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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다음 일곱 가지 유형을 ‘솔루션 저널리즘 사기꾼(imposter)’으로 분류해 경계하고 있다.

가짜 해법을 경계하라.

첫째, 솔루션 저널리즘이 영웅 숭배(Hero Worship)가 돼서는 곤란하다. 세상을 바꾸는 누군가를 소개할 수는 있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든 변화에 집중하고 이런 변화에 필요한 기회 비용을 함께 언급하는 게 좋다. 부정 편향을 극복하자는 제안을 좋은 소식을 마구 부풀려도 된다는 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우리는 만능의 은빛 총알(Silver Bullet)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이걸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크록스(Crocs)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신발을 재활용해 축구공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실제로는 운반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서 실용화되지 못했다. 이런 유형의 기사는 첨단 기술이나 혁신 산업에서 흔히 나타난다. 적정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예산만 있으면 해결된다는 믿음도 위험하다.

셋째, 아는 사람 띄우기(Favor for a Friend)도 경계해야 한다. 기자와 이해 관계가 있는 사람을 취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에 위배된다. 솔루션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넷째,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제안하는 이른바 싱크탱크 저널리즘도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싱크탱크 저널리즘은 따옴표 저널리즘과 함께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다. 대학 교수 코멘트로 끝나는 많은 기사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다섯째, 뒷북치기(Afterthought)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적당히 아이디어만 늘어놓는 걸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근거와 논리로 설명하고 반론과 한계까지 드러내야 한다.

여섯째, 즉흥적 행동주의자(Instant Activist)들을 경계해야 한다. “서명에 동참해 주세요”, “1만 원의 후원금이 세상을 바꿉니다”, 또는 “법이 통과될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이런 결론으로 끝나는 기사들이다.

일곱째, 감동적인 미담 기사는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아닌 경우가 많다. 뒷다리를 다친 아기 돼지 베이컨(Chris P. Bacon)에게 휠체어를 만들어줬다는 기사는 따뜻하고 재미도 있지만 여기에서 그칠 뿐이다.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CNN 히어로즈(Heroes) 같은 프로그램을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본스타인은 “그런 건 명절 휴식용 프로그램”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들의 선행이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히려 문제를 남의 이야기로 만들고 해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기사가 이렇게 세상을 바꾸다니.”

이런 기사들의 함정은 문제의 구조적 접근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과정이 아니라 효과와 결과를 강조하면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수천만 달러의 기부금을 끌어 모았던 플레이펌프(PlayPump)가 대표적인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 플레이펌프는 아이들 놀이터의 회전 그네에 물 펌프를 달아서 지하수를 끌어 올리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언뜻 매력적인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처럼 보였고 수천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아 모잠비크 등에 1500대 이상의 플레이펌프가 설치됐다. 문제는 제대로 된 테스트도 하지 않았고 기술력이나 타당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아이디어만 떠돌았다는 것이다.

플레이펌프 아이디어를 처음 세상에 알린 건 미국 공영방송 PBS 기자 에이미 코스텔로(Amy Costello)였다. 나중에 이 기자가 자세한 뒷이야기를 PBS에서 밝힌 바 있다. 다음은 방송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에이미 코스텔로는 2005년 아프리카 특파원으로 일하던 도중,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플레이펌프를 소개했다. 플레이펌프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정말 매력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이듬해 한 컨퍼런스에서 당시 대통령 부인이었던 로라 부시(Laura Bush)의 중대 발표를 듣게 됐다. 아프리카에 플레이펌프를 지원하는데 164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발표였다. 내 기사가 이렇게 세상을 바꾸다니. 그때만 해도 자부심을 느꼈다. 그 뒤로 그는 콩고와 다이푸르의 내전을 취재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아프리카의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플레이펌프가 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 몇 년 뒤 모잠비크를 방문했을 때였다. 플레이펌프가 엉뚱한 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물 탱크는 텅 비어있었다. 홍보 영상에서는 수백 개의 플레이펌프가 설치돼서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게 됐다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잠비크 정부에 문의한 결과 플레이펌프 100개 가운데 어디에서도 제대로 물을 끌어올린 곳은 없었다. 퍼올리는 물이 너무 적어서 금방 떨어졌거나 아이들이 회전 그네에서 ‘열심히’ 놀지 않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만 분명한 건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플레이펌프의 실패를 다룬 유니세프 보고서의 표현에 따르면 물을 마시기 위해 강제로 놀아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놀이가 될 수 없다.

에이미 코스텔로는 “사람들의 의식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도입하려면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따뜻한 아이디어에 기꺼이 돈을 댔지만 이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플레이펌프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역도 일부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번갈아 가면서 회전 그네를 돌릴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여성들은 차라리 손으로 퍼올리는 방식이 차라리 더 나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플레이펌프가 아프리카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유일한 해법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아름다운 해법이 나왔고 돈만 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순진한 발상이었다.

플레이펌프와 함께 대표적인 적정기술의 사례로 꼽히는 라이프 스트로우(생명 빨대, life straw) 역시 성공 모델로 꼽기에는 아쉽다. 진흙투성이 개울물을 마실 물로 만들어 준다는 혁신적인 기술로 거론됐지만 노동자들 몇 달 임금에 이르는 가격도 부담이었고 필터를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무상 원조 덕분에 지역 사회에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첨단 기술을 끼얹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라이프 스트로우는 지금은 등산 레저 용품으로 쓰이고 있다. 유니세프(UNICEF)의 클라리사 브로클허스트(Clarissa Brocklehurst)는 “마법의 총알이나 최고의 기술에 의존하기 보다는 다양한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솔루션을 찾는 데 더 많은 역량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전치형은 논문, ʻ소외된 90%, 따뜻한 기술, 최고의 솔루션: 한국 적정기술 운동의 문제의식 비판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혜택 받은 10%와 소외된 90%라는 기본 인식은 적정기술 활동이 ʻ우리ʼ가 아닌 ʻ그들ʼ의 기술, 더 정확히 말하자면 ʻ그들ʼ이 ʻ가지지 않은 기술ʼ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이때 적정기술자들은 ʻ그들이 가지지 않은 기술ʼ을 대체로 제품이나 장치의 형태로 이해한다.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삶에서 기술의 결핍 또는 부재를 발견하고 그 비어 있는 부분을 적정기술 제품과 장치가 들어가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략) 제품과 장치 중심의 기술 개념은 ʻ그들이 가지지 않은 제품과 장치ʼ를 발견하고 제공하는 데에 유용하지만 ʻ우리가 가진 기술-사회 시스템ʼ을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적정기술자의 역할은 그들을 위한 적정기술 연구와 실천에서 우리 공동의 기술-사회 디자인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가이드라인.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 가이드라인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단순히 사건 보도를 넘어 컨텍스트를 제공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독자의 관여를 늘리고 임팩트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본스타인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도록 하려면 이들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독자들에게 아이디어를 불어넣고 직접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취재 보도 방식이다. ‘나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스타인은 “저널리즘적 감각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능력을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에 대응하고 어떤 결과를 얻고 있으며 어떻게 그런 결과를 얻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노력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쓰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기자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을 설명할 때 굳이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곤 한다. 여기까지가 솔루션 저널리즘이고 여기서부터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니다, 이런 경계나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문제 해결을 강조할 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제안할 수는 있다. 취재와 데스킹 과정에서 이런 포인트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살펴보거나 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제안하는 10가지 체크 포인트를 한국 상황에 맞게 풀어 쓴 것이다.

첫째, 문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잘 알려진 문제가 아니라면 문제의 원인을 먼저 설명하는 게 좋다. 독자들이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문제에 대한 관련 반응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가. 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해법을 다루지 않는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를 수 없다.

셋째, 문제 해결과 해결책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파고 들고 있는가. 매우 구체적인 수준까지 문제 해결 과정을 파고 들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그래서 탐사 저널리즘이 될 수도 있고 데이터 저널리즘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고등학생들의 학교 중퇴를 막기 위한 노력을 취재한다면 실제로 어떤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게 어쩌다 한 번 가능한 변화였는지, 구조적인 변화가 가능한 것인지 등을 검증해야 한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독자들이 드라마 ‘하우스’나 ‘CSI 과학수사대’처럼 질문에 빠져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사를 끝까지 읽을 때까지 긴장을 놓치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넷째, 문제 해결이 기사의 핵심인가. 솔루션 저널리즘도 다른 저널리즘 취재 보도와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있고 이들의 도전과 실험, 성공, 실패로 기사가 구성된다. 내러티브가 호기심을 끌고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이런 내러티브를 극대화하는 전략 가운데 하나가 복잡한 문제를 규정하고 이 문제의 원인과 구조를 분석하고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을 풀어놓는 것이다.

다섯째, 문제 해결과 관련된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가. 기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무엇이 최선의 해법인지 판단하고 그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저소득 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정말 새로운 해법인가? 비용 대비 효율적인 방식인가? 현실적인 해법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설명은 근거다. 직접 사례를 제시할 수도 있고 데이터와 통계로 입증할 수도 있다. 그럴 듯해 보이는 해법이지만 근거가 부실할 수도 있다. 잠정적이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과장하지 않는 것이다. 근거가 부실하다면 부실한대로, 가능성의 차원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나중에라도 새로운 근거가 확보된다면 그 근거가 해법을 보완하는 것인지 부정하는 것인지 후속 보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여섯째, 한계를 설명하고 있는가.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야기할 때 계속 강조하는 건 완벽한 해법 같은 걸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해법에는 기회비용과 한계, 불확실성, 위험이 있다. 너무 많은 비용이 들거나 어쩌다 가능한 사례는 해법이 아니다. 어떤 특별한 조건에는 작동하지만 다른 조건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손에 잡히는 해법이 툭 튀어나온다면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가슴을 뛰게 하는 건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실패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지표를 확인하면서 한계와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솔루션 저널리즘 보도가 될 수 있다.

일곱째, 통찰력과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매력은 발견의 기회에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다. 독자들을 관찰자나 방관자로 내몰지 않고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끌어낸다.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통찰과 발상의 전환, 그리고 실험과 개선이다. 이를테면 한 병원에서 인공 호흡기를 부착한 환자들의 침대 높이를 적정 수준으로 높이도록 마스킹 테이프로 위치를 표시했더니 인공 호흡기를 통한 감염 사고가 줄어 들더라는 사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든다.

여덟째,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가장 큰 위험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단순히 따뜻하고 훈훈한 뉴스, 기분 좋은 뉴스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누군가를 치켜세우거나 특정 조직이나 기업, 정당 등을 추어올리는 보도는 해법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아홉째, 전문가가 아닌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용적인 통찰에 기반하는가. 교수나 연구원, 변호사 같은 전문가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부딪히는 사람들이 해법에 가장 가까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서 실용적인 통찰을 얻는 경우가 많다.

열째, 사람이 아니라 해법과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가. 부정 편향을 극복하자는 이야기가 밝고 따뜻한 뉴스를 따라 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사명과 거리가 멀다. 자칫 현실을 단순화하거나 왜곡할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조장할 수도 있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에 맞서고 있는지, 무엇을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데이빗 본스타인은 “솔루션이 아니면서 솔루션인척 포장하는 가짜 솔루션을 경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적당히 솔루션 저널리즘을 흉내내는데 그치는 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편집자 주.

이 글은 이정환이 쓴 ‘문제 해결 저널리즘’과 솔루션저널리즘리포트(solutionjournalism.kr)에 게재했던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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