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보 빅텐트라는 달콤한 거짓말”이라는 조귀동(‘이탈리아로 가는 길’ 저자)의 글과 “민주당의 연합 위성정당 꼼수, 정의당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최병천(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이재명(민주당 대표)이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 선거법 개정 없이 47석을 모두 연동형으로 배분하는 구조에서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민주당은 비례 의석을 1석도 챙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2024년 1월 갤럽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각각 36%와 34%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태다. 2월 첫주 조사에서는 35%와 34%로 집계됐다. (‘기타’를 선택한 응답자가 20%가 넘기 때문에 실제로 선거에서는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 만약 4월 총선 정당 투표에서 민주당이 지지율 35%를 확보한다고 가정하면 지역구 당선자가 104명만 넘어도 비례 의석을 단 1석도 배분 받을 수 없다. 이것이 5년 전 민주당 주도로 만든 게임의 규칙이다.

멋지게 지는 방법.
-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안 만들고 원칙대로 민주당 간판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재명과 이탄희 등이 책임지고 비례 앞 자리 번호를 받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
- 국민의힘 위성정당이 15석 안팎의 비례의석을 확보하겠지만 민주당은 0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의 꼼수와 비교되는 원칙있는 패배, 이게 이재명이 말한 멋지게 지는 방법이다.

멋지게 졌을 때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
- 현실적으로 올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은 없다.
- 어차피 병립형으로 복귀하지 않기로 했다면 이재명은 두 가지 전략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 첫째, 민주당이 이기는 전략과
- 둘째, 국민의힘이 패배하는 전략이다.
- 둘의 차이는 15석 정도를 더 얻고 이기느냐 15석 정도를 잃고도 이기느냐의 차이다.

이것은 간단한 산수다.
- (비례 연동 의석 수)=(300×(정당 지지율)÷100-(지역구 의석 수))÷2.
- 이 (비례 연동 의석 수)를 정당마다 계산해서 모두 더한 다음 47석을 비율로 나누면 실제 정당이 가져갈 비례의석 수가 된다. (합치면 47석을 넘기기 때문에 한 번 더 비율에 따라 배분을 해야 한다.)
-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지역구 의석 수를 3으로 나눈 것 이상의 정당 지지율을 얻어야 비례의석을 1석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



- 만약 지역구에서 120석을 확보했다면 정당 지지율이 40%(=120÷3)를 넘겨야 비례에서 1석이라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정당 지지율이 이 정도로 높다면 지역구에서 120석 밖에 챙기지 못할 리가 없다.
-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얼추 35%의 정당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데 실제로 4월 총선 정당 투표에서 이 정도를 확보한다면 지역구에서 104석 이상을 확보할 경우 비례의석을 1석도 챙길 수 없다. 이게 연동형 비례제의 함정이면서 원래 취지다.
- 결국정당 지지율과 비교해서 지역구 의석이 적은 정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만약 지역구에서 1석 밖에 못 얻었는데 정당 지지율이 10%라면(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는 최대 15석의 비례의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 연동형 비례제는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대안이다.
- 이를테면 10% 지지율을 얻는 정당이 300석 가운데 30석을 갖게 만들자는 취지다. 군소 정당이 지역구에서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면 부족한 부분만큼 비례의석으로 채워주자는 방식이다.
- 그런데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으면서 30% 지지율을 얻는 위성정당이 등장하면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가 송두리째 무너진다. 연동형의 취지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이 30%라는 건 지역구와 비례의석을 합쳐 300석 가운데 90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는 47석을 다시 비율에 따라 나누기 때문에 이보다 줄어들겠지만 최대 20석 가까이 쓸어갈 가능성이 크다.
- 기득권 정당의 위성정당 창당은 연동형 시스템을 왜곡한다. 만약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이 지역구는 1석도 없으면서 30% 지지율을 확보한다면 분모를 키워서 다른 정당의 의석을 줄이게 된다.

지난 총선을 복기해 보자.
- 당장 올해 4월 총선을 예측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지만 지난 총선을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이해가 쉽다.
- 만약 국민의힘(미래통합당)만 위성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이 만들지 않았다면 민주당이 정당 투표 1번으로 투표 용지에 적혔을 것이고 상당 부분 표를 얻었겠지만 이 표는 100% 사표가 됐을 것이다.
- 그나마 지난 총선은 연동형 30석 + 병립형 17석이라 병립형에서 몇 석이라도 건졌겠지만 올해 총선은 47석이 모두 연동형이라 민주당은 1석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올해 총선에서는 개혁신당이 국민의당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고 민주당의 ‘비례 연합 정당’이 열린민주당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관건은 민주당 표가 어디로 빠져나가느냐다.
- 지난 1월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한 사람 가운데 26%가 정의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고 16%와 18%가 각각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 신당을 지지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이낙연의 새로운미래는 합당하기로 했다.) 중복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 세 가지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은 정당 투표에서 민주당을 찍고 나머지 절반이 빠져 나가는 경우다. 절반이 각각 정의당과 제3지대로 나뉜다고 가정해 보자. 민주당 지지율을 민주당과 정의당, 제3지대(열린민주당)가 각각 50:25:25의 비율로 나눠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 두 번째 시나리오는 어차피 민주당을 찍으면 사표가 될 거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0%만 남고 대부분 정의당과 열린민주당으로 각각 30%와 50%씩 분산되는 경우다. 20:30:50이 된다.
- 세 번째 시나리오는 위성정당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제3지대 정당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부분 빠져 나가는 경우다. 위성정당은 아니지만 위성정당에 가까운 효과를 만든다. 민주당 지지율을 민주당과 정의당, 열린민주당이 각각 10:10:80씩 나눠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어떤 경우든 국민의힘 위성정당이 19~22석을 가져가는 건 막을 수 없다. 다만 정의당 비례 의석이 5석에서 최대 12석(시나리오 1)까지 늘어날 수 있고 민주당 성향 신당의 비례의석이 3석에서 18석(시나리오 3)까지 늘어날 수 있다.
- 시나리오 1은 연동형의 취지에 따라 군소 정당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고 시나리오 3은 지금 민주당이 진행하는 통합형 비례 정당과 가까운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시나리오는 연동형 비례제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가정 가운데 하나일 뿐 이번 총선 예측과는 무관하다. 모든 변수를 반영해도 분명한 것은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진보정당과 제3지대의 파이를 잠식한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얻은 것과 잃은 것.
- 군소 정당이 지지율만큼 의석 수를 확보한다는 게 연동형의 취지라고 보면 지난 총선 때 정당 투표에서 11%와 7%를 확보한 정의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지역구 포함 16석과 11석을 확보했어야 했다. (연동률 50% 기준)
- 정의당과 국민의당의 비례 의석이 각각 5석과 3석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최소 10석과 6석을 양당의 위성정당에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 지난 총선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18석을 추가로 확보하겠지만 이 가운데 최소 15석은 정의당과 제3지대 정당의 몫을 가로챈 것일 뿐이다. 아무리 ‘비례 연합 정당’이라고 구색을 갖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 올해 총선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비례 연합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순간 진보 정당과 제3지대의 파이가 줄어든다.
분명한 것 세 가지가 있다.
- 첫째,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포기하더라도 그 18석을 전부 국민의힘이 가져가는 건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가 옮겨가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47석을 비율로 나누는 것이라 국민의힘의 비례 의석에 미치는 영향을 많아 봐야 5석 안쪽이다.
- 둘째,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큼 군소 정당의 파이가 커진다. 상당 부분이 이준석과 이낙연에게 가겠지만 녹색정의당 등 진보 정당도 살아날 수 있다. (정의당의 침체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양당 체제의 희생자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 셋째, 이번 선거는 양당 체제를 극복하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TMI.
- 연동형 시스템에서 지역구 100석이 넘어가면 비례 의석을 1석도 받을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지역구에서 120석을 확보하고 정당 투표에서 41% 이상을 얻으면 비례의석을 1석 이상 받을 수 있다. 130석이면 마지노선이 44%로 올라가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 만약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원칙대로 비례후보를 내서 1석이라도 당선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치 혁신이 될 것이다. 만약 이재명이 비례 1번으로 나서서 예정된 낙선을 하더라도 그 패배는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이재명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 “민주당 151석”을 목표로 내걸지 말고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 아래 제3지대와 폭넓게 연대할 수도 있었다. 이준석과 이낙연, 조국 등 제3지대의 확장을 민주당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 이번 선거가 양당 체제를 넘는 새로운 정치 혁신의 출발이어야 한다 프레임을 내걸 수도 있었다. 민주당의 집토끼를 지키면서 판을 키우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재명은 이런 통 큰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의석 수에 목을 매지 말고 윤석열 심판과 정치 혁신이라는 가치를 내걸었으면 완전히 다른 판이 됐을 것이다.
-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포기하면 정의당이 가장 큰 혜택을 본다. 위성정당을 내지 않겠다는 걸 전제로 과감한 정책 연대를 제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책 연대할 게 뭐 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재명 주도로 왼쪽의 진보당이나 녹색정의당부터 오른쪽의 이준석까지 반 윤석열 연대의 판을 키우는 전략이 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이낙연도 포용하고 큰 분란 없이 조국도 끌어안을 수 있다. 이재명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양당 정치를 깨고 대안 정당의 파이가 더 커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실제로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었을 거란 이야기다. 윤석열 심판이라는 가치로 승리하면 남은 3년을 이재명이 주도하는 그림도 가능하다.

전망.
- 멋지게 지는 게 아니라 지더라도 이기는 길이 있었지만 결국 이재명은 양당 체제의 기득권 구조에 올라타는 손쉽고 안전한 선택을 했다.
- 우리는 절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를 내지 않는 꼼수를 한 번 더 지켜봐야 한다. 수많은 떴다방 정당이 난립하고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아직 뜨지도 제3지대는 양당 체제에 포획될 가능성이 크다.
-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헤게모니가 강화되고 녹색정의당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선거를 치를 것이다.
- 어느 쪽이 이기느냐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 개혁의 열망을 무너뜨린 책임이 있는 거대 양당이 가장 큰 이익을 챙길 거라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양보하고 정의당을 키워주는 정치적 효과…그 끝이 ‘유호정’같은 어설픈 정치인이라도 괜찮은가요? 이 선생님의 어설픈 글을 길게 읽었네요. 한국정치는 결국 보수판이고 일부 게임정치임을 나이들어 깨닫고 경험적 진보를 추구하기로 했어요
다음 문장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지난 총선은 연동형 30석 병립형 17석이라 병립형에서 몇 석이라도 건졌겠지만 올해 총선은 47석이 모두 병립형이라 민주당은 1석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첫째, 지난 총선과 올해 총선의 방식은 완전히 같은 것 아니었는지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둘째, 문장 자체가… 앞 뒤가 안 맞는 듯 보입니다. 올해 총선은 모두 연동형…이어야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을지요? ^^;;
다음 문장은 잘못되었습니다. ^^;;;
‘그나마 지난 총선은 연동형 30석 병립형 17석이라 병립형에서 몇 석이라도 건졌겠지만 올해 총선은 47석이 모두 병립형이라 민주당은 1석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문장이 앞뒤가 안 맞다 싶어 찾아보니 지난 총선과 달리 이번 총선은 전부 연동형이라고 합니다.
민주당이 정의당과 국민의힘 의석 수를 늘려주는 선택을 하는게 무슨 이익이 있나요?
위성정당 자체로 짭짤하게 재미 좀 봤었죠. 이걸 전략으로만 보는 슬로우뉴스는 공정과 정의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그릇인가요? 위성정당이라는게 기만이고 기득권의 배만 불려주는 전략입니다. 이걸 불법으로 봐야지 용인하는 양당 자체가 썩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