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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솟 르포 ⑦] 한국 유학 중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 민족 출신 목사 S. S와의 인연으로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 난민촌 ‘매솟’에 방문한 이수연 작가의 현장 기록.(⏳6분)

일요일이다. S는 아침부터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간다고 했다. 일행은 S와 함께 갔지만, 누적된 피로 때문에 숙소에 남기로 했다. S는 한국에 있을 적 난민이기 전에 목사였고, Y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오후 일정부터 함께하기로 하고 혼자 남은 시간. 바쁜 일정 속에서도 예배를 빠지지 않는 S를 떠올리며, 종교란 무엇인지 생각에 잠겼다.

다양한 민족만큼 다양한 종교가 미얀마에 존재한다.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이슬람을 믿었다. 여성은 히잡으로 얼굴을 가렸고, 결혼을 앞둔 남녀는 서로를 볼 수 없었다. 버마족을 주축으로 미얀마 인구의 약 87~88%가 상좌부 불교를 믿는다. 카렌족은 19세기 미국 침례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19세기 미국 침례교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카렌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기독교가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선교사들은 카렌족의 토착 창조신 ‘야와(Ywa)’ 개념을 기독교의 하나님과 연결 지어 포교했으며, 이것이 카렌족의 기독교 수용을 앞당겼다는 분석이 있다(참고 1, 참고 2). 카렌족 기독교는 주로 침례교이며, 일부 가톨릭 신자도 있다.

S가 속한 ‘아쇼 친’은 불교가 다수이지만, S처럼 기독교를 믿는 이들도 있다. 친족은 미얀마 서부 친주(Chin State)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2014년 미얀마 인구조사 기준 친주 인구의 약 90%가 기독교 신자로 집계됐다. 그러나 아쇼 친은 친족의 하위 집단으로 저지대에 거주하며, 버마족 문화권과의 접촉이 많아 불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참고 1, 참고 2).

일요일 예배에 쉽사리 빠질 수 있는 건, 내게 특정 종교가 없기 때문일 터였다. S와 식사할 때면 식전 기도를 함께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가졌다 말할 수는 없다. 세례도, 법명도 없다. 그러나 먼 타지에서 종교의 힘이 무엇인지, 조용한 고민에 빠진다.

조단의 집

오후에 만난 S는 매일 봐도 늘 반가운 기색이었다. 일행은 교회에 모인 사람이 스무 명 남짓이었다고 했다. S는 성경 교육이나 강의, 설교를 하며 수익을 얻는다고 했다. S가 찬송가를 부를 때 사뭇 진지하고 구슬픈 목소리였다는 얘기를 듣자, 그 마음이 내심 궁금해졌다.

오후에 방문한 곳은 Jodan’s Home. 나무로 지어진 이 건물은 교회였다. 네온사인처럼 빛나는 한국의 십자가와 달리, 어떠한 조명도 없이 색이 바랜 십자가가 조용히 건물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앞마당이라 할 곳도, 문이라 할 곳도 마땅치 않은 공간. 다나카를 바른 사람들이 바닥에 촘촘히 앉아 있고, 안쪽 테이블과 의자에도 사람이 빼곡했다. 손에는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국수를 먹고 있었다. 미얀마의 소울푸드, 모힝야였다.

조단의 집. 2026.6.28. 매솟.
조단의 집 2층에 걸린 슬로건. 사람이 무척 많았지만 얼굴을 찍지 않기 위해 일부러 슬로건을 찍었다. 2026.6.28. 매솟.

S를 따라 건물 위층에 올라가니 발 디딜 곳 없이 사람이 북적였다. 테이블 세 개가 각 귀퉁이마다 놓여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접수를, 한쪽에서는 진료를, 또 다른 곳에서는 약을 처방하고 있었다. 운영자이자 의사인 오스틴은 호주인 아내와 함께 의료 봉사와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존에 교회이던 곳에 2년 전부터 함께하게 됐어요. 태국 국적의 목사님이 운영하던 교회였죠. 지금은 매주 일요일과 수요일에 이곳에서 의료 봉사를 해요. 다른 날은 난민촌에 직접 들어가서 진료를 하고요. 이동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차로 픽업도 하고 있어요. 의료 시스템이 부족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모이게 됐죠.”

18번 : 조단의 집 2층, 진료를 본 뒤 약품을 나눠주는 곳. 수많은 약품이 있고 호주에 지원을 받는다. 2026.6.28. 매솟.

유창한 영어와 차분한 어투. 오스틴이 이제 이십대 중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많은 난민이 그의 진료에 기대어 찾아오고, 또한 의지하는 듯했다. 바쁜 진료 시간에도 시간을 내어 준 오스틴은 말을 이었다.

“난민이 많이 모이다 보니, 가끔 경찰이 찾아와 그들을 잡아가거나 돈을 요구하기도 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그게 하나님이 주신 일이니까요. 이 일은 제 소명이자 신앙이에요. 조단은 성경에서 따온 이름이죠.” (참고.)

그를 기다리는 시선이 점점 많아지자, 우리는 그에게 자리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했다. 낯선 외국인 때문에 많은 이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까. 일부러 그가 신경 쓰지 않도록 1층으로 내려오자, 그의 아내가 우리에게도 모힝야를 내주었다. 점심을 먹어 괜찮다고 했지만, 오늘이 오스틴의 생일이라며 조금씩 나눠줬다. S가 쌀국수에 생선 육수·레몬그라스·생강·바나나 줄기 등을 넣어 끓인 걸쭉한 국물을 부어 먹는 음식으로 아침에 특히 즐겨 먹는다고 했다. 담백하고 낯설지만 묘하게 익숙한 맛이었다.

교회에서 나눠준 모힝야. 면을 죽처럼 퍼서 먹고 고수와 향신료를 원하는 만큼 추가해 먹는다. 2026.6.28. 매솟.

식사를 하는 우리에게 관계자가 다가와 말을 이었다.

“오스틴은 미얀마에 있을 때 감옥에 갔어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거든요. 감옥에서 나온 뒤 징집을 피하기 위해 매솟에 와서 여기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내가 그를 도와주고 있고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교회에 등록해요. 오스틴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는 거죠.”

2021년 쿠데타 이후 군부는 언론인·의료인·활동가·지식인 등을 대상으로 체포영장 및 블랙리스트를 발부하고 있다. 2021년 쿠데타 이후 의료인 중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탄압받은 사례와 의료인이 치료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된 사례도 있다. 오스틴 역시 그 운동에 참여했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로 환자를 진료했다. 해야 하는 일을 했고,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의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성, 텔레비전에 시선을 빼앗긴 아이들, 한쪽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인사하고 그들을 부축하는 오스틴의 아내. 종교란 무엇인가. 감옥에 가고, 모국에서 살 수 없게 되고, 생의 시간을 타인을 위해 쓰는 이들. 그리고 그것이 기쁨이라는 이들. 다른 한편, 종교라는 이름으로 욕심과 이기심을 부풀리는 이들도 있다. 진짜 종교란 무엇일까. 어떻게 오스틴은 자신의 삶이 행복한 듯 풍성하게 웃을 수 있을까.

그들은 이어져 있다

일정 중 가톨릭 신부님을 만난 적 있다. 프랑스 국적의 신부님은 매일 차를 타고 정글로 들어가 교육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어쩌다 얻어 탄 그의 차는 진흙투성이였고, 차 안에는 먼지가 잔뜩 쌓인 낡은 음향 기기가 있었다. 신부님의 소개로 방문한 초등학교를 운영하는 건 살레시오 수녀회였다. 태국에서 태어난 미얀마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지원한다고 했다. 그 초등학교에는 S의 막내딸도 다니고 있었는데, S는 딸이 있는 반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환하게 웃었다. 수업 중인 딸을 발견한 것이다.

차를 끌고 정글에 들어가 교육과 의료를 제공하는 신부님. 지도 속 포인트는 정글에 있는 성당이다. 2026.6.29. 매라프 근처.
S의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살레시오 수녀원에서 운영중이다. 2026.6..29. 매솟.

오스틴은 미얀마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투옥 이후 매솟으로 이주해 미국과 호주에서 지원을 받으며 무료로 의료를 제공한다. 그 역시 차를 타고 지도에 나오지 않는 난민촌을 찾아가 진료를 본다. 단 한 번이 아닌, 꾸준히 그 일을 이어가고 있다.

S 역시 매주 금요일 B빌리지를 찾아가 어르신을 만나고 안부를 묻는다. 그들을 위해 작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외롭지 않도록 집을 방문하며 어려운 것은 없는지 귀를 기울인다. 이 모든 행동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가치 없는’ 일에 가깝다. 시간을 쓰지만 돈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나서서 ‘가치 없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를 보는 누구도 그 일이 ‘가치 없다’고 차마 말할 수 없다. 이해될 수 없는 가치. 종교란, 이해될 수 없는 가치를 찾아나서는 일인 걸까.

이들이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불교 신자다. 미얀마의 다수가 불교를 믿기에, 가톨릭·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불교도도 많다. 의료 봉사를 받는 이들도, B빌리지에 사는 분들도 불교가 다수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의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래, 이 일은 역시 ‘이해될 수 없는 가치’다.

일요일 늦은 저녁, 종교에 대한 조용한 생각을 마쳤다. 종교란 문화와 신념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본 모습 속에서 종교를 가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종교를 가지고 돕고 나누며 살아간다. 종교로 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민족과 국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편 가르기와 혐오는 그들의 본질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이어져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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