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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 칼럼] 배재고 사과문이 말하지 않은 것, 광주일고 교장이 말한 것. 강성현(성공회대 평화월딩연구소 소장)이 지적하는 배재고와 광주일보,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숙제로 남은 미완의 화해. (⌚7분)

7월 6일, 광주제일고 강당. 배재고 야구부 감독과 선수, 교장과 학부모 80여 명이 사과하러 왔다. 선수들은 직접 쓴 사과문을 읽었고, 배재고 교장은 낭독 도중 울었다. 두 학교 선수들은 악수했고, 학생독립운동 기념탑에 헌화한 뒤 5·18 민주묘지를 함께 참배했다. 그날 뉴스의 제목은 “화해의 악수”였다.

JTBC(유튜브), 구글 검색 화면 갈무리.

다른 자필, 뒤집힌 순서: 사실 확인 전에 온 미완의 화해

열흘 뒤, 다른 자필이 공개됐다.

사건 바로 다음 날 배재고 야구부 36명이 학교에 낸 경위서다. 서울시교육청이 강경숙 의원실(조국혁신당)에 제출해 공개된 이 문서에서, 구호를 선창한 두 학생은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고 “5·18과 관련 있는지 몰랐다”고 썼다. 그런데 다른 다섯 명은 다르게 썼다. 구호는 8회가 처음이 아니라 2회, 3회부터 더그아웃을 돌았다. “스타벅스 빵야 빵야”라는 변주도 있었다. 총소리를 흉내 낸 말이다. ‘탱크’가 계엄군의 장갑차라면 ‘빵야’는 발포다. 그리고 “더 이상 쓰지 말라”고 말린 학생들이 있었다. 몰랐다면 말리지 않는다. 모르는 말은 말릴 이유가 없다.

같은 손들이 쓴 두 묶음의 자필. 광주에서 낭독된 사과문과, 학교 서랍에 있던 경위서. 하나는 눈물과 함께 전국에 보도됐고, 하나는 보도되지 않다가 열닷새 뒤에야 드러났다. 이 두 문서 사이의 거리가, 지금 이 화해가 서 있는 실제 좌표다.

출처 배재고등학교(홈페이지) .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나는 열여섯 살들의 경위서를 심문하자는 것이 아니다. 징계를 앞둔 미성년자가 방어적으로 쓰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진술이 이렇게 정면으로 충돌하는데, 그것을 확인해야 할 어른들이 확인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교육청은 사건 다음 날 배재고에 갔지만 조사는 1시간 40분이었고, 교장도 야구부 학생도 만나지 않았다.

‘8회 전에도 구호가 있었다’고 쓴 학생이 셋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글의 내용과 형식이 정확하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추가 조사를 검토 중이라고만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선창자의 “즉흥이었다”는 그대로 통용되고, 그것과 어긋나는 다섯 명의 진술은 신빙성의 문턱에 걸렸다. 같은 자필인데.

그러니까 순서가 뒤집혔다. 사실의 확인이 끝나기 전에 화해가 먼저 왔다. 6월 29일 사건, 30일 1시간 40분의 조사, 7월 6일 화해 의례, 그리고 15일에야 드러난 경위서의 충돌. 사과와 용서와 참배가, 아직 다투어지는 사실 위에서 거행된 것이다.

언론의 중개방송, 훈훈함은 남았지만 어른의 숙제는 사라졌다

언론은 이 화해를 어떻게 전했나. 낯익은 순서였다. 가해자의 눈물과 자필 사과, 피해자의 수용, 양쪽의 성찰, 악수와 참배, 그리고 끝. 화해 보도의 문법은 언제나 이 원호를 그린다. 시작에서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다.

이 문법이 지우는 것들이 있다. 진행 중이던 절차가 지워진다. 협회의 징계도, 교육청의 조사도, 한 달 전 다른 학교에서 있었던 “내란의 요람” 발언도 화면 밖으로 나간다. 비대칭이 지워진다. 그날 광주일고 학생은 “우리도 다른 팀에 상처 준 언행이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 성찰은 귀한 것이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말을 ‘양쪽 모두의 배움’의 증거로 배치하는 순간, 일방적 모욕이었던 사건은 서로 부딪친 사건으로 미끄러진다. 학생의 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대칭의 재료로 쓰는 편집이 문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실 자체가 지워진다. 경위서는 그때 이미 학교에 있었다.

화해 의례가 무엇을 봉합한 것이 아니다. 그 의례를 ‘종결’로 번역한 문법이 봉합을 수행했다.

그런데 정작 그날 강당에서 나온 말들은 종결의 언어가 아니었다.

광주제일고(홈페이지, 갈무리).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의 발언을 나는 여러 번 읽었다. 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머님들이 들어올 때부터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학생들도 울먹이고 있다고, 그래서 “원래 했던 멘트, 생각했던 멘트들이 다 순간 사라져 버렸습니다”라고. 그는 준비한 말을 삼켰다. 항의의 언어를 준비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우는 아이들 앞에서 그 말을 접고,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어요. 어깨 펴고.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부터 시작했다.

그 자리의 그를 생각한다. 모욕당한 학교의 장으로서 그는 따져야 했다. 우는 열여섯들 앞의 교육자로서 그는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 자리 전체를 파국 없이 매듭지어야 하는 주재자였고, 동시에 광주가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전국이 지켜보는 무게를 진 사람이었다. 피해자의 자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준비한 말을 삼킨 것은 물러섬이 아니라, 그 여러 무게를 한 몸으로 감당한 결과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말을 삼키면서도 핵심을 버리지 않았다. “아이들을 잘못 이끈 것은 어른의 책임입니다. 저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어른들의 몫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관용과 추궁이 한 호흡 안에 있다. 아이들은 일으켜 세우되, 계산서는 어른 앞으로 옮겨 놓는 것. 그는 항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포용의 형식 안에 접어 넣었다.

보도가 내보낸 것은 “어깨 펴”까지였다. 어른의 책임은 잘렸다. 그래서 시청자에게 남은 것은 훈훈함이지 숙제가 아니다.

배재고 이승만 동상 비문에 없는 것들

잘린 말이 하나 더 있다. 그날 교장이 마지막에 “제안합니다”라며 꺼낸 이야기다. 배재고 교정에 이승만 동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그런데 광주일고 교정의 학생독립운동 기념탑, 그 휘호를 쓴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라고.

여기서 잠시, 사건 직후에 내가 쓴 글의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다. 나는 배재고의 구호가 일탈이 아니라고 썼다. 배재고 교정 한가운데에는 1984년 전두환 정권기에 세워진, 국내에 남은 가장 오래된 이승만 동상이 서 있다. 비문에는 “한평생을 항일과 반공, 자유민주주의에 바친 겨레의 큰 스승”이라고만 적혀 있고, 사사오입 개헌도 3·15 부정선거도 민간인 학살도 없다.

기숙사 이름은 그의 호를 딴 ‘우남학사’이고, 학교 홈페이지는 그를 ‘건국대통령’이라 부른다. 도서관에는 극우 교육 논란을 빚은 리박스쿨 강사들이 교재로 쓴 이승만 미화 도서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를 지난해 8월 당시 41권, 서울 학교 가운데 가장 많이 보유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 직후 확인된 전자책 도서관에는 5·18 북한군 개입설로 실형이 확정된 지만원의 저서 두 권과 그의 주장을 엮은 편저까지 올라 있었다. 외부 서점과 계약해 운영하는 도서관이라 온전히 학교만의 선택이 아닐 수는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다음이다. 보도가 나가자 학교는 하루 만에 그 책들을 말없이 지웠고, 경위를 묻는 기자의 전화는 받지 않았다. 이 환경에서 매일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5·18 조롱은 돌출이 아니라 친화적인 귀결이며, 학생이 노래하기 전에 학교가 먼저 가르쳤다고 나는 썼다.

배재중고에 있는 이승만 동상. 위키미디어 공용.

이규연 교장의 제안은 그 동상 이야기를 정반대 방향에서 다시 연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면 이렇다. 1953년, 기념탑 건립위원회는 이승만에게 ‘광주학생운동기념탑’이라는 이름의 휘호를 청했다. 이승만은 거기에 ‘독립’ 두 글자를 제 손으로 보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으로 돌려보냈다. 그 글씨가 지금도 광주일고 교정의 탑에 새겨져 있다. 하나 더 있다. 1930년 1월 15일, 광주의 운동이 서울로 번졌을 때, 거리로 나선 서울의 14개 학교 안에 배재고보가 있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가 된다. 배재고가 ‘건국대통령’으로 새겨 둔 그 인물조차, 광주의 학생들 앞에서는 ‘독립’이라는 두 글자를 보탰다. 그리고 배재의 선배들 자신이 그 광주의 운동에 몸으로 합류했었다. 배재고의 동상 비문에는 광주만 없는 것이 아니다. 배재 자신의 역사도 없다.

아직 오지 않은 화해 앞에 먼저 와야 할 것

교장의 제안은 덕담이 아니었다. 당신들의 동상을 다시 읽으라는 과제였다. 이 과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보도되지 않았다.

이규연 교장은 그날 화해를 “발전의 첫걸음을 오늘 떼는 것”이라 불렀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도 협회의 배재고 야구부 6개월 출전정지 결정을 두고 “징계는 끝이 아니라 교육적 회복의 출발”이라고 했다. 5·18과 국가폭력을 평생 연구했고 진실화해위원장으로 피해자들 곁에 있던 사람다운 언어다. 그는 피해 학교에 직접 전화해 사과했고, 두 학교가 5·18 민주묘지를 함께 참배하고 5·18 기념재단에서 함께 공부하는 방안을 앞장서 제안했으며, 책임을 자신에게로 끌어올렸다. 이 방향을 나는 신뢰한다.

피해 학교의 교장도, 관할 교육감도, 이 화해를 ‘시작’이라 불렀다. 그것을 ‘끝’으로 바꿔 단 것은 화해 보도의 문법이었고, 1시간 40분으로 접힌 실무였다.

광주제일고 100회 졸업식 기념 다큐멘터리 영상. 2025.07.11. 중에서.

그래서 남은 일의 주소를 적는다. 서울시교육청은 경위서의 충돌을 규명해야 한다. 그것은 학생 보호와 부딪치지 않는다. 오히려 ‘즉흥적 실수’라는 미확정 서사를 아이들 위에 얹어 둔 채 떠나는 것이야말로 보호가 아니다. 사실이 확정되어야 교육도 회복도 그 위에 설 수 있다. 언론은 화해를 ‘끝’으로 내보냈다면, 잘라낸 절반을 마저 보도해야 한다. 어른의 책임과, 동상을 다시 읽으라는 과제를. 그리고 배재학당 법인은 이제 알 것이다. 사과의 다음 문장은 자필 사과문이 아니라 동상의 비문이라는 것을.

광주의 교장은 준비한 말을 삼키고도 어른의 책임을 말했고, 교육감은 징계를 회복의 출발이라 불렀다. 두 사람의 언어는 이미 길을 가리키고 있다. 그 언어를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들어야 할 곳도 분명하다. 화해를 ‘완결된 미담’으로 내보낸 언론이고, 조사를 1시간 40분으로 접은 서울시교육청이며, 동상과 우남학사를 그대로 둔 채 사과문만 낸 배재학당 법인이다. 첫걸음을 종결로 바꿔치기하는 순간, 이들은 그 말을 한 사람들에게서 두 번째 말을 빼앗게 된다.

화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와야 할 것이 먼저 있다. 사실, 책임, 그리고 동상 앞의 응답이다.

📚 참고 자료


• 윤근혁, 배재고 선수들의 엇갈린 진술… “8회초 전에도 ‘스벅 빵야’ 했다”, 오마이뉴스, 2026.7.15.

• 윤근혁, [단독] 서울교육청, 배재고 ‘1시간 40분 조사’ 뒤 면죄부?, 오마이뉴스, 2026.7.

• 윤근혁, ‘리박스쿨 교재’ 보유했던 배재고, 전자도서관엔 ‘5.18 혐오 책’?, 오마이뉴스, 2026.6.30.

• 윤근혁, [단독] ‘5.18 혐오’ 책 보유 배재고, 전자도서관서 ‘삭제’」, 오마이뉴스, 2026.7.1.

• 박정연, [단독] “배재고 5·18묘지 참배 제안”…서울교육감, 광주제일고에 사과」, 한겨레, 2026.7.2.

• 장아름, 배재고 야구부 ‘스타벅스 조롱’…광주일고 교장, 야구협회 항의(종합)」, 연합뉴스, 2026.6.30. (충암고 ‘내란의 요람’ 발언 포함)

• 이혜영, “참담” 사죄 반성문 쓴 배재고 선배들…커지는 혐오 구호 파장」, 시사저널, 2026.6.30.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립위원회의 휘호 요청과 이승만의 ‘독립’ 추가 경위)

• ‘학생, 독립투쟁의 주역으로 나서다’, 월간 독립기념관, 2019.11. (1930.1.15 서울 14개교 시위에 배재고보 참여)

• 강성현, ‘동상이 먼저 가르쳤다: 배재고의 5·18 조롱은 일탈이 아니다’, 페이스북, 2026.6.30.

•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 발언(2026.7.6, 광주제일고 강당)은 현장 영상을 필자가 직접 전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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