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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와대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8596
출처: 청와대

“효도하는 정부” 

정치인, 특히나 최고 결정권자의 말은 어느 정도 추상화가 불가피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든지, ‘효도하는 정부’가 되겠다든지 하는 발언들이 그러하다. 윗선에서 큰 방향을 설정하면 실무자들이 세부 사항을 정하는 일에 특별한 문제는 없다. 그 때문에 대통령의 추상적인 미사여구를 근거로 ‘왜 이것은 안 되냐’, ‘이게 나라다운 나라냐’라고 비판하는 것은 다분히 허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엔 마음에 걸린다. 대통령이 효도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3일 뒤 아파트 경비원이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임계장 이야기] (후마니타스, 2020)의 저자 조정진 씨는 시사인 전혜원 기자에게 통한의 편지를 보냈다.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씨는 이런 일을 막고 싶어 온갖 걱정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임계장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부질없는 일인 것 같아 너무 비통하다고 말한다. 본인이 일하던 단지에서도 투신한 경비원이 있었다고 한다. 열악한 노인 일자리의 문제가 갑질하는 일부 주민이 개과천선하면 되는 일일까? (조정진 씨와는 달리)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리고자 한다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의 재판에 불과한 걸까?

망언의 추억

나는 현 정부 또는 한국사회의 제일 큰 문제가 사회약자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철학도 비전도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의 연금 정책을 예로 든다면, 겨우 기초연금 30만 원을 공약으로 내놓고 이를 예정보다 빠르게 이행했다고 선전한다. 최저임금 논란 때 이쪽 진영에서 했던 말을 돌려줘야 한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와 30만원으로 살아보시라.’

적잖은 한국인이 뭐가 ‘선진’이냐고 비웃는 선진 복지국가에서 기초연금을 30만 원으로 해야 한다고, 한국식 부양의무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도덕적 타락이 극심한 자들’이라고 국민적 지탄을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한국은 인품이 훌륭한 대통령도, 국뽕에 취한 국민도, 정부여당을 욕하는 데 여념이 없는 언론과 정파도 아무런 도덕적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기초연금 받는 노인은 인생 잘못 산 거”라고 말하는 ‘복지학자’를 인재로 영입하는 제1야당과 기초연금 40만 원을 공약으로 내놓고 의기양양하는 선명 진보정당과 이제나 저제나 조세저항을 부추기는 데 안간힘을 쏟는 보수언론의 저열함에도 짜증과 한숨이 난다. 효도 정부 운운하는 대통령이 때로 그들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면, 내 눈이 잘못됐기 때문인 걸까?

2013년 9월 당시 "65살 때 기초연금 받으면 인생 잘못 산 것" 망언을 했던 김용하 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 이슈를 다룬 한겨레 기사 갈무리 (출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4971.html
2013년 9월 당시 “65살 때 기초연금 받으면 인생 잘못 산 것” 망언을 했던 김용하 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당시 52세) 이슈를 다룬 한겨레 기사 갈무리 (출처: 한겨레)

한국의 열악한 일자리는 노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용균 사건 이후로도 도무지 줄지 않는 산재사망과 안전부실 사고들은 슬퍼할 여유도 주지 않는다. 어쩌다 일이 터져야 슬퍼도 하고 서로 위로도 하지, 허구한 날 일하다 죽었다고 하니 언제 애도를 해야 할지 타이밍을 잡기도 어려울 정도다. ‘임계장’ 조정진 씨의 말을 빌리면, 살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지 죽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흡사 죽으려고 노동에 임하는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게 나라다운 나라인가? 지리멸렬한 야당과 그 놈의 적폐들만 문제인가?

한국 배우는 선진국, 우리는 왜 배우지 않는가 

코로나 사태 사망자가 적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정부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선진국이란 데서 국민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가는 것도 막지 못한다며 무슨 선진국이냐고 비웃는다. 웃기지 말라. 그네들은 한국이 잘한 부분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우려 한다. 그러나 한국은 그네들이 잘하는 것을 이해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는다. 이래서 임계장이 죽어나고, 제2의 김용균은 N번의 김용균이 되고, 폐지 줍는 노인이 거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장애인은 거리에서 보기 힘들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무슨 한국처럼 위대한 선진국에서 아픈 이들과 장애인을 위한 예산이 왜 이리 쥐꼬리만 한가? 몸이 불편한 취약계층을 위한 재정 투입은 북유럽이 압도적이다. 한국은 너무 적어 비교할 형편도 되지 못한다. 이것만 그 벌써 ‘우리가 망했다고 깔보는 (복지선진국) 나라들’ 수준으로 하려 해도 모두가 세금 분담에 전폭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비판할 땐 하더라도, 정말 배워야 할 것은 배우는 게 선진국이다. 정부여당이고, 야당이고, 언론이고 나발이고 한국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무얼 하고픈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정부여당 지지층은 자신이 세금을 더 내겠다는 의사라도 각 정파 중 가장 높게 가지고 있다. 웬만하면 과반수를 넘는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지지자들만으로 사회가 구성돼 있다면 본인 세부담 찬성 여론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아지고 만다. 모두의 세금도 늘리고 복지도 발전시킬 가능성이 크게 주는 것이다. 이런 조사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한국사회 약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미래통합당 지지층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대통령의 말처럼 효도하는 정부 만들어야 한다. 연금 정책에서도 일자리에서도 그렇게 돼야 한다. 유례 없이 빠른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는 채비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한 가지만 기억하자. ‘한국 사회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곳이다.’ 한국은 분명 선진국이지만, 사회 취약계층을 이토록 박대하는 선진국은 없다. 통계적으로 미국이 심하지만, 한국에는 미치지 못한다.

‘약자의 복지로 국가의 강함이 결정된다’스위스 헌법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약자에게 온당한 처우를 보장하는 사회구조를 만듦으로써 약자보다 형편이 나은 이들까지 한국보다 잘사는 선행 국가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약자의 여건 개선에 부디 전력해 보자. 쓸데없는 이념과 편견과 증오를 버린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명실상부한 선진국 한국에게 물적 토대는 갖춰진 지 오래다. 정치의 리더십과 국민의 팔로우십 그리고 언론의 협조가 관건이다.

프레임이 잘못됐다. 더 고통스러운 사회적 약자에게 세금을 주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보편적인 복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더 고통스러운 사회적 약자에게 세금을 주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보편적인 복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고통올림픽은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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