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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는 다양한 개성, 다채로운 의견을 환영합니다. 그래야 대화와 토론의 나무가 더 푸르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다루는 주제에 관한 다양한 대화와 토론, 기고와 의견 개진을 환영합니다. (편집자)

청와대에서는 이미 결정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담 참석은 아직 결정된 건 아니다. 오늘이 14일이니까 불과 열흘 남짓 남은 일정이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틀린 건 틀린 것이고,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부정할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고, 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아는 사람은 없다.

평범한 국민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와 최고 실력자가 잘 헤아려서 하는 결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지난 윤석열 대통령이 온몸으로 보여준 것처럼 많은 권력과 정보와 화려한 옷을 입었다고 반드시 더 현명하란 법은 없다. 게다가,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진짜 대한민국’이 막 시작하는 때고, 그런 점에서, 국민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권리니까.

첫 번째,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한다는 데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내란 혐의로 자칫하면 정당해산 결정을 받게 될지도 모를 국민의힘이 가장 시끄럽고, 여기에 더해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신문 등이 목소리를 높인다. ‘무슨 말이냐고, 이게 좌고우면할 일이냐고, 미국이 초청했는데 왜 안 가냐고, 참석해서 얻을 게 훨씬 더 많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반면에, 소위 진보 진영이라는 곳에서는 조용하다. 관료 중에는 ’자주파’로 분류되는 정세현(전 통일부장관), 이종석(국정원장 후보자), 김준형(조국혁신당 의원) 정도만 만류하는 분위기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잘 봐주면 ‘강 건너 불구경’이다. 굳이 왜 이런 풍경이 벌어지는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우선, G7 정상회의에도 참석하는 데 굳이 비슷한 무리가 모이는 나토에 참석하는 게 뭐가 문제이냐는 태도다. 약간 꺼림칙하긴 해도 윤석열 대통령 때부터 해 왔던 관례니, 지금에 와서 굳이 되돌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실용 외교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진영이든 권위주의 진영이든 진영을 가리지 않고 두루 참석하면 되지 딱히 까다롭게 편을 가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 역시 있을 법하다. 덧붙여서, 보수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국가 경제도 어려운데 이번 기회에 나토 회원국들에 군사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고, 이재명 대통령이 누구인가를 알리는 것도 국익 차원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번 나토 방문을 정말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해도 될까? 불구경이 좋은 유일한 이유는 ‘강 건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나에게 아무런 위해가 없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인데 정말 그럴까? 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애초 이 불이 어떤 성격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미 당사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몰라서, 다시 말해 너무 순진하거나 무식해서, 팔자 좋게 구경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지 한번 따져보자.

둘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대통령 후보 시절, 이재명이 말한 ‘진짜 대한민국’은 구체적으로 뭘까? 정확할지는 몰라도 몇 가지 공감대는 있다. 그중 하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복원하는 일이다. 윤석열을 정점을 한 ‘한 줌’의 권력 집단이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검찰과 경찰, 감사원, 법원, 그리고 끝내 군대를 동원해서 국민을 억누르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제멋대로 감옥에 보내고 벌을 주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내란, 김건희, 채상병 특검이 곧바로 시작되고 검찰과 대법원을 개혁한다는 것에 다수가 손뼉을 치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다른 하나는 ‘평화’다. 대외정책과 관련된 내용인데 미국과 일본에 편향되어 있으면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 필요 없는 갈등을 만들었다는 문제의식이다. 대통령이 바뀌자마자 북한을 겨냥한 적대 방송을 중단하고 북한이 이에 화답함으로써 파주 인근 주민이 간만에 단잠을 잤다는 게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대만에 대해서도 ‘셰셰’(감사 감사)라고 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실용 외교,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적과 친구를 구분하지 말고, 두루 잘 지내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남북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발언과 북한을 잘 아는 인물로 분류되는 이종석 씨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굳이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라는 말을 빼놓지는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나토 회담에 참석하겠다는 것도 이 다짐의 연장선이다. 문제는 이 길을 이미 윤석열이 앞서 걸었고 개척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논리의 연장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주적은 ‘권위주의 진영’이며, 그 숙주는 ‘종북세력’이고, 그 배후에는 ‘중국’이 있으며, 여기에 동조하는 우리 사회 내부의 ‘반국가집단’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친위쿠데타를 벌였다.

나토 참석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나는 달라. 나는 윤석열 대통령보다 훨씬 지혜롭게, 훨씬 영리하게 ‘ 잘할 수 있어. ‘윤석열은 불륜으로 끝냈지만, 나는 로맨스로 만들 수 있어’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혼자 김칫국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국과 전혀 상관없는 군사동맹인 나토에 참석한 게 2022년부터였고 이제 겨우 네 번째라는 것도 잊은 것 같다. 국가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에 ’대외정책‘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믿거나 그게 아니면 같은 궤도, 같은 열차, 같은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만은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리라.

물론 ‘눈에 띄는 결석,’ 다시 말해, 지난 3년간 꾸준히 참석하다가 갑자기 안 가면, ‘한국이 변했다’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컵의 물을 반이 찼다고 봐도 되고 비었다고 봐도 되는 것처럼 한국의 나토 출석은 ‘눈에 띄는 일탈’이었고 지금이라도 정상화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 미안,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어. 그래서 탄핵을 시켰고, 그래서 파면시켰고, 그래서 새 대통령을 뽑았어’라고 말할 기회인데 그걸 차버리는 셈이다.

세 번째 이유, ‘눈 가리고 아웅 한다’

많은 사람을 ‘잠깐’ 동안 속일 수 있다. 몇 안 되는 사람이라면 ‘평생’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을 평생, 오랫동안,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집단지성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내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혹은, 그 이전부터 윤석열과 그 주변 인물은 이런 평범한 사실을 모른 체했다. 세상에나, 자신만 똑똑한 것처럼, 그래서 세상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하거나, 국회의원을 ‘인원’이라고 했다거나, 두 시간짜리 계엄이 어디 있냐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다. 노루사냥에 눈이 먼 사냥꾼이 골짜기가 깊어지는 걸 모르는 것처럼, 그리고, 눈앞의 황금에 눈이 먼 도둑이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한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쓴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일군의 무리가 있다. 내란 동조 혐의로 자칫하면 해산될 처지에 놓인 ‘국민의 힘’과 근엄하게 국민을 훈계하는 데 앞장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국경제신문 등이다. 얼핏 보면 대단한 지식으로 무장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그릇된 신념이거나 거짓 선지자에 가깝다. 근거가 있냐고? 당연히 있다.

그 이유를 몇 개만 짚어보자. 그들은 대체로 나토에 참석하지 않으면 ‘눈에 띄는 부재’가 되고 그렇게 되면 ‘미국을 비롯한 나토 국가들은 이재명 대통령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러시아, 중국, 북한의 눈치를 본다고 판단할 것'(조선일보, 25/6/6)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한국이 나토에 참석한 건 2022년부터다. 윤석열이 대통령일 때, 다시 말해, 한미동맹에 모든 걸 걸면서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갈등을 빚기 시작했던, 동안 ‘계속’ 참가했다. 2023년과 2024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 상황은 분명 특별한 예외라고 봐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것도 일방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하는 분위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초대를 받았다. 미국은 물론 전쟁으로 곤경에 처한, 또 침략에 분개한 다수 유럽 국가가, 열렬하게 환영했다.

트럼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윤석열: (그 다음 날)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 선언(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사진은 트럼프(미 대통령 당선자)와 통화하는 윤석열. 2024.11.07.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3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윤석열을 초대했다. 2024년 3월, 한국은 의장국이 되어 이 회의를 주관하는 영광까지 차지했다. 나중에 국민에 의해 탄핵을 당하는 브라질의 보우소나로 대통령과 한국의 윤석열,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ICC)에 체포되는 필리핀의 두테르테 등이 민주주의 수호자로 초대를 받았다는 게 이 모임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잘 보여준다.

2025년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바이든이 물러나고 이 회의는 흔적도 없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라는 말처럼 한국은 미국만 바라보다가 낙동강의 오리알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애초 중국을 겨냥한다는 정치적 목적이 뚜렷했다. 참가자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골랐고 대다수는 마지못해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나토 참석이 정상이 아니라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일탈’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당연히 정상화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는 거다. 그렇게 해도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그간 많이 달라졌다는 것 역시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각종 제재로 당장 내일이라도 무너질 것 같던 러시아의 경제는 멀쩡하고 오히려 독일, 유럽, 프랑스가 더 난리다. 악마 러시아를 봉쇄하는 데 앞장설 것으로 여겼던 많은 국가에서 정반대의 길을 갔다. 러시아가 헐값으로 넘기는 원유를 재빨리 챙긴 대표적인 국가는 정작 나토 회원국이었던 튀르키예와 미국 편으로 분류되는 인도였다. 심지어 일본도 이렇게 할인된 원유를 한껏 수입했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어땠을까? 마침 탄핵당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면 지금쯤 우크라이나에 파병을 결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정원의 홍장원 차장이 우크라이나 정보국과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그 작업을 추진했다.

문제는 더 있다. 신뢰라는 건 항상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나토의 초청에 계속 응하면 그쪽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올 것이라고, 계속 우리 편에 남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협력 분야도 점차 늘릴 것이고 그 전선의 끝은 러시아다. 2025년 전황을 봤을 때 전쟁에서는 명백한 승리자다. 그럼 어떻게 될까? 한국은 밑 빠진 독에 물붓는 것처럼 패자(우크라이나)의 편에 서서 유럽과 함께 러시아와 맞서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토의 목표에는 분명하게 중국이 포함되어 있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한국이 나토에 참석한다는 것은 이 전선에서 한쪽 편에 서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시다. 이재명 대통령이 ‘아냐, 우리 속내는 그게 아니야. 우린 옵서버로서 초청에 단순하게 응했을 뿐이야’라고 변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러시아와 중국,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대다수 제3세계 국가로 구성된)가 이를 어떻게 이해할지 생각하면 된다. 그들 눈에 한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는 것으로 보인다. 나토 회원국이 아닌데도 회원국과 같은 행동을 하는 한국이 ‘앞으로 잘해 봅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믿을 바보가 어디 있을까?

보수언론이 엉터리 약을 팔고 있다는 세 번째 지점은 중앙일보 사설에서 잘 드러난다(25.6.13). ‘나토는 안보·원전·방산 외교의 장, 참석 안 할 이유 없다’라는 제목이다. ‘한국과 원전 협력을 기대하는 유럽 국가가 많다. 폴란드를 비롯해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K-방산 무기 구매를 원하는 동유럽 국가들도 다수 있다’는 게 근거다. 수출해야 먹고 사는 한국이 봤을 때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의 수출품에서 군수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한류를 이끄는 문화상품, 전자제품, 자동차, 의약품, 패션, 건설 등 ‘평화’ 산업의 비중이 훨씬 크다. 피 묻은 손으로 너스레를 떨면서 한국산을 사달라고 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굳이 남의 전쟁에 끼어들고, 그것도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 한반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해관계를 가진 강대국 러시아와 원수가 되면서, 군사 무기를 더 수출하는 게 무슨 국익일까?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죽음의 상인으로 찍히면 그게 득일까 손해일까?

넷째, ‘공짜 점심은 없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관계에도 늘 얻어먹기만 할 수는 없다. 누가 술을 한잔 사면 나도 한 잔을 사는 게 도리다. 그걸 모르면 민폐가 된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이 원칙은 더 엄격할 수밖에 없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초대‘의 정치다.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이 선뜻 참석하겠다고 밝힌 선진국 모임으로 알려진 G7부터 한번 보자.

G7에 누가 속할까? 원래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와 일본을 포함한 다섯 개 국가로 시작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합류한 게 1975년이다. 냉전이 끝난 뒤 러시아가 초청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한동안 G8으로 뭉쳤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하면서 자격을 뺏겼고 지금의 G7으로 돌아갔다. 한국이 옵서버로 이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는 건 그 자체로 영광인 게 맞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이 모임의 회원 자격을 누가 결정할까? 단순히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2024년 명목 GDP 기준으로 봤을 때 중국은 2위, 인도는 5위, 러시아는 9위, 브라질은 11위다. 한국은 그보다 못한 12위다. 중국, 인도, 러시아와 브라질은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이 채운 셈인데 그게 우연일까? 그럴 리가? G7의 경쟁자인 브릭스(BRICS), 즉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고려하면 그 답이 나온다. 겉으로는 단순한 선진국 협의체로 보이지만 브릭스와 경쟁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게다가 한쪽은 지는 태양이고 한쪽은 떠오르는 태양이다.

2023년 제15회 브릭스 서밋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 2-24년 8월 22일~24일. BRICS 2023 제공.

구매력 기준으로 봤을 때 브릭스는 이미 G7을 압도한다. 미국과 유럽 중심의 G7과 달리 브릭스에는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 베트남 등이 신규로 합류하는 중이다. 당장 2025년 1월 러시아에 열린 브릭스 회담에서는 벨라루스, 볼리비아, 카자흐스탄, 쿠바, 말레이시아, 태국, 우간다,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9개국이 협력 국가(Partner)로 초청을 받았다.

만약 한국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경제적으로 봤을 때 브릭스를 선택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 그런데 한국은 G7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한국이 봤을 때 G7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고, 브릭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을 수 있고, 또 G7에 이어 장기적으로 브릭스와 협력을 늘려갈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도 이것을 알기에 G7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럼, 나토는 어떤 상황일까? 잠깐만 과거로 돌아가 보자. 1949년, 이 군사동맹이 출범할 때 유럽에 없으면서 참가한 국가는 딱 두 곳이다. 그중의 하나는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밖에 없다.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독일군에 짓밟혔던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도 미국만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껍데기는 승전국이었지만 프랑스 역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쟁 초반에 독일에 항복했다가 영국 런던에 있던 망명정부를 통해 겨우 저항했고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승전국은 아니었다. 결국, 이 동맹의 핵심은 미국과 영국, 캐나다였다. 2022년 벌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 세 나라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상황을 잘 보여주는 단어가 ‘앵글로색슨권’이라는 개념이다. 인종으로는 앵글로색슨계에 속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종교로는 개신교를 믿고, 제국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국가들이다. 그들이 뭉쳐 만든 작품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정보 전쟁을 벌이는 파이브아즈(Five Eyes)다. 다섯 개의 눈이라는 뜻으로 여기에 ’호주‘와 ’뉴질랜드‘가 포함된다. 일종의 패밀리로 볼 수 있는 데 그 증거로는 1951년 체결된 군사동맹 ANZUS가 우선 꼽힌다. 호주(Australia)와 뉴질랜드(New Zealand)에 미국 (United States)가 합친 단어다.

북대서양방위조약(NATO)를 모방해 1954년 출범했던 동남아시아방위기구(SEATO)에도 이들이 있다. 동남아시아에 없는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파키스탄, 필리핀과 태국이 참여했다. 참고로 미국과 영국은 1955년 중앙조약기구(CENTO)라는 것도 조직했는데 참가국에는 튀르키예, 이란과 파키스탄 등이 있다.

한국이 어떤 연유에서 나토에 초청을 받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좀 둘러왔다. 이번에는 중국을 겨냥할 목적으로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고 있는 모임을 알아보자. 먼저 2021년 출범한 미국, 영국, 호주 간 군사 협력체인 AUKUS가 있다.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 일본과 독일을 협력 파트너로 초청한 것도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다. 2020년 1월의 일이다. 경제동맹으로는 한국, 일본,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14개국을 묶는 IPEF(Indo-Pacific Economic Forum, 2022년)와 Chip 4(미국, 한국, 일본, 대만, 2022년) 등이 있다.

2022년 한국과 함께 나토에 초청된 국가에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끼어 있다. 당시 나토 사무총장이었던 엔스 스톨텐베르그는 러시아를 ‘가장 심각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중국에 대해서는 ‘체제 도전자'(Systematic Challenge)로 규정했다. 중국을 악마로 규정한 근거에는 핵무기를 비롯해 군사력을 증강한다는 것, 자국민을 첨단 기술로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것, 대만 등 주변국을 위협한다는 것, 그리고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가짜뉴스를 확산한다는 것 등이었다(Aljazeer, 22/6/30).

이제, 왜 많은 국가 중에서 한국이 선택되었는지 따져보자. 정세현 장관이 말하는 것처럼 일본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설득력이 없다. 게임의 기획자는 미국과 영국이다. 일본은 장기판의 졸과 같은 존재로 패전국이라 군대도 없고 군사적 가치는 높지 않다. 한국은 전혀 다르다. 세계 6위의 군사 강대국이고, 60만 현역 군대가 있고, 작전권도 미국이 행사한다. 만약 중국과 미국이 부닥칠 때 한국은 엄청난 자산이다.

불확실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22년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제사회는 미국 달러의 위력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러시아를 처벌하기 위해 금융거래에서 일체 달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언젠가 이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는 결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중심에는 브릭스 있다. 앞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G7의 대항마로 브릭스의 세력은 확산하는 추세고 파트너가 되려는 국가는 꾸준히 늘어간다.

2001년 나토에 대항할 목적으로 설립된 상하이협력기구도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다섯 개 국가로 시작한 이 기구에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과 벨라루스도 가입한 상태다. 대화 파트너는 더 많은데 스리랑카, 튀르키예,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네팔 등 16개국에 달한다.

전쟁 직후 곧 붕괴할 것으로 예측했던 러시아가 오히려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현실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이번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만약 이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한 쪽으로 끝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쟁 막판에 굳이 패자인 유럽의 손을 잡는 게 옳은 결정인지 물어봐야 한다. 게다가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고 이 협정에 따라 북한은 이미 러시아로 전투병까지 보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조약에 대해 입장을 정해야 할 상황이다.

현지 시각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에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만나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사진은 TASS. 러시아정부.

결론은 뭘까? 한국이라는 항공모함이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다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한미동맹에만 의지하면 모든 게 해결되던 익숙한 바다는 이미 과거다. 나토와 같은 새로운 동맹을 통해 이 도전에 맞서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동맹은 ’적’을 공유하는 관계지 ’친구‘가 아니다. 불가피하게 공동의 적이 있어야 동맹이 유지되는데 필요하면 없는 ’적‘(또는 악마)을 일부로 창조해 냈다는 게 문제다.

냉전 때 그 악마는 소련이었고, 냉전 후에는 불량국가로, 악의 축으로,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등장했다. 한국이 봤을 때는 굳이 악마가 될 필요가 없는 중국인데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한국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반드시 진영 중 한쪽을 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3의 길은 없는 것일까? 만약 한국이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모두 얻고자 할 때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뭘까?

미국도 그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걸 잘 보여준 게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이다. 지난 6월 15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그는 한국에 대해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면서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공모함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장차 대만과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이 훌륭한 전술적 자산이 된다는 얘기다.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에도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이 상황을 ’인정‘한다는 신호가 된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볼 이유가 너무 많다. 대략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중국과 대립하는 데 있어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알렸다. 2022년부터 나토는 중국을 최고의 위협이라고 선언했고,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필요하면 전쟁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해 왔다. 그걸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하면 안 된다. 탄핵을 당한 대통령의 정책을 신임 대통령이 승계한다는 것은 이 모든 전제 조건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 연장선에서 한국을 대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에 감사한다.’

다섯, 시대에 대한 역행이다

대통령의 나토 방문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동맹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의 작품으로 알려진다. 국가 운영의 중대한 결정을 외부에서 모두 파악할 도리는 없으니, 추측만 넘쳐난다. 그러나 앞서 몇 가지 이유를 봤을 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실용 외교,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이라는 것도 맞다. 그런데 왜 정부는 ‘참가’로 방향을 잡았을까? 무슨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밝혔던 것처럼 미국의 은근한 압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우선 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노 대통령은 ‘만약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으면 제2의 IMF가 올 수도 있고, 북한에 대한 모종의 군사작전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한 압력이 가장 유력하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발을 빼고자 하는 미국이 혈맹이라고 봐 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봤을 때 아쉬운 건 한국이니까 주한미군을 철수한다고 하면 어떤 요구라도 수용할 것이란 기대가 있는 직하다.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순리다. 정부의 속사정이야 다 몰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나토 참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그렇지만 사정이 이렇다고 해도 지금은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 때다. 왜 그런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이미 있었다. 발단은 1969년에 발표된 닉슨 독트린이다.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미국은 승자가 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반전 여론이 높아졌고 무엇보다 명분 없는 전쟁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이런 배경에서 외교 정책의 전면적인 변화를 발표했다.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 ‘핵무기에 의한 위협을 제외하고 내란이나 침략에 대해서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해서 대처해야 한다’ ‘미국의 원조는 경제 중심으로 바꾸며 여러 나라 상호 원조 방식을 강화해서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 등의 내용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한국이었다. 베트남에 참전하면서 미국을 도왔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았다. 더구나 당시 남한은 북한보다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뒤지는 형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다급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도 빠지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미국은 이미 베트남에서 철수할 것을 결정한 후였다. 한국의 다급한 요청에 겉으로는 철수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도 미국은 제 갈 길을 갔다.

1970년 3월 20일, 국무장관 키신저는 주한미군 2만 명을 1971년 말까지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 닉슨이 탄핵에 앞서 자진 사퇴를 하고 등장한 지미 카터 행정부는 한 발 더 나갔다. 미국이 그간 전 세계에서 벌인 불법 행위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제3세계 독재정권에 대한 지원도 힘들어졌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23. 5. 27, – 2023. 11. 29, ) 사진은 흑백은 1970년대 중반 국무장관 시절 모습. 퍼블릭 도메인, 컬러 사진은 2016년 당시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1972년 유신헌법 등으로 혹독하게 인권을 탄압했던 박정희 정부가 표적이 되는 건 자연스러웠다. 주한미군 철수의 핑계로 한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고 박정희는 여기에 맞서 국방 자주화 등으로 맞섰다. 한미 관계는 더욱 악화했고 끝내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전두환 일당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모두 1979년에 벌어진 일이고 이듬해 광주 학살이 벌어진다.

1980년 11월 4일 미국 대선에서 카터는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 패했다. 이란 대사관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인 인질을 구출하지 못한 게 재선 실패의 원인이었다. 알량한 인권을 앞세우느라 미국의 자존심과 권위를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2025년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꺼내든 ‘위대한 미국’을 다시 만들겠다는 약속이 이때 처음 등장했다.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제3세계 독재국가의 인권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커크패트릭 독트린‘도 채택된다. 네오콘의 대모로 불리는 UN 대사 진 커크패트릭의 이름을 딴 전략이다.

공교롭게도 그 첫 번째 수혜자가 전두환 정부였다. 광주 학살로 정권의 정통성이 전혀 없었던 터라 어떻게든 미국의 눈도장이 필요한 상태였다. 주한미군 철수도 막아야 했다.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한국이 값을 치르는 게 정해진 순서… 그래서 한미연합사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협력해 반공 전초기지 역할을 떠맡았고 1983년 9월에는 KAL기 격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소련은 이 비행기가 첩보 활동을 한다고 의심했고 경고의 의미에서 민항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유럽에서 실시하던 대규모 군사훈련 (즉 팀스피릿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미국이 요구한 사항이었다.

1980년 초여름 전두환. ‘쓰리스타’로 진급해 보안사와 정보부를 장악했다. 사진은 김충식.

2025년 한국의 상황은 그때와 비슷하다. 미국 대통령은 레이건에서 트럼프로 바뀌었어도 주한미군 분담금을 늘리고 주한미군을 줄이겠다는 협박은 닮은 꼴이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 맞설 방법이 없으니 좋든 싫든 미국의 심기를 살피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 안보 라인은 나토 참석이라는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결정에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

그중 하나는 당시 전두환과 달리 이재명 대통령은 정통성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굳이 미국의 승인을 받을 이유가 없고 트럼프의 눈에 드는 게 오히려 세상 사람의 눈총을 받는 일이다.

1980년대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상황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198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GDP는 654억 달러에 불과했다. 지금은 1.7조 달러로 대략 25배 이상 성장했다. 세계 20위권에도 못 들었던 경제력 수준이 지금은 세계 11위다. 같은 기간 국방비는 2조 원에서 61조로 늘었는데 무려 30배다. 미국이 악의 제국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해 펼치던 냉전의 막바지에서 호위무사라도 해서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던 그때의 한국이 아니라는 의미다.

게다가 그때는 미국을 상대할 국가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벌어질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동맹국에 대해서도 관세 폭탄을 막 던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게 나눠 줄 당근도 별로 없다.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것처럼 미국은 벌써 부채가 되고 있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게 시대의 변화인데 이재명 정부는 그 흐름에 역행하려고 하는 중이다. 옛날처럼 미국의 협박에 무력한 상태도 아니고 설사 채찍을 맞더라도 그렇게 치명적인 것도 아닐진대 왜 알아서 기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바보야, 북한 때문이지. 핵을 가진 북한이 공격하면 속수무책인데 그걸 몰라?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북한의 핵이 겨냥하는 대상은 미국이지 한국은 아니다. 북한은 핵이 없어 미국의 침략을 받은 사담 후세인(이라크)과 콜 가다피(리비아)의 최후를 봤고 핵을 가져야만 미국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북한의 군사력이 위협적이라는 주장 역시 허점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2003년에 북한보다 매년 수십 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쓰면서 아직도 북한을 무서워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한 적이 있다. 단순히 GDP와 국방비만 비교해도 핵을 제외한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마지막 이유,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대통령의 임기 5년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더구나 이번 정부는 파면을 당한 대통령의 뒤처리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한편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든 국내 혼란과 비교했을 때 대외정책은 그나마 고쳐 쓸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 판단이 너무 성급하다는 점이다. 낯익은 길이고, 경험도 축적된 상태고, 이를 감당할 만한 인재도 넘친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안개가 자욱한 도로에서 미처 상황 판단도 하기 전에 가속 페달을 밟는 것과 같은 위태로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온 나토 정상회담에 이재명 대통령이 참가할 필요는 없다. 국내에서 수습할 일도 산더미고 대통령 본인이 말한 것처럼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다. 갑작스레 관세를 올려달라는 것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야 하고 내란 사태에서 드러난 남남갈등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한다. 먼저 집안일을 정리하고 난 다음에 바깥 문제를 다스린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굳이 서둘러 해외로 나갈 이유는 없고 그걸 공개적으로 탓할 국가도 없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 2019.10.30. © NATO.

밥을 급하게 먹으면 오히려 체할 수 있다는 상황이라는 것도 문제다. 2025년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엄중하다. 미국과 중국은 언제라도 부닥칠 기세다. 러시아 전쟁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고 중동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불붙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이 어떻게든 자기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가운데 브릭스로 대표되는 대안 세력은 새로운 질서, 즉 다자주의를 원한다. 쉽게 말해, 지금껏 미국과 일부 유럽이 마음대로 정했던 게임의 규칙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한다.

벌써 80년 전에 만들어진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도 해묵은 과제다. 당장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만 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과 러시아뿐이다.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인도나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브라질이 봤을 때는 낡은 질서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혼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IMF와 WB에 대한 불만 역시 꾸준히 쌓여왔다. 미국이 대외정책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이들 기관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게 안 되니까 등장한 게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이다.

불확실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22년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제사회는 미국 달러의 위력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러시아를 처벌하기 위해 금융거래에서 일체 달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언젠가 이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는 결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중심에는 브릭스 있다. 앞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G7의 대항마로 브릭스의 세력은 확산하는 추세고 파트너가 되려는 국가는 꾸준히 늘어간다.

푸틴과 시진핑. brics.org.

2001년 나토에 대항할 목적으로 설립된 상하이협력기구도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다섯 개 국가로 시작한 이 기구에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과 벨라루스도 가입한 상태다. 대화 파트너는 더 많은데 스리랑카, 튀르키예,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네팔 등 16개국에 달한다.

전쟁 직후 곧 붕괴할 것으로 예측했던 러시아가 오히려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현실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이번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만약 이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한 쪽으로 끝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쟁 막판에 굳이 패자인 유럽의 손을 잡는 게 옳은 결정인지 물어봐야 한다. 게다가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고 이 협정에 따라 북한은 이미 러시아로 전투병까지 보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조약에 대해 입장을 정해야 할 상황이다.

결론은 뭘까? 한국이라는 항공모함이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다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한미동맹에만 의지하면 모든 게 해결되던 익숙한 바다는 이미 과거다. 나토와 같은 새로운 동맹을 통해 이 도전에 맞서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동맹은 ’적’을 공유하는 관계지 ’친구‘가 아니다. 불가피하게 공동의 적이 있어야 동맹이 유지되는데 필요하면 없는 ’적‘(또는 악마)을 일부로 창조해 냈다는 게 문제다.

냉전 때 그 악마는 소련이었고, 냉전 후에는 불량국가로, 악의 축으로,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등장했다. 한국이 봤을 때는 굳이 악마가 될 필요가 없는 중국인데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한국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반드시 진영 중 한쪽을 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3의 길은 없는 것일까? 만약 한국이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모두 얻고자 할 때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뭘까?

2025년 한국은 이런 고민을 할 때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루아침에 쉽게 찾아질 수 없다. 절대적으로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변화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한편으로 우리의 역량에 대해서도 신중히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게 ’아는 길도 둘러 가는 지혜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니까 돌다리도 두들기면서 가는 게 더 좋다.

대통령의 나토 참석을 말리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너무 서둘러 결정해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우리에게 급하게 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데 괜스레 우리만 안갯속을 질주할 이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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