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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위터 정치의 패배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이 끝났다. 근혜 언니는 웃음꽃이 피었고, 명숙 아지매는 담배를 배울지도 모른다. 경기동부는 생존왕임을 증명했고, 유시민은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심상정은 타들어가던 똥줄이 괄약근 바로 아래서 점화됐고, 홍세화는 만성 소화불량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선거의 아픔을 핑계로 소주를 들이켜며 대한민국 GDP를 높였다.

이번 선거는 이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과가 이변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 원인 중 하나가 ‘트위터 여론’이다. 트위터에서 야권연대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또 정치인이 진보적일수록, 그들의 트윗 하나하나는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야권연대는 더욱 고무적으로 트위터를 활용했다. 그리고 패배했다…

이날 총선의 결과에 분노한 청담동 개 A씨(3세) (사진: 리승환)


2. 트위터 정치는 소통에 성공했는가?

트위터는 선거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알 수 없다. 다만 정치인의 트위터 활용이 매우 낡은 ‘악수정치’를 벗어나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나는 선거 결과를 떠나 야권연대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굉장히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트위터를 통해 ‘소통’의 정치를 외친다. 그런데 정치인은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소통하고 있었다. 국민들이 배고프면 쌀을 털어줘야 했고, 약탈이 늘어나면 치안을 강화해야 했다. 이처럼 소셜미디어가 들어서기 전에도 정치인들은 항상 여론을 주시했다. 그래서 구한나라당 계열은 지지율이 떨어지면 북풍을 일으킨다거나, 북풍을 일으킨다거나, 북풍을 일으킨다거나…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정치인이 트위터를 사용하며 정말 소통의 정치를 실현했을까? 유명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보자. Utweet 기준으로 최근 1개월간 많이 리트윗 된 4명의 정치인을 살펴봤다. 트윗 중 16가지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 트윗은 제외했다.

이정희는 후보를 사퇴해서, 전여옥은 멘붕해서 제외했다.

물론 이 분석은 그다지 정밀하지 않다. 특정 트윗이 16가지 분류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애매한 게 많기 때문에 주관성이 많이 개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거친 분석을 통해서도 세 가지 함의를 추측할 수 있다.

  1. 정치인은 트위터를 자신의 정책을 알리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2. 대부분의 트윗이 대의를 외치는 데 쓰이며, 그중에서도 심판적 대의(MB 심판)가 다수다.
  3. 구 RT의 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리트윗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트위터에서 정책을 내세우지 않고 MB심판이라는 네거티브 행보를 유지함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들의 트위터 사용이 ‘소통’이라기보다 자신에게 좋은 이야기를 구RT 하며 지지자들의 반응을 이끄는 ‘팬클럽 정치’라는 문제는 분명하다. 이러한 특징이 드러난 이들의 트윗들을 보자. 워낙 시답잖은 자기 홍보는 제외했다.

  • 김용민은 자기 응원글을 마구 구RT를 시전하며 팬클럽 정치를 선보인다.
  • 문성근의 긍정 비율이 높은 이유는, 노무현에 지나치게 매달리기 때문이다.
  • 문재인은 인맥 자랑하는 느낌. 정책은 그저 스캔본으로 내놓을 뿐이다 .
  • 천정배는 좀 할 말이 없다. 자기 지역 이야기가 없다시피 할 정도.

3. 소통의 트위터는 그렇지 않아!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떠나,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참 썩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트위터는 ‘팬클럽 정치’가 아닌 ‘소통의 정치’를 이룰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예로 근혜 언니라면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의 정치일 테고, 명박 오빠라면 ‘내 걸음 길이 곧 삽의 길’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 의미에서 좋은 정치라면 ‘국민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의 수행’이다.

‘좋은 소통의 정치’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정의할 수 있다. 1) 국민으로부터의 정책 제안을 받아 정책에 반영하는 것과 2) 적절한 피드백으로 오해가 없도록 국민에게 잘 알리는 것이다.

막상 트위터로 어떻게 이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하지만 이는 트위터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좋은 소통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 부족에 가깝다. 트위터는 좋은 원석이다. 우리 조상들은 구석기 시대 짱돌을 동물 잡는 데 쓰다가, 신석기시대 짱돌을 돌칼로 진화시키며 막대한 공격력 업그레이드로 문명 창출에 기여했다. 이처럼 트위터도 원석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고, 소통이 가능하도록 잘 엮어낼 수 있다. 아래에서는  소통에 성공한 몇몇 예시와 그 기반이 된 철학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4. 국민에게서 정책을 이끌어내는 ‘열린 정책의 창구’로 활용

정치인은 아니지만, 손정의를 예로 들어보자. 손정의는 소프트뱅크 홈페이지에 ‘해 봅시다’ 진척상황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페이지는 트위터 사용자들이 트위터로 직접 소프트뱅크에 건의하는 게시판이다. 그리고 이들 의견을 검토해서 실행에 옮긴다.

상단 탭은 각각 ‘전체 건의 / 해 보자 / 검토 중 / 처리 완료’를 의미

물론 홈페이지 시절은 물론, 인터넷이 없을 때도 각 정당과 의원들은 각종 정책을 접수했고 검토했다. 하지만 트위터를 통해 사용자들이 좀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일반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 정책을 제안하고, 정치인의 정책을 검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나갈 기반이 만들어졌다.

이미지 출처: gov20.govfresh, http://bit.ly/JkaH8L

하지만 정치인들은 ‘트위터’라는 좋은 정책의 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열린 정책’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국민은 이를 ‘우리의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만들지 못했다.

국민들이 직접 정책을 만들고 검토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생활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굳이 70원 버스카드를 사용하는 귀족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바쁘다. 물론 대구의 뜨거운 밤을 즐기기 바쁜 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인들의 일과는 지역구 관리, 정책 공부 등 매우 빡빡한 일정으로 짜여 있다. 그래서 실제 생활인들이 원하는 정책은 생활인들이 직접 제시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이러한 ‘생활정치’, ‘우리의 정책’을 위해서는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다. 이 창구는 거대 이슈를 벗어 미시적, 생활적 토픽을 제기하고 해결하게 해 준다. 트위터를 인사를 나누는 ‘악수정치’로 사용하는 건 ‘짱돌’을 그대로 쓰는 구석기 시대적 발상이다. 이를 넘어 손정의처럼 국민을 신뢰하는 ‘열린 철학’으로, 국민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돌도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낱낱이 ‘공개’해서 겸허히 비판을 들으며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팬심과 엮이면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서태지 팬덤은 ‘빠순이’라는 비하에 맞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을 낳게끔 했다. 지금까지 트위터에서 일어난 팬클럽 정치는 그들의 힘을 단순히 ‘빠순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책 제안의 창구가 열린다면, 그중에서 자신의 팬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와 정책을 공부하고 제안하는 이들이 등장할 것이다. 아래 토루 사이토의 구분에 따르면 이들은 정책적으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정치인과 정당의 이름을 드높이는 ‘전도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출처: 실천 소셜미디어 활용 힌트와 사례집, http://slidesha.re/tHuEcb

5. 트위터로 여론을 읽으려 하지 말고 생활정치에 귀 기울이자

언젠가부터 트위터는 여론을 읽는 채널로 여겨진다. 하지만 트윗믹스 대표가 말하는 트위터와 여론조사에서 알 수 있듯, 트위터는 여론을 읽기에는 그리 좋은 창구가 아니다. 윗글에서 정윤호 대표가 이야기하듯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효율적으로 듣고 대처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많은 정치인들이 귀 기울이기는 커녕, 정책적 질문에 대해서도 대충 답변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

이해는 간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바쁜 선거 기간에 정책에 대해 꼼꼼하게 답하는 건, 뭔가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웬만해서는 이슈화되지 않아, 강용석처럼 줄고소를 하고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하며 예능 늦둥이가 되어야 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좀 뒷북 같지만 수민이의 한 걸음을 위하여 : 트위터로 생활정치 실험한 홍윤희 씨를 보자. 아래에는 앞의 글에서 분량상 다루지 못한 내용까지 첨부했다.

신동우 후보에게 다시 트윗을 하니 이번에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상일동역은 하루 이용 인구만해도 2만 명에 이르고 강일지구 개발로 이용주민이 날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대부분의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만큼 상일동에도 설치가 시급한 상황이긴 하나 제가 직접 도시철도 공사와 구청에 알아본 결과 한정된 예산과 공사시 발생되는 교통문제로 인해 당장 착공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당장 뾰족한 수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만족스럽진 않아도 성의는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부영 후보의 추가 답변은 더욱 성의가 있었다.

“오늘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이정훈 시의원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상일역의 경우, 현재로서는 인도의 넓이 때문에 엘리베이터 건립이 힘들고, 재건축이 추진될 때 엘리베이터를 건립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전까지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해 두었습니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을 통해 강동구청에서도 대안이 있는지도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트위터 글을 읽어보니 혁신초등학교를 위해 강동으로 이사오셨다고 하셨는데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저, 이해식 강동구청장, 성임제 강동구 의장이 모두 노력하겠습니다.”

둘 다 상일역에 엘리베이터를 놓지 못한다는 답변은 같았지만, 성의가 달랐다. 이 글을 자주 가는 카페에 올렸더니, “투표 안 할까 했는데 님 글 보고 투표 꼭 하기로 했어요. 힘내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할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했다.”

여기에 이부영 후보는 “자기 캠프에 장애아들과 정상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튼튼학교를 만드는 것이 꿈인 청년이 있다. 이 청년에게 경험을 나누어주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후, 실제 그 청년과 몇 차례의 통화를 이어줬다고 한다.

굉장히 지엽적인 이슈이지만, 이 이슈는 홍윤희 씨의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퍼지다가 슬로우뉴스라는 합리적 뒷북을 지향하는 듣보잡 매체에 실렸다. 그리고 이 기사는 40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공지영의 눈에 띄어 언급됐다. 결과 이 글은 발행된 지 8시간 만에 59회의 트위터 언급과 94회의 페이스북 좋아요를 얻었다. 비록 선거기간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선거기간 중 이슈화시켰다면 이부영 후보는 충분히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공지영의 이 리트윗 한 방으로 슬로우뉴스는 한우회식이 확정됐다

트위터에서는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매스 미디어에 익숙해서 거대 이슈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위 사례처럼 ‘소수를 감동시키는 이슈’다. 사람들은 작은 친절과 노력에 감동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퍼져 나간다. 이를 가리켜 뮤즈얼라이브 강정수 이사는 ‘공명의 지점(resonance point)’이라 하며, “전체 대중을 상대로 하는 메시지보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감동시키는 스토리로, 그것을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마케팅에서는 이미 이런 예시가 충분히 많다. 예로 올드스파이스는 실연당한 여학생에게 광고모델이 동영상을 날린다. “그런 놈 말고, 나처럼 향기 좋은 남자를 만나라”고 말이다. 딱히 유명인도 아닌 여학생에게, 이런 메시지는 크게 받아들여지고 여학생의 주변에 퍼져 나간다. 또 앤 테일러는 자사의 페이스북에 올린 모델 컷에 사용자가 “예쁘고 마른 모델이 입으니 예뻐 보이지”라는 불만을 터뜨리자, 앤 테일러 직원들이 직접 그 옷을 입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작은 친절과 케어는 금세 주변에 퍼져 나갔다.

앤 테일러 모델샷과, 직원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인증샷 출처: 앤 테일러 페이스북

정치인의 트위터 활용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인사하고 맞팔해주는 방식은 한 사람의 팬과 악수하는 ‘악수정치’에 불과하다. 타인이 볼 때 내용이 전혀 없기에 주변의 공감을 살 수도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라 할지라도,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움직임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 사람들은 이에 공감하고, 정당과 정치인에게 호의를 가질 것이다.

6. 악수정치를 넘어 생활정치로

그간 트위터는 선거 철마다 영향력 여부에 시달렸다. 진보개혁 세력이 승리하면 트위터의 영향력이 찬미 됐고, 수구보수 세력이 승리하면 무시됐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억지로 구분하지 말자. 중요한 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아니라 생활정치와 악수정치다. 그간 대한민국 정치권의 온라인 활용은 여전히 시장을 돌아다니며 팬들과 악수하는 ‘악수정치’에 머물러 왔다. 악수가 맞팔과 인사로 변했을 뿐이다.

이제는 악수정치를 버리고 생활정치로 나아가야 할 때다. 그간 정당과 정치인은 생활정치를 하고 싶어도 미디어에서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거대 이슈에만 매달려야 했다. 또 국민들로부터 정책 의견을 받아들여도 그것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피드백을 통해 더 좋은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웹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할 기반을 마련해줬다. 트위터는 그 중 하나의 좋은 수단이다. 남은 것은 ‘악수정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정치인들과 정당의 노력이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열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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