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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3.0이 뭐야?

‘응, 그건 그냥 슬픈 코미디야.’ 

정부 3.0이라는 슬픈 코미디
정부 3.0이라는 슬픈 코미디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6월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정부 3.0 국민체험마당’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공공 정보와 데이터 개방은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융합하여, 새로운 서비스 창출과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5종의 국가 중점 데이터를 개방한 결과 연간 1조3,000억원 이상의 사회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 3.0은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해 공유하고, 기관간 소통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며, 투명하고 유능한 서비스 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2013년부터 역점 추진해온 정부 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

폼난다. 하지만 이런 자화자찬 코미디를 바라보는 심정은 민망하다기보다는 참담하다.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정부 3.0? 

정부 3.0?  ‘3.0’은 무슨 의미일까.

‘정부 3.0’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이 작년(2012년) 7월 11일이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후 (…중략…)  “일방향 소통의 정부 1.0을 넘어, 쌍방향 소통의 정부 2.0을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 행복’을 지향하는 ‘정부 3.0’ 시대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미디어스, 김철(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정부 1.0도 못하면서 정부 3.0 비전 선포식?’ (2013. 6. 23.) 중에서

정부 3.0 구글 검색 화면
정부 3.0 구글 검색 화면

그러니까, 정부 1.0, 2.0, 3.0은 각각 다음과 같은 의미다.

  • 정부 1.0: 일방향 소통
  • 정부 2.0: 쌍방향 소통
  • 정부 3.0: 맞춤형 소통

‘쌍방향’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지 국민 “개인별 맞춤 행복을 지향하는 정부 3.0 시대를 달성”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그 대표 사이트인 정부 3.0 사이트. 어떤 모습일까? 모바일로 들어가 봤다.

모바일(아이폰)로 본 정부 3.0 첫 화면. 그 흔한 '모바일 버전'도 없다. 그렇다고 반응형 웹도 아니다.
모바일(아이폰)로 본 정부 3.0 첫 화면. 그 흔한 ‘모바일 버전’도 없다. 그렇다고 반응형 웹도 아니다. 첫 화면 오른쪽은 화면을 넘쳐 잘렸다.

위 이미지는 캡처 이미지다. 그러니까 내 스마트폰 속 실제 화면이 아니라 확대된 이미지다.

정부 3.0, 모바일로 접근하다 

내 스마트폰 속 ‘정부 3.0’의 실제 모습은 아래 이미지에 가깝다.[footnote]내가 쓰는 아이폰 6S의 실제 화면과 최대한 유사하게 이미지 크기를 조정했다.[/footnote]

모바일(아이폰)로 본 정부 3.0 첫 화면. 그 흔한 '모바일 버전'도 없다. 그렇다고 반응형 웹도 아니다.
내가 쓰는 아이폰 6S의 화면 크기로 본 정부 3.0 사이트 첫 화면.

그러니까 미담 넘치는 ‘정부 3.0 국민체험마당’ 개막식 관련 보도를 접한 어느 국민이 있고, 문득 정부 3.0이 뭔가 싶어서 자기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열어 ‘정부 3.0’을 검색해 사이트를 방문하면, 위 보이는 깨알 텍스트와 홍보 이미지가 펼쳐진 화면이 ‘반갑게’ 맞아준다.

간단히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바일 화면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PC 버전 웹 페이지를 그냥 옮겼다.
  2. 첫 화면에 나온 메뉴와 정보을 ‘식별’하기도 어렵다.
  3. “국민 맞춤형” 정보는커녕, 일방적인 홍보 영상와 기관(장) 소개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했다.
정부 3.0 > 정부 3.0이란? http://www.gov30.go.kr/gov30/int/intro.do
정부 3.0 > 정부 3.0이란? (PC로 본 화면)
정부 3.0 > 정부 3.0이란? 페이지에서 우측 이미지만 따로 캡처한 화면. http://www.gov30.go.kr/gov30/int/intro.do
정부 3.0 > 정부 3.0이란? 페이지에서 우측 이미지만 따로 캡처한 화면. (PC로 본 화면)
정부 3.0 > 정부 3.0이란? (모바일로 본 화면) PC화면과 모바일 화면이 똑같다. PC로도 가독성은 그리 좋지 않지만, 모바일로 보면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맞춤형 정보'로 '모바일'을 수단으로 소통하는 게 정부 3.0이란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
정부 3.0 > 정부 3.0이란? (모바일로 본 화면. 아이폰6S)

정부 3.0의 소통 “수단(채널)”은 “무선 인터넷 스마트 모바일”이(란)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앞서 인용한 미디어스 2013년 기사 제목처럼, ‘정부 1.0도 못하면서 정부 3.0 ‘하겠다는 꼴이다. 대다수 국민이 자기 몸의 일부처럼 쓰는 스마트폰. 그 스마트폰 화면에 최적화한 UI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 3.0. 사이트. 이런 판국에 무슨 ‘국민 맞춤형 소통’을 하겠다는 걸까?

정부 3.0의 소통 채널이라고 정부가 밝힌 모바일로 “정부 3.0 활용하기”를 누르면, 인터넷 초창기에나 봤을 법한 사이트 맵이 역시나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크기로 방문자를 맞이한다. 나는 모바일로 정부 3.0을 훑어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정부 3.0 (첫 화면) > 정부 3.0 활용하기(메뉴)
정부 3.0 (첫 화면)에서 ‘정부 3.0 활용하기’ 메뉴를 누르면 이런 인터넷 초창기의 복고풍(!) 화면을 볼 수 있다.

정부를 개방하고, 공유하겠다는 걸까? 아니면, 국민들 시력 감퇴를 조장하겠다는 걸까? 아니면 ‘응답하라 1988’ 처럼 인터넷 초창기 모습을 복원해 그때 그 시절의 정서를 함께 느껴보자(복고풍으로 소통하자?)는 걸까? 나는 정말 할 말을 잊었다.

그럼 영국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모르면 배우고, 잘 배우려면 잘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영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설계 10대 원칙을 기억하는가?

영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설계 10대 원칙
영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설계 10대 원칙

영국 정부 사이트(gov.uk)를 모바일로 들어가 봤다.

영국 정부(gov.uk) 사이트. 스마트폰(아이폰6S)에서 본 화면.
영국 정부(gov.uk) 사이트. 스마트폰(아이폰6S)에서 본 화면.

단순한 텍스트 중심으로 구성된 화면이 나를 맞는다. 우리나라 공공 사이트의 특징인 현란한(?) 이미지 파일로 도배된 화면과는 대비를 이룬다.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다. 가독성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좋다. 동영상 홍보 이미지나 기관(장) 인사말 이미지와 같은 ‘불필요한’ 정보는 없다.

  1. 최소 문구의 텍스트로 구성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였고,
  2. 검색창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능동적 정보 검색이 가능하며,
  3. 시의성을 고려한 ‘인기항목’으로 ‘지금’ 필요한 정보에 좀 더 쉽게 접근할 확률을 높였다.

하위 메뉴를 누르면 어떤 모습일까? 영국 정부 사이트 첫 화면에 있는 ‘인기 항목'(Popular GOV.UK) 중 하나(Renew vehicle tax)를 눌러봤다.

영국 정부 사이트 첫 화면에서 '인기 있는 항목' 중 하나를 눌렀다. 이런 화면이 뜬다.
영국 정부 사이트 첫 화면에서 ‘인기 있는 항목’ 중 하나를 눌렀다. 이런 화면이 뜬다.

핵심 정보에 관한 개요가 정리돼 있고, 좀 더 구체적인 정보, 다른 방식의 정보를 원하는 이용자를 위해 관련 링크와 관련 전화번호를 표시했다. 대한민국 정부 3.0 모바일 페이지와의 차이를 비교해보기 나란히 올려본다.

정부 3.0의 민낯: 구경하거나 기념사진 찍거나

코엑스에서 열린 ‘정부 3.0 국민체험마당’ 네째 날(마지막 날). 전시장 한가운데는 200여 석 규모의 공연장이 마련됐다. 북을 두드리는 공연이나 군 의장대가 시범을 보이는 공연이 열렸다. 정면 무대 배경에는 “정부 3.0 국민체험마당”이라고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국민이 하는 일은 체험이 아니라, 그저 정부 3.0과 관련 없는 공연을 ‘멀거니 구경’하는 것이었다.

정부 3.0 국민 참여마당 (2016년 6월 22일 현장 모습, 서울 코엑스)
정부 3.0 국민 참여마당 (2016년 6월 22일 현장 모습, 서울 코엑스)

‘정부 3.0 국민체험마당’ 행사장에서 큰 인기를 모은 곳은 ‘스타포토 키오스크’.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합성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을 땐 스타포토 키오스크로”라는 선간판이 보였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2016년 예산안을 깃허브에 올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와중에 박근혜 정부는 정부 3.0 오프라인 홍보 행사를 하면서 국민 ‘맞춤형 서비스’로 대통령과의 합성 기념사진을 권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사진 찍기. 오래전 권위주의 시대의 관변 행사를 디지털 시대에 그대로 옮겨 놓은, ‘정부 3.0’을 상징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정부 3.0 국민 참여마당 (2016년 6월 22일 현장 모습, 서울 코엑스)
국민 맞춤형 서비스가 박근혜 대통령과 합성 사진 찍기? 정부 3.0 국민 참여마당 (2016년 6월 22일 현장 모습, 서울 코엑스)

한술 더 떠서 행정자치부는 오는 8월 출시가 예상되는 갤럭시 노트에 ‘정부 3.0 앱’을 기본적으로 탑재해 달라고 삼성전자에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문득 채플린이 우리네 인생에 관해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멀리서 보면 코미디, 가까이서 보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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