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노동의 시선’으로 제안하는 2025년의 시대정신.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7분)
부부의 안위를 위해 민주주의를 압살하려 한 대통령과 그런 지도자를 호위하는 집권당의 뻔뻔함이 극에 달한 지금, 시대정신을 논하는 것이 사치일 수 있다. 무능하고 무도한 대통령이 또 무슨 일을 저질러 국가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지 알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시민들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해진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 논의할 것이고 이 글은 그때를 위한 작은 준비이다.
동행동행(同行同幸)
2025년 노동의 시선으로 본 시대정신으로 동행동행(同行同幸)을 제안한다. 동행동행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 함께 가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자성어다. 대한민국은 빠른 변화에 익숙해 추격에 능하지만, 뒤처지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여유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뒤처지는 사람이 없어야 사회 전체의 행복이 커지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무한 경쟁에서는 소수의 승자만 행복해질 따름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가 행복한 우리 사회의 질서는 아픈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100년 전 일제에 의한 핍박과 75년 전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은 그 후 35년간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노동기본권과 민주주의가 억압당해야 했다. 다행히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개발독재를 벗어났지만, 사람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 결과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의 희생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가난과 실패가 개인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만의 책임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 문명국가인데,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정부의 적절한 역할을 찾는 데 소홀했다.
노동시장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노동시장은 평평하지 않고 이중적이다. 20% 남짓에 해당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좋은 직장이지만 나머지 80%는 그렇지 못하다. 이 두 일자리는 확연히 나뉘어져 있어서 열악한 일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임금 차이가 크다. 고용보장도 확실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임금노동자의 40~50%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은 최저임금이나 그보다 조금 많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일을 해도 생활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일하지만 가난한 ‘워킹푸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이 아닌 직장을 갖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교환학생이나 인턴 경험 등 스펙을 쌓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그런데 이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의 지급 능력과 개인의 노력이 결합한 능력주의가 공정으로 포장되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를 옹호한다. 반대로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에게는 ‘본인이 못난 탓’이라고 비난한다.
노동시장 상위 20%가 누리는 상대적 고임금과 고용안정은 정당한 것일까, 반대로 80%가 감당해야 하는 상대적 불이익과 불평등은 이유 있는 것일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유 없는 차별이 행해지고 있다면 그 역시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공정한가? 차별적인가?
비슷한 일, 너무 다른 보상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과제는 비슷한 일을 해도 비슷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이다. 기업의 지급 능력도 고려해야 하지만 규모에 따른 임금 차이가 너무 크다. 임금만이 아니라 복리후생의 차이도 크다. 예를 들어 300인 이상 대기업의 임금에 비해 30~299인 중견기업의 임금은 65.9% 수준이며 5~30인 중소기업의 임금은 60% 수준이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별반 차이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이다. 이들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임금의 45.8%에 그치고 있다. 임금만이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주휴수당, 유급 연차휴가 등 다른 노동자들이 당연히 적용받는 것조차 보장받지 못해 경제적 차별이 크다. 해고 통보를 받아도 별다른 저항 수단이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하면 된다.
둘째, 원·하청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견·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이 필요하므로 정부의 지원을 중견·중소기업에 집중해야 하며 대기업과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셋째, 노동조합과 기업의 교섭을 보장하여 성과를 재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잘 알려진 대로 기업 성과를 분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이다. 그런데 300인 이상 기업의 노조조직률은 36.9%인데 비해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조직률은 0.1%에 불과하고 100~299인 중견기업의 노조조직률도 5.7%로 낮아서 현재 상황으로는 중견·중소기업의 성과 분배가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조조직률을 높이거나 초기업 수준의 교섭을 활성화하는 등의 정책이 요구된다.
넷째, 늘어나고 있는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를 줄이는 일이다. 이들은 계약 형식 측면에서는 프리랜서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 일하는 방식은 계약 당사자인 기업에 종속된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종속 정도에 비례한 보호가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부 직종에 대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이 의무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나 이것도 대부분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만 해당하지 플랫폼 노동자들은 대상이 아니다.

임금노동자처럼 일하지만, 임금노동자만큼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사용자의 남용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2018년 조사(당시 221만 명) 이후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3.3% 소득세 원천징수 납부자를 보면 늘어나는 것이 확실하다. 플랫폼 노동자도 매년 늘어나 2023년 79만 명에 이른다.
늘어나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조처가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 등이 발의된 이유이다.
노동조합에서는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어려울 수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임금노동자의 특징이 있지만 임금노동자와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임금노동자인데도 특수고용 노동자로 잘못 계약된 오분류는 신속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
또한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교섭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조합법 제2조를 개정해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면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가 교섭에 응해야 하므로 이 역시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안전망을 꾸준히 확대하고 근로감독 등 노동 기초 질서를 확립하는 조처가 필요하다.
근로복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국가 차원의 근로복지 보장이나 특수고용만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까지 사회보험을 확장하는 전 국민 사회보험 논의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유노조 기업이 가지고 있는 상병수당도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확대하여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들이 노동시장에서 다소 뒤처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해결 방안 있지만 수십 년째 그대로인 이유
노동시장에 뒤처진 사람들과 동행하여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법 제도적 보완과 단체교섭을 통한 변화를 제안했으나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해결 방안이 있지만 불평등한 노동시장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해답을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정부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잃어버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대로 노동관계법 적용을 시도한 적이 있었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은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합의사항이었지만 지난 28년 동안 얼마만큼의 노력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씨를 뿌린 적이 없으니 거둬들일 수확 또한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초기업교섭도 이중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진전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단체협약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핵심 도구다. 기업의 울타리를 넘는 초기업교섭이 활성화할수록 동일 산업의 노동조건은 상향 평준화할 수 있다.

국회는 2021년 노조법 제30조를 개정해 정부가 초기업교섭을 지원하도록 명시했으나 정부의 실천적인 노력은 더디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을 불법 집단으로 매도해 건설, 화물 등의 초기업교섭을 무력화하기도 했다. 보수 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노조의 기능을 부정하니 교섭의 제도화는 진전과 후퇴를 반복해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하지만 장애물이 적지 않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의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오분류된 노동자를 신속하게 구제하는 정책적 조처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노조법 2조의 개정으로 부분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이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조처가 미뤄지면서 실은 법 개정, 정책 조처 등 해결된 것이 없다. 특히, 노조법 2조는 3조 개정과 함께 국회에서 두 번씩이나 본회의 의결이 이뤄졌으나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모두 거부하여 진전을 가로막았다.
사회안전망과 관련하여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복지 확대, 전 국민 고용보험, 상병수당 도입 등은 실효성 높은 과제이고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한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정책이지만 진전은 더디다.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조세정책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저소득층에 분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는 쉽지 않다. 노동시장의 차별을 줄이고,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누군가의 양보가 불가피하다. 지금은 사용자가 누려온 과도한 혜택을 내려놓을 때이다. 실은 더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국제 표준(글로벌 스탠다드)을 지키라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기업은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과감한 정책을 실천하기 전까지는 많은 걱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꼼꼼하게 점검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나면 오히려 별일 없이 잘 작동하기도 한다. 30년 전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이 그랬고, 20년 전 주 5일 근무제도 그랬고, 몇 해 전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 도입도 그랬다. 국민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책들은 이해관계자의 찬반 목소리가 크지만, 막상 실시하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한다.
일하는 국민 다수가 행복해지는 것이 확실하다면 걱정, 두려움, 주저 대신 용기와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