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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관해서는 이제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표현이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이 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일본은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고, 경제와 문화면에서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피식민지배, 독립 이후에도 수십년 간 강력했던 일본의 영향력 등으로 좋든 싫든 질곡의 근현대사에 얽혀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은 한국에 무수한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관해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자 문화권의 전통, 근현대사, 대중문화 등 양국은 공유하는 것도 많지만, 동시에 양국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다. 마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천황과 쇼군으로 나뉘어진 이원화된 정부 체제를 해괴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신토 문화, 자민당의 장기 집권과 지역구 세습 문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되어 1958년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범' 기시 노부스케. 그리고 2012년 이후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형성해 현재까지 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되어 1958년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범’ 기시 노부스케(왼쪽). 그리고 2012년 이후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형성해 현재까지 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

나는 2015년에 3박 4일 동안 동경을 여행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여행 중 그리고 여행 후 일본의 이모저모에 관해 알아보면서 몰랐던 것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호기심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에 관해 ‘괜찮은 책’들을 읽으면서 공부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가 나타났다. 시중에 일본 관련 책은 많지만, 일본에 관해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초심자가 보기에는 어떤 책이 좋은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일본어도 못하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는 내가 일본의 일부분이라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골라가며 읽을 수 있었다.

최근 한일 무역갈등으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아마 일본에 관해, 특히 이번 이슈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일본 근현대사 문제에 관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 그런 분들을 위하여, 도움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일본에 관한 책들 중 재밌게 읽었던 것을 몇 권 소개해보고자 한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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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알림:

내가 추천하는 일본(에 관한 책) 목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 책들이 시기적으로 근현대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내 개인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일본 전근대에도 정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들을 찾아서 공부해보고 싶긴 하지만, 국내에 나온 책 중에는 내가 원하는 책을 찾기 힘들었다. 요즈음 일본을 이해하는 데는 신토에서 근원한 독특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굳어져가는지라, 전근대와 전통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밝힌다.

둘째로 이 책은 모두 영미권 학자나 언론인이 쓴 책들이다. 국내 저자나 일본 저자가 쓴 책들은 넣지 않았다. 그 이유는 먼저 필자가 영미권의 책들을 가장 즐겨 보는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또 다소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치중하는 면이 많은 한국 저자의 책이나 자신들 내부 논리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는 일본 저자의 책보다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일본이라는 다른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자 한 영미권 저자의 책이 독자에게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영미 내지는 서구가 일본과 동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편향도 없는 완전한 객관적 시선을 견지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예컨대 제국주의 국가였던 그들이 피식민 국가로서 한국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매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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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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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일본의 이해 – 던컨 맥카르고

 

현대 일본의 이해, Duncan McCargo 지음 | 이승주, 한의석 옮김 | 명인문화사 | 2015년 08월 05일 출간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92803816#N
현대 일본의 이해, Duncan McCargo 지음 | 이승주, 한의석 옮김 | 명인문화사 | 2015년 08월 05일 출간

펄그레이브 맥밀런에서 출판하는 ‘현대 국가와 사회(Contemporary States and Societies)’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된 책이다. 일본에 관해 전혀 지식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기에, 서구권 연구자들이 현대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대외관계의 핵심 이슈들을 망라적으로 훑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이 2010년대 초반에 나왔기에, 그 이후 전개된 일본 사회의 변화(예컨대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없지만, 일본을 바라볼 때 어떤 것이 쟁점이 될 수 있는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서론에 상술되는 일본을 바라보는 서구권 연구자들의 관점이다. 저자는 일본 연구에는 세 가지 관점이 경합해왔다고 이야기한다.

  1. 첫째는 주로 미국의 보수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전통주의’인데, 일본을 여느 서구 선진국과 다를 것이 없는 보편적인 틀에서 바라보려고 하며, 일본을 (미국이 키워낸) 아시아 민주국가이자 경제부국의 모범으로서 긍정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2. 둘째는 주로 일본과 미국에 비판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수정주의’로, 다른 서구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민당의 장기집권이나 낮은 여성의 지위, 산업에 대한 (비교적) 강력한 정부 통제 등을 근거로 일본이 무언가 왜곡되어 있는 면이 많은 국가라고 보는 시각이다.
  3. 셋째는 신토를 비롯한 독특한 일본 문화가 일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며, 일본의 특수성은 바로 이 문화에서 나온다고 보는 시각이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 세 이론이 각각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는지 소개해준다. 책을 다 읽고 스스로도 과연 어떤 시선이 더 맞는지 질문을 해보면 재밌을 것이다(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수정주의를 지지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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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근대 일본 – 이안 부루마

 

근대 일본, 이안 부루마 저 / 최은봉 역 | 을유문화사 | 2004년 04월 30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1382654
근대 일본, 이안 부루마 저 / 최은봉 역 | 을유문화사 | 2004년 04월 30일

언론인이자 역사가로 명성이 있는 이안 부루마가 쓴 짧은 일본 근현대사 책이다. 부루마는 막말(幕末; 바쿠마쓰, 막부 말기; 일반적으로 1853년~1868년의 15년을 가리킴), 메이지유신(1868)부터 55년 체제의 성립과 도쿄 올림픽(1964)까지 약 100년 간의 일본 근현대사를 핵심 위주로 간결하게 짚어서 설명해준다. 생소한 인물과 복잡한 사건 관계도 등으로 얽혀져 난해한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개략적인 타임라인을 잡기에 좋았던 책이다. 이안 부루마의 유려한 문체를 담아내지 못한 번역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

메이지 유신, 다이쇼 데모크라시, 만주와 중국을 향한 침략, 태평양 전쟁과 전후의 재건으로 이어지는 일본이 어떻게 물질적인 면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민주주의와 같은 면에서는 그토록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흑선(黒船, 구로후네)의 등장으로 시작하여, 저자가 직접 들은 구로후네에 관한 일본 노인들의 담소로 책을 끝내는 구성이 정말 큰 울림을 준다.

우라가에 내항한 흑선들, 오사이(1862-1880경 그림), 예일대학교
흑선 내항(黒船来航, 구로후네 라이코)은 1853년 가에이 6년에 미국의 제독 매튜 C. 페리가 이끄는 미국 해군 동인도 함대의 증기선 2척을 포함하여, 함선 4척이 일본에 내항한 사건을 가리킨다. 일본에서는 주로 이 사건에서 메이지 유신까지를 ‘막말’(막부 말기)라고 부른다(출처: 위키백과, 그림 출처: 우라가에 내항한 흑선들, 오사이(1862-1880경 그림), 예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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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 일본의 역사 (개정판) – 앤드루 고든

 

현대일본의 역사, 앤드루 고든 저 / 김우영 역 | 이산 | 2005년 04월 30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1489239
현대일본의 역사, 앤드루 고든 저 / 김우영 역 | 이산 | 2005년 04월 30일

막말부터 고이즈미 시대까지 근현대 일본에 대해 교과서스럽게 잘 정리한 역사책이다. 200쪽 남짓(229쪽)한 [근대 일본]보다는 볼륨이 커서 총 656쪽인데, 그래서 일본 근현대사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읽어볼만 하다. 특히 55년 체제의 성립처럼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다고 해서 책이 끝나지 않고, 고도 성장 시대와 버블 붕괴, 고이즈미 시대 등 ‘포스트 전후’도 마지막에 다뤄주는 점도 장점이다. 현재는 1권, 2권으로 나눠서 개정판(2015)이 나왔다.

물론 교과서답게 엄청난 서사적 재미와 감동은 없지만, 타임라인을 따라 일본이 걸어온 길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다른 책들을 읽을 때 자양분이 되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정치사 위주로 서술되는 다른 책과 달리, 노동사를 연구한 저자의 전공이 반영되어 아래에서 위까지 다양한 사회 계층의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점도 좋았다. 메이지 말기와 다이쇼 시대의 역동적이고 혼란하기까지 했던 사회문화, 전시 쇼와 시대의 발전상, 전후 경제 부흥과 사회변동 등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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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의 재구성 – 패트릭 스미스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 저/노시내 역 | 마티 | 2008년 08월 08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3031931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 저/노시내 역 | 마티 | 2008년 08월 08일

앞서 언급한 수정주의 시각의 대표적인 저서 가운데 하나다. 즉 저자가 느낀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정말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런 책이고, 그래서 원제목도 “일본: 재해석(Japan: A Reinterpetation)”이다. 정말 재밌게 읽었고, 일본 사회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던 책이었다.

저자인 패트릭 스미스는 각종 언론사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했고, 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도쿄 지국장을 맡기도 했다. 이 같은 경력으로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과 탁월한 이해, 유려한 문장이 합쳐진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1998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20년이나 더 지난 책이지만, 저자가 2008년에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하듯 ‘변화 속에 불변이 있고 불변 속에 변화가 있기에’, 여전히 일본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숙고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패트릭 스미스가 주로 겨냥하는 비판의 대상은 일본의 자율성을 빼앗아온 대신 그들을 모범적인 선진 민주국가로 추켜세우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다. 과연 일본이 미국이 주도하던 근대화의 최우등생이었나, 아니면 왜곡되고 기형적인 근대 사회로 미성숙한 공동체에 불과한가에 관해 후자의 주장을 강력히 피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 가면을 쓰게 강요하는 사회, 가혹한 노동, 도시와 지방의 기형적 관계, 억압적 교육, 여성의 지위, 재일교포, 부라쿠민, 이주민 등의 타자 등 수많은 영역을 망라하여 일본 사회를 해부한다.

비록 외부자이지만, 그러나 외부자이기에 오히려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애정을 조화시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개인적 체험과 일본 사회를 관찰하고 얻어낸 통찰, 다양한 출처의 자료, 때로는 미려하고 때로는 장엄한 문장 등이 하나가 되어 정말 재밌게 읽은 대작이었다. 다만, 서구권 저자다보니 일본에 대한 비판과 동아시아 문화권에 대한 비판이 구분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다(이를테면 교육 문제). 그점이 한국,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는 우리가 풀어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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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패배를 껴안고 – 존 다우어

 

패배를 껴안고, 존 다우어 저/최은석 역 | 민음사 | 2009년 08월 07일 http://www.yes24.co.kr/Product/goods/3496995
패배를 껴안고, 존 다우어 저/최은석 역 | 민음사 | 2009년 08월 07일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역사 논픽션의 대작으로, 역시 묵직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의 패전부터 1956년 ‘전후의 종식’까지 약 10여년 간 일본이 미군정 하에서 체험한 강렬한 전후 경험을 종합적으로 다뤄준다.

1부와 2부에서는 45년 패전 직후 일본이 겪었던 ‘참기 힘듦을 참던’ 극한의 상황과 불안하게 시작된 미군 점령군과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 민주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토론하며, 일본 사회는 변혁에 대한 기대로 활력이 돌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일상적으로 식량이 없어 미군에 대한 매춘과 밀수, 암시장이 만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퇴폐적이고 자조적인 ‘패전 문화’도 나타난다. 특히 사회 하부에서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암울한 현실이 종합되어 대규모 사회운동, 노동운동으로 출현하고 일본 공산당이 약진하게 되는데, 3부에서 이를 다룬다.

4부와 5부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GHQ(연합군 최고사령부; General Headquarters)와 일본 사회의 각계각층이 어떻게 대응했나를 주로 민주주의와 전범 처리 문제를 중심으로 다뤄준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평화 헌법’과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아직도 비판 받는 극동군사재판(‘도쿄 재판’)이 대체 어떤 식으로 등장했고, 이에 대해 평범한 일본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나를 보여준다.

마지막 6부에서는 미군이 물러가고 전시의 아이디어를 발판 삼아 경제대국으로 부흥하려 시동을 거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900쪽 벽돌책에서 쉴 틈이 없이 펼쳐진다. 천황, 엘리트, 레이테 해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병사의 이야기부터, 맥아더 원수부터 새로운 일본 헌법을 설계한 말단 실무자까지 위 아래를 폭넓게 오가며 전후 일본이 겪어온 길을 묘사하고, 이 10년이 향후 일본의 진로를 어떤 식으로 설정했는지 분석하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다만 아쉽게도 현재 품절 상태라, 도서관에서 구해보거나, 고가의 중고(현재 알라딘 중고 거래가 기준 10만 원~11만 원)로 밖에 접할 수 없다.

이 책은 현재 품절 상태로, 중고가로 구입하려면 10만 원 남짓을 줘야 한다. (출처: 알라딘)https://www.aladin.co.kr/shop/UsedShop/wuseditemall.aspx?TabType=1&ISBN=9788937482694&partner=noranbook
이 책은 현재 품절 상태로, 중고가로 구입하려면 19년 8월 22일 현재 10만 원 이상을 줘야 한다.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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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국의 기획 – 제니스 미무라

 

제니스 미무라, [제국의 기획]. 미무라는 2002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역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니스 미무라, [제국의 기획]. 미무라는 2002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역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후 놀라운 경제성장을 거둔 일본의 발전국가의 성격과 기원을 ‘테크노-파시즘’이라는 개념을 통해 추적한 책이다. 박사 논문을 개정증보한 책이기 때문에 문장이 조금 잘 안 넘어가지만 내용 자체는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착한 메이지 일본, 나쁜 쇼와 일본’이나 ‘사악하고 미쳤던 군부와 선량한 피해자인 나머지 국민’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30-40년대 일본이 겪어야 했던 국내외적 도전을 조망하고 당시 일본에서 새롭게 등장하던 ‘혁신관료’들이 이 도전에 응전하던 방식이 만주국과 일본 전시체제였다고 주장한다. 당시 메이지 시대에 형성된 엘리트들은, 세계주의를 지향하고 영미 해양 문명을 추종하였으나 법학을 주 전공으로 삼고 재벌과 결탁한 굉장히 고루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바야흐로 총력전과 대량생산 체제가 등장하며 산업합리화, 기획, 국토종합개발 등 새로운 도전이 세계 강대국 각지에서 제기가 되었으며, 이공계 기술교육을 받은 테크노크라트들은 향후 대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존 메이지 시대의 관습을 깨고 산업과 기술을 혁신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 경제, 사회 각계각층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 목소리가 만주국으로 응집되어 전시에 메이지 엘리트들과 부딪혔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전후 55년 체제에 이어 최종적 완성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진진했던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내가 이왕에 쓴 글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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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목록에는 넣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읽은 일본 관련 책들을 추가로 짧게 소개한다.

1. 메이지 천황 – 도널드 킨

명치천황, 도널드 킨, 다락원 (2002)
도널드 킨, 다락원 (2002)

한일합병 시기 일본의 천황이기도 했던 메이지 천황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에도 막부 말기부터 1912년 메이지 천황이 죽을 때까지, 일본 근대사의 가장 중요했던 시기들을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아주 상세히 묘사한다. 메이지 시대가 어떤 시대였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자 한다면 읽어볼만 하다.

다만 강력히 추천하지는 못하는 것이, 책에 몇 가지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1. 첫째는 메이지 천황이 책의 주인공이나 다름 없지만 정말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몰입하려면 상당히 많은 분량까지 읽어야한다.
  2. 그리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기에 아무래도 꽤나 많은 배경지식을 요하는데, 이 또한 몰입이 힘들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3. 또 아무래도 분석보다는 메이지 시대의 정치를 둘러싼 일화가 중심이 되다보니, 굳이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써야하는가 하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런 일화들을 통해 이 시대의 이모저모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명백한 장점이기도 하다.

2. 일본 발전국가의 기원과 진화 – 사사다 히로노리

사사다 히로노리, 한울(2014)
사사다 히로노리, 한울(2014)

재니스 미무라의 [제국의 기획]을 읽었다면 같이 읽어주기에 괜찮은 책이다. 이 책 또한 저자의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쓴 책이다. 국가가 경제에 강력히 개입하여 선도 산업을 밀어주는, 동아시아의 독특한 발전국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연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히로노리는 발전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당시 정책 결정자들의 ‘아이디어’에 주목하여, 그 아이디어의 발원지로 만주국과 일본의 전쟁 경험을 짚고 있다.

재니스 미무라의 경우 발전국가의 시원이라고 할만한 ‘테크노-파시즘’이 독일에서 받은 영향을 보여주는데, 이 책은 국가 주도 경제개발의 기원으로 소련이 가져다 준 지적 충격을 들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비슷한 주제를 역사학자와 정치학자가 다룬다는 점에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3. 변경에서 바라본 근대 – 테사 모리스 스즈키

테사 모리스-스즈키, 산처럼(2006)
테사 모리스-스즈키, 산처럼(2006)

저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이 책을 ‘일본사’나 ‘일본에 관한 책’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일본을 다룬다기 보다는,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근대화를 강제당했던 아이누인들과 오호츠크 원주민들의 체험을 다룬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이누인들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본 뿐 아니라 러시아 또한 굉장히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근대 국민 국가이자 제국이었던 일본과 러시아가 이런 변경의 민족을 대한 태도에서, 피식민자로서의 근대 체험의 보편성을 밝힌다는 기획으로 쓰여졌다.

누구나 알지만 또 잘은 모르는 홋카이도와 사할린의 역사, 특히 ‘일국사’에 의해 가려진 변경사라는 관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었고, 동아시아 근대사를 바라볼 때 러시아가 갖는 위상, ‘제국’으로서 일본의 위상과 그들이 바라본 ‘북방’의 이미지 등 재밌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았던 책이었다. 일본 제국과 마주하여 근대를 경험하고, 또 이후 독립 국가를 이루어 다시금 (내부적으로) 폭력적인 근대화를 진행하였던 한국인들도 이 책에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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