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필요할 땐 노동자, 필요 없어지면 불법체류자. 미등록 이주민, ‘숫자’ 아닌 사회 성원으로 봐야. (서선영 /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7분)
정부는 올해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 발표를 예고하며, 향후 한국사회 이민정책의 방향을 이끌 제도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책 전환 논의에서 배제된 이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민(체류 자격 없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로, 지역주민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민 정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직 체류관리를 위한 숫자로만 정부 문서에 등장할 뿐이다.

지난 3월에 발표된 법무부의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이하 전략)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뚜렷하다. ‘전략’은 미등록 이주민의 숫자에 대해 “36.8만명에서 20만명 목표까지 도달하는데 약 9년 소요(‘34년) 예상”이라든가, “단속반원 1인당 1000명”과 같은 표현처럼 이들을 단속과 추방의 대상으로만 언급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 이주민 유입이 본격화된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정부의 일관된 접근이다. 단속과 추방 정책은 미등록 이주민들을 사람이 아닌 숫자로 보며 이들이 경험하는 공포와 고통 그리고 죽음도 경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실재하는 삶을 보지 않는다. 미등록 이주민의 존재, 이들의 삶을 마주할 때, 숫자가 아닌 사람의 권리에 기반한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 모색할 수 있다.
약 35만 명, 이주민 8명 중 1명이 미등록 상태
‘미등록’은 특정 시점에서 본 한 사람의 이주 상태이며, 법과 정책의 변화에 따라 미등록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즉, 고정 불변의 정체성이 아니라 제도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행정적 상태’다. 2026년 5월말 기준 한국의 미등록 이주민은 34만 7천 6명으로 전체 이주민 287만 191명 중 12.1%이며, 대략 이주민 8명 중 1명이 미등록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식 통계로 확인되지 않는 이주민을 포함한다면 이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 법무부가 “세종시 인구보다 많은 규모”라고 지적했듯이, 이 정도 규모의 이주민이 미등록 상태라는 사실은 한국의 노동시장과 이주 제도가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층으로 분절화된 한국의 노동시장은 가장 열악한 밑바닥 노동을 미등록 이주민에게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선주민(먼저 정착한 내국인)이 기피하는 제조업 하청, 농업, 건설, 돌봄 등의 일자리를 주로 이주민이 채우는데, 등록 이주노동자만으로는 공급이 부족하다.
그 안에서도 더 불안정하고, 열악하고, 위험한 일자리를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채우는 구조로 노동시장이 작동한다. 비용을 절감하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업주에게 이들은 가장 저렴하고 순종적이며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가 양산하는 미등록 이주민
한국에서 시행 중인 노동이주 제도인 ‘고용허가제'(외국인력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사업주와 이주노동자를 매칭해주는 노동허가 제도) 역시 구조적으로 미등록 이주민을 양산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이나 폭언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을 떠날 수 없다.
사업주의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사업장 이동 시 일정 기간(통상 3개월) 안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미등록 상태가 된다. 또한 최대 4년 10개월로 제한된 체류기간도 마찬가지다. 기간이 끝나 본국으로 귀국하면 재입국을 장담할 수 없다는 두려움 탓에 체류연장을 선택하게 되고, 그 순간 미등록 신분이 된다. 실제로 현재 미등록 이주민 중 가장 많은 수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다.
지난 수 십년간 한국사회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이주노동제도의 모순으로 미등록 이주민을 지속적으로 양산했음에도, 정부는 필요할 때는 한시적 합법화와 묵인으로 노동력을 활용하고, 상황이 달라지면 단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이런 자의적 방침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팬데믹으로 새로운 노동력의 유입이 불가능해지고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극심해지자 정부는 단속을 멈췄다. 당시 미등록 이주민의 비율은 2020년 19.3%, 2021년 19.9%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끝나고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자 2023년에 정부는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대규모 단속·추방에 나섰다. 팬데믹 시기 산업현장의 ‘필수 노동자’였던 이들은 팬데믹이 끝나자 단속과 추방이라는 ‘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장기 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삶
정부의 단속과 처벌 중심의 정책은 미등록 이주민을 ‘불법 체류자’로 호명한다. 이들은 ‘불법’이라는 낙인 속에서 마치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를 수 있는, 그래서 숨어지내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그러나 ‘불법’이라 불리는 법적, 행정적 상태에서 상상하게 되는 모습과 이들의 실제 모습, 즉 실재하는 삶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이민정책은 이러한 지위(status)와 실재(reality), 법과 존재, 제도와 삶의 간극을 확인하고 성찰하며 줄여나가야 한다.
최근 발간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 10인에 대한 생애사 연구 보고서(‘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삶과 정의로운 이주정책’, 2026)에 이들의 삶의 궤적과 모습이 세밀하게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이들이 이주의 시작, 미등록으로 인해 지속된 체류, 지역에 뿌리내린 삶의 여정 속에서 체류자격으로 인해 당한 노동착취와 폭력적인 단속의 경험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지역의 구성원으로 이미 ‘정주’하고 있는 상태를 강조한다.

26째 한국에 사는 숙련공 꼬빌
1999년에 입국해 올해로 26년째 한국에 거주 중인 꼬빌은 가구 공장의 칠 파트 팀장으로 노동 현장에서 인정받는 숙련공이다. 26년간 살아온 공단 지역을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이라 부르며 동네 슈퍼 주인, 공장 사장, 한국인 친구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5번 바뀐 걸 경험한 라주
1991년에 입국한 라주는 35년 동안 한국 땅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한국에서 대통령이 여덟 번 바뀐 것을 경험했다. 마음씨 따뜻한 라주는 대구 지하철 화재 때 같은 국적의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성금을 모아 보냈고, 최근에는 혼자 사는 80대 한국인 집주인이 수술을 하자, 한 달 넘게 집주인의 식사를 챙기고 병원을 함께 다니며 돌보았다.
종교 공동체의 맏형 빅
1996년에 한국에 온 빅은 한 공장에서만 29년 근무한 성실한 노동자였다. 공장 옆 컨테이너 숙소에서 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장을 지키며 ‘만능 노동자’로 일했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빅은 종교 공동체의 맏형으로 아픈 사람과 어려운 자국민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왔다. 이들은 이렇게 오랜 기간 산업현장을 지켜온 숙련공이자 기술자이고, 지역사회의 이웃이며, 소수자들의 연대를 실천하는 시민으로 존재한다.
제도와 삶의 간극 줄이려면
꼬빌, 라주, 빅과 같은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들은 한국사회에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수십년의 삶을 통해 자신들이 거주해온 지역과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된 상태다. 단지 한국의 법과 제도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최근 이민정책의 방향은 이주민의 사회통합을 강조하고 있는데,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며 살아온 이들이야말로 이 사회에 가장 잘 통합된 사람들이 아닌가?
‘미등록’이라는 법적 행정적 상태와 이들의 ‘뿌리내린’ 삶의 간극을 매우는 사회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한국사회에서 오랜 기간 노동하고, 인간 관계를 맺으며, 공동체를 위해 기여한 이들에 대한 ‘체류권’, 나아가 ‘사회적 성원권'(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그에 따른 권리를 누리는 지위, membership)의 법적 인정이야말로 이민정책이 나아갈 방향이다. 이를 위해 위 보고서는 다음 두 가지 정책을 제안한다.
첫째, 미등록 이주민의 체류권은 상설 체류안정화 제도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 일정 정도 요건을 갖춘 신청자에게 갱신 및 전환이 가능한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공공정책으로 스페인의 ‘아라이고(arraigo, 스페인어로 ‘뿌리내림’이라는 뜻)’ 제도가 하나의 사례다. 이 제도는 가족, 사회적 관계, 고용 등 스페인 사회에 자신의 삶이 ‘뿌리내렸음’을 입증하면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애초에 3년을 최소 거주 기간으로 설정했으나 지난해 법령 개정으로 기간이 2년으로 단축되었다. 올해 스페인은 100만 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민의 정규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에 뿌리 내린 ‘풀뿌리’ 미등록 이주노동자
둘째, 중앙정부의 체류안정화 정책을 통해 체류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경우에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포용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파드론(Padron, 실제 거주 사실만으로 등록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등록제도)은 미등록 이주민을 주민으로 등록하여 지자체가 제공하는 공공 사회서비스는 물론, 지역 소재 은행이나 도서관 이용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걸림돌이 없게 하는 제도이다.
같은 맥락에서 캐나다의 ‘묻지도 말고 답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DADT)’ 정책은 시와 위탁 기관 직원들이 개인의 이민 신분을 질문하는 것을 금지하고(Don’t Ask), 나아가 수집된 정보를 이민 당국 등 외부 기관에 유출하지 않도록 차단하여(Don’t Tell) 미등록 이주민이 공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해외 사례들은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이주민의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하여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이며, 이주민과의 적극적 공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제도다.
한국 사회가 이민정책의 전향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지금,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과 추방의 대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특히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삶의 터전은 이곳, 한국사회다. 오랜 세월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이들에게 체류권, 그리고 사회적 성원권은 마땅한 권리다. 미등록 이주민을 줄여야 할 숫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보는 것, 그것이 이민정책 전환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 이 글은 이주노동연구모임 마르코(MARCO)가 우분투 재단의 지원을 받아 펴낸 보고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삶과 정의로운 이주정책(서선영, 김사강, 김철효, 이태정, 정영섭, 한준성, 2026)]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