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웃사이드] 한국에선 시설 유치를 경쟁하고, 탈락하면 지자체장이 눈물까지 흘리는 ‘인기 인프라’ 데이터센터. 왜 미국에선 주민 10명 중 7명이 반대하는 ‘기피시설’이 되었을까. ‘AI 시티’라는 빛나는 껍데기 속에 진짜 알맹이는 존재하는가.(⏰15분)
여는 말: 지혜로운 어리석음의 시대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1859) 중에서
나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단을 인용했다. 그때 인용의 목적은 끝내 좌절한 혁명과 혁명가에 대한 만가(輓歌)였다. 그 이름은 나리만 나리마노프다. 그리고 이달 초 이재흥과 두 번째 인터뷰 진행했다. 이재흥은 먼저 ‘두 도시 이야기’를 꺼내며 뉴욕과 해남의 서로 다른 AI 시티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모순이 없는 시대도 그런 나라도 그런 인간도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가장 빛나지만, 가장 깊은 어둠을 품은 나라, 도시, 사람들. 누구보다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경쟁이라는 강박 속에서 평생 비교하며 살다가 죽는 사람들. K 국뽕에 취해 사는 선진국이 됐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둠의 공화국. 전쟁의 참화를 악으로 깡으로 몸뚱이와 집착에 가까운 노력과 강박으로 이겨낸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로 내란을 시도하며 대기업이 나서서 ‘탱크데이’라는 엽기적인 마케팅으로 5.18의 역사적 상처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나라.
이런 모순의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AI다. AI를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매력과 놀라움 그리고 그 이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그 자체로 마치 한국이 품은 빛과 어둠을 닮았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사는 도시를, AI 시티를 만들어 갈까.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AI 시티의 모습을 이재흥(CTK 상임이사, 대통령직속 AI전략위원회 민간위원)에게 물었다.

이재흥의 ‘AI 아웃사이드’ [ep. 02]
AI 시티 만들기:
해남과 뉴욕, 두 도시 이야기
질문 정리: 민노
답변 퇴고: 이재흥
📢 2026년 5월 4일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했다.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의 행간으로 맥락화했고,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이재흥의 독백 문투로 정리했다. 퇴고 과정에는 이재흥도 참여했다.
뉴욕, ‘공익적 지배구조’ 엠파이어 AI
뉴욕주의 AI는 ‘엠파이어 AI’다. 트럼프가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민간 주도 AI 클러스터 건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대비된다. 아무래도 민주당 강세 지역, 민주당 주지사가 수성중인 특성이 반영됐다. 뉴욕의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이름을 빌려왔다.
엠파이어 AI의 가장 큰 특징은 공익적 지배구조다. 뉴욕주와 그 지역 8개 대학, 시먼스재단 등 비영리재단이 공동 컨소시엄으로 구축하고 운영한다. 핵심인 AI 데이터센터는 뉴욕주립대 버펄로 캠퍼스에 지었다. 초기 투입 재원 규모는 5천억 원 정도이고, 절반 정도가 인프라 구축, 절반 정도가 연구개발 및 스타트업 육성 지원에 들어간다.
벌써 의료 분야 등에서 고무적인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엠파이어 AI 컴퓨팅 인프라 지원을 받아 헬스케어 스타트업 ‘인스파이렌’은 AI모델 연구개발을 쉽게 할 수 있었고 덕분에 1억 달러라는 큰 투자를 유치했다. 이처럼 AI 컴퓨팅 자원들은 공익적 AI기업에 우선 제공된다. 그에 따라 창출된 기업의 이익이나 기술 로얄티 등은 다시 회수되기도 한다. AI개발과 발전에 따른 공유부 일부도 컨소시엄에 귀속돼, 궁극적으로 시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다.
같은 민주당 주지사가 버티고 있는 실리콘밸리 본산, 캘리포니아 또한 ‘엠파이어 AI’를 벤치마킹해 ‘칼 컴퓨터 (Cal compute)’ 라는 AI 허브를 구축 중이다.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지역 대학 컨소시엄의 공익적 지배구조다. 이곳은 AI의 대모로 불리는 페이페이 리 박사가 안전한 AI 개발 프레임워크와 정책 수립을 이끌어, 캘리포니아는 기술 규범에서는 뉴욕보다 앞서는 중이다.

해남, ‘민간 지분 70%’ 솔라시도 국가AI컴퓨팅센터
그러나 우리나라 해남에 건립이 확정된 ‘국가AI컴퓨팅센터’는 너무 급하게 추진된 감이 있다. 단순한 민-관 합작 SPC(특수목적법인)로 설립됐다. 윤석열 정부 때부터 추진돼 왔지만, 두 차례나 아무 기업도 응찰을 안 해 유찰됐고, 글로벌 AI 산업 경쟁이 불붙으면서 시급한 최우선 국정과제가 돼 지분율이 역전됐다. 처음에는 국가 지분이 7이었다. 그러나 최종 3차 입찰 때는 국가 지분이 3, 기업 지분이 7로 바뀌어 공고됐고 국내 클라우드 기업 다수가 구성한 컨소시엄 단독 응찰로 낙찰됐다.
현재 우리를 제외하고, 어떤 나라도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민간기업 지분 70%로 구축하는 나라는 없다. 프랑스 정도가 비슷하게 별도 법인을 설립해 추진하지만, 이 역시 정부 산하 공공기관 100% 소유다.
왜 이렇게 됐을까. 기존의 도시 기술인프라 정책, 특히 ‘유시티’ 때부터 시작해 ‘스마트시티’로 이어진 업계 관행을 답습한 측면이 강하다. 민간 기업이 도시의 IT 인프라를 짓고 난 뒤에 소유권도 가져가고, 사용료와 운영비 수익을 독점적이고 계속적이며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방식으로 그동안 추진된 결과다.
과거 스마트시티 때도, 클러스터 구축 사업은 IoT망과 데이터센터 등 핵심 인프라를 대부분 민간 기술기업이 짓고 전적으로 위탁운영 위임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정부·지자체나 산하 공공기관은 자체적인 기술 역량과 이를 컨트롤하고 운영할 내부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간 소유 지분이 80%가 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고, 그냥 100%인 경우도 많았다. 현재는? 그런 잘못된 첫 단추가 결국에는 여러 곳에서 다툼과 소송을 일으키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됐던 ‘맥쿼리’ 등 민간 자본 투자유치로 지어진 수많은 ‘민자 도로공사’ 갈등을 떠올리면 된다. 즉, ‘데이터-AI 도로공사’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통행료를 계속 시민들에게 유료 부과하고, 정부·지자체는 민간 기업에 수익 보전해 줘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이 정부 3, 기업 7인 것이다. 과연 공공복리를 위한 손실 감수나 지역 사회 공헌을 더 우선하는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기업 생리상 손해 보거나 이윤을 거의 안 남기는 의사결정을 내리면 모법인 배임이 될 것이고, 어느 시점에든 투자수익을 회수하려 들 텐데.
하지만, 해남 모델보다는 뉴욕 모델과 같은 공익적 지배구조가 앞으로 도시 AI 정책의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거버넌스는 내용물을 잘 담아내는 그릇, 옷과 같다. 공공 AI 거버넌스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 그래서 ‘스타게이트’ 방식보다는 ‘엠파이어 AI’와 같은 공익적 지배구조 모델이 지역의 공공 AI 프로젝트에는 현재 대세인 것이고, 앞으로 더 많아질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AI 데이터센터, 통계와 상생 모델의 부재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에 따르면, 전력 공급에 필수적인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계통 영향 평가를 면제∙제외할 수 있다. 왜? 빨리 지어야 하니까. 안정적이고 신속한 전력 공급도 핵심이라 국가가 해당 에너지 산업도 육성하도록 규정했는데, 여기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 기존 대용량 발전 원자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300MWe 이하의 전기 출력을 가진 소형 원자로)도 포함해 논란이다.
원전에 대한 안전 논란을 접어두고도 신속한 AI 데이터센터 건설 기조에 부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아직 완전히 개발된 기술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현장 도입까지 최소 몇 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2035년에야 상용화가 목표인 잠재 기술이다. 특히 이 두 가지, 영향 평가 면제와 SMR이 쟁점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6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이미 신속한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전력공급에 대한 대통령 언급이 있었고, 국회 과방위에서도 대정부 질의와 주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사회 공론화 숙의나 전문가 토론, 입법정책 연구를 통해 법안을 구체화하고 가다듬어 신속하게 입법했어야 한다.
하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시간을 허비한 뒤, 대통령의 질책과 산업계 우려가 이어지자, 부랴부랴 쟁점과 시민사회 반발이 예상되는 조항들을 지우거나 건너뛰는 특별법을 정부와 여당이 들고 나왔다. 오죽하면 같은 정부 부처인 기후에너지부도 강한 반대의견을 밝혔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통과된 법과 정책들은 발효되고 사람들이 체감하기 시작해서야 사회적갈등과 후폭풍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지속 가능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도 아주 미흡하다. 사회, 환경, 노동, 일자리 등의 문제를 포괄해 AI 데이터센터와 클러스터 조성 정책을 설계하고 운용해야 할 때다. 추가로 하반기에는 ‘국방 AI 법’ 도 국회에서 격돌 예정이다. 이제 정부는, 완전 자율 살상 무기 인간 통제라는 민감한 문제까지 더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하이퍼 스케일’ 데이터센터의 문제: 네이버 각
AI데이터센터는 두 시기로 나눠서 논해야 한다. 기준은 챗지피티 출시로 시작된 ‘생성형 AI’의 출현이다. ‘생성형 AI’ 출현 이후로는 ‘하이퍼 스케일’이 이슈다. 기존에도 클라우드 컴퓨팅과 AI를 위한 데이터센터는 필요했지만, 2022년 생성형 AI 출현 이후로는 그 규모가 기존의 스케일을 훨씬 넘어서는 대규모, 즉 ‘하이퍼스케일’이 필수가 됐다.
이 시기 우리나라 이정표가 된 사례가 네이버 ‘각’ 데이터센터다. 앞서 2013년 네이버가 춘천에 최초로 건설한 ‘각 1호’는 클라우드 전환기에 지어졌던 대규모 데이터센터다. 이때 시작한 대부분의 이슈와 갈등이 지금까지 반복해 온다.
춘천시는 처음에는 아주 환영했다. 지자체 입장에선 국내 대표 첨단기업의 필수 시설과 지역투자를 유치하는 셈이라서 토지도 싸게 제공하고, 인허가 절차도 간소화했으며, 세금까지 감면했다. 이렇게 지방정부가 손발 걷고 협력한 데에는 네이버 측이 단순 데이터센터를 넘어, 연구소도 함께 짓는 ‘복합클러스터’로 조성해 네이버 필수 연구개발 인력이 상주하고, 거기에 지역인재 신규 채용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 공헌(기금, 도로 건설, 교육 등) 사업과 투자까지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는, 처음 약속과 달리 연구 시설은 거의 없고 연구 상주인력은 열 명 남짓, 그저 ‘데이터센터’가 주축이 되는 건설사업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장밋빛 환상이 걷히고, 데이터센터의 발열과 소음 불만, 처음의 지역사회 공헌과 일자리 창출 약속을 지키라는 비판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IT 기업의 큰 데이터센터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춘천 ‘각 1호’ 이후, 네이버가 용인에 지으려 한 ‘각 2호’가 결국 용인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계획 단계에서 ‘무산’됐다. 이는 각 1호 이슈와 갈등으로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네이버 제2 데이터센터는 결국 세종시로 옮겨 왔다. 정부의 국가 스마트시티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새로 건설되는 신도시여서 정주민 반대가 거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각 2호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대 규모 하이퍼스케일 AI데이터센터로 (축구장 41개, 29만 4,000㎡ 부지)로 2023년 11월 준공해 가동 중이다. 기존 춘천의 6배 규모다.
소규모 데이터센터의 난립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문제가 된 시점부터, 수도권에 ‘중소 규모’ 데이터센터도 난립하기 시작했다. 클라우드에서 AI시대로 넘어가면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했고, 고속 성장하는 시장이 되자 많은 업체가 뛰어들었다.
특이하게 건설사들이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시공 역할로만 참여하다가, 노하우를 쌓고 시장성을 확인하면서 자체 기획 설계와 직접 분양까지 확장해 나갔다. 과거 ‘지식산업센터’를 분양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건설사들이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데이터센터를 경쟁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파주나 고양 등 서울 외곽에 일단 먼저 짓고, 사후에 모듈러 방식으로 분양에 나서며, 말 그대로 난립하게 된다.

중소 규모 데이터센터의 특징은, 일단 완공 전까지는 이 건물 정체를 지역민이 쉽게 알기 어렵다. 그리고 나중에 짓더라도, 임차 방식, 모듈러 방식으로 운영하기에 ‘대규모 전용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중소기업 클러스터 내의 필수 시설인 것처럼 포장된다. 환경영향평가나 전력 수급 계획, 냉각 용수 공급 계획도 짜임새 있게 수립하지 않거나 건너뛰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지역사회 공헌 계획도 없거나 부실하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짓다가 뒤늦게 지역 사회와 마찰과 갈등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데이터센터의 부정적 이미지 확산 주범이 되고 있다.
최근 대표 사례가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이다. 도시계획 심의위원회에서 두 차례나 반려되었고 한 번 더 반려되면 완전히 취소되는데도, 건설사가 조건부 승인의 핵심 조건인 ‘주민상생협의체’ 구성은 물론 대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행 건설사는 건축위 심의 하루 전날 주민대책위 대표를 고소하며 각을 세웠다. 지역 사회 공헌도, 마을버스 노선 몇 신설 제공하겠다는 정도 시늉뿐이고, 환경, 경관 훼손에 대한 대비나 보완책을 내놓지 않는 중이다.
과기부의 존재 이유
이 의제를 총괄하는 과기부는 과학기술 진흥 미션을 갖고 있고, 여기에 강점이 있는 조직이다. 역사적으로 지역 사회와의 상호 소통이나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이번 정부 들어 다시 과기부 장관이 부총리로 격상되고, 정책과 부처 조율자 역할이 부여되었지만, 그런 역할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국가AI전략위원회’라는 일종의 민-관 협업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강화하긴 했지만, 실무 집행은 결국 부처인 과기부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전반적으로 사회 정책 ‘버퍼링’이 생기고 있다. 어느 정도 예견된 문제에 가깝다.

AI 정책의 속도를 내는 건 필요하다. 나아가 절차를 축약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데이터센터 특별법처럼, 법정 필수 영향 평가를 없애거나 면책∙면제해 버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필수 절차가 5개라면 각각의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고 타협이 가능한 접근일 수 있다. 그러나 절차 5개를 3개로 줄여버리면, 사회적인 갈등 발생이 불 보듯 뻔하다. 아울러 사후에 사고나 피해가 발생할 때 국가 배상책임이 커지는 건 필연적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제기했던 기후 위기 위헌 소송이 대표적인 예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 29일,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 등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 위기 헌법소원 판결로, 정부의 부실한 기후 대응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역사적 결정이었다. 이처럼 추후 문제가 될 여지를 과기부도 점점 더 키우고 있는 듯해 정말 우려된다.
AI 교과서 사태의 추억
윤석열 정부 말기에 터졌던 ‘AI 교과서 사태’가 여전히 계속 반복되는 듯해 답답하다.
AI 교과서는 그전에 나름 학교 현장에서 잘 정착되어 가는 중이었다. 특히 장애인과 느린 학습자들에게 큰 도움이 돼 특수학급에서 그 실효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적인 에듀테크 소셜벤쳐기업 ‘에누마’의 경우, 자발적으로 이미 도입한 학교가 전국 1500개, 그 가운데 500개 가까운 곳이 특수학급이었다. 그런데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던 AI 교과서를,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전 연령 전 교과에 도입하겠다고 밀어붙이니 학부모가 반발하고 사달이 났다. 학부모와 교사 90%가 반대하는 역풍이 불어 결국 학교 현장에서 교과서 지위를 잃고, 교육자료로 격하됐다.

아무리 일부 효과가 현장에서 인정받았다 해도, 자기주도 학습 습관이나 또래 상호작용을 통한 발달이 중요한 비장애인, 입시 교육하는 학생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고, 아직 저학년생들은 과몰입 부작용 우려도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개선하거나 새로운 교수학습법들을 개발 검증해야 했는데, 일률적으로 도입을 의무화하면서 사달이 났다.
2조 원대 공교육 에듀테크 시장을 열기 위해 밀어붙이면서 큰 사회적인 혼란과 갈등 비용만 발생하고, 그간 쌓아온 긍정적인 효용들마저 소실하는 우를 범했다. 장애인들은 AI 교과서 검인증 기준에 ‘유니버셜디자인, 디지털 접근성 원칙’을 필수화하고 세부 지표를 개발하는 데 적극 협업해 왔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좌절이 훨씬 더 컸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고만 것이다.
난 데이터센터 반댈세! 미국 메인주 사례
아직 우리나라에선 지방선거 국면에서는, AI 데이터센터를 비수도권 주민들은 ‘호재’로 보는 시각, 여론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까지 국가 AI 컴퓨팅센터 유치를 두고 광주와 전남(해남)이 사활을 건 유치경쟁을 했는데, 경쟁에서 진 광주시장은 많은 지역민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반면, 유치에 성공한 전남도지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하지만 외국은 데이터센터 유치를 반대하는 지역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환경 훼손과 공해 유발, 전력 먹는 하마가 돼서 전기요금을 높인다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콜로라도, 뉴욕, 캘리포니아 등 여러 지역에서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여론에 호응해 이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법안이 통과되거나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미국 메인주에서는 의회 결의로 20메가와트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의 신규 허가를 2027년 11월까지 중단하는 법안(LD 307)이 통과했다. 이로써 메인주는 미국에서 전력 비용 상승으로 인해 데이터센터 건설을 멈춘 첫 번째 주가 됐다.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 과부하를 주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18개월간 신규 건설을 멈추고 영향을 조사한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더욱 근본적인 데 있다. 기본적으로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지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필요한지, 현황과 추계, 그런 기본적인 데이터 자체가 없다. 통계청에서 데이터를 집계하긴 하지만, 1차 자료 생성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특히 민간에서 난립 중인 중소 규모 ‘데이터센터’ 목적 설비 등은 공공데이터가 아니라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상황이고, 거기에 더해 기업, 지자체, 정부 부처 등의 집계가 제각각이어서 통합데이터셋이 부재하다.
그리고 데이터센터와 연계한 전력 수요는 ‘신고’나 ‘보고’만으로 단순하게 집계하는 정도다. 비유하면 데이터센터를 ‘가가호호 방문’해서 꼼꼼하게 조사하지 않는다.
외국도 비슷한 이슈가 있지만, ‘데이터센터 왓치’처럼, 풀뿌리 시민참여 공익데이터 플랫폼 등의 감시 시스템이 이미 활발해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시민 기술 그룹을 육성 장려하는 것도 우리에겐 중요한 과제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과도기이긴 하다.
그래서 특히 주무인 과기부의 ‘사회적 연결’ ∙정책 조정 역할 강화가 중요하다. 중앙 부처 단위에는 ‘과학기술 관계 장관회의’가 생겼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확장된 새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고, 너무 뒤늦게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강하다.
가칭 ‘AI 사회 혁신 담당관’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윤리적인 문제나 지역사회의 환경, 문화, 노동, 일자리 등의 문제. 이런, 기술과 사회가 부딪치는 접점을 관리하고 ‘협력적 거버넌스’로 이끌면서 새로운 융합 모델을 창출해 내는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청와대 AI 수석에도 가칭 ‘사회 혁신’ 비서관 신설을 통해, 시민사회 조율, 지역사회 조율, 거버넌스 조율 강화가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 집권 후반기에는 필수적이라고 본다.
지금은 AI 수석 산하에 ‘AI 정책비서관’과 ‘과학기술비서관’이 있고 기후에너지 비서관만이 있다. 과기부 밑에는 ‘인공정책실’이 있는데, 아직은 사회정책과 관련한 업무를 자신의 본령으로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고 전문성이 약하다. 청와대에는 ‘비서관’이, 과기부에는 정책실 밑에 ‘국’이 신설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지선 이후에 지자체도 본받을 수 있는, AI시티 롤 모델이 필요한데, 중앙 부처에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가 없고, 제대로 된 ‘시그널’이 없으면, 난맥상이 반복될 수 있다. 지역의 난개발 관성과 맞물려 시행착오가 반복될 위험이 있다. 청와대나 중앙 정부에 컨트롤타워와 참고할 만한 모델이 있어야 지방정부도 그 모습을 참고해, 자체 거버넌스와 정책을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소셜벤처 ‘별따러가자’의 시사점
‘별따러가자’는 정밀 IoT 모션 센서가 수집한 주행 및 충격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오토바이, 자전거, 킥보드 등의 사고를 예방 대응하는 소형 모빌리티 안전관리 AIoT 플랫폼을 제공한다.
앞으로 AI시티에는 ‘별따라가자’와 같은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동대표가 LG 출신으로 기술을 잘 알고 다루는 소셜벤처기업이다. 미션이나 창업 이유가 모빌리티 분야의 안전과 생명 보호인 기업이다. 공익적 AI 기업이라 할 수 있는데, 주식회사고 소셜벤처 ‘인증’도 받았다.
처음에는 은평구나 충남 예산 등 지방정부, 한국교통안전공단 같은 공공기관과 협업해 실증해 왔다. 그러다 최근에는 생명 안전 효용이 알려져, 드디어 ‘라이더 유니온’에서 연락이 와 협업이 시작됐다. LH와 대구광역시는 후속적인 실증과 적용을 함께 돕고 협업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이런 다종다양한 소셜벤처가 주인공이 되는 AI 시티가 되었으면 한다. 지방정부들이 AI 소셜벤처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하고, 이들과 협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AI 시티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런 수요와 필요를 위한 인프라, 정책 기획과 설계는 그다음이다.
이전 시대, 유시티, 스마트시티 때는 오히려 ‘정반대’ 순서였던 경우가 많았다. 목표와 사용처가 미정인 상태지만 일단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 ‘민간 위탁 공모’를 먼저 띄운다. 그다음 실증 사업 참여 기업을 모집하는 방식이었다.
실증 사업은 대부분 일회적인 시범 사업에 그치거나 후속 연계 및 확산이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결국 기술 인프라만 남는다. 유지보수 비용과 사용료는 매년 매월 계속 인프라 대기업에 지급되고, 생성된 데이터셋 등의 자원과 기술 발전의 혜택도 대기업 소유로 모두 귀속되곤 했다. 지금 추진되는 AI시티도 그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진 않을까 우려된다.

스마트 시티 따로, AI 시티 따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또한, 스마트시티와 AI시티 법 정책 체계의 이중화 난맥도 정리해야 한다.
기존에는 유시티 때부터 스마트시티로 계속 하나의 법을 개정해 나가면서 통일되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때문에 AI 도시는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면, 스마트시티법을 개정해서 AI시티위원회로 가야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새로 제정되고 발효되어, 이 법에 따라 국가AI전략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AI시티까지 다루면서, 일정한 이중화 중복 상황이 시작됐다. 기존 국가 스마트시티 위원회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투 트랙’으로 가고 있다. 정책의 효율성을 위해선 이런 부분의 조정이나 통합 과정이 필수인데, 그런 작업은 미흡한 상태다.
또 다른 예로 2020년에 국가정보화기본법에서 개정이 된 ‘지능정보화기본법’이 있다. ‘지능정보화’는 당시 AI를 우리말로 옮기고 기존 법 정책 맥락을 계승한 명칭이다. 문재인 정부 때 이를 전담하는 공공기관 NIA도 이름을 현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으로 바꾼 상태다.
그런데 이 법을 그대로 두고, 국가와 사회의 AI 전환을 총괄 규정하는 AI 기본법이 추가로 만들어져, 중복이 똑같이 시작됐다. AI기본법 상 모든 새로운 정책도 NIA가 총괄한다.
새로운 법을 만들어 힘 있게 신속하게 국정을 추진해야 하는 정부의 필요는 공감이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중복 난맥상을 ‘교통정리’하고, 사회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 총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현 단계에서 통합을 말하기는 성급한 면이 있지만, ‘교통정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교통정리가 시급한 이유 첫 번째는, 국가AI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볼 때, 기존의 시행착오와 성과, 맥락이 제대로 학습 계승되어 반영되지 않고, ‘단절’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시행착오를 딛고 피하는 게 아니라 반복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비판적으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러다 보면, 정책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거다. 그렇게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대표 사례가 ‘디지털포용법’과 디지털 포용 정책이다. 원래는 ‘지능정보화진흥법’ 가운데 장애인과 취약계층 등을 위한 포용 기술의 중요성이 커져 따로 확대해 만든 법이고 정책이다. 그래서 AI 기본법과 같은 날 국회를 통과했고 같은 날 발효됐다.
하지만, 장애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기술 정책을 포괄하고 확대 제정한 법인데도 불구하고 AI기본법에 비해 너무 앙상하다. AI 기본법은 모두의 관심도 모이고, 논쟁도 늘 뜨겁다. 그러나 디지털포용법은 제대로 힘도 받지 못하고,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정치권이나 정부,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법과 정책에 집중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단체와 당사자들의 불만과 소외감이 매우 큰 상황이다.
정치권의 관심, ‘한강AI’
그나마, 정치인 중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박주민 의원이 이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낙천하기는 했지만, AI 공약의 핵심을 ‘한강AI’라고 명명했다(뉴욕 ‘엠파이어AI’를 직접 벤치마킹하겠다고 선언).
당선되면, 서울투자공사를 설립해 인천 풍력발전 지분을 인수해 안정적인 재생 에너지원을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서울 소재 대학들과 서울시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AI데이터센터를 비롯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박주민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에 이은 민주당 제2대 기본사회위원장이고, 국회기본사회포럼 대표의원이라 이런 문제의식이 깊었고 또 공감했었던 듯하다.
더 많은 지방정부와 정치인들이 이에 관심을 두고 실제 모델을 구현하고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AI 인프라는 한 번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자산’이라서 되돌리기 힘들다. 공익적 컨소시엄이나 가치 지향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결국 관성대로, 기업 소유와 의도에 따라 거버넌스가 설계될 것이다.

해남과 뉴욕, 두 도시 이야기의 결론…
현재 출마한 지자체장 후보들의 공약 정책이 전체적으로 부실하다. 단독 입후보로 무투표 당선 예정인 지역구만 전국적으로 500곳이 넘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재명 대통령 인기와 국민의힘의 부진에 힘입어 민주당 강세인 흐름이다. 대부분 후보가 이재명 정부 정책을 그대로 복붙할 가능성이 큰데, 그렇기에 여전히 정부 정책 성찰과 개선이 중요한 과제라 본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정책을 좀 더 예각화하고 다듬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2년 차를 지나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70점 이상을 주고 싶다. 윤석열이 대한민국 경제를 나락으로 보냈기에, 경제 성장과 산업 반등을 위한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 R&D도 박살 냈었고. 그걸 빠르게 리바운드시켜 낸 이재명 정부 역량은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객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 가령, 콜센터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가 는다든지 하는 문제는 좀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직 여러 부작용이나 사회적갈등이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임계점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지만, 사회적갈등 쟁점 상황들을 마주하면 미뤄두거나 회피하다가 나중에서야 대통령이 지적하면, 부랴부랴 대응하고 무리한 면책 면제 특별법이나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부처들의 뒤늦은 반응도 좀 더 능동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