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는 지난달 30일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가 대우조선해양 주식회사(이하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한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고, 원청사업주가 하청사업주와 함께 성실히 교섭에 응해야한다고 판정했다.
얼핏 보면 원청의 하청노조와의 교섭의무를 인정한 당연한 판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하청근로자와 원청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이상’ 하청노조가 원청과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고, 파업도 할 수는 없다고 하여,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마음대로 쪼개고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중노위가 헌법 위의 기관임을 자처한 이번 판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하청노조는 원청에 다음과 같은 사항에 관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원청은 이를 거부했다.
- 성과급: 물량팀 포함 모든 노동자 지급
- 학자금: 일당제 노동자 포함
- 노조 활동 보장: 하청노조 사무실 제공 등
- 노동 안전: 하청노조의 원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여, 재해발생 시 하청노조의 사고조사 참여 등
- 취업방해 금지: 블랙리스트 부존재 확약 등
노동3권 축소, 무력화하는 중노위
경남지노위는 초심 판정에서 원청이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부당노동행위 구체신청을 기각했으나, 중노위는 향후 하청노조가 ‘노동안전 등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미치는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교섭을 요구하는 경우 원청사업주가 하청사업주와 함께 성실히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그러면서 “하청근로자와 원청 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이상 하청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하는 단체협약 체결권 및 단체행동권은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판정의 취지를 ‘선해’하자면, 하청노조가 원청사업주와 ‘대화’를 할 수는 있으나, 나아가 단체협약을 체결하거나 이를 위해 단체행동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노위는 이번 판정을 통해 노동3권을 형해화하면서 헌법 위의 기관임을 자처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고, 이는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단체교섭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임금 등 노동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헌법재판소 2011헌바53결정 등).
노동3권은 상호 유기적으로 노동조건 및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자 수단으로, 노동3권 중 어느 하나의 권리가 우선한다거나, 하나의 권리만 보장하고 다른 권리는 배제해도 된다는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문언상 분명하다.
헌법재판소는 최근에도 “단체행동권은 근로조건에 관한 근로자들의 협상력을 사용자와 대등하게 만들어주기 위하여 근로자들의 집단적인 실력행사를 보장하는 기본권”임을 분명히 확인했고(헌법재판소 2022. 5. 26.자 2012헌바66결정),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그 자체로 중요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작동해야하는 권리라는 점은 수많은 판결과 결정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대화’는 할 수 있지만, 단체협약과 단체행동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섭’은 할 수 있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고 이를 위한 단체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원청이 하청노조와 ‘대화’를 하기만 하면 그 의무를 다했다는 것이고, 하청노조는 원청과 ‘대화할 권리’만 갖는다는 것이다. 중노위는 무슨 권한으로 하청노조의 노동3권을 쪼개고, 원청의 의무를 덜어준다는 말인가.
한편 중노위의 판정은 그동안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온 사법부의 판단에도 역행한다. 법률상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의 상대방이 되는 사용자의 범위가 제한되어있는 상황에서, 사법부는 해석을 통해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넓혀왔다. 즉, 단체교섭 당사자인 사용자는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에 한정되지 않고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구체적․실질적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미치는 자로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2006노595판결 등).
법원은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실업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원청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거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해왔다. 그런데 이번 중노위 판정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적시하면서, 법원의 해석을 통해서나마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왔던 상황에 역행하였다. 이번 판정은 원청의 교섭의무를 인정하는 외관을 갖추면서, 정작 원청에게는 어떠한 의무도, 하청노조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판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중노위의 판정은 노조법 개정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헌법상 권리를 마음대로 잠탈한 중노위의 판정을 강력히 규탄하며, 원청이 사용자임을 확인하고 원청과의 관계에서 노동3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노조법 2, 3조 개정에 더욱 힘을 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