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칼럼 41화] 서복경(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이 우원식 국회의장의 개헌 제안에 시민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 (⏳5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2025년 4월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함께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내란 이후 123일 동안 마음 졸였던 시민들이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문을 곱씹어볼 시간도 갖기 전, 대선 투표일 공고도 나기 전이다.

휴일 낮 긴급 기자회견 형식으로 제안할 만큼 국회의장은 이 제안이 시급하고 중대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4월 6일 그의 기자회견에서는, 2024년 12월 3일 밤부터 12월 4일 새벽까지, 사안이 중대할수록 더 꼼꼼히 원칙과 절차를 지켰던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신 ‘급하면 바늘허리 매어 써도 된다’는 조급함만 보였다. 왜 그랬을까?

2025년 4월 6일, ‘여당’은 없다.

국회의장은 제안 발언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개헌 필요성과 대선 동시 개헌 국민투표에 대해 ‘여, 야 정당들과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 정치 언어에서 여당은 행정부 수반이 속한 정당이고, 야당은 여당이 아닌 정당이다. 4월 4일 11시 22분 우리나라 행정부 수반은 파면되었고, 지금 대한민국에 여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야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2024년 12월 3일 밤 위헌 위법한 계엄령 선포로 친위 쿠데타를 기도하다가 실패하여 파면된 자를 1호 당원으로 둔 정당과, 친위 쿠데타를 막기 위해 경찰과 계엄군을 뚫고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도착했던 국회의원들의 정당이 있을 뿐이다.

계엄 해제 결의안 투표에 압도적 다수의 국회의원이 참여하지 않았고, 친위 쿠데타를 시도한 자의 체포동의안 집행에 반대했으며, 증거인멸과 재범의 우려가 명백한 그자의 석방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내내 기각이나 각하를 요구했던 정당이 하나 있고, 시민들과 함께 국회와 거리에서 그자의 구속과 파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던 다른 정당들이 있을 뿐이다.

국회의장이 4월 6일 여전히 ‘여당’이라고 불러 주었던 그 당은, 헌법재판소가 “국민주권주의 및 민주주의를 위반했고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에 대해 부인했으며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했고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어,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결정한 전직 대통령과 123일 동안 운명을 함께 하기를 선택했던 정당이다.

12월 3일 이전 행위들은 제쳐놓더라도, 12월 3일 이후 그 당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위반한 자’의 편에 섰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 국회에는 친위 쿠데타를 지지했던 반체제 정당 하나와, 친위 쿠데타를 막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수호하려는 시민들의 편에 섰던 정당들이 있을 뿐이다.

국회의장의 제안에는 ‘시민’이 없다.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현행 국민투표법에 따라 개헌 국민투표 전에 38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곧바로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개헌안을 만들어 의결하면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서 38일을 더 당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흔하디흔한 프리젠테이션 발표 자료 하나 없이, 그저 말 몇 마디로 시민들에게 설명의 의무를 다하고 설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내란 이후 123일 동안 시민들은 계엄령 관련 헌법과 계엄법, 탄핵소추 및 탄핵 심판 관련 국회법과 헌법재판소법, 헌재 변론 과정에서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들이댄 온갖 가지 궤변 관련 형법, 형사소송법 조항 등을 이해하느라 뇌세포가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곧바로 개헌 관련 헌법 조항과 국민투표법까지 열공하라는 건 너무 무신경한 행동으로 느껴진다. 나만 그런가.

현행 헌법과 국민투표법에 따르면 개헌 절차는 발의와 공고, 국회 의결, 국민투표 4단계로 구성된다. 발의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가능하다. 지금 대통령이 없으니 국회 과반수 의결로 발의해야 한다. 발의되면 20일 이상 시민들에게 공고해야 한다. 국회는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의원 2/3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최소한 20일 공고한 뒤 60일 이내 의결하라는 의미는, 시민들이 헌법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고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국회가 그 의견을 듣고 수렴하여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서 최종 국민투표안을 만들라는 의미다. 국회가 의결한 안은 국민투표안이 되고, 대통령은 늦어도 국민투표일 18일 전까지 국민투표일과 국민투표안을 공고해야 한다.

국회의장이 말한 ‘38일’이란, 발의안 공고 최소 기간 20일에 국민투표일 및 국민투표안 최소 공고일 18일을 더한 기간이다. 즉, 지금 상황에서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민투표안을 의결하는 사이 시민들이 의견을 표명할 시간은 0일이어야만 가능한 계산법이다. 이 모든 걸 원내 정당들이 다 동의해서 개헌특위가 가동된다고 치자.

원내 정당들이 자체 개헌안을 이미 마련해 두었어도 4월 말까지 합의안 도출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당의 공식 개헌안을 결정해 놓은 정당은 없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각 당이 개헌안을 만들고 협상하고 합의해서 발의안을 만든 뒤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가능한가? 기자회견 내내 의장은 ‘이미 개헌에 대한 논의는 축적되어 있고 공감대도 폭넓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묻고 싶다. 대체 개헌 논의가 누구에게 축적되어 있는가? 누구와 공감대가 넓으신가?

우리 헌법은 전문과 10개 장 130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국회의장이 말한 ‘권력구조 개편과 연성헌법화’에 관한 내용은 제3장 국회, 제4장 행정부, 제5장 법원, 제6장 헌법재판소, 제8장 지방자치, 제10장 헌법개정 장을 아우른다. 이 어마어마한 내용을 단 ‘38일’ 동안 공고하면서 시민들에게 선택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의장이 말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한 안’에 대해 시민들은 그저 국민투표 용지에 찬반 표시만 하라는 것인가?

국회의장의 개헌 제안에 시민이 없는 이유

나는 국회의장의 기자회견에 여전히 ‘여당과 야당’이 있는 이유, 개헌안 발의와 공고, 투표의 전 과정에 ‘시민’의 자리가 없는 이유를 지금의 시대와 그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 지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불안한 시민들을 배려하지 않은 너무 급한 일정이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1987년에도 한 달만에 개헌을 했고 지금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지금은 1987년이 아니다. 오랜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던 시절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 하나로 합의에 이를 수 있었고, 목숨 걸고 독재 체제에 저항했던 야당 정치인들이 있었기에 나머지 개헌안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위임할 수 있었다.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보도사진연감.

지금은, 38년째 민주헌정체제를 유지해 온 시민들이 12월 3일 친위쿠데타를 온몸으로 막고 123일 동안 버텨 이 체제를 지켜낸 직후다. 지금 시민들이 합의하고 있는 것은 ‘하루빨리 내란 상태를 종식하고,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민주헌정체제를 재건해야 한다’는 것까지다. 그 이상의 합의가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대통령 중임제에 관해서는 폭넓은 합의가 있다’는 국회의장의 판단조차 ‘12.3 내란’을 겪은 시민들에게 승인받은 바 없다. 그런 합의가 있었다면, 그것은 ‘12.3 내란’ 이전의 일이고 당시 기준 ‘여당과 야당’만의 논의였을 뿐이다.

‘12.3 내란’ 이후 역사의 시간은 바뀌었다. 기자회견에서 의장이 말한 대로, 지금은 매체 환경의 변화로 누구든 시민들과 폭넓게 대화할 수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아직 각자의 안도 만들지 못한 정당들이 개헌특위를 먼저 꾸릴 것이 아니라, 현행 헌법의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먼저 시민들에게 내놓고 설명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맞는 순서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쓸 수 없고 ‘12.3 내란’ 이후 시대에 시민의 이해와 동의를 패싱해서 개헌을 이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 중꺾정 필자의 견해는 참여연대나 슬로우뉴스의 공식입장이 아니고 그 의견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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