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한국 최초 노사 상생 모델의 몰락… 사회적 임금 보완 없는 인건비 후려치기 모델의 한계.
“5월 광주가 민주주의 촛불이 됐듯 광주형 일자리는 경제 민주주의 불씨가 될 것이다.”
전(前) 대통령 문재인이 2019년 1월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 남긴 축사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勞使民政) 대타협’을 통한 무(無)노조 경영을 기치로 내건 일자리 모델이다. 광주광역시 노사민정협의회 의결로 광주시가 현대자동차와 합작해 광주글로벌모터스(GGM)를 설립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광주형 일자리는 공공 주도 산업 정책의 ‘선도 모델’이었다. 울산형과 구미형, 밀양형, 횡성형, 군산형 일자리가 이어질 수 있게 한 자극제 역할을 했다.
- 노사민정이 사회적 대화를 기반으로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만들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통적 제조업의 대립적 노사 관계를 협력적으로 전환할지 주목됐다.
- 초기 구상은 이랬다. 기업은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한다. 동종 업종과의 임금 격차는 정부와 광주시가 주거, 교통, 교육, 의료, 문화 등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임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완한다. ‘무노조, 무교섭, 무파업’ 사업장의 출현이다.
- GGM 자본금은 2300억 원. 광주시가 21%인 483억 원, 현대차가 19%인 437억 원을 출자했다. 나머지는 금융기관, 자동차 부품 업체, 광주 기반 기업체들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2023년 9월 기준 차입금을 포함해 소요된 총 투자비는 5754억 원이다. 이 가운데 현대차 비중은 8%가 안 된다.

“민주당이 책임져라”, 한국 최초 노사 상생 모델의 몰락.
- 문재인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에 찬사를 쏟았다. “양극화 해소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해법을 사회적 대화로 모색한 지역 혁신 운동”이라고 했다. 문재인은 2021년 10월 GGM이 생산한 소형 SUV 캐스퍼 인수식을 청와대에서 열고 직접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 장밋빛 전망과 달리 광주형 일자리는 불과 5년여 만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지난해 출범한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광주글로벌모터스지회(GGM 노조)는 지난 13일 상경해 민주당 당사와 현대차 본사를 방문하고 노동3권 보장을 촉구했다.
- 노조는 “단체교섭 대신 상생협의회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있는 현재 구조는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당 정부가 만든 상생형 일자리 모델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현실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 지역신문 전남일보는 15일 노조의 상경 투쟁과 파업 예고에 “공멸로 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전국 최초의 노사 상생 모델의 몰락과 함께 GGM이 존속할 명분과 근거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높다”고 경고했다.

어떻게 상생 없는 일자리가 됐나.
- 광주형 일자리를 종합적으로 분석·비판한 보고서가 있다. 지난해 국회 산하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광주형’ 일자리는 어떻게 ‘상생 없는’ 일자리가 되었나)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냉정하게 평가·분석했다. 정치학자 박상훈(전 연구위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GGM 사태를 다시 되짚는다.
- 박상훈은 이 보고서를 위해 2023년과 2024년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 참여자 4인, 전·현직 시의원 2인, GGM 생산직 비조합원과 조합원 노동자, 한국노총·민주노총 간부, 광주 지역 활동가 등 15명을 인터뷰하고 의견을 청취했다.
광주형 일자리가 마주한 현실.
- 현실은 냉혹했다. 동종 업계 절반도 안 되는 저임금(연봉 3000~4000만 원), 작업 투입률 90%를 상회하는 노동 강도 등으로 노동자 불만과 이직률이 치솟았다. 산업단지 내 주거 문제마저 해결되지 않아 공동 복지 프로그램은 1200억 원 가까이 지출하고도 노동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지 못했다.
-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는 위원 25명이 지자체 행정 관료가 주도하는 회의에 1년에 2번 모여 30여분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비를 지급 받는 수준이었다. 노사민정에 참여한 ‘노사’ 대표들은 자치단체장이 알아서 선임했다. ‘정’은 지방 행정 관료제 구성원들이, ‘민’은 지자체 선거 캠프 인사들이 채웠다.
- 노동 정책 수행 역량과 노동 관련 시설의 운영 효율을 제고하기 위해 광주시가 설립한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은 광주시장이 새로 취임하며 통폐합됐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뒤로는 중앙 정부는 물론이고 민주당과 현직 단체장도 광주형 일자리 문제에 더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평가다.


행정 독주의 기획, 선언으로 끝났다.
- 광주형 일자리 초기 기획을 주도한 세력은 ‘양질의 지역 일자리’ 창출에 문제 의식을 가졌던 지역 내 노동 인사들이었다. 2014년 7월 민선 6기 지자체 핵심 사업으로 선정된 것에서 출발했다.
- 30년간 노동 현장에 몸담으면서 광주 기아차 노조 지회장을 세 번이나 지낸 박병규씨가 전담 부서 단장을 맡는 등 오랫동안 노동 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이끌었다.
- 2017년 6월 광주형 일자리에 관한 최초 사회 협약의 핵심은 ‘4대 의제’, ①적정 임금 ②적정 노동 시간 ③노사 책임 경영 ④원하청 관계 개선을 명문화한 것이다.
-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기초 협약과 조례 형식으로 제도화 문턱을 넘었으나 시의회나 정당 참여는 없었다. 단체장 중심으로, 단체장이 임명한 노동 측 인사들이 주도했다.
- 문제는 이후 현대차와의 투자 협상 단계에 초기 기획자들의 참여가 배제되고, 단체장과 관료 행정 체계를 중심으로만 전개됐다는 점에 있었다. 이 과정에 시의회와 지역 정당은 견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 자치단체장 중심의 강한 행정 독주 체제, 견제 기능이 약한 지방 의회, 야당이 역할을 할 수 없는 지역의 일당 우위 정당 체계가 빚은 결과였다.

“청와대 사업을 광주시가 대행했다.”
- 사실 광주형 일자리는 2017년 초 지역사회에서 사라진 의제였다. 2018년 지방선거를 놓고 광주시장 윤장현과 차기 후보 이용섭이 경쟁하게 된 상황에서 이용섭을 지지하는 시의원들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윤장현 예산’으로 보고, 사업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 이를 다시 살린 것은 중앙, 문재인 청와대였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 전국화’는 2017년 3월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지방선거를 위해 광주형 일자리의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현대차로 하여금 투자 의향서를 2018년 6월1일 제출하게 했다.
-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박태주는 “청와대가 현대차 팔을 비틀어” 광주형 일자리를 하게 했다고 했다. “청와대 사업을 광주시가 대행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박태주의 문제의식이다.

“연봉 1000만 원도 일자리 늘면 좋은 것 아닌가.”
- 박상훈에 따르면, 현대차로 하여금 투자 의향서를 내게 하는 과정에서 현대차가 발언권과 영향력을 크게 가질 수밖에 없는 협상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광주형 일자리의 기본 틀에도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 문재인 청와대 측은 “연봉 1000만 원이라도 일자리가 늘면 좋은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는 등 ‘저임금 무권리 일자리’라도 광주시가 수용하길 바란 것으로 전해졌다.
- 현대차는 소형 SUV 개발에 성공했지만 국내 생산 비용 때문에 공장 설립은 주저했다. 하지만 투자 유치에 급급한 청와대 덕분에 저비용 생산 기지를 광주에 설립할 기회를 얻게 됐다.
- 광주시와 현대차의 최초 협상은 조기 타결됐다. 하지만 누가 협상하고 어떻게 합의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 광주형 일자리를 책임 지는 기업은 신설 법인 GGM이다. 그러나 실제 공장을 짓고 생산을 하고 품질 관리를 하고, 판매를 하고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것은 현대차다. 최대 주주도 현대차가 아니라 광주시다. 현대차가 참여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다.

독일의 아우토 5000 모델과 차이점.
- 광주형 일자리는 독일의 ‘아우토 5000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이 모델은 자동차 제조 기업 폭스바겐사가 경영 압박에 처하자 임금이 저렴한 동유럽으로 생산 시설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상황에서 노사가 변화를 만든 사례로 꼽힌다.
- 2001년 폭스바겐사와 노조는 자동차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는 대신, 유한회사 ‘Auto 5000’을 설립키로 했다. 새로 고용하는 노동자는 기존 폭스바겐 노동자보다 20% 적은 임금을 받으며, 그들보다 더 많은 주당 35시간을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 아우토 5000 모델은 기업이 제안하고 노사가 협약으로 만들었다. 노사가 책임 주체였다. 독일의 산별 노조 체제 하에서 이룬 ‘공동 경영’, ‘공동 결정’ 제도 틀도 그대로 적용됐다.
- 불황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임금과 노동 조건에 제한을 걸었지만 불황을 벗어나자마자 풀었다. 2008년 아우토 5000 노동자들은 폭스바겐사가 책임지는 공장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됐다.
- 아우토 5000 공장은 2005년 폭스바겐 공장 가운데 가장 많은 흑자를 낸 공장이 됐고, 이후 아우토 5000 노동자를 통합한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연간 75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공장이 됐다.

무노조 무교섭 무파업이라는 반헌법적 조건.
- 반면,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 합의가 아니라 광주시와 현대차 사이 투자 협약이었다.
- 투자 협약을 보면, 현대차 역할은 “경차급 SUV 차종을 신규 개발해 신설 법인에 생산을 위탁”하는 것과 “신설 법인의 공장 건설 및 생산 운영, 품질관리 등을 위한 기술 지원”을 한다는 것인데, 이에 해당하는 부속 서류는 없다는 게 박상훈의 지적이다.
- 박상훈은 광주시와 노사민정협의회 사이 협정서 등을 주목했다. 관련 내용들이 무노조, 무교섭, 무파업 등 노동 조건 제한의 유효 기간을 차량 35만 대 생산까지로 못 박은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 GGM은 2021년 9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총 10만7000여대를 생산했다. 이 추세에 따라 무노조, 무교섭, 무파업 일자리는 최대 7년 정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 박상훈은 “지금의 투자 협약과 상생협정서의 심리적 압박을 뚫고 (노조 결성 등의) 시도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협약의 틀을 깨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다른 누구보다도 GGM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조 가입에 소극적이고, 적어도 누적 생산 35만 대에 이를 때까지는 무노조, 무교섭, 무쟁의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 GGM 노동자들은 지난해 2개의 노조를 만들었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로 통합했으며, 올 1월부터 부분 파업을 해왔다. 현재 GGM 직원은 680여명으로 이 가운데 노조원은 220여명이다. 3분의 1이 노조원이다. 노조는 ‘누적 생산 35만대까지 파업 유보’라는 내용이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위배한다는 입장이다.
전망과 해법: 현대차가 나서야 한다.
- 박상훈은 질문을 던진다. 광주형 일자리가 사실상 ‘정치 기획’ 아니었느냐는 물음이다. 대기업 유치를 바라는 지역 시민사회 바람을 바탕으로, 재벌 대기업에 유리한 합의를 통해, 지역 발전 성과를 지방선거 승리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 중앙 정부에서는 노동 조직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같은 기획은 지속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막강한 자치단체장과 재벌 대기업이 ‘선거 승리’와 ‘중앙의 예산 지원 및 탈규제 혜택’을 교환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게 박상훈의 문제의식이다.
- 박상훈은 “지역의 노사민정이 새롭게 힘을 모아 2기 광주형 일자리 기획에 나서야 한다”면서 “GGM은 물론 현대차도 더 이상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아웃사이더가 아니어야 한다”고 했다. “책임 있는 내부자로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서야만 현대도 살고, GGM도 살고, 광주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6·3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유치와 지원을 골자로 하는 지역 일자리 공약이 남발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이 빠진 산업 정책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오는지 일깨워주는 사례일 것이다.
독일 회사는 그냥 이사가 노사 반반이라고 들었는데 그 덕 아닐까요? 각자상황 잘 알면 협상이 어렵지 않을테니까요 어려울땐 서로양보하고 같이 견뎠다가 풀리면 풀고 그런 협력과 신뢰는ㅡ 이 계층국가에는 어려운일 같은데요 그 지긋지긋한 사회인식부터 갈아 엎어야 가능할 듯해요 뭐 좀 동등하게 해봤어야 뭘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긴데요 ㅡ 그 소득격차에서 비롯되는 계급적 적대적 경쟁병적 허영심은 밥그릇 건드리면 된다 생각합니다 물론 똑같이 맞추자는게 아니에요 그런 계층적 정신병에서 벗어나고 사회문제 해소를 위한 정도의 움직임이 필요하단 이야깁니다.ㅡ 이외에 어차피 정부와 국가 각 구성끼리 합의해서 하기로 한거 반헌법적 제약이라는 표현은 좀 부적절한게 아닐까요 독일회사도 어려울 때 서로 견딘다는게 마찬가지로 밖에서 한 구성원만 볼 땐 반헌법적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구성원끼리 민주적으로 결정했다면 그런 표현은 일방적인것 처럼 느껴지네요 물론 협력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요 과정에 일방적인 부분이 있거나 공개를 안하는것도 문제였던거같기도 하네요 그를 다루는 언론이 없고 이는 또 지역언론의 소멸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듯 합니다. 진짜 파면팔수록 끝이없네요 줄줄이 연결되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