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스테이블코인, 혁신인가 새로운 화폐 권력인가. 스테이블코인 논쟁이 놓친 화폐 권력의 민주적 통제 문제에 관하여. (김민정/화폐민주주의연대 연구위원) (⏳4분)
누락된 질문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으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디지털 자산을 넘어 전통 금융 및 통화 시스템에 도전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저렴한 해외 송금, 자산 토큰화, 자동화된 거래 등에서 혁신적 잠재력을 지니며, 준비 자산 기반 발행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안정성도 갖는다. 그러나 현재 규제 논의에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
‘누가 돈을 만드는가. 그 돈으로 발생하는 이익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그리고 그 권력은 민주적으로 통제되는가?‘
이 질문 없이 스테이블코인을 논의하는 것은, 화폐의 본질을 외면한 채 기술만을 이야기하는 것에 가깝다.

이익 귀속 문제…화폐 권력의 재배분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다. 이용자가 법정 화폐를 맡기면 동일한 가치를 갖는 토큰이 발행되고, 발행자는 그 준비금을 국채나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운용한다. 이 구조는 사실상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대용 화폐’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 즉 시뇨리지(Seigniorage: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화폐를 발행해 얻는 이익)는 누구의 것인가. 현재 구조에서는 대부분 발행 기업의 이익으로 귀속된다. 과거에는 국가 또는 중앙은행이 행사하던 화폐 발행의 경제적 이익이, 디지털 환경에서는 민간 플랫폼으로 이전되는 셈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 이슈가 아니라 화폐 권력의 재배분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은 1:1 환매를 전제로 하지만, 이 약속은 신뢰에 기반한다. 시장 불안이 발생하면 이용자들이 동시에 상환을 요구하는 ‘코인런’이 발생할 수 있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는 이 위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붕괴하면서 수많은 이용자들이 손실을 입었고, 안정성이 설계와 신뢰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라 하더라도 준비금의 유동성과 자산 건전성이 훼손되면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 구조’이며, 이는 공적 규율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주요국은 이미 나섰다
최근 해외 규제 흐름은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한정할 것인지, 준비금을 100% 안전자산으로 제한할 것인지, 환매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등을 둘러싸고 의회 차원에서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핵심 쟁점은 투자자 보호를 넘어 금융안정과 통화질서다.
유럽연합은 이미 MiCA 규제(Markets in Crypto-Assets: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법)를 통해 발행 인가제, 준비금 요건, 공시 의무를 명확히 했다. 특히 대형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감독과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더 이상 단순한 핀테크 혁신이 아니라 ‘금융 안정과 통화 주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에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허용 여부와 규제 체계 설계를 둘러싼 정책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 경쟁력’, ‘글로벌 트렌드 대응’, ‘혁신 속도’라는 구호는 넘치지만, 정작 다음 질문들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통화 정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시뇨리지의 민간 귀속은 어떤 정당성을 갖는가.
- 위기 발생 시 손실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확산될 경우, 금리 정책의 전달 경로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통화 주권의 문제다.
일부에서는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은행 역시 민간 기업이며 이윤을 추구하는 주체다. 기존에도 은행의 예금화폐 창출 기능은 공공성과 통제 범위를 둘러싼 논쟁의 대상이었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시스템과 결합할 경우, 오히려 화폐 공급 구조의 민영화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발행 주체가 누구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권력이 어떻게 통제되는가다.
네 가지 통제 원칙
스테이블코인을 전면 금지할 필요는 없다. 결제 효율성과 기술 혁신의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혁신은 공공의 통제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첫째,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는 외국환거래 규제를 명확히 적용해야 한다.
- 둘째, 발행은 인가제 등을 통해 엄격히 제한하고, 준비금은 고유동·저위험 자산으로 제한해야 한다.
- 셋째, 준비금 구성과 운용은 투명하게 공시되어야 하며, 환매 절차는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 넷째, 향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의 상호운용성을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공공 화폐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 서비스이어야지, 그 자체가 새로운 사적 통화 체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미래의 화폐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화폐의 공공성과 민주적 통제를 오랫동안 강조해 온 고(故) 서익진 교수는 화폐를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민주주의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오늘의 논쟁 역시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돈을 누가 만들고, 그 이익을 누가 가지며, 그 권력은 누구에 의해 통제되는가. 디지털 화폐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혁신이 아니다. 더 책임 있는 혁신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결국 민주주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