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수사 지연에 솜 방망이 처벌, 로펌만 돈 벌고 산재 억제 효과는 미미… 근로감독관 늘리고 가중 벌금제와 차등 보험료 등 실효성 보완해야. (⌚9분)
“우리나라 발전 단계에 비춰보면 여전히 후진적 산업재해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일을 예방하는 최소한의 안전 틀을 갖추자는 취지로 입법이 이뤄졌다.”
문재인(전 대통령)이 2021년 9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심의·의결하면서 한 말이다. 이듬해 1월 시행된 이 법은 예방 중심의 안전 문화 정착, 사업주 및 경영 책임자들의 실질적 책임 강화를 위해 제정됐다.
법 시행 3년 8개월이 지난 지금 ‘예방’과 ‘처벌’이라는 입법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와 주목된다. 올해 상반기에만 산재 사망 사고가 449명이다. 하루 2.4명 꼴이다.
지난달 28일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 이동영의 보고서(‘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영향분석)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분석했다.

산재 억제, 효과 크지 않았다.
- 중대재해처벌법 존재 이유는 ‘중대재해 예방’에 있다. 산재 감소 여부로 입법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동영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업재해현황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 통계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재해자 수는 사업자 규모(‘50인 이상 사업장’, ‘5인 이상~49인 이하 사업장’, ‘5인 미만 사업장’)와 관계 없이 증가했고 사망자 수는 변화가 없었다.
- 실질 산재 감소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재해율(전체 노동자 수 대비 재해자 수 비율), 사망률(전체 노동자 수 대비 사망자 수 비율)을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통계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재해율이 증가했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발생하는 사망자 수 비율)은 변화가 없었다.
- 이동영은 “법 시행 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재해자 수와 재해율은 증가했으나 사망자 수와 사망률에는 유의한 변화가 없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재해 전반을 억제하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대와 달리 아직 “입법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수사 대상 1252건 중 121건만 재판에.
-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 산재를 발생시킨 사업주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노동부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7일부터 2025년 7월 24일까지 중대 산재 발생 보고 건수는 총 2986건이었다. 노동부는 이 가운데 1252건을 수사했으며, 276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불기소 처분 28건 등을 제외한 121건을 기소했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 받는 사건의 1심 판결은 2025년 7월 31일까지 총 53건이 있었다. 2심 판결은 15건, 3심 판결은 1건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최종 확정돼 고용노동부가 공표한 사건은 법 시행 3년 8개월이 지난 현재 15건이다.

지연되고 있는 수사 … “법 집행 의지 높여야.”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수사 대상 사건 1252건 가운데 노동부가 ‘수사 중’인 사건은 790건,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127건이다. 전체 수사 대상 사건의 73%(917건)가 현재 ‘수사 중’이다.
- 검찰에 송치된 사건 중 ‘수사 중’인 사건의 비율(46%)보다 노동부가 수사 대상으로 선정한 사건 중에서 ‘수사 중’인 사건 비율(63.1%)이 더 높다.
- 노동부는 사업주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등 수사 쟁점이 다양하고, 기업의 적극적 법률 대응으로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 최근 1심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대형 로펌(2024년 매출액 기준 상위 10대 로펌)을 선임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2023년 1건에 불과했지만, 2024년 7건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7월까지 9건에 달했다.

검찰의 처리 장기화, 장관이 봐도 “국민 정서와 괴리.”
- 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처리에 미온적인 것도 사실이다. 검찰이 범죄를 처리하는 기간은 다른 형법·특별법 범죄의 경우 50~55% 가량이 10일 이내다.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6개월을 초과하는 비율은 1% 내외에 그친다.
- 반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은 검찰이 10일 이내로 처리하는 경우가 없었다. 3개월 내로 처리한 비율은 5%에 미치지 못했고, 6개월 이내 처리한 사건은 30%, 6개월을 초과해 처리한 사건이 56.8%에 달했다. 검찰도 사건을 오래 쥐고 있는 것이다.
- 매일노동뉴스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121건을 분석한 결과, 검찰 송치로부터 기소까지 1년을 넘긴 사건이 전체 기소 건의 74%(90건)였다. 평균 655일 걸렸다.
- 법무부장관 정성호도 “중대재해에 관해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원하는 국민 일반 정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 물론 수사 기관이 범죄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처벌 지연’은 투자·의사 결정 등 기업의 경영 활동 불확실성을 높이고 법 집행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일반 사건보다 무죄 비율 3배 이상 높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무죄율도 높다. 이 법 위반으로 1심 재판을 받은 56명 가운데 무죄는 6명, 유죄는 50명이었다. 인원 수 대비 무죄 판결 비율은 10.7%, 유죄 판결 비율은 89.3%다. ‘2024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형사 사건 무죄 판결 비율은 3.1%(23만 927명 중 7097명), 유죄 판결 비율은 89.2%(23만 927명 중 20만 6067명)다.
- 다시 말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무죄 비율(10.7%)은 일반 형사 사건 무죄 비율(3.1%)보다 3배 이상 높다. 중대재해처벌법 범죄 구성 요건이 모호하고, 산업 현장 복잡성, 전문성 등 특수성 때문에 사업주의 고의·과실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탓이다.
- 4건의 1심 무죄 판결 가운데 3건이 대형 로펌을 선임한 사건이었다. 통계적으로 대형 로펌 선임과 유무죄 상관 관계가 확인되지는 않지만 사업주 및 경영 책임자에게 “대형 로펌을 선임하면 무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극적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다.

집행유예율도 높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재판 49건의 1심 유죄 판결은 실형 5건, 벌금형 2건, 집행유예 42건으로 나뉜다. 집행유예 비율이 무려 85.7%에 달한다.
- 법원 사법연감에 따른 2023년 형사 사건 유죄 판결 건수 대비 집행유예 비율은 36.5%(20만 6067건 가운데 7만 5112건)에 그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의 집행유예 비율이 일반 형사 사건보다 2.3배 높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의 양형 이유는 △범행 인정과 반성 △유족과의 합의 △동종 범죄 전력 없음 △재발 방지 노력 등이다.
- 이동영은 “실형 선고 시 기업 경영이 마비되거나 중소기업의 경우 기업 존속에 심각한 영향 혹은 기업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은 실형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중대 산재가 형사 책임보다는 도의적 책임 영역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 실형보다 집행유예가 선택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낮은 유죄 형량과 벌금액.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49건의 1심 유죄 판결 가운데 47건의 징역형 선고 판결을 분석한 결과, 형량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으로 평균 1년 1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하한선(1년 이상)에 근접하거나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 49건의 1심 유죄 판결을 살펴보면, 50개 법인에 부과된 양벌 형량은 최저 1000만 원에서 최고 20억 원까지 분포했다. 평균적으로 1억 114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 그러나 구체적으로 보면 유죄 판결 92%가 벌금 1000만~1억 원 사이에서 형량이 결정됐다. 벌금 20억 원을 선고한 극히 이례적 사례 1건을 제외하면 평균 7280만 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시행된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법인과실치사(Corporate Manslaughter)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기업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23건의 벌금 부과액 평균은 한화로 약 7억 6816만 원에 달한다. 한국의 벌금형 수위는 영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원청 사업주를 처벌했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 받은 피의자 56명 가운데 원청 사업주·경영 책임자 등은 24명(42.9%), 고용 사업주·경영 책임자 등은 32명(57.1%)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피의자의 절반이 원청 사업주·경영 책임자 등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중대재해처벌법이 일부 원청 사업주를 실제 기소하고 처벌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원청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입법 효과는 실재한다.
- 이동영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고용 관계 없음’ 혹은 ‘실질적 관리 책임 없음’을 이유로 원청을 처벌하지 못하던 시스템에서는 확인할 수 없던 구조적 문제를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수사기관이 단호하게 수사하고 법원이 이를 집행함으로써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작업 환경 변화는 없었다.
- 법 시행 전후로 작업 환경에 변화는 없었다. 법 시행 전(2020년)과 시행 후(2023년) 실시한 근로환경조사를 분석한 결과다.
- △안전·보건을 위한 조직 환경 △새로운 작업 방식 도입 △건강과 안전에 대한 정보 제공 △화학 제품 피부 접촉 및 감염 물질 취급을 포함한 물리적 위험 노출도 등에서 변화가 없었다.
- 다만, 민주노동연구원이 노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안전 인식 수준 변화를 조사한 결과, 일선 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영향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자들의 안전 보건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안전 보건 부서 보강 및 권한 강화, 예산 증액, 관련 교육 심화, 원하청간 안전 관리 체계 개선 등 일부 변화가 있었다는 응답이다.
대안과 해법1 :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을 확대하라.”
- 이동영은 몇 가지 대안과 해법을 주문했다.
- 첫째, 법령이 더 구체적이어야 하고, 양형 기준도 정비해야 한다.
- 법 조항과 관련 시행령을 보면, ‘필요한 예산 편성’, ‘필요한 안전 보건 인력·시설·장비 구비’, ‘필요한 권한과 예산’ 등 모호한 규정이 다수다. 형사 처벌을 어렵게 만드는 시행령이라는 지적이다. 공식적이고 구속력 있는 구체적 이행 기준과 면책 요건을 명확히 한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다.
-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법원의 양형 기준이 미비하다. 솜방망이 처벌의 원인이기도 하다. 법무부는 지난달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양형 기준 마련을 공식 요청했다.
- 둘째,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을 질적, 양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 노동부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산재 예방·감독, 중대산재 수사 등을 담당하는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은 전국에 총 865명이 배치돼 있다. 부서장을 제외한 실무 인력은 794명뿐이다.
- 법 시행 전부터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실무 인력 1인당 평균 관리 대상 사업장 수는 무려 3622개였다. 일반 근로감독관 1인당 관리 대상 사업장인 1092개에 비해 3배 이상 많다. 게다가 노동부 공무원을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에 순환배치하고 있어 전문성과 경험에서도 뒤떨어진다는 지적이다.
- 검찰, 경찰, 노동부가 협업하는 ‘중대재해처벌법 합동수사단’(가칭) 설치와 같은 적극적 조치도 필요하다.
- 당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노동부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나 보완 수사가 약화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대안과 해법2 : 반복적 기업에는 “사고 이력 가중 벌금제.”
- 셋째, 자율적 안전 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형사 처벌이 중심이 되면 경영자들은 자발적 안전 관리 체계 구축보다 서류 중심의 형식적 대응에 치중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산재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했다. 책임자 처벌 또한 강력하지 않았다. ‘산재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를 제대로 달성하려면 노사가 참여하는 위험성 평가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안전 장비 설치 등 자기 규율적 예방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 성실하게 위험성 평가를 수행한 기업이 실질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세액공제 혜택을 주거나, 정부 발주 공사 및 공공구매 과정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벌칙 규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기업 인센티브 등 시장 논리를 활용해 자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넷째, 실효성 있는 경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
- 반복적으로 중대 산재를 일으킨 기업에는 실효성 있는 경제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정액 벌금(치사 50억 원 이하, 치상 10억 원 이하) 제도는 기업 부담이 미미하다. 매출액이나 이익, 재산 규모에 연동해 고액 벌금을 부과하고, 공적 제재를 민간보험으로 전가하지 못하도록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 동일 기업이 반복적으로 중대 산재를 일으키는 경우 누적 가중률(예를 들면, 1회 100%, 2회 200%, 3회 이상 500% 등)을 적용하는 ‘사고 이력 가중 벌금제’, 사고로 인해 기업이 얻은 이익을 환수하는 ‘이익환수형 과징금제’, 법원 처벌 횟수에 따라 산재보험료율을 달리 적용하는 ‘산재보험 차등 보험료율제’ 도입도 검토할 수 있다.
- 중대 산재 발생률이나 처벌 횟수에 따라 정부 조달, R&D 지원, 세제 혜택, 인허가 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제도, 형사 처벌이 집행유예로 끝나더라도 기업 차원에서 산업안전기금 출연을 의무화하는 제도 등도 대안이다.
- 이동영은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한 법적 문제가 아니라 산재를 줄이기 위해 안전 투자 비용과 시간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 문제”라며 “‘안전이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안전을 위한 초기 투자와 시간 소요를 감수해야만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런 국민적 합의 없이는 중대재해를 크게 줄이기 어렵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