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새 필드] 영국 셰필드에서 공부한 박미숙이 보는 대중문화. 이번에 채울 새 필드는 ‘넷플릭스 10년’. (⏳7분)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위상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사업자의 진출에 방송업계는 긴장했지만, 막상 서비스가 시작되자 볼 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찻잔 속 태풍’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10년이 지난 지금, 넷플릭스는 한국 작품의 제작과 세계 유통을 좌우하는 주요 사업자가 됐다. 한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를 시험받던 기업이 이제는 한국 영상산업의 향방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넷플릭스라는 기회,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시즌 1(2021, 넷플릭스)의 성공은 넷플릭스가 제공한 기회를 상징한다. 황동혁 감독은 당시 “넷플릭스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오래전 기획했지만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이야기를 믿어주고, 예산과 창작의 자유를 제공한 데 대한 감사였다. 기존 제작 환경에서 거절당한 작품이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과정은 넷플릭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러나 지금의 넷플릭스를 그때의 호감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한 작품을 가능하게 한 투자자의 공로가 그 기업이 행사하는 권력 전체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창작자가 제작 지원에 감사를 표할 수는 있다. 비평과 정책의 역할은 그 감사에 동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성공한 작품 뒤에서 누가 권리를 갖고, 수익을 나누며, 다음 작품의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지 물어야 한다.

넷플릭스의 기여는 분명하다. 여러 나라에 같은 시기 작품을 공개하고 자막과 더빙을 제공하면서 한국어 작품의 접근성을 높였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 시즌 3(2025, 넷플릭스)는 자막 37개 언어와 더빙 24개 언어로 공개됐다. 2021년 6월 집계 시작 이후 세계 주간 상위 10위에 오른 한국 작품도 올해 1월 기준 210편을 넘었다. 번역과 배급에 대한 투자는 한국의 이야기가 해외 시청자를 만나는 조건을 바꿨다.
제작의 가능성도 넓어졌다. 넷플릭스는 2023년 한국 시리즈와 영화, 예능 등에 향후 4년간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광고 수입과 시청률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는 부담이 줄면, 규모가 크거나 흥행을 예측하기 어려운 기획도 시도할 여지가 생긴다. ‘킹덤’ 시즌 1(2019, 넷플릭스)의 사극과 좀비의 결합, ‘D.P.’ 시즌 1(2021, 넷플릭스)이 다룬 군대의 폭력은 이런 제작 조건에서 나온 성과다.

한류는 넷플릭스 전에도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 콘텐츠의 성장을 넷플릭스가 베푼 기회의 역사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한류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방송사와 제작사, 창작자와 현장 노동자들이 쌓아온 역량과 해외 팬들의 관심이 먼저 있었다. 넷플릭스는 이 토대에 자본과 유통망을 결합하고, 그 성과를 자신의 경쟁력으로 축적했다. 한국의 제작 역량이 넷플릭스를 필요로 했던 만큼 넷플릭스도 한국의 작품을 필요로 했다. 이 상호 의존을 잊으면 계약의 문제를 은혜에 대한 감사로 바꾸게 된다.
창작의 자유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투자와 제작이 확정된 작품 안에서 형식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과, 어떤 작품에 제작 기회를 줄지 결정하는 권한은 다르다. 선정된 창작자가 자율성을 얻더라도 투자 결정이 소수 사업자에게 집중되면 산업 전체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 있다. 몇몇 감독이 경험한 자유를 모든 창작자의 자유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거절당한 기획이 다른 투자자를 찾아 제작될 수 있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

제작비 상승은 이 문제를 드러낸다. 대규모 투자와 배우 확보 경쟁은 비용을 끌어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했고, 방송 광고 수입 감소와 극장 시장 부진은 국내 사업자의 투자 여력을 약화시켰다. 이를 넷플릭스 하나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높아진 제작비를 감당할 구매자가 줄어들수록 남은 구매자의 협상력은 커진다. 제작사는 더 큰 시장을 만났으면서도, 정작 계약을 제안할 상대는 제한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때 산업의 성장은 불균등해진다. 대형 제작사와 유명 배우에게 늘어난 기회가 신인 작가와 중소 제작사, 현장 노동자에게 같은 비율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한 편에 투입되는 돈이 커져도 전체 제작 기회가 줄면 누군가는 더 오래 다음 일을 기다려야 한다. 제작비 증가를 한국 콘텐츠의 가치 상승으로만 해석하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라지는 기획과 일자리는 평가에서 빠진다. 산업의 건강성은 가장 비싼 작품의 규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새로 써야 할 게임의 규칙
더 오래 남는 문제는 작품에 대한 권리다. 제작비를 보장받는 대신 지식재산권과 세계 유통권을 넓게 넘기는 계약은 흥행 실패의 위험을 줄여준다. 그 대신 성공 이후 후속작과 상품, 게임 등으로 확장될 때 제작자가 행사할 결정권과 얻을 수익은 제한될 수 있다. 물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작품이 이런 계약을 맺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나 제작사가 권리를 보유하고 일정한 이용권만 제공하는 계약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계약별 권리의 범위와 대가를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투자자가 위험을 부담했으니 성공의 대가를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만으로 논의를 끝낼 수는 없다. 위험 부담에 상응하는 보상과 작품의 장기적 가치를 누구에게 얼마나 귀속할지는 별개의 협상 문제다. 제작비를 받는 것이 유일한 생존 경로인 제작사와 여러 나라의 작품에 투자하는 플랫폼이 같은 조건에서 협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계약서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그 계약을 거절할 실질적인 선택지가 있었는지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권리의 소유는 다음 작품의 제작 능력과도 연결된다. 흥행한 작품에서 계속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제작사는 그 자산으로 새로운 기획에 투자할 수 있다. 반대로 제작 대가를 받은 뒤 추가 활용에 참여할 여지가 좁다면, 다음 작품에서도 외부 투자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작품은 세계적으로 성공했는데 제작 주체의 자율성은 그만큼 커지지 않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한국 작품의 인지도와 한국 제작사의 협상력은 함께 측정해야 할 서로 다른 성과다.
시청 정보의 격차는 이 협상을 더 어렵게 한다. 넷플릭스는 세계 주간 순위와 시청 현황 보고서를 공개한다. 그러나 공개된 시청량만으로 개별 작품이 가입자 확보와 유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가치가 계약 대가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제작자가 자기 작품의 가치를 설명할 정보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하면, 보상을 요구할 근거도 약해진다. 정보 공개는 기업의 홍보를 넘어 거래 당사자가 성과를 검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논의돼야 한다.
‘성공’, 누구의 관점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여기서 ‘한국 콘텐츠의 성공’이라는 표현도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플랫폼의 가입자 증가, 제작사의 매출, 배우의 출연료, 작가의 보상, 스태프의 고용 안정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를 모두 국가적 성공으로 묶으면 집단마다 다른 몫과 이해관계가 가려진다. 국내 제작사가 권리를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 권리에서 발생한 수익이 작가와 다른 창작 참여자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다시 물어야 한다.
노동 환경의 평가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투자는 사전제작과 후반작업을 뒷받침하며 방영 일정에 쫓기는 관행을 바꿀 여지를 넓혔다. 그러나 사전제작 여부와 제작비 총액만으로 현장이 좋아졌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실제 노동시간과 휴식, 안전, 계약과 보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대작의 완성도를 칭찬하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조건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산업의 발전을 화면의 화려함으로 대신 평가하는 셈이다.
넷플릭스를 비판한다고 과거의 방송 제작 질서를 이상화할 이유도 없다. 황 감독의 이야기가 보여주듯, 기존 투자·제작 환경에서도 어떤 기획은 오랫동안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여러 제작 경로가 공존하는 조건이다. 국내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더 잘 보장한다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비판의 기준은 자본의 국적보다 그 자본이 어떤 계약과 제작 조건을 요구하는가에 있어야 한다.

시청자에게도 편리함과 새로운 부담이 함께 들어왔다. 방송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기기로 작품을 보는 자유는 커졌다. 하지만 보고 싶은 작품이 여러 유료 서비스에 나뉘면 구독 비용도 늘어난다. 넷플릭스가 2022년 한국을 비롯한 12개국에 도입한 광고형 요금제는 낮은 가격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광고 없이 보는 경험을 더 높은 요금과 연결했다. 시청의 편리함을 얻은 대가와 그 조건을 변경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소비자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추천 시스템은 또 다른 변화를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시청 기록과 평가 등을 바탕으로 첫 화면에 어떤 작품을 어떤 순서로 보여줄지 정한다. 추천은 낯선 작품을 발견하도록 돕지만, 작품이 눈에 띌 기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방송 편성의 힘은 개인별 추천 화면에서도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이용자가 선택한다는 사실과 플랫폼이 선택의 환경을 설계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한다.
그 화면 안의 순위가 문화적 가치의 기준으로 굳어질 때 문제는 더 커진다. 어느 나라에서 몇 위를 했는지는 흥행을 설명하는 정보이지 작품의 예술적·사회적 의미에 대한 판정이 아니다. 그런데 순위가 작품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자 평가의 결론이 되면, 한 기업의 성과 지표가 한국 문화 전체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해외에서 많이 보았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무엇을 보여주었고 무엇을 놓쳤는지에 대한 비평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다양성의 이름: 공영과 지역 그리고 독립
다양성도 작품 목록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폭싹 속았수다'(2025, 넷플릭스) 처럼 지역의 삶과 세대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런 이야기를 지속해서 만들 기반이 충분한지는 다른 문제다. 다양성에는 장르의 수뿐 아니라 제작 주체의 다양성, 신인의 진입 가능성, 흥행에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할 기회가 포함돼야 한다. 한 편의 성공을 사례로 산업 전체의 개방성을 증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책은 투자 유치액과 해외 순위를 넘어가야 한다. 제작사가 권리를 보유하면서 자금을 조달할 방식을 넓히고, 여러 사업자와 유통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창작자에게는 성과를 확인할 정보와 보상을 협상할 수단이 필요하다. 공적 지원에는 권리 배분과 공정한 계약, 현장 노동자의 보수·안전 같은 조건이 따라야 한다. 공공 자원이 투입된 성과가 어디에 축적되는지 확인하지 않는 지원은 산업의 자립보다 특정 구매자에게 공급하는 능력만 키울 위험이 있다.
공영방송과 지역방송, 독립영화의 역할도 이 관점에서 중요하다. 모든 작품이 세계적인 흥행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작은 지역의 기억, 소수자의 경험, 당장 수익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사회적 질문도 제작될 수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의 사업적 판단에 이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문화정책은 기업이 선택한 성공작을 축하하는 일과 함께, 기업의 선택 밖에서도 창작이 이어지도록 할 책임이 있다.
넷플릭스는 기존 제작 환경에서 실현되지 못했던 작품이 세상에 나올 길을 열었다. 그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다만 그때의 호감이 오늘의 권력을 가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만들 수 없었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성과다. 앞으로도 넷플릭스가 없으면 만들기 어려운 산업에 머문다면 그것은 산업의 취약성을 뜻한다. 다음 10년은 창작자가 넷플릭스와도, 그 밖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