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 세수, 어떻게 쓸 것인가? 미래 투자와 재분배 위한 네 가지 재정 원칙을 제안한다. (우석진 /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4분)
역대급 초과 세수가 온다
한국 경제는 지금 반도체 사이클의 한복판에 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 D램, 낸드 수요가 동시에 살아나고 있다. 그 결과 SK하이닉스는 2025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47조 2,063억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삼성전자의 2025년 영업이익도 43조 5,300억원 수준이었다.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만 약 90조 7,000억 원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향후 전망이다. 노무라증권 전망을 인용한 일부 보도에서는 양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2026년 432조 원, 2027년 589조 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확정치는 아니다. 실제 세수는 세액공제, 이월결손금, 연결납세, 과세표준 조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조치로 법인세 부담이 줄어든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시나리오별로 보면, 2026년 합산 영업이익을 370조 원으로 가정하고 한계세율 25%를 적용하면 추가 법인세만 약 70조원이다. 500조 원 시나리오라면 추가 세수는 약 102조 원에 달한다. 성과급 증가에 따른 소득세, 소비 증가에 따른 부가가치세까지 고려하면 추가 세수는 역대급 규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초과 이윤’과 ‘초과 세수’는 다른 문제다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기업의 초과 이윤을 주주, 노동자, 협력업체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다른 하나는 그 결과 국가에 들어오는 추가 세수를 정부가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다. 두 문제는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문제는 아니다.
기업의 초과 이윤은 기업 내부와 시장질서의 문제다. 주주는 배당과 기업가치 상승을, 노동자는 임금·성과급·고용 안정을, 협력업체는 공정한 거래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소재·부품·장비·설계·물류·전력·연구인력이 결합된 생태계 산업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가 기업 이윤을 임의로 가져다 나눠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초과 이윤을 직접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질서, 하도급 거래의 투명성, 노동자의 협상력, 장기 투자 유인을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데 있다.
반면, 법에 따라 정당하게 걷힌 세금은 더 이상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 재원이다. 그때부터 질문은 달라진다. ‘기업의 돈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가 뜻밖에 확보한 재정 여력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된다.

‘결핍의 충격’ vs. ‘초과의 충격’
바로 여기에서 현행 재정제도의 한계가 드러난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세계잉여금은 교부세와 교부금 정산 후, 30% 이상을 공적자금상환기금에 출연하고, 남은 금액의 30% 이상은 채무상환에 써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사용할 수 있다. 추경 편성 요건도 전쟁·대규모 재해·경기침체 등으로 한정한다.
이 제도는 평상시에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장치이긴 하다. 고령화, 연금지출, 건강보험 비용이 빠르게 늘어날 한국에서 채무상환 원칙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반도체 슈퍼사이클처럼 막대한 초과 세수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결국 거대한 초과 세수가 생겨도 정부의 선택지는 좁다. 빚을 갚거나, 다음 해로 넘기거나, 추경을 통해 임시 사업을 편성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AI와 반도체가 만들어낸 초과 세수를 단순히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만 쓰고 끝낸다면, 한국은 역사적 기회를 회계 처리로 소진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미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했지만, 그 과실은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다. 구조조정·비정규직 확대·부동산 가격 상승은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크게 벌렸고, 우리가 직면한 불평등 문제의 상당 부분은 그때 시작됐다.
지금 우리는 그때와 정반대 방향의 국면에 서 있다. 외환위기가 ‘결핍의 충격’이었다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초과의 충격’이다. 그러나 분배의 통로가 없다는 점에서는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일부 기업·주주·고숙련 노동자에게만 집중되고, 초과 세수마저 채무상환으로만 사라진다면 10년, 20년 뒤에 우리는 ‘그때 잘했어야 했다’ 등의 말을 반복할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부채 상환이 아니라 ‘미래 투자’와 ‘소득 재분배’를 위한 제도적 채널을 미리 확보하는 일이다.

네 가지 재정 원칙…미래 성장과 재분배가 핵심
초과 세수가 생길 때마다 부채를 상환할지, 추경을 편성할지, 임시로 나눠줄지를 두고 정치적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정 규모 이상의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그 일부가 자동적으로 미래세대와 취약계층, 산업 전환의 피해자, 청년과 고령층 등을 위한 계정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이제 국가재정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채무상환 원칙은 유지해야 한다. 다만 특정 산업 호황으로 대규모 초과 세수가 발생할 때 그 일부를 중장기 국가전략 투자와 소득재분배에 배분할 수 있는 법적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네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 첫째, 초과 세수의 일정 부분은 기존처럼 채무 상환에 쓴다. 재정건전성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 둘째, 일정 규모를 넘는 경기 순환적·산업 순환적 초과 세수는 별도의 중장기 기금으로 적립할 수 있어야 한다.
- 셋째, 그 재원은 잠재 성장률을 높이고 소득·자산 격차를 완화하는 분야에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 넷째, 모든 지출은 성과 평가, 일몰제, 국회 통제, 사후 공개를 전제로 한다.
‘미래성장 및 사회전환 계정’과 같은 별도 장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AI 인프라, 반도체 전력망, 연구개발 인력, 직업전환 훈련, 청년 자산형성, 고령화 대응 기술, 돌봄 생산성 향상 같은 분야가 후보다. 잘 설계하면 미래의 세입 기반을 키우고, 산업구조 전환 비용을 줄이며, 청년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는 투자가 될 수 있다.
‘초과 세수 배당’이라는 표현은 신중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최선의 재정정책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눠주느냐, 안 나눠주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으로, 어떤 제도 안에서, 어떤 성과를 목표로 사용할 것인가다.

새로운 사회계약을 설계할 기회
초과 이윤은 기업 생태계 안에서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초과 세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 사용처 안에는 분명한 재분배의 통로가 포함되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면, 성장의 과실이 제때 나눠지지 않으면 그 비용은 한 세대 뒤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만든 재정 여력은 일회성 행운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을 설계할 기회다. 초과 세수를 채무상환과 추경 재원으로만 처리하는 관성을 넘어, 미래성장과 재분배를 위한 제도적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AI와 반도체 시대의 국가재정이 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