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덕 칼럼]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우리는 질문했다. ‘왜 아무도 구하지 않았냐.‘ 나는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수백 명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해경과 소방대원 한두 명 정도는 희생시켜도 괜찮은가. (⏳3분)
1985년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1985년 8월 12일 저녁 7시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을 출발해 오사카 공항으로 가던 일본항공(JAL) 123편이 군마현 다카마가하라산에 추락했다. 사고 1시간 만에 항공자위대의 구조 헬리콥터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구조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해발 1500미터 산속에 갇힌 승객들은 밤새 내린 빗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죽어갔다. 결국 구조대가 도착한 것은 사고 14시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 9시였다. 생존자는 단 4명이었고 520명이 사망했다.
이 참사를 두고 일본에서는 온갖 음모론이 나돌았다.
왜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는가.
구조하러 온 자위대의 헬기는 왜 방관만 하고 떠났는가.
당시 항공자위대는 추락 전부터 일본항공 123편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네다 국제공항은 추락 지점을 파악한 밤 9시가 되어서야 공식구조 요청을 보낸 것과 달리, 자위대는 이미 한 시간 전에 헬기를 출동시켰다. 그럼에도 구조는 불가능했다.
항공자위대 헬기는 해상 구조 장비였고 적외선 투시경 등 야간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는 전문 장비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일부 부대원들이 야간 강하를 제안하고 이에 대해 격론이 오갔으나 끝내 구조 작업은 승인되지 않았다. ‘구조대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구조 작업을 강행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항공자위대는 추락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육상자위대에 공유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2001년 9.11 테러
2001년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가 먼저 무너져 내리자 뉴욕 소방청 현장 지휘부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북쪽 타워 내부에 있던 대원들에게 즉시 철수 명령을 내렸다. 건물 안에는 여전히 구출을 기다리는 수많은 시민이 갇혀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통신 문제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희생자 2,977명 중 412명이 경찰 및 소방관 등의 구조 인력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우리는 질문했다. ‘왜 아무도 구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구조대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백 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해경과 소방대원 한두 명 정도는 희생시켜도 괜찮을까.
잘못된 질문을 던졌기에 당연히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승객들이 안전하게 구조되려면 어떤 제도와 장비가 필요했는가’ ‘당시에는 왜 그런 제도와 장비를 갖추지 못했는가’라는 다소 재미없더라도 냉정한 질문으로 대체돼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틀린 질문의 답을 찾느라 막대한 사회적 자원을 낭비했다.

2026년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고
지난 10월 16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도장공장에서 불이 났다. 불을 끄러 현장에 진입한 소방관 5명이 다쳤고 한 명이 죽었다. 비로소 우리는 구조대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을 때 이루어지는 구조 작업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잔인한 진실을 알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