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늘 시대의 화두였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검찰 개혁. 오히려 윤석열이라는 역사적 퇴행을 낳은 검찰 개혁 시도, 이번엔 성공할까? (⌚6분)

검찰 개혁해 보려다가 정권이 뒤집혔고, 검찰 개혁 놓쳤다가 비상계엄까지 봤다. 검찰 개혁 이제 진짜 좀 해보려니 수사 보완권 어쩌고 계속 시끄럽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고, 더는 관심 두기도 지겨워졌다면 도대체 남들은 어떻게 하나 슬쩍 기웃거려도 좋겠다.
“검사는 전시의 군대를 제외하곤 이 나라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입니다. 검사는 다른 어떤 집단과 견줘도 시민의 생명, 자유, 평판을 좌우할 더 큰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검사가 싫어하는 사람, 괴롭히고 싶은 사람, 사회적 혐오 대상인 집단 등을 고른 뒤 그의 혐의를 찾아내는 검사의 왕국, 여기에 검찰권 남용의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왕국에서 법 집행은 사유화됩니다. 실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대신 지배적 집단 또는 집권층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죄가 되고, 주류와 동떨어진 정치적 입장을 가진 게 죄가 되고, 검사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그의 길을 방해하는 게 죄가 됩니다.”
책은 한 연설로 시작한다. 요즘 누가 꺼내도 공감할 이 말은 1940년 미국 법무부 장관 로버트 잭슨이 연방검사 회의에서 한 연설이다. ‘검사의 왕국’을 경계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다르지 않다. 심지어 오래된 고민이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너무 강하며”, “정의 실현이 일이라는 이유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처럼 구는”게 검사라 개인의 선의에 맡겨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은 검찰 권력 견제에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검찰과 ‘또 다른 검찰’
검찰이 봐 줘서 불기소하면 ‘다른 검찰’이 나서는 게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과거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감추려 회삿돈 13만 달러(약 1억6900만원)를 주고 이를 법률 비용으로 거짓 회계처리를 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연방 검찰이 트럼프 눈치를 보다가 수사를 중단하자 연방 검찰에 양보하며 수사를 유보했던 맨해튼 검찰이 다시 나섰다. 맨해튼 검찰은 끝내 기소했고, 트럼프는 2024년 유죄를 받았다.
프랑스는 35개의 고등검찰청이 일을 한다. 상위 조직인 대검의 검찰총장에게는 검찰 지휘권이 없다. 대법 사건 공판에 관여하는 정도다. 단일 검찰 조직 대신 지역별로 35명의 검찰총장이 존재하는 셈이다. 더구나 10년 넘는 형에 해당하는 중죄를 기소하려면 반드시 예심 판사 수사를 거친다. 검사가 조사를 통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예심을 청구하고 예심 판사가 경찰을 지휘해 본격 수사한다.

어디든 이중 삼중 견제
미국에서는 법원도 특검을 임명한다. 검찰이 증거를 감추고 알래스카주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을 무리하게 기소한 사실이 2009년 드러나면서 난리가 났다. 법무부는 기소를 취소했고, 법원은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을 무효로 하는 동시에 ‘검찰권 남용’에 대해 직접 특별검사를 임명해 다 뒤집어버렸다. 법원이 법정 모독 행위에 대해 직접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덕분이다. 우리는 2009년 용산 참사 사건 재판 당시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 수사 기록의 4분의 1에 달하는 3,000여 쪽을 끝내 공개하지 않는 막무가내 검찰을 제재 못 했다.

검찰은 결코 절대적 조직이 아니다. 영국은 당초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가 없었다.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하다가 이를 분리해야 한다는 개혁 방안에 따라 1986년에야 검찰에 해당하는 기소청(Crown Prosecution Service)을 신설했다. 2000년에는 기소감찰청(Crown Prosecution Service Inspectorate)을 신설, 기소청에 대한 정기 감사를 강화했다.
미국도 법무부 안에 감찰관실(Office of Inspector General)과 법조윤리실(Office of Professional Responsibility)이 있는데 감찰관은 검찰총장과 거의 동등한 위상이다.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 얻어 임명하기 때문에 직제상 검찰총장 산하에 있지만 독립성이 보장된다. 감찰 결과, 신호위반 단속 때 검사 신분증을 내밀었다던가, 수사받는 친구 위해 서류 작업을 도와줬다거나, 사무실에서 개인 장비로 음란물을 봤다든가 사소한 비위도 모두 공개한다. 이와 별도로 법조윤리실은 수사 기소 과정의 법조 윤리 위반 행위를 신고받아 조사한다.
무죄 증거도 함께 찾아야 할 의무
수사 대상에게 유리한 증거는 슬쩍 빼놓는 검찰. 이것도 법으로 막을 수 있다. 프랑스 예심 판사는 ‘수사 대상자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와 함께 ‘그의 결백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수사할 의무를 지고 있다. 독일은 형사소송법에 “검사는 혐의 사실뿐 아니라 무죄의 사유도 조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무죄 증거까지 찾으라고 하는 마당에 이미 수집된 증거를 감출 이유도 없고. 모든 수사 기록에 대해 변호인 접근이 보장되기 때문에 증거 공개를 둘러싼 논란도 불필요하다.
시민도 견제할 수 있다
미국은 주요 범죄 기소를 시민들이 결정할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이 기소 타당성을 직접 조사해 결정하는 ‘대배심’ 제도다. 비공개라서 영화에 종종 나오는 법정의 배심원만큼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은 165개 지방 법원에 ‘검찰심사회’를 설치했다. 불기소 사건의 고소 고발인이나 피해자 유족이 신청한다. “민도가 낮다”는 둥 저항 탓에 구속력이 없었으나 제도 시행 50년 만에 2009년 기소를 강제하게 됐다.
검사가 나쁜 짓을 해도 쫓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 시민들은 19세기에 이미 주별로 검사 선거 제도를 도입했다. 검찰을 시민이 통제하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제도는 늘 완벽하지 않다. 현직 검사 재선 경향이 뚜렷해지고 자기들끼리 권력화하자 ‘진보적 검사 운동’이라는 개혁이 시작됐다.
2015년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시민단체와 손잡고 개혁 성향 검사 후보들에게 선거 자금을 기부했다. 기준도 구체적이다. 과도한 폭력을 행사한 경찰관은 엄벌하되, 빈곤과 연관된 사소한 범죄에 대해 불기소하는 검사다. 이민, 낙태 등 정치적 논쟁 사안에 대한 편향적 기소를 중단하겠다는 검사다.

사법부 개혁도 검찰 개혁과 같이 가야 한다
프랑스는 사법부를 빼고 행정부와 입법부의 2권 분립 체제란다. 사법부는 행정부에 속한다. 사법기관 독립성 보장은 헌법에 들어있지만, 법원 조직과 예산 등은 법무부 소관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함부로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했다.
유럽의회는 의원 불체포 특권에 대해 “행정부와 사법부 독단을 막는 것”이라 설명한다. 검찰뿐 아니라 재판하는 사법부도 정치인 처벌에 전횡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희대와 지귀연으로 상징되는 이 시대 타락한 법관들이 생겨난 데는 민주적 장치가 턱없이 부족한 사법 제도 탓이 크다”고 했다. 사법부 인사에 의회 등 선출 관력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법관을 선거로 뽑거나, 배심원으로 시민들이 참여하거나 방법은 여럿이다. 독일은 법관이 법을 왜곡해 부당한 판결을 내리면 처벌한다. 법관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한국 검찰을 어찌할까?
한국 검찰은 식민지 수탈 목적에 따라 구축한 일제의 형사사법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식민지 지배 효율성을 위해 검경 권한을 강화했고, 고문을 통한 자백 중심 수사가 횡행했다. 그들의 권력과 관행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김영삼 대통령 시절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당초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대통령의 재수사 지시 이후에야 뒷북 기소했고,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당시 어느 검사는 이렇게 토로했다.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
검찰도 한때는 부끄러움을 알았다. 1995년 김도언 전 검찰총장이 민자당 지구당 조직책에 내정된 이후 벌어진 일은 지금 보면 낯설다. 일선 검사들은 비분강개했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호소했다. 검찰총장의 정치권 직행을 막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이 법은 결국 위헌 결정을 받았는데, 당시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고한 소신’에 맡겼다. 그 결과, 검찰이 어떻게 정치세력화했는지 우리는 함께 목격했다. 검찰은 퇴행에 퇴행을 거듭했다. 대통령보다 탄핵이 더 어려운 게 검찰이고 개혁 시도를 물어뜯는다.

책은 세계의 검찰 견제 장치를 살피는 동시에 그게 없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온 국민 피가 거꾸로 솟구치게 했던 일들이다. 분노를 누르고 친절하고 쉽게 풀어준 저자의 노력이 각별하다. 법원, 검찰, 국회를 취재했고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지낸 저자지만 나는 그가 한겨레21 편집장으로서 썼던 글을 좋아했다. 유려하고 날카롭게 심연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스타일 다 버리고 ‘검찰’을 제대로 알리는 데 오롯이 집중한 글이다. 우리는 다 비슷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검찰이 개혁 발목 잡는 꼴 다시 안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