촉진해야 할까. 그 예산을 근로장려금처럼 효율적인 소득 재분배에 활용하는 편이 더 많은 노동자에게 도움되지 않을까.
노동자 소유에 대한 막연한 환상.
모든 기업을 협동조합으로 만든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더 평등해지지는 않는다. 수억 원 성과급을 나눠 갖는 삼성전자와 당장 이번 달 임금도 밀리는 중소기업의 격차가 보여주듯, 시장경제에서는 협동조합도 서로 협력하기보다 격차를 벌리는 데만 주력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별 협동조합 경영에 깊게 개입한다면, 거기서부터는 더 이상 노동자에게 온전히 소유권과 경영권이 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시장경제가 명령경제로 바뀌면서 협동조합들이 정부로부터 지시받는 기업이 될 테니까. 노동자 소유와 정부의 경제 통제 강화는 모순될 수 있는 셈이다.
“초기 생산자 결사체들의 역사를 읽거나 현재 결사체들의 투쟁을 관찰한다면, 과거와 현재 사실의 연구에서 똑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까 두렵다. 한 명의 이윤 취득자를 여러 이윤 취득자로 대체하는 산업조직은 상업을 도덕화하는 데서 한 걸음 전진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 공동체를 생산자들의 작은 자치 집단들로 쪼개는 것은 기묘하게 왜곡된 민주주의관이다. 그들은 활동의 성격 자체 때문에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결합하여 대중에게 가격과 품질을 강요해야 한다. 노동을 사는 자본가들이든 자본을 사는 노동자들이든 둘 사이의 공동 경영이든, 모든 생산자 결사체는 이해관계에서 공동체의 이익과 직접 대립한다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베아트리스 포터(결혼 후 성은 웹), 1891년 저서 ‘영국의 협동조합 운동’에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해 답해야 할 책임은 오롯이 DSA에 있다. 그러나 강령에는 ‘논의 중’이란 내용 뿐이다. DSA 스스로 인정하듯, 사회주의가 반드시 어떤 사회 모델 한 가지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모두가 노동자 소유, 노동자 협동조합을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따라서, 오히려 기존 자본주의 기업들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 더 사회주의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DSA는 노동자 소유 확산이 사회주의로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DSA가 말하는 공공 소유는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