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기업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에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태어난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40대까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한 사람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뒤 재계에서 일했고, 다른 한 사람은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인 1974년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오랫동안 내무부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50대 초반부터 두 사람은 비슷한 인생 궤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안상수와 김진선
재계에 있던 안상수는 1999년 재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된 뒤 2002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시장으로 당선됐다. 8년간 시장으로 일했고 대선후보 경선에도 참여했다. 2015년 4월엔 재보궐선거에 당선됐다. 내무부 고위공직자였던 김진선은 3년간 행정부지사로 일하다가 1998년 7월 지방선거에 출마해 도지사에 당선됐다. 민선 2기부터 4기까지 무려 12년이나 도지사로 일했다. 71%라는 득표율과 재선과 3선에 성공한 것도 인상적인 기록이다.
개인적으로 안상수와 김진선에 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전 인천시장이자 현 여당 국회의원인 안상수가 취임할 당시 인천시 본청 부채는 6,462억 원이었지만, 2010년에는 2조 7,526억 원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까지 더하면 전체 부채는 9조 3,950억 원이나 됐다. 재임 8년 동안 빚이 14.5배 늘었다. 행자부가 6월에 발표한 2014년도 결산 결과를 보면 인천도시공사는 부채규모가 8조 981억 원이고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281%이다.
김진선이 강원도지사 시절 평창동계올림픽 준비 차원이라며 건설했던 알펜시아 리조트를 운영하는 강원도개발공사의 부채 규모는 1조 2,312억 원이지만, 부채비율은 316%로 광역 도시개발공사[footnote]
[/footnote] 중 가장 높다. 인천도시개발공사와 강원도개발공사는 각각 3년과 5년 연속으로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것도 닮은꼴이다.
‘지자체 = 세금 먹는 하마’라는 인식틀
행자부가 발표한 2014년도 지방공기업 결산 결과를 보면 지방공기업 398곳은 경영손실(적자)이 8,965억 원이었다. 2013년과 비교해 24%(2,861억 원) 줄었다. 전체 지방공기업 부채 가운데 57%를 차지하는 16개 시도 도시개발공사 부채가 1조 3,703억 원 감소한 게 주효했다. 부채 총액이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부채규모는 전년 대비 3,188억 줄어든 73조 6,478억 원으로 나타났다. 부채 비율도 73.8%에서 70.7%로 3.1%포인트 낮아졌다.
지표만 놓고 보면 지방공기업 경영실적은 분명히 개선되고 있다. 중앙정부가 지방공기업 부실 문제에 대해 강력히 제재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고, 지방자치단체 재정운용이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진 2010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개선된 것도 원인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원인은 낭비하고 싶어도 낭비할 돈 자체가 줄어든 것이 아닐까 싶다. 2009년 지방교부세가 2조 원가량 감소한 것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럼에도 정부 발표에서 강조점은 언제나 지방재정이고, 지방공기업이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재정 낭비의 표본이자 방만 경영의 낙인은 언제나 지방자치단체 몫이다. 행정자치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재정 문제를 고민하는 연구자로서 항상 그 대목이 궁금했다. 실마리를 찾자면 아마 2010년 7월 조선일보가 6회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한 ‘지방정부가 국가재정 거덜 낸다’는 기획기사가 담론지형에서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2010 지방선거 이후, ‘지자체 예산 낭비’ 보는 시선
2010년 지방선거 전까지 대체로 지방재정 악화 혹은 지방 예산 낭비를 지역 권력지형과 연결하는 기사는 주로 비판적 언론의 몫이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방만한 지방재정’ 문제는 모든 지방자치단체 공통의 문제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참패하고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지방권력이 대거 교체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의구심이 있다.
2010년 6월 2일 제5회 지방선거 결과 광역자치단체에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6곳에서 승리하고 민주당과 무소속이 9곳에서 승리했다. 기초자치단체에선 한나라당이 82곳, 민주당이 92곳, 자유선진당이 13곳, 민노당이 3곳에서 승리했다. 2014년 6월 4일 제6회 지방선거에서도 이런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광역에서는 새누리당이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 9곳에서 승리했으며, 기초자치단체에선 새누리당 117곳, 새정치연합 80곳, 무소속 29곳에서 승리했다.
이런 의구심은 아직 연구와 분석을 거치지 않은 심증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패배한 뒤 정부가 12월 30일 갑작스럽게 계획에도 없던 0~2세 무상보육 전격 실행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나, 교육감 선거 결과 이른바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 뒤 위법 논란도 무시한 채 ‘누리과정’을 강행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가 지방공기업 문제 강조하는 까닭은?
정부가 유독 지방공기업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은 아닌지 의문이다. 현재 316개 국가공기업 부채는 521조 원(부채비율은 201.6%)이며 그 중 LH공사 부채가 138조 원을 차지한다. 18개 부채 중점관리기관의 부채는 2013년 435.7조 원에서 2014년 437.1조 원으로 1.4조 원 증가했다. 지방공기업과 비교하면 ‘국가재정 거덜 낸다’는 비방이 누구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다.
결산 결과를 보면 지방공기업 적자는 요금 현실화율이 낮은 상·하수도와 도시철도에서 주로 발생했다. 지자체 직영 지방기업인 지방하수도(87개)는 398개 지방공기업 적자를 더한 것보다도 많은 1조 3,362억 원이나 손실을 냈다. 도시철도 역시 지난해 적자가 9,018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요금 현실화율은 상수도 80.6%, 하수도 35.2%, 도시철도 58.4%였다. 생산원에 훨씬 못 미쳐 어느 정도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지방공기업의 존재 이유
지방공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지방공기업은 적자를 내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지방공기업 부채 감축이 최우선 목표가 된다면 상하수도 요금이나 대중교통 요금을 가장 잘 올리는 인물이 가장 훌륭한 지방공기업 경영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 경제 문제에서도 드러나듯이 공공부문 부채를 줄이는 것은 가계부채 증가로 귀결될 수 있다.
지방공기업을 포함해 공공부문에 대한 정책에서 우선순위는 공공성 확대가 아닐까 싶다. 지방공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개방형 이사를 늘리고 시민들이 경영과 경영평가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은 정부 발표에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발표자가 지방공기업 정보공개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보공개 강화를 강조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box type=”note”]이 글은 필자가 2015년 8월 27일 경기도 이천시청에서 열린 한국지방재정학회, 한국지방재정공제회, 행정자치부 공동 세미나 토론문을 정리한 글로 필자의 블로그(‘자작나무통신’)에서도 발행했습니다. 슬로우뉴스 원칙에 따라 편집했습니다. (편집자) [/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