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대기업의 횡포, 자본력의 승리, 승자독식.

한국 여느 미디어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엄청난 자본력을 이용해 상상을 뛰어넘는 구매력으로 제작사들과 협상한 후 유리한 가격 조건으로 사들여 각종 포인트와 전방위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은 뒤 지갑을 열게 한다. 물론 여기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시대에 발을 못 맞추고 적절한 경쟁력을 갖출 자본력이 없는 회사들은 철저히 망해간다.

잉여와 비효율의 카메라 전문점

그런데, 여기에 뭔가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카메라 전문점인 ‘사토 카메라(サトーカメラ)’다. 사토 카메라는 ‘도치기 현(栃木県)’,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정도의 위상을 가진 지역에 있다. 바꿔 말하면, 일본 비즈니스의 중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토 카메라는 철저히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판매전략으로 놀라운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토 카메라 점포 전경
사토 카메라 점포 전경

도쿄는 아니지만, 대형 가전제품 전문점이 즐비한 도치기 현에서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자랑하는 카메라 체인점이 있다. 도치기 현에서의 카메라 판매 시장 점유율은 ’17년 연속 1등’, 시장 전체가 줄어드는 불경기 속에서 영업 이익률은 44%를 자랑한다. “잉여와 비효율로 보이는 영업 전략이 이익을 낳는다”가 회사 방침인 이 독보적인 카메라 가게의 신기하리만치 특이한 경영 방식을 들여다보자.

“고객 한 사람에게 1시간 정도 접객하는 건 당연하고 길 때는 5시간 한 적도 있습니다.”

사토 카메라는 현재 사장으로 있는 사토 치아키 씨의 부모님이 1964년에 창업한 카메라 전문점이다. 매출은 약 20억 엔이고 종업원 수는 150명 정도.

같은 도치기 현에도 출점한 대형가전 전문점인 코지마(Kojima)에 비교하면 기업 규모는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회사는 도치기 현이라는 지역적인 부분과 카메라로 범위를 좁히면 다른 공룡들과 비교도 안 되는 경쟁력을 발휘한다.

도치기 현 카메라 판매 시장점유율 17년 연속 1위

13년 연속 성장하고 있으며, 영업이익률은 무려 44%. 점포는 도치기 현 이외에는 한 군데도 없으나 도치기 현 안에는 18개나 있다. 도치기 현 면적은 한국으로 치면 강원 북부 정도.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잉여와 비효율의 허용”에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엄청 긴 접객 시간이다.

최장 5시간에 걸치는 사토 카메라의 접객은 반드시 상품 설명만 하는 건 아니다. 촬영기법의 전수나 가까운 출사 포인트 안내 같은 카메라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을 화제로 올린다.

한 사람의 점원이 하루에 몇십 명 접객하는 일반 가전 전문점과는 정반대의 전략. 거기에는 사토 카메라의 노림수가 있다. 사토 카메라는 타깃 고객이 ‘카메라에 별로 흥미가 없는 넌-커스터머(non-customer)’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취미로 하는 고객층은 사고 싶은 기종이 벌써 정해져 있고, 출사 포인트 같은 것 역시 이미 다 잘 알고 있다. 기종을 다 정해놓고, 가격이 가장 싼 곳을 찾아가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대형 전문점과 경합을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사토 카메라는 기존 고객은 대형 전문점에 맡기고 이른바 넌-커스터머 확보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영업방침을 세웠다.

어떻게 사진에 취미가 없는 고객층에 카메라를 팔 것인가?

방법은 하나다. 뭐든 어떤 계기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카메라나 사진의 재미있는 점을 알게 하는 것이다. 30분은 당연히 부족하고, 서서 얘기하다가 소파 같은 곳에 편안하게 앉아서 집중적으로 얘기한다. 그래서 사토 카메라의 매장에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소파나 편안한 테이블 같은 것이 즐비하다.

사토 카메라의 소파 접객
사토 카메라의 소파 접객 (사진 출처: 사토 카메라)

처음 보는 고객의 접객은 보통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잡담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판매원에게는 상품 지식과 맞먹는 ‘잡담력’이 요구된다. 사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에서 시작해 서서히 카메라로 화제를 옮겨간다.

사진 촬영에 즐거움을 잘 전달하고 있는가, 얘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운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접객 시뮬레이션을 비디오로 녹화하고 다시 보면서 판매원들끼리 과제를 정해 트레이닝까지 한다고 하니 그저 점원들의 수다에만 무조건 의존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디카 시장이 축소되는 와중에 가전 전문점의 대다수는 서로 고객 쟁탈전을 계속하고 있으나 설사 비효율이라 하더라도 고객을 일궈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쟁탈전에 휘말릴 필요도 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이것이 사토 카메라의 영업적 사고다.

영업이익의 약 50%는 카메라 판매가 아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장시간 접객 이외에도 사토 카메라가 성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사토 카메라의 수익원은 카메라 판매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익 면에 공헌하고 있는 건 점포 내에 사진 인화(프린트) 사업이다. 영업 이익의 약 50%가 사진 인화에서 나온다.

사토 카메라가 실행하는 접객의 중심은 사진에 이제 막 눈을 뜬 초보자층. 마니아들과 다르게 집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장비들이 충분치 않아서 촬영한 사진은 점포에 와서 인화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고객들을 위해서 소파 좌석에는 촬영한 사진을 출력하기 위한 PC가 설치되어 있고, 담당 판매원과 함께 한 장씩 골라서 인화한다.

이 인화 판매가 크다. 사토 카메라에는 일주일에 35만 장 정도의 사진이 출력되고 있는데, 인화 판매의 이익률이 카메라 판매보다 높다고 한다.

camera-print

함께 사진을 고르는 것으로 더욱 고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일본의 대형 가전 전문점에도 셀프 프린트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점원이 봐주지 않아도 단말기에서 나오는 지시에 따라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의 데이터를 출력할 수 있다. 굳이 점원이 딱 붙어서 출력하는 사토 카메라의 방식은 역시 비효율적으로 보이나 여기에도 커다란 이유가 있다.

어떤 사진이 취향인지, 보통 어떤 라이프 스타일에서 사진을 찍을 기회가 생기는지 등을 파악하면 다음에 어떤 관련 제품을 추천해야 고객이 기뻐할지 보인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카메라 기술에 서툰 고령 고객을 안심시키는 장점도 있다.

사후보증 기간이 무려 11년

사토 카메라에는 이 두 가지 말고도 또 한 가지의 비효율이 있다. 사후보증 기간이 무려 11년이나 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카메라 제작사가 원칙적으로 교환부품을 10년간 보관하게 되어 있어서 보증기간 내라면 몇 번이고 수리나 부품 교환이 가능하다.

당연히 11년이나 보증을 해주면 신상품 교체 수요는 줄어든다. 하지만, 사진 인화라고 하는 또 하나의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는 사토 카메라는 카메라를 새로 사는 것보다, 손에 익은 카메라로 한 장이라도 더 많은 사진을 찍게 하는 것이 더 수익에 도움이 된다.

[box type=”info”]

  1. 장시간 접객을 통한 초보자 고객의 발굴
  2. 사진 인화 사업을 중심으로 한 수익구조
  3. 장기 사후보증 기간을 통한 고객과의 관계 강화

[/box]

시대를 역행하는 사토 카메라의 비효율 전략은 사실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메이저보다 마이너한 상품을 우선시한다

사토 카메라의 비효율 전략은 상품 구성에도 미치고 있다. 신제품 중심의 메이저 상품보다 유명하지 않은 마이너한 상품을 주로 취급한다.

실제 시중에 나와 있는 카메라 중 전문점이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약 10% 정도라고 한다. 기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 남은 90%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 간다. 사토 카메라는 여기에 착안했다.

실제 사토 카메라의 점포에 가보면 일부 인기상품도 물론 진열되어 있지만 잘 들어보지 못했던 브랜드나 유명 메이커의 마이너한 제품도 많다. 이런 제품은 브랜드들의 대대적인 광고가 없는 한 보통은 매출이 나기 어렵다. 재고가 남을 가능성도 높고, 자본효율을 높인다고 보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한 제품을 중심으로 상품 구성을 한다는 건 대형 전문점과의 경쟁을 피하고 고객 만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인기상품을 맞불작전으로 팔아봐야 절대로 이길 수 없으므로 마이너한 제품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 중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품보다 희소성이 높은 제품을 원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사토 카메라는 얘기한다.

마이너한 제품은 기본적으로 판매원이 직접 카메라 제작사에 가서 ‘사입’하는데, 사토 카메라의 판매원은 장시간 접객을 통해 단골손님들의 취미를 잘 안다. 이런 이유로 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상품을 사들여 몇 년 동안 먼지가 쌓이는 사태는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대형 전문점과 경쟁하지 않고 자사에서 고객을 키우는 사토 카메라는 상품도 자신들이 발굴한 제품을 히트상품으로 키워내고 있다.

광고·선전은 종이 팸플릿이 제일

그럼 사토 카메라의 약점과 그 약점으로 인해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질 수 있는 요인은 없을까? 어떤 계기로든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사토 카메라를 방문하는 카메라 초보자가 뚝 끊긴다면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구조가 무너진다.

여기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도록 사토 카메라가 중점을 두고 있는 마케팅이 있는데, 바로 종이 팸플릿(이른바 ‘찌라시’)이다.

클릭 한 번으로 몇십만 명에게 인터넷으로 광고할 수 있는 요즘 세상이지만, 사토 카메라에 찌라시는 최고의 매스미디어다. 그 이유는 실제 찌라시를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사토 카메라 팸플릿
사토 카메라 팸플릿

사토 카메라의 찌라시는 카메라에 대한 직접적인 소개보다 일단 카메라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끼고 방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만큼 다른 회사의 선전 찌라시에 비해서 게재된 상품 수가 적지만, 대신 한 상품 한 상품 설명이 상당히 충실해서 일본에서 많이 발간되는 상품 분석 잡지(모노 매거진) 같은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다.

찌라시 내용을 한번 살펴보면 “추억 돋는 소년 시대로 타입 슬립!!”이라는 타이틀에 세일즈 파트 전무의 어릴 적 사진을 게재한 후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옛날 추억이 영상으로 남아 있다는 건 진짜 기쁜 일이네요. DVD로 녹화해서 남겨놓는 건 어떨까요?”라고 옛날 사진첩을 고이 집이 모셔놓고 있는 장년층의 향수와 구매욕을 자극한다.

결국, 디지털 컬처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잠재고객층을 그들에게 친숙한 매체인 찌라시를 통해 어필을 해서 주력고객층으로 만들려는 고도의 계산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찌라시의 맨 밑 부분에 각 점포의 점장 사진과 출신학교가 게재되어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런 점원들의 개인정보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집객 전략이다. 옛날 친구나 자기가 나온 학교의 점장을 찌라시에서 발견한 사람이 카메라에 관심이 없어도 반가워서 사토 카메라에 방문한 사례도 많다고 한다.

“아, 자네 이 학교 출신이었어? 나랑 우리 아들도 여기 나왔는데, 국어 선생님이 좀 괴팍했지”

“엇, 선배님 반갑습니다! 맞아요. 저 정말 많이 혼났었는데…”

대화가 이런 식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것들이 지역밀착형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회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지는 특징이다.

사토 카메라가 현재의 영업 스타일로 본격적으로 전환한 건 2003년. 필름 카메라의 쇠퇴가 계기였다. 대형가전 전문점의 융성이 시작된 1980년대 후반 이후에도 사토 카메라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 매출이 줄어도 필름 판매와 현상 관련한 수익은 거의 변화가 없었던 탓이다.

많은 사람이 카메라 자체는 대형 전문점에서 구입하더라도 필름 구입이나 현상은 가까운 현상소나 카메라 판매점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와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그 중요한 수익원이 한 번에 없어져 버렸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끝에 다른 곳에는 없는 영업방식을 확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토 카메라의 접객 모습
사토 카메라의 접객 모습 (사진 출처: summit.ismedia.jp)

사토 카메라가 주는 교훈

혹시 이 모든 게 실버세대가 경제 주력층인 일본이니까 가능한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듯하다.

하지만 사토 카메라의 사례에서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건 철저하게 틈새시장을 공략하면서 사양 산업에서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발상의 전환을 ‘접객’이라는 비즈니스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찾아낸 방법론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후 심한 경제 침체를 겪었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의 거센 도전으로 많은 기업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철저한 체질 강화에 주력해 왔다. 그 사고의 중심이 특히 리테일 부분에서는 ‘접객’에 방점을 찍고 움직여 왔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다.

더는 일본에 배울 게 없다가 아니라 상처투성이 일본의 현재가 곧 닥쳐올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 좋을 듯하다. 그런 사유와 성찰이 산업을 보는 새로운 인식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