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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2월 15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주도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노동계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했지만, 국민의힘과 재계는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각각 노사갈등 비용 증폭과 경영 활동 위축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를 표하며 재계와 입장을 같이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월 11일부터 17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개 종합일간지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2개 경제일간지 지면에 나온 노란봉투법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재계와 노동계를 포함해 정부‧여당과 야권 입장까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인 만큼, 신문사나 필자 주장을 담은 사설‧칼럼은 신문별로 각 1~3건에 그쳤습니다. 보도 유형 대부분은 일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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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사연:
‘손해배상금’ 폭탄, 쌍차노조, 어느 ‘시사IN’ 독자가 보낸 4만 7천원

  • 노란봉투법의 정식 법안 명: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안
2013년 말 배춘환씨가 ‘시사IN’ 편집국에 크리스마스카드와 함께 보낸 4만7000원. 출처: 시사IN
  • 과거에는 월급을 현금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월급은 노란색 봉투에 담기곤 했다. 그래서 노란봉투는 월급을 상징했다. 특히 ‘노란봉투’는 지난 2014년 쌍용자동차 노조원을 돕기 위한 사회적 연대 캠페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쌍차 노조’는 2009년 77일간의 파업에 관해 약 47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2013년에 선고받았다(사측에 약 33억, 경찰에 약 14억).
  • 이 보도를 본 한 ‘시사IN’ 독자는 편집국에 4만 7천원을 보내왔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 10만 명만 모이면 쌍차가 판결받은 47억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를 전했다. 이 일화가 전해지면서 쌍차 노조를 돕기 위한 시민사회와 진보정당 등을 중심으로 하는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발전했고, 이 캠페인은 ‘노란봉투법’ 추진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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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보도, 55.2% 부정…매일경제 100% 부정

일반기사 46건의 노란봉투법 보도태도를 긍정, 부정, 중립으로 분류했습니다. 전체기사 중 부정이 55.2%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 재계 입장을 대변한 기사가 전체 중 절반 이상이라는 것인데요. 첨예한 찬반대립을 보이는 노란봉투법 보도에서 공정성 유지가 중요하지만, 기계적 중립도 지키지 못하고 절반 이상이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보도 태도가 긍정에 치우친 신문은 한겨레뿐입니다. 다른 신문에 비해 노동자 입장을 반영하고자 했는데요. 일방적으로 노동계 입장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노란봉투법 취지와 내용, 쟁점 사항 팩트체크 중심으로 보도했습니다. [“노란봉투법, 노사관계 파탄”?…“원청 교섭땐 쟁의행위 줄어”] (2월 14일 방준호‧장현은 기자)에서 한겨레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지닌 사용자와의 교섭을 법에 명시적으로 보장”하면 “원청 영향이 미치는 범위만 원청 책임”을 묻기 때문에 “(노란봉투법이) 원청에 책임을 지운다”는 경영계의 반대 논리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이, 어디까지 불법인가’”를 따져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촉발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기 때문에 “(노란봉투법이 노동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라는 반대 논리 역시 맞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경향신문은 긍정과 중립 비율이 각 50%였고, 한국일보는 부정 20%, 중립 80%로 다른 신문에 비해 중립적 태도를 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3개 보수일간지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2개 경제일간지 보도의 경우 절반 이상 많게는 전부가 부정에 치우쳤습니다. 특히 매일경제는 일반기사 4건 모두 노란봉투법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5개 일간지는 주로 노란봉투법 취지와 내용, 쟁점사항을 보도하기보다는 정부와 국민의힘,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조중동매한'(조선,중앙,동아,매경,한경)은 중립적인 보도가 필요한 ‘노란봉투법’ 보도에서 강자인 재계의 편에 섰습니다. 특히 매경은 특히 재계 입장만 대변했죠.

법안 취지 왜곡하며 재계 입장 그대로 전달

동아일보 [경제6단체 “노란봉투법 통과땐 노사관계 파탄날 것” 반대 성명서] (2월 14일 김재형 기자)는 경제6단체의 노란봉투법 반대 성명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매일경제[경제6단체 “노동조합법 개정안 폐기해야”] (2월 14일 정승환‧김희래 기자)도 반대 성명을 전달하며 “노란봉투법 재점화에 성명”, “법치주의 근간 훼손하고 노사관계 파탄 몰아갈 것”이란 작은 제목을 뽑아 재계 입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했습니다. 한국일보[“노조법 통과 땐 노사관계 파탄 올 것” 6개 경제단체 ‘노란봉투법’ 폐지 촉구] (2월 14일 박관규 기자)에서 경제6단체 성명을 전하며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 차이를 나란히 소개해 재계 입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한 동아일보·매일경제 보도태도와 대조를 이뤘습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다음 날인 2월 16일엔 기사제목만 봐도 신문별 보도태도 차이를 알 수 있는데요. 경향신문 [양대 노총 “의미 있는 진전”…경총 “국민여론 무시한 불법파업 조장법”] (김지환 기자)은 노란봉투법 통과에 따른 노사 양측 의견을 고루 전달했고, 한국일보 [노조 상대 손배 일부 제한 ‘노란봉투법’ 소위 통과] (이성택‧우태경 기자)는 법안 통과 사실만 건조하게 전달했습니다.

반면, 동아일보 [“산업현장 불법파업 늘어 투자-고용 위축” 경제단체 일제히 ‘노란봉투법 의결’ 우려] (구특교‧한재희 기자), 조선일보 [야 노란봉투법에…재계 “불법파업 조장, 경제 악영향”] (곽래건‧박상기‧주희연 기자), 중앙일보 [거야, 입법 독주 이번엔 노란봉투법] (나상현‧정용환 기자), 매일경제 [‘파업조장법’ 결국 강행 노조 편승 거야의 독주] (김희래‧이종혁 기자), 한국경제 [거야, 노란봉투법 결국 강행…경영계 “무제한 파업법”] (이유정‧양길성 기자)은 일제히 재계 입장만 대변했습니다.

큰 제목에서부터 “불법파업”, “파업조장법”, “무제한 파업법” 등 표현으로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조장법’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법안 취지마저 왜곡한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협력업체 노조가 삼성 상대로 파업 가능…“무분별한 요구 줄이을 것”] (2월 17일 곽래건 기자)에서 재계와 정부 입장에서 노란봉투법 문제점을 전달하는 한편, [재계 “쟁의 대상 확대…파업의 일상화 우려”] (2월 17일 이정구 기자)에서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이 반드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재계 요구를 대변하기까지 했습니다.

노란봉투법 입법 정체 속 노동자 고통 지속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2009년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77일간 평택공장 점거파업을 했습니다. 파업 당시 노조를 ‘불법 폭력집단’으로 규정한 사측, 노조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경찰은 파업 종료 후 해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3년 11월 29일, 1심은 해고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약 4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판결 이후 시사IN에 두 아이의 엄마 배춘환 씨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 “듣고 보도 못한 돈(47억원)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 명이면 되더라”며 노동자들의 월급봉투를 상징하는 노란봉투에 4만 7천 원을 담아 보낸 것입니다. 배춘환 씨가 보내온 4만 7천 원을 시작으로 모금 캠페인 ‘노란봉투 프로젝트-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 7000원’이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당시 노동자 파업을 이유로 기업이 과도한 손해배상을 요구해 노동3권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도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해당 법안은 발의에 앞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을 담아 ‘노란봉투법’으로 불리게 됐는데요. 제19대 국회에서 2015년 처음 발의된 후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고, 제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지난해 4월 20일부터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가 국내에서 발효되면서 정부는 노조법 제2‧3조를 ILO 취지에 맞게 개정, 즉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협약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지만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노란봉투법 필요성과 시급성을 알리는 사건은 또다시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51일간 파업을 벌였는데, 대우조선해양이 파업 종료 후 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언론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노란봉투법은 재계와 노동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입니다.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갈리는 문제를 보도할 때 언론은 양측 입장을 균등하게 전달하며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대립하는 양측이 가진 사회‧정치권력을 무시한 채 중립을 지키는 것은 기계적 중립에 해당하며 공정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 대원칙이 있습니다. 언론보도에도 대원칙이 있습니다. 언론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은 “언론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그들이 차별과 소외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도적 권리 보장을 촉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권보도준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 중 하청노조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있다고 묘사한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노사 문제에 있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기사를 쓴 적 있는지 궁금합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파업은 2009년 끝났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도 지난해 끝났습니다. 파업은 끝났지만 파업 이후 사 측의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 제기로 인해 노동자들의 고통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상대로 경찰과 사측이 제기한 손배소가 대법원까지 가게 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11월 “과도한 손해배상책임으로 근로자의 노동3권 행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심리‧판단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노동계와 잦은 갈등을 빚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한 송두환 위원장으로 바뀐 후에도 인권위 입장은 같았습니다.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30일 해고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자 국가인권위원장이 환영 성명을 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재계 입장만 대변하는 일부 언론은 기업 손익과 노동자 권익 중 어느 쪽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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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대상: 2023년 2월 11일~1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노란봉투법’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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