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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타이거 킹]이라는 다큐를 보고 있다. 처음에는 동물농장 혹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단순한 동물 프로그램 인 줄 알고 크게 끌리지 않았는데 막상 보다 보니 엄청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의 복잡하고 추악하며 다양한 내면을 드러내는.

미국은 자유가 최우선의 가치인 국가답게 돈만 있으면 거의 대부분의 활동이 가능한데, 그 중에는 호랑이, 사자, 곰 같은 맹수를 기르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실제로 호랑이나 사자를 데려다 기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상당하다고 한다. 개중에는 그렇게 늘어난 동물들을 데리고 사설 동물원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이 다큐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footnote]이 리뷰는 특히 전체 7편 중 1편과 2편에 관한 것이다.[/footnote]

타이거 킹: 무법지대 (원제: Tiger King: Murder, Mayhem and Madness; 타이거 킹: 살인, 상해 그리고 광기, 리베카 체이클린, 에릭 구드, 2020)
타이거 킹: 무법지대 (원제: Tiger King: Murder, Mayhem and Madness; 타이거 킹: 살인, 상해 그리고 광기; 감독:  레베카 체이클린, 에릭 구드, 2020)

감독은 5년 전 뱀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트럭 짐칸에 표범을 데리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고, 대체 어떤 사람들이 야생의 맹수를 기르는지 호기심이 생겨 이 작품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찍다보니 드러나는 이야기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불쌍한 동물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얽히고설킨 욕망들, 추악한 음모와 권력 다툼, 폭력과 위협과 공포.

동물원 황제, 닥 앤틀 

에피소드 2의 소제목은 ‘개인숭배’로 사설 동물원을 운영하는 여러 명의 운영자들을 보여준다. 개중 가장 큰 동물원(호랑이만 80마리)의 소유자인 닥 앤틀[footnote]본명은 Bhagavan Antle, 별칭이 Bhagavan ‘Doc’ Antle[/footnote]은 요가에서 익힌 명상법을 통해 동물과 교감한다는 식으로 홍보하여 직원을 모집한다. 요가에서 익힌 명상으로 동물과 교감을 한다니! 게다가 코끼리며 사자며 호랑이 같은 신비로운 맹수들과! 자연과 요가를 사랑하는 젊은이라면 눈이 혹할 수밖에.

그런데 그렇게 찾아온 젊은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숙소는 무너지기 직전인데다가 바퀴벌레가 수십마리 출현한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려던 식빵에 바퀴벌레가 튀어나와도 그저 털어내고 먹어야 할 정도로 끔찍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꿋꿋이 버틴다. 동물과 교감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최초의 목적을 상기하면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기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닥은 끊임없이 말한다. 넌 지금 형편없는 존재지만, 내 말만 잘 들으면 훌륭해질 수 있다고.

젊은 시절의 '닥' 앤틀
젊은 시절의 ‘닥’ 앤틀

그렇게 꾸역꾸역 닥의 가르침을 들으며 버티던 그들은 어느 순간 닥과 육체적 관계를 맺을 경우 지위가 올라가면서 더 나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에 대한 유혹에 시달린다. 심지어 일부는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느낌에 대단히 기뻐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것은 옴진리교의 아사하라 쇼코가 쓰던 방법과 유사하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사이 대부분의 사육사들은 점차 닥 앤틀의 ‘진정한’ 신봉자가 된다. 실제로 닥 앤틀은 수십 명(화면에 등장하는 여성은 8~9명 가량, 공식적인 아내는 3명, 여자친구 수는 명확하지 않음)의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20살, 21살 무렵 닥의 동물원에 사육사로 일하러 왔다가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닥은 자기의 거대한 동물원 안에 집을 여러 채 지어 놓고 자기의 애인이나 와이프를 집집마다 넣어놓은 뒤 그렇게 오래전 중국의 황제처럼 살아간다.

자원봉사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닥 앤틀
사육사들을 마치 노예처럼 부리는 ‘닥’ 앤틀 (출처: 타이거 킹)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사는 여성들 대부분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으며 대개 행복해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밤에는 닥에게 성적인 봉사를 하고 그 외의 시간은 동물들을 위해 일하는 그녀들은 하루 16시간씩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도 일주일에 고작 100달러를 받는다. 그럼에도 대부분 불만이 별로 없다. 아마도 동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너무 힘든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제 생활 방식이고 제가 원하는 일이에요.” 그들은 생각한다. 이건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고. 자기는 동물들을 위해 일한다고. 자기는 행복하다고. 

구조대의 캐럴, ‘닥’의 대척점 

정말이지 현실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닥 앤틀의 대척점에는 캐럴 배스킨(Carole Baskin)이라는 동물구조협회의 여성이 있다. 그녀는 ‘큰 고양이 구조대’(Big Cat Rescue)라는 단체를 운영하는데, 닥과 같은 개인 사업자가 소유한 동물들을 구출하는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닥과 같은 인물들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사람들에게 동물을 구조해달라고 호소하며, 동물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캐럴 배스킨은 닥과 같은 인물들을 컬트 종교의 교주나 다름 없다고 비판하면서 말한다. 이런 동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미끼로 이용하곤 한다고. 여기 걸려드는 젊은 사람들은 인간관계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자기가 얼마나 심하게 학대받고 있는지 모른다고. 그들은 동물을 이용해 이런 젊은 사람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는 거라고.

재미있는 건 이렇게 말하는 캐럴 배스킨 역시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한테 돈을 안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구출한 동물들을 자기가 소유한 부지에서 보호하는데, 말만 보호지 사실상 우리 안에 가둬놓고 있다. 관리도 거의 해주지 않아 닥이 운영하는 곳보다도 환경이 열악하다. 그러니까 이름만 바뀌었을 뿐 결국 본질은 똑같은 셈인데, 심지어는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에게 동물을 보여주고 기념품 가게까지 운영하며 그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모조리 자원봉사에서 충당한다.

페이스북 팔로워가 200만 명[footnote]‘큰 고양이 구조대; Big Cat Rescue’ 페이스북 페이지는 2020년 4월 13일 현재 270만 명이 팔로우 중이다.[/footnote]에 달하는 SNS(사진) 스타 캐럴의 눈에 띄고 싶어하는 사람, 학대당한 동물을 보살피고 싶어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캐럴은 아무런 부담없이 그들의 노동을 손쉽게 이용한다. 심지어는 아주 정교하고 영리한 계급 장치까지 만들어 그들의 경쟁심과 영웅심리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캐럴의 보호소에서 봉사를 하려면 우선 돈을 내고 동물 보호 교육 같은 것을 수료해야 하는데, 교육을 수료한 사람만이 노란색 티셔츠를 구매해서 입고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노란색 티셔츠를 1년 간 입은 사람만이 빨간색 티셔츠를 구매할 수 있고, 빨간색을 1년간 입은 뒤에야 녹색을 구매할 수 있는 식이다. 그러므로 녹색은 최소 2년 이상 활동을 했다는 증거로서 이 색상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자부심은 영상으로만 봐도 대단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렇게 5년이 지나면 남색 티셔츠를 입을 자격이 주어진 마스터가 된다.

'큰 고양이 구조대'의 캐럴, 하지만 닥 앤틀과 마찬가지로 열정을 빌미로 노동을 삥뜯는 구조의 정점에 선 점은 흡사하다. (출처: 타이거 킹)
‘큰 고양이 구조대’의 캐럴, 하지만 닥 앤틀과 마찬가지로 열정을 빌미로 노동을 삥뜯는 구조의 정점에 선 점은 흡사하다. (출처: 타이거 킹)

열정은 어떻게 착취가 되는가 

보다 보면 신천지를 비롯한 컬트 종교, 다단계 및 그 외 수많은 ‘단체’나 여타 공동체와 그 매커니즘이 소름 끼치도록 일치한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예전에 옴진리교 문제를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의 르포 [약속된 장소에서]를 읽은 뒤 옴진리교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이런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정말로 그런 것이다.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사건 (1995)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사건 (1995)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누구보다 동물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현혹되어 정신과 육체가 종속당하면서도 그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를 비방하며 자신이야말로 진짜라고 우기고 있다. 출연진 모두 서로에 대한 엄청난 비방과 비판을 일삼는데 그 말이 그들 본인에 대한 남들의 비난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게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랬거나 저랬거나 동물들은 이용만 당하다 죽고. 그야말로 현대 사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를 사악한 인간 한 두명의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남을 조종하고 다루는데 능한 사람들이 판을 짜서 계획적으로 타인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근데 이 다큐를 보다보니 결국 본질은 권력 문제인 것 같다. 권력은 균등하지 않고 필연적으로 불공평함을 낳는다. 불공평한 권력을 두고 인간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 남보다 더 나아지고 싶고, 남보다 더 뛰어나고 싶고, 남보다 더 인정받고 싶고, 남보다 더 눈에 띄고 싶고. 그리고 그러다보면 자칫 사악한 사람들의 손에 이용을 당하게 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다큐 속에서 캐럴은 웃으면서 말한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을 못하는데, 5년 쯤 지나면 “아, 너 좀 자주 보인다.” 이런 말을 하곤 한다고. 공짜로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자긴 거절하지 않는 것이라고.

닥 앤틀과 캐럴은 서로의 철학과 지향점이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열정을 착취하는 권력자라는 점에서는 본질에서 동일하다.
닥 앤틀과 캐럴 배스킨은 서로 각자의 철학과 지향이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열정을 착취하는 권력자라는 점에서는 본질에서 같다.

예전에 사이비 종교인 JMS(기독교복음선교회)[footnote]선교회 측은 ‘JMS’를 예수의 새벽별(Jesus Morning Star)이나 ‘예수, 메시아, 구원자((Jesus, Messiah, Savior)의 약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백히 교주인 정명석의 약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footnote]라고 가 한창 이슈가 되던 당시 그 안에 서울대 같은 명문대 출신도 많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걸 알게 된 사람들이 서울대 다니는 똑똑한 애들이 어쩌다 JMS 같은 컬트 종교에 빠졌나 하면서 이해가 안가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런데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을 구하고 싶다는 이타심, 신념, 자기 희생, 봉사정신, 세상과 진리를 향한 탐구,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 등등, 그런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빠져들기 쉬울 테니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애들보다도.

보면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 속 대사가 생각났다.

“당신이 저한테 빠진다면,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빠져드는 거니까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거나, 마음이 안 채워진다거나, 그런 느낌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슈운지, 2016)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슈운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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