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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지방은 생산 공장일 뿐인가? 3대 메가프로젝트가 숨기는 ‘경제적 타율성’의 함정. (양준호 /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 회장) (⏳4분)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가 산업정책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국가 성장의 축으로 삼아 비수도권에 대규모 산업거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메가특구특별법을 둘러싼 논란과 현장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기업의 입지 선택과 투자 자유를 최대한 넓혀야 한다는 주장과, 노동권·환경·민주적 통제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선다.

양측의 대립 속에서 놓쳐서는 안 될 질문이 있다. ‘국가 산업정책을 어떻게 설계해야 이 거대한 투자가 지역 균형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이다.

공장은 옮겨도 결정권은 그대로

한국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은 단지 공장이 수도권에 쏠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산시설이 비수도권에 있더라도 연구개발(R&D)·금융·조달, 투자와 이윤 처분의 최종 결정권이 수도권 본사에 집중되어 있다면, 지역은 생산 부담만 떠안은 채 자기 경제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비판적 경제지리학자 도린 매시는 이를 ‘권력 기하학(power-geometry)’이라 설명한다. 공간적으로 연결된 관계 안에서도 그 관계를 통제하는 힘은 불균등하게 배분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공간적 타율성(spatial heteronomy)’이라 부른다. 지역이 경제활동의 직접적인 현장이면서도, 그 활동의 향방을 규율하는 핵심 권력에서는 배제되는 구조다. 공장의 지리적 이전만으로 균형발전이 완성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산업거점과 정주기반을 마련하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정책의 무게중심이다. 현재의 구상은 기업이 원하는 입지·인허가·인프라를 신속하게 지원하는 데 치우쳐 있다.

공공이 전력·용수·도로망 확충 비용을 떠안는 동안, 생산과 잉여가치를 통제할 전권은 기업에 귀속되는 구조다. 균형발전을 단순한 정책적 구호가 아니라 ’공적 투자의 엄격한 실행 조건‘으로 못 박아야 하는 이유다.

산업통상부.

공적 지원의 전제: ‘지역 산업전환 협약’과 통합 행정

첫 단추는 공적 지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대규모 산업용지와 전력망,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대가로 국가·기업·지방정부 간 ‘지역 산업전환 협약’ 체결을 의무화해야 한다.

기업은 지역 중소기업과의 기술·조달 연계,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직업훈련, 지역 내 연구개발(R&D) 비중, 온실가스 배출과 물 사용 저감에 관한 계획을 공개하고 구체적인 이행을 약속해야 한다. 지원은 단계별 성과와 연동하고, 중대한 약속 위반 시 지원금 환수나 재협상이 가능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공지원의 규모에 비례해 공공의 결정권과 기업의 사회적 책무도 커져야 한다.

협약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중앙정부의 사업관리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산업부는 투자 유치, 국토부는 부지 조성, 다른 부처는 정주 여건을 각각 맡는 분절적 집행으로는 지역에 남는 성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산업·교육·노동·환경·재정을 포괄하는 통합계획을 세우고, 공공지출의 전 과정을 관리해야 한다. 공적 재원의 일부는 지역 중소기업의 기술학습과 공동연구를 위한 기금으로 배정해야 한다. 후속 지원의 핵심 기준은 공정률 을 넘어 ‘지역 전체의 생산역량이 얼마나 커졌는가’로 삼아야 한다. 

공장 부지를 넘어 ‘생산역량 형성의 주체’로

지역은 첨단산업이 들어서는 부지를 제공하는 데서 나아가 독자적인 생산역량을 키우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각 산업의 특성에 맞게 투자 성과가 지역으로 돌아오는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반도체 거점에는 지역대학·연구기관·중소 협력기업을 잇는 공동 연구개발(R&D)과 시험·검증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설계·소재·부품·장비와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기술과 경험이 지역 안에 축적되도록 하는 ‘산업적 학습 회로’를 지역 안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피지컬 AI는 공공조달과 실증사업을 지역 제조업의 공정 혁신 및 기술 전환에 연결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과 지역의 기존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 간 연계를 만들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부지를 사용하는 시설인 만큼 직접 고용 규모만으로 지역 기여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역 대학·벤처기업·공공기관이 초고성능 연산자원과 기술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및 컴퓨팅 접근권’도 공공지원의 핵심 조건에 포함해야 한다.

청와대.

누가 결정하는가: 경제적 자기결정권의 제도화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 결정의 주도권이다. 대통령실·중앙부처·대기업의 밀실 협의만으로 지역산업의 백년대계를 정할 수는 없다. 지방정부·노동조합·지역 기업·대학·주민대표가 실질적인 의결권을 갖는 ‘지역 산업전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형식적인 자문위원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 사업계획에 대한 수정 및 거부권, 지역사회에 대한 설명 책임을 갖춘 기구여야 한다. 위원회가 실효성을 가질 때 비로소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은 조달·금융·투자·노동에 관한 결정을 함께 내리는 실제적 권한으로 작동할 수 있다.

나아가 산업단지 울타리 바깥의 삶도 산업정책의 핵심에 놓아야 한다. 정주 여건을 대기업 핵심 인력의 숙소나 편의시설 확충 수준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의료·돌봄·공공주거·대중교통 등 지역 공공 인프라를 주민 전체가 누릴 수 있도록 사업계획과 재원을 연계해야 한다.

전력망과 용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농민과 기존 주민의 권리가 침해되는지도 검증 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와 노동기본권을 규제 완화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투자 금액보다 지역에 남는 변화를 보자

마지막으로, 지역 안에 또 다른 ’중심과 주변‘을 만드는 내부 양극화도 경계해야 한다. 첨단산업의 거점은 인근 중소도시·농촌, 산업 기반이 약한 지역과 공동의 훈련·조달·재투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평가 기준 역시 투자 금액이나 공장 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에 남는 부가가치, 고용의 질, 주민 생활의 개선, 생태적 부담, 주민의 의사결정 참여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러한 평가가 예산 배분과 사업에 반영되어야 균형발전이 실질적인 정책으로 작동할 수 있다.

3대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찬반의 이분법만으로는 한국 자본주의의 고착된 공간적 위계를 바꾸기 어렵다. 지방에 첨단공장을 유치하는 것만으로 지역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산업정책의 책무는 자본 유치를 성사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투자를 통해 지역의 역량을 축적하고, 주민들에게 경제적 결정권을 돌려주는 제도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산업의 공간적 분산을 경제적 권력의 민주적 재편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3대 메가프로젝트를 지역 균형 발전의 계기로 만드는 길이다.

김정관(산업통상부 장관). 서남권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현장 점검. 2026.10.12. 산업통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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