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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box title=”편집자 주.”]이 글은 성균관대학교 교지 성균지와의 서면으로 진행했던 인터뷰를 추가 보완한 것입니다. 성균지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인터뷰는 지난 2월에 진행했고 이정환은 미디어오늘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su_box]

– 기후위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데도 언론에서는 그 중요성을 다루지 않거나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현실만을 언급하고 다음 기사로 넘어가기 바쁜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에서의 기후 위기 보도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기사를 썼는데도 여전히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면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죠.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거나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죠. 영국의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사람들이 뉴스를 기피하는 이유를 물어본 적 있는데 뉴스를 보는 게 너무 힘들다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저는 뉴스의 파편화와 의제의 실종이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산불이 꺼지지 않고 사상 최악의 폭염에 생물 다양성 붕괴와 식량 위기 등등 우리가 늘 보고 있거나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뉴스가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죠. 뉴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쏟아지는 뉴스가 맥락을 구성하지 못하고 공중의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도 ‘북극곰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1.5도를 잡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데 우리는 당장 뭘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1.5도는 이미 틀렸다는 분석도 나오죠. 언론 보도에는 공포와 냉소가 넘쳐납니다. ‘기후 피로감’이라는 말도 나오고요. 기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기사의 ‘타격감’이 없다는 반성과 함께 좀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찾아 나서게 되죠.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 기후위기를 알리고 해결을 이끄는 데 있어 언론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기후 위기는 지금 인류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가장 절박하고 심각한 도전입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조금 줄인다고 해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공동의 문제라는 걸 이해하고 함께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누가 비용을 치르느냐의 문제가 될 거고요.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뉴스를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뉴스를 보게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죠. 우리가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으면 계속해서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가 “기후 저널리즘이 ‘진짜다(It’s Real)’ 시대에서 ‘나쁘다(It’s Bad)’ 시대를 지나 솔루션의 시대에 들어섰다(the solutions era)”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30년 전에는 기후 변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뻥 뚫린 오존층과 녹아내리는 빙하를 보여주면서 이게 엄살이 아니라고 설득해야 했죠. 그리고 한동안은 얼마나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강조하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이제는 기후 위기가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얼마나 나쁜 상황인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히 나쁘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기후 위기를 해결 지향으로 다루자는 새로운 시도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기존의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 인식 때문입니다.

– 대표님께서 정의내리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무엇인가요?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하는 보도 기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Solutions Journalism Networks)는 “사회 문제에 반응하는 엄격하게 증거에 기반한 보도(rigorous, evidence-based reporting on responses to social problems)”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이를 테면 산업 재해로 죽는 사람이 한국에서 1년에 800명이 넘습니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이게 몇 년 전 한 신문 1면 제목이었죠.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비슷비슷한 사고가 언제나 언론에 넘쳐나죠. 그런데 작업장에서 사고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실제로 또 어떤 변화가 있어서 어떻게 사고가 줄어들었다, 이런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죠.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는 많이 보셨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꿀벌이 사라진다는 기사 못지 않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터키에서는 꿀벌 농가들에게 지원금을 줘서 숲속에 꿀벌들이 좋아하는 나무를 심는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수학여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기사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과적 문제를 단속하고 있는지, 이제 배가 가라앉게 되면 갑판 위로 올라가서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대응 매뉴얼이 바뀌었는지 등등에 대한 논의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고 우리는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관심을 잃게 됩니다.

간병 살인에 대한 기사가 많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지역의 소멸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강남과 강북의 교육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도심의 차량 진입을 줄이는 해법이 있을까요? 지방 소멸에 대한 기획 기사를 쓸 수도 있지만 실제로 지방 소멸에 맞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문제를 중심에 두는 것과 해법을 중심에 두는 것은 메시지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쪽방촌 르포도 좋지만 노인 주거에 대한 대안을 취재하는 것도 좋겠죠. 미세 플라스틱의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실천적인 해법을 이야기한다면 실제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대한 저널리즘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실험과 시도가 가능한가를 이야기해 보자는 거죠.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아닙니다. 해법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해법에 집중하는 저널리즘, 해법을 모색하는 저널리즘에 가깝습니다. 문제를 다루는 보도는 이미 넘쳐나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다루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입니다.

–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소개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들었을 때는 약간 몽상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에 미국 뉴욕에 컨퍼런스 취재가 있어서 갔다가 돌아오는 날 우연히 데이빗 본스타인을 만나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하다가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를 만든 사람입니다. 비행기 시간을 다섯 시간 남겨두고 맨해튼에서 본스타인을 만났습니다.

본스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정부패와 테러리즘, 범죄, 우리의 신뢰를 저버린 공공 서비스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고발하는 게 저널리스트의 책무죠.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야 한다는 거죠.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솔루션 저널리즘을 잘못 이해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듬해 본스타인을 한국에 초청해서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문제 해결 저널리즘’이란 책을 내기도 했고요. 지난해에는 해외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다루는 언론사들을 만나고 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습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실험과 시도도 늘어나고 있고요.

– 솔루션 저널리즘이 해외에서는 언제부터, 어떤 식으로 시도되어 왔나요?

데이빗 본스타인의 아이디어로 2012년 무렵부터 미국에서 유행처럼 확산된 개념이지만 사실 새로운 접근은 아닙니다. 문제만 들춰내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 보라는 독자들의 불만은 꽤 오래됐죠.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갈등유발형 저널리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공공 저널리즘이란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언론이 시민의 참여와 토론을 진작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관찰자가 아니라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는 이론이었죠.

공공 저널리즘 운동이 대중의 참여를 강조했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갈등 중심에서 해결 중심으로 뉴스 프레임을 전환하는 데 집중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언론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행동주의 저널리즘과 경계를 그어야 한다는 거죠.

유럽에서는 컨스트럭티브(건설적인) 저널리즘이란 개념이 좀 더 널리 쓰이는데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강조하는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자칫 문제를 소홀히 여길 수 있다고 보고 임팩트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실험하는 언론사도 있습니다. 문제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접근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담은 개념이죠.

– 기존 언론 보도의 한계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언론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를 해야 한다고 배워 왔는데, 이러한 기계적인 중립을 표방하는 언론의 역할을 넘어 해법과 행동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인데요.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게 중립적이지 않거나 객관적인 태도를 벗어나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감시와 비판, 언론 본연의 역할을 소홀해도 된다는 것도 아니고요. 언론은 질문하고 기록하는 게 일입니다. 문제 해결에 뛰어들라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하고 기록하라는 것이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육하원칙이라고 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이걸 중심으로 사건을 기록하죠. 그런데 솔루션 저널리즘에서는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보라고 합니다. 해법을 찾았거나 찾고 있는 사람들, 현장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문제를 가장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봐야죠.

제가 강의를 할 때 연못의 금붕어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연못에 금붕어가 죽어서 떠 있으면 금붕어가 어디가 아픈가? 하겠죠. 금붕어들에 무슨 문제가 있네, 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연못에 금붕어가 30마리쯤 죽어 있으면 아, 금붕어의 문제가 아니라 연못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문제의 현상을 보지 말고 구조를 읽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금붕어가 30마리 죽었다’는 게 사실이겠지만 실체적 진실은 아니죠. 사실을 건너 뛰라는 게 아니라 사실과 사실이 연결되는 맥락을 끌어내야 한다는 겁니다.

– 기후 위기 이슈에 솔루션 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사의 영향력을 통해 실제 문제 해결 과정을 알리며 이에 기여하려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기후위기 보도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예시가 있다면 함께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북극에 빙하가 녹아내린다는 기사를 많이 보죠. 사상 최악의 가뭄이나 홍수, 태풍에 대한 기사도 많이 봅니다. 기후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사는 많지 않죠. 무엇이 변화를 만드는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정치를 움직여야 하지만 정치를 움직이는 것은 시민들의 문제 의식과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티나 로젠버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크죠. 그럼 작은 조각으로 자르세요. 분리 수거 이슈도 있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도 있고 산호초나 생물 다양성 문제도 있고요. 수많은 작은 조각들이 있을 거고 각각의 데이터가 있습니다. 누가 더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여기에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고 분석하는 겁니다.”

한국일보가 히트 펌프를 대안으로 소개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2025년부터는 아예 가스보일러 설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가스 보일러 대신 히트 펌프가 결합된 전기 보일러로 바꾸면 탄소 배출이 30% 이상 줄어든다는데요. 문제는 히트 펌프가 가격이 800만 원쯤 한다는 겁니다.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아무리 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해도 멀쩡히 쓰던 가스 보일러를 갈아치우긴 어렵겠죠. 영국은 콘덴싱 보일러 보급률이 90%가 넘고 히트 펌프로 넘어가는데 한국은 아직 콘덴싱 보일러에 보조금을 주고 있습니다. 보급률은 30%가 채 안 되고요.

영국 런던의 도심 통행료의 실험도 흥미로웠습니다. 2003년부터 혼잡통행료 구역에 진입하는 모든 차량에 하루 15파운드(한화 2만4000원)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도로 주변부 대기오염이 44%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구역에 따라 최대 100파운드를 내야 하는데 배출 기준을 만족하는 차량은 수수료가 면제됩니다. 한국도 이런 거 도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네덜란드에서는 ‘역 혼잡 통행료’를 도입했습니다. 도심 진입에 혼잡 통행료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운전자들이 차를 두고 나올 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인데요. 하루 4유로, 한 달 40유로가 상한이고 5년 동안 1350만 유로의 예산이 책정됐습니다. 교통량이 6% 가까이 줄어들었는데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습관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78%가 차량 이용을 줄였다고 답변했고 38%가 이를 위해 출근 시간을 조정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는 재활용할 수 없는 가정 쓰레기는 모두 소각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열은 물을 데우는데 쓴다고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바이오가스와 생물 비료를 만들고요. 탄소 포집 공장도 건설하고 있습니다. 바다 밑에 오일 추출로 비어있는 구멍으로 이산화탄소를 밀어넣을 계획인데 이곳에서 1000년 이상 머무르게 된다고 합니다.

문제가 명확하고 대안과 해법도 눈에 보입니다. 당장 왜 우리는 이런 걸 못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방금 한 이야기에는 디테일이 빠져 있습니다.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게 무슨 해법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이런 거 우리도 가져와서 해보자 한다고 해서 바로 뚝딱 심어놓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 착오와 논란과 갈등, 토론, 그리고 누가 그 비용을 댈 것이냐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가능한 변화죠.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입니다.

– 한국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시도하는 언론사는 어느 곳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솔루션 저널리즘과 해결 지향의 취재 보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언론사는 아직 없습니다. 몇몇 언론사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긴 했지만 조금 범주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요건을 지나치게 엄밀하게 규정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단순히 해법을 찾는다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쓰면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표방하지 않더라도 문제 해결의 관점을 접근하는 좋은 기사들은 많습니다. 국제신문이 부산시 보수동의 대안 가족의 실험을 소개한 “생애 마지막 전력 질주”를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공동체의 붕괴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 문제를 해결했거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고, 만나서 물어보고, 이런 모델을 도입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실험하고 관찰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 기획 기사였습니다.

기후 위기를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접근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신문의 ‘H.eco’나 한국일보의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그린 워싱 탐정’, 한겨레의 ‘기후변화&’ 등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 솔루션 저널리즘은 그 이름 때문에 단순히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그 답과 답을 찾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실천이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다른 곳에서도 시도 가능한 ‘해법’은 단순히 돕거나 일회적인 문제 해결의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특히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소한 문제부터 다룰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천하려는 기자의 역할,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철저하게 근거에 기반한 보도여야 합니다. 적당히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명확하게 문제 해결의 인사이트를 끌어내고 그 아이디어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해법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설명해야 하고 그 영향을 데이터로 입증해야 합니다. 정말 뛰어난 아이디어는 근거가 부족해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언급하고 그럼에도 왜 이 아이디어가 뉴스 가치가 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한계를 지적해야 합니다. 완벽한 해법은 있을 수 없죠. 특정 지역에서 가능한 해법이 다른 지역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 차이를 지적하고 맥락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현장에 좀 더 깊게 뛰어들거나 개입하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를 테면 박근혜 탄핵 집회 현장에서 함께 구호를 외친다거나 하는 건 고민의 깊이가 깊지 않겠지만 페미니즘 이슈나 갈등 이슈를 다룰 때는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국 사태 같은 정치적 사안도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기자가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솔루션 저널리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실험과 시도를 쾌도난마의 해법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해결 지향의 접근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게 가능했는지, 왜 이게 해법이 될 수 있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죠. 다만 해결 지향의 취재 보도 역시 저널리즘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기사의 의도와 출처를 투명하게 밝혀야 하고 한계를 명확하게 언급해야 합니다. 지루하거나 느린 해법을 소홀하게 취급해서도 안 되고 ‘그린 워싱’이나 홍보 기사도 경계해야 합니다. 복잡한 해법을 복잡한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 ‘기레기’라는 말이 너무나 익숙하듯이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습니다. 한국 언론이 위기를 맞은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그리고 기자 개인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혹은 독자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뉴스가 너무 많고 진짜 좋은 뉴스를 찾아 보기 어렵죠. 온갖 낚시 기사와 이슈 어뷰징이 넘쳐나고요.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언론 보도, 정의와 진실을 명확하게 가를 수 있다는 이분법적인 태도가 오히려 언론의 불신을 부추기는 요인이 됩니다.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는 있지만 독자들 역시 우리편 언론을 찾아다니게 되고 생각이 다른 언론을 외면하거나 비난하게 되고 갈등이 격화되면서 오히려 실체적 진실에서 멀어지게 되죠. 토론이 이뤄지지 않게 되고요. 한국 사회는 지난 5년 사이에 이런 불신과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신뢰는 구축하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금방이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인터넷을 뒤덮은 자극적인 기사 사이에서 ‘좋은 기사’는 오히려 읽히지 않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부정성 편향에 있어 해법을 이야기하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어떨 땐 더 부정적인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여 무조건 밝거나 희망적인 기사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기사가 읽히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오랫동안 현장 기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언론사 경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기사가 읽히지 않는다면 그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닐 수도 있다, 좋은 기사라면 반드시 읽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죠.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더라도 꼭 써야 할 기사가 있지만 기사는 많이 읽혀야 힘이 생깁니다.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강력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100만 명이 읽으면 세상이 바뀝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 1000명만 읽어도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도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더 깊숙이 뛰어들고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그 과정을 추적하자는 제안입니다. 마법 같은 해법을 찾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찾아야죠. 솔루션 저널리즘을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찾는 걸로 오해해서는 곤란합니다.

– 솔루션 저널리즘이 한국 언론사에서 도입되기 힘든 이유가 ‘투입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신 적 있습니다. 이에 더해 기후 문제는 무엇보다 장기적인 시야가 중요합니다. 한국형 기후 저널리즘이 실행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투입 대비 성과가 낮기 때문에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기 어렵다고 어디선가 말했다면 제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여러 연구와 조사가 있었는데요. 같은 내용을 일반적인 스트레이트 기사로 쓰는 것과 해결 지향의 관점을 담아 쓴 것, 두 기사를 보여주면서 독자들 반응을 비교했더니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훨씬 더 기사를 오래 읽고 공유도 더 많이 하고, 관심이 있고 더 찾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이 기사에 돈을 내고 구독하고 싶다는 답변도 많았고요.

솔루션 프로젝트를 하려면 시간과 돈이 들죠.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문제를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들춰내지 말고 해법으로 가자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한 번 더 질문을 던지자는 거죠. 이런 접근이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될 거라는 제안입니다.

지난해 해외 솔루션 저널리즘 현장의 언론인들을 인터뷰한 결과, 공통되는 조언은 문제 해결 과정을 추적하되, 해결에 대한 강박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결을 지향하되, 섣불리 정답으로 건너 뛰려 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고 구조를 드러내는 질문과 탐색, 검증의 과정에 우리의 역량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는 거죠. 해결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는 건 솔루션 저널리즘의 목표가 정답을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잘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면서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깊이 추적하지 않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장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죠. 해법과 대안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데이터로 입증돼야 합니다. 한 번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구조 개혁을 끌어낼 수 있는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하고요. 실패의 경험과 위험 요소까지 충분히 담고 있어야 합니다.

기후 변화는 긴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 어느 이슈보다도 저널리즘의 힘과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사안이죠. 개인 차원의 실천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시민 사회의 압력도 필요합니다. 인류 공동의 절체절명의 문제에 맞서 문제 해결의 과정을 기록하고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고 저널리즘의 위기 해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후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의 만남이 자칫 재활용 분리 배출 같은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거나 탄소 포집 등 기술 낙관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개인적 실천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스템의 전환과 지구적 해법을 모색해야 하고 결국 교육과 토론, 정치적인 압력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추동해야 합니다.

– 사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디지털 매체 환경의 변화에 맞서 저널리즘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래 했어야 했던 저널리즘의 본질을 다시 실천하려는 시도인 것 같기도 하고요. 솔루션 저널리즘에 있어 매체 환경의 변화가 서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언론학자 캐서린 질덴스테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론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앞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하고 좀 더 나가 대안을 모색하고 의제를 제안하는 문제 해결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사실 요즘은 언론을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이 전달되는 과정에 주관과 판단이 개입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독자들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뉴스를 찾는 게 아닙니다. 뉴스는 어떤 경로로든 다가오게 돼 있죠. 우리는 뉴스 이면의 맥락과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관심은 당장 이 뉴스가 나와 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됩니다.

기후 위기의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사회 구조와 우선 순위를 완전히 다시 설계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에 대한 구조적인 질문을 시작해야 합니다. 속도가 아니라 깊이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고 어떻게 다르게 쓸까, 어떤 토론을 끌어낼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기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입 기자를 뽑을 때 늘 하던 이야기인데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다르게 생각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좋은 책을 추천해 줄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찾아야 합니다. 맥락과 통찰이 저널리스트의 경쟁력인데 그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10년에 걸쳐 조금씩 쌓아나갈 수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 보고 있겠죠. 어떤 사람은 헤엄쳐서 시야와 영역을 넓혀갑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때로는 내 능력이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절망하게 되지만 지금부터 노력하면 10년 뒤에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멈춰서는 안 됩니다. 기자는 대부분의 시간이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지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죠. 평생을 공부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면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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