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색다른 진보] DSA는 후드티를 입고 확성기로 모호한 구호를 외치는 포퓰리스트다. 내가 DSA를 비판하는 이유. (⏳ 4분)
매카시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민주사회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소수 지식인들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상원의원, 하원의원, 뉴욕 시장을 당선시킬 정도로, 민주사회주의는 영향력 있는 정치 운동이 됐다.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사회주의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풀게 될까.
아쉽지만,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선입견을 퍼뜨리고 있다. 인민복을 입은 독재자에 더해, 후드티를 입고 확성기로 모호한 구호를 외치는 포퓰리스트가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을 나눠 가졌다.

DSA, ‘사회주의’ 이름만 나눠 가진 포퓰리즘.
그 구호 중 하나는 이렇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의 그린 뉴딜 강령은 ‘경제 전반에서 노동자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협동조합과 기업을 장려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장려하겠다는 것인지는 어디에서도 밝히지는 않았다. 궁극적으로 거의 모든 기업을 노동자가 직접 경영진을 선출하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기본법처럼 기존 자본주의 안에서 연방 정부 힘으로 협동조합을 더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DSA 전국위원회는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주요 대기업과 필수 산업을 공공 소유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그런데 공공 소유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우선 전문성 있는 경영자들이 선출 정치인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민간 기업과 경쟁하게 할 수 있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공공 소유다. 아니면 선출된 정부나 시민 대표가 직접 경영에 개입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이외에도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DSA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DSA 회원인 조란 맘다니는 시립 식료품점이나 임대료 상한제 같은 구체적 공약을 내세우며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조란 맘다니는 DSA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DSA 속 여러 분파는 미국 민주당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정확히 무엇인가, 선거를 통해 집권할 것인가 등등 여러 이슈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셰리 버먼 등 여러 학자도 DSA가 구체적 대안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사회주의 약점은 100년도 더 전에 베른슈타인이 비판했듯 그 구상의 추상성과 실용주의 결여에 있다. 이 운동은 사회주의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또는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한 번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이상주의는 엄격한 순수주의와, 좌파 안에서조차 견해가 다른 이들을 폄하하는 경향으로 자주 이어졌다. 또한 자본주의를 개선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탓에 민주사회주의자들은 개혁을 깎아내려 왔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저자
“DSA 약점? 추상성과 실용주의 결여.”
관련 사건도 있었다. 2024년 7월, DSA 전국위원회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하원의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조란 맘다니와 함께 AOC도 대표적 미국 민주사회주의 정치인이지만, DSA 전국위원회는 AOC가 “심각한 배반(deep betrayal)”을 저질렀다며 비난했다. 그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AOC는 이스라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를 반유대주의로 규정한 미국 하원 결의안에 찬성하고 유대인 협회 지도자들과 토론회를 여는 등 이스라엘에 우호적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DSA 전국위원회가 AOC 지지를 철회할 때, DSA 뉴욕 지부는 AOC를 계속 지지했다. 그리고 2026년 AOC는 전국 DSA 회원 자격을 갱신한 것으로 알려졌다.친이스라엘 행보를 계기로 DSA가 AOC를 완전히 내치지는 않은 셈이다.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AOC는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고, DSA에는 민주당과 협력하기를 바라는 분파도 있기 때문이다. AOC 지지 철회 사건은 DSA의 친팔레스타인 성향과 느슨한 결속을 동시에 보여준다.
애초에 구체적 방안을 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DSA는 다음과 같이 홈페이지에 숨기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주의 경제의 운영 방식은 DSA 안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는 주제다. 우선 그것은 민주사회주의가 제도적·사회적 다원주의에 바치는 헌신을 반영해야 한다. 재정·통화·무역 정책에 대한 민주적이고 대표성을 갖춘 통제는 어떤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지, 누가 기초 산업을 소유하거나 통제해야 하는지, 그 산업을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지 등 경제 정책의 기본 틀을 정하는 데 시민이 발언권을 갖게 할 것이다.”
‘생산’ 빠진 분배와 통제.
DSA이 약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의료서비스 무상화
- 공립교육 무상화
- 생활임금 수준의 높은 최저임금
- 임금 삭감 없는 주 32시간 근무제
- 보편적 임대료 규제 등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과 부유층에 증세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DSA의 부자 증세가 가장 주목받는 정책이다. 그런데 이는 모두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정작 ‘어떻게 더 많이 생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뚜렷한 대안이 없다. 그저 ‘민주적 통제’만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과 필수 산업을 공공 소유로 전환하고, 시민이 민주적으로 통제하게 하면 자동으로 충분한 부가 생산될까. 노동자가 더 많은 기업을 소유하게 되면, 생산성이 자연히 개선될까.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다른, ‘민주사회주의 미국’이란 어떤 모습인가.
이 문제에 대해 증명해야 하는 것은 주장하는 쪽이지만, 정작 주장하는 쪽은 ‘아직 논의 중’이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수십년 째 반복하고 있다. 뚜렷한 대책 없이 인기 있는 공약을 늘어놓고, 기성 경제 엘리트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흔한 포퓰리즘과 유사하다.

모든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는 아니다.
다른 사회주의 전통, 특히 더 많은 생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을 따르는 입장에서, DSA는 좌파 포퓰리즘의 새로운 이름으로 보일 뿐이다. 공공 소유를 확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마 DSA는 내가 따르는 전통의 공공 소유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따르는 전통은 중앙정부의 일방 통제도 일반 시민의 통제도 가리키지 않는다. 또한 나는 노동자 소유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특히 협동조합은 20세기부터 여러 사회주의자가 그리 성공적인 경제 조직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애초에, 사회주의가 반드시 자본과 노동의 대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는 그럴지 모르지만, 모든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는 아니다. DSA는 구체적 방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시민과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를 여러 번 강조했다.
다음 글에서는 시민과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로 알려진 사례들을 살펴보고, 왜 실패했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다루면서 DSA가 꿈꾸는 사회주의 미국이 왜 기대할 만하지 않은지 보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