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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에 ‘실망적’이라는 낯선 표현을 접하고, 이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아래 링크로 표시한 제 글(국립국어원의 ‘실망적’ 답변….)에 대한 ‘한 독자’의 댓글과 그 댓글에 관한 제 질문, 그리고 그 독자께서 주신 제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답글을 최소한으로 편집해 재구성한 글입니다. 그 독자께서는 이메일로 두 번에 걸쳐 정성스런 답변을 주셨습니다. 해당 독자께서 이름 밝히기를 원치 않으셔서 ‘그 독자’의 이름은 본문에서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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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자의 첫 번째 답글

민노씨께서 ‘실망적’이라는 말에 관해 쓴 글을 읽고, 답글을 적고 싶었으나, 페이스북을 쓰지 않아서, 메일을 보내 봅니다. 주소가 유효한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명사 뒤에 접미사로 쓰는 ‘-적’ 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메이지시대(1868-1912)에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틱'(-tic, 특히 -sis형 명사의 어간에 붙어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을 번역하기 위해 중국어의 ‘-적'(的; -의)을 빌려썼다는데요.

당시 ‘-적’이라는 접사는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개념어들과 어울려 쓰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인들이 번역한 ‘사회’, ‘경제’ 같은 용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말 속에 함께 묻어 들어와 점점 그 쓰임을 점차 넓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어에서 ‘-적’ 은 한자어와 어울려 쓰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로 명사 뒤에 붙어 관형어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적’이라는 말이 의미를 뭉뚱그리기 때문에, 쓰기 편하고 고유어보다는 한자어를 더 고급어휘로 느끼는 인식과도 맞물려 앞으로 점점 쓰임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실망적이다’ 보다는 ‘실망스럽다’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리지만요.

국립국어원의 입장은, ‘모른다’보다는 ‘명확하게 답변하기 곤란하다’에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희망적’이 ‘실망적’보다 자연스러운 이유를 형태로도 의미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우리말 속에 ‘-적’의 힘이 커가면서 점차 무의미해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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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답글에 관한 질문

반갑고, 고마운 편지입니다.
진심으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독자 님께서 주신 알지 못했던 정보와 고견에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다만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 보충의견을 제시하자면,

[dropcap font=”arial” fontsize=”22″]1.[/dropcap] ‘-적’이 말씀처럼 “의미를 뭉뚱그리기 때문에 쓰기 편하고” (의사 전달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미 전달을 불명료하게 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2.[/dropcap] “한자어를 고급어휘로 느끼는 인식” 이런 인식조사 결과가 있는지요? 그렇다면 세대 전반에 걸친 것인지 아니면 소위 MZ세대라는 젊은 층에게 그런 것인지 아주 궁금하네요.

[dropcap font=”arial” fontsize=”22″]3.[/dropcap] “(국어원이) 아마도 ‘희망적’이 ‘실망적’보다 자연스러운 이유를 형태로도 의미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말씀으로 미뤄보면, 독자 님께서도 설명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혹시 아신다면, 왜 ‘희망적’은 자연스럽고, ‘실망적’은 부자연스러운지 아시는대로 설명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저로선 정말 미스터리라서요.

[dropcap font=”arial” fontsize=”22″]4.[/dropcap] 글 말미에 “점차 무의해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내용은 1) ‘실망적’을 낯설게 느끼는 현상, 2) ‘실망적’을 ‘희망적’, ‘절망적’ 등과 구별하는 행위 등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것인지요? 저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제 글의 발아점이 된 해외축구 유튜버의 언어 습관을 보더라도), 여전히 적지 않은 평생 ‘실망적’을 접한 적 거의 없던 저로선 과연 그렇게 될까 싶기도 하네요.

아무튼 오랜만에 이렇게 독자의 고견을 접하니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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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자의 두 번째 답변 

제 이름을 걸고 제대로 답변하자면, 몇 편의 논문을 쓰는 정도의 노력과 준비가 필요할 거 같아요. 다행이라면 이 주제가 국어학·중문학·일문학에서 석박사 십수명쯤은 키워냈을거라는 거죠. 전자도서관에서 잠깐 검색해보니, 답이 될 만한 논문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치열한 검증의 영역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일반 독자로서 ‘순수한 의견’ 몇 자만 추가합니다.

1. ‘-적’이 말씀처럼 “의미를 뭉뚱그리기 때문에 쓰기 편하고” (의사 전달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미 전달을 불명료하게 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의미를 뭉뚱그린다’는 표현은 부정적의미로 쓰인 말이 맞습니다. ‘-의’ 나, ‘-적’과 같은 말들은 의미가 불분명하고 여러 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입니다. 글은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게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2. “한자어를 고급 어휘로 느끼는 인식” 이런 인식 조사 결과가 있는지요? 그렇다면 세대 전반에 걸친 것인지 아니면 소위 MZ세대라는 젊은 층에게 그런 것인지 아주 궁금하네요.

언중이 한자어를 고급어휘로 받아들이는 것은, 국어의 역사 속에 계속된 일입니다. 한자어와 경쟁 관계에 있던 순우리말들이 경쟁에 밀려 사라지거나, 비속한 표현으로 의미 하락을 겪었습니다. 이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언급되는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자가 들어온 삼국시대에 시작되어 현재도 진행 중인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반대로 너무 익숙해진 한자어 대신, 고유어가 더 긍정적인 어감을 갖게 되는 역전 현상도됩니다.

 

3. “(국어원이) 아마도 ‘희망적’이 ‘실망적’보다 자연스러운 이유를 형태로도 의미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말씀으로 미뤄보면, 독자 님께서도 설명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아신다면, 왜 ‘희망적’은 자연스럽고, ‘실망적’은 부자연스러운지 아시는대로 설명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저로선 정말 미스터리라서요.

형태로 보아,

‘-적’ 이라는 말의 쓰임이 ‘틱'(-tic )의 역어로 쓰였다는 가설을 인정한다면, 영어의 접미사 ‘틱'(-tic)이 쓰이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명사 중에서도 ‘시스'(-sis형)의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제일 자연스럽게 어울렸을 것이며, 영어에서의 쓰임을 무시하더라도 근대에 유입되기 시작한 말들의 역어들과 잘 어울렸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의미면으로 보아,

‘-적’ 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망이라는 것은,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그 객체를 바라보는 주체의 정서적 자세와 작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희망적 소식’이라는 말에선 뒤에 오는 ‘소식’이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면, ‘실망적 결과’라고 말할 때, 실망이라는 것은 ‘결과’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기 보다는 결과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관용면에서,

‘-적’이라는 접사는 (일본에서) 대체 불가한 필요에 의해 쓰이기 시작했지만, ‘실망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이미 써오던 말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서술적으로 쓰인 경우: ‘결과가 실망적이야.’, ‘ 결과에 실망했어’ 등 (실망은 주체의 행위이기 때문에 동사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
  • 한정적(수식)으로 쓰인 경우: ‘실망적 결과’ – ‘실망스러운 결과’(o) vs. ‘희망적’ –‘ 희망스럽다(x)

 

4. 글 말미에 “점차 무의해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내용은 1) ‘실망적’을 낯설게 느끼는 현상, 2) ‘실망적’을 ‘희망적’, ‘절망적’ 등과 구별하는 행위 등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것인지요? 저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제 글의 발아점이 된 해외축구 유튜버의 언어 습관을 보더라도), 여전히 적지 않은 평생 ‘실망적’을 접한 적 거의 없던 저로선 과연 그렇게 될까 싶기도 하네요. 

‘-적’ 이라는 말(형태소)은 의미보다는 기능에 의해 쓰이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보다는 어떤 상황에 쓰이느냐가 중요한 말인데, 처음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쓰였지만, 점차 그 제약이 사라지며 자리를 넓혀 가겠죠. ‘함의(품고 있는 뜻)’가 적을수록 ‘외연(쓸수 있는 상황)’이 커지기 때문에 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계속 즐겨 쓸 것이고, 자주 보다 보면, ‘실망적’이 주는 어색함도 사라질 것입니다.

‘웰메이드’ 라는 말이 요즘 영화 리뷰에 많이 보이는데, ‘웰메이드 플레이’에서 유래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심리적으로 ‘웰메이드’라는 말을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찬사로 쓰는 것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4~5년 전에 ‘손절’이라는 말을 아이들이 단순히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로 쓰는 것을 보고,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런 말을 하면 분위기가 휑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손익 관계와 무관하게 손절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지금 ‘헬창’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 중에 ‘창’(娼)의 의미를 크게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헬창’이라는 말이 매우 불쾌합니다.

아마 민노씨께서도 ‘실망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경험과 직관에 의해 쌓여온 비슷한 거부감을 갖고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말들 중에 상당수는 잘 쓰이지 않게 되고, 그중 몇몇 말들은 살아 남아서 새로운 의미로 계속 쓰이겠지요. 그리고 그 말들이 가진 본래적 의미와 쓰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언어는 언중 사이의 약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약속의) 그룹이 작게 분화되면서, 소통 범위도 좁아지고, 약속의 내용도 빨리 업데이트 되는 것 같습니다.

심리적으로는 ‘-적’이라는 말 자체가, 중국 재료로 일본이 만들어낸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빼고 이 글을 완성할 자신이 없네요. 이 찌꺼기가 우리말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 버린거 같아요. 하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실망적’은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정리가 덜 된 채, 글을 어지럽게 써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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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답장 

훌륭하고 친절한 답변과 설명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말미에 “정리가 덜 된 채”라는 말씀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 “세상에는 그 최초의 말도 그 최후의 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의미는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 모든 의미는 언젠가 찬란한 귀향의 축제를 맞이할 것이다.”(미하일 바흐친)을 떠올리게 합니다. 과학에 관한 질문과 답변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언어에 관한 질문과 답변도 항상 ‘의미 그 자체, 과정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고, 그것은 언제까지나 끝없는 대화로 이어지겠죠. 저야말로 제 부실하고 즉흥적인 ‘질문과 궁금증’이 이렇게 훌륭한 답변을 만나 대화가 되었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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