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opcap font=”arial” fontsize=”44″]1.[/dropcap]최근 정의연 사태. 많은 논점이 있지만, 내 관심은 오늘날 사회운동이 제도권으로 진입할 만한 자격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에 있다.
다른 문장으로 말하면 김어준의 2002년 “우리가 주류다” 선언에 걸맞는 주류의 품격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 또 다른 문장으로 말해보자. 시민들이 볼 때 운동권이라는 사람들은 운동단체를 넘어 공화국의 통치를 맡겨도 될 정도의 사람들인가. 이를 질문 A라고 하자.
파생되는 질문 B가 있다. 운동권 자신은 아스팔트 정치를 넘어 제도권 정치를 할만한 준비와 훈련을 하고 있는가. 이를 자각하고 노력하고 있는가. 97년의 김대중은 이를 세련되게 표현했다. “나는 준비된 대통령” 올시다. 마키아벨리는 좀 더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무장한 예언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오. 총알도 없이 뻥카만 날리다가는 뼈도 못추릴 것이야”
그래서 나는 묻는다. 니편이고 내편이고 상관없이. 그들은 제도권에 진입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dropcap font=”arial” fontsize=”44″]2.[/dropcap] 회계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의견이 보인다. 하나는 니들이 시민운동을 몰라서 그런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라는 의견. 다른 하나는 내가 시민운동을 해봐서 아는데, 그건 문제가 맞아. 라는 의견. 나는 후자다. 다른 분들 의견을 보면, 니가 운동판을 알기나 하냐면서 각개전투가 벌어지던데. 나에게 “당신은 운동에 대해 논평할 자격이 없어.”라고 하면 더 뭐라 드릴 말씀은 없다.
개별적으로 들어가면 나는 최대한 정의연의 말이 맞다고 가정한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가정이 맞다면 내용적으로 문제가 없는 회계를 엉성하고 성의 없게 정리-보고한 정도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그냥 영수증 ‘까고’, 앞으로 성실하게 회계하겠습니다. 라며 사과하고, 내용 공개하고, 앞으로 잘하면 된다. 문제는 이들이 우리 건드리는 놈은 다 친일파. 니들이 시민운동을 아냐. 자격은 있냐. 등의 워딩을 쓰기 때문이다.
파생되는 다른 문제는 이렇다. 시민단체-사회운동은 세상의 문법과 질서와는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은 사회운동을 잘 아는 자격있는 사람들만 가능한 것일까. 만약 당신이 지하에서 반체제운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는 특정 단체를 이끌어온 지도격 인사가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를 획득한 데 있다.
대중적 정치인은 대중의 검증을 받는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겪어온 통과의례다. 윤미향 씨에 앞서 88년의 이해찬도, 00년의 임종석도, 03년의 유시민도 겪어온 일이다. 사람들은 무대에 등장한 신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이들이 통치자의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고 싶어한다. 당연히 악의적 비난도 있다. 그러나 이를 헤쳐나가는 것 역시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자질이다. 장인이 빨갱이라는 악의적 공격에 맞서 노무현은 점잖게 화답한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정치에서 이런 품격 있는 대응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나는 그 점에서 윤미향과 정의연이 그에 걸맞는 자질과 품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본다.
단정적으로 말해서 그들이 B에 대한 답변을 거부할 때. A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나온 셈이다. 그들은 검증받기 싫어하고 훈련받기 싫어한다. 통치집단으로서 미숙하다고 보여진다. 중앙 정치인으로서 신뢰를 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44″]3.[/dropcap]만약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치자. 그 중에서도 북한을 엄청 좋아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조국해방전쟁의 국면에서 우리 동네에 갑툭튀한 지방 ‘빨갱이’에게 우리 마을의 생사 여탈권이 좌우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좀 더 권위 있고, 품위 있고 공식적으로 공화국의 신뢰가능한 ‘로동당원’이 우리 마을을 잘 다스려주길 바랄 것이다. 그게 안 되면 리승만 괴뢰도당이라도 좋으니 좀 더 공정하고 건전한 사람이 나서주길 바랄 것이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44″]4.[/dropcap] 많은 시민은 자기 사업을 하거나 노동자로 살아간다. 돈을 만지고 이를 정리한다. 꼭 돈을 안벌어도 집에서 가계부를 쓰거나 카드사 앱을 보면서 금전의 출납을 확인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면, 사회운동의 회계도 그 눈높이에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특별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그냥 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살고 싶지도 않으며, 국회의원 할 자질도 없어요’라는 말로 들린다. 둘 중의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시민단체용(?)’ 회계가 좋다면 제도권에 안 들어가면 된다. 제도권에 들어가고 싶다면 적어도 세상의 윤리와 눈치는 봐가면서 살자.
[dropcap font=”arial” fontsize=”44″]5.[/dropcap] 그 검증과 비판마저 친일파들의 공격이라면, 나는 묻고싶다. 당신은 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아직도 세상이 착한놈과 나쁜놈의 아마겟돈만이 존재하는 로봇만화 속이고, 자신이 슈퍼로봇의 파일럿일거라 생각하는가. 민주당이 국회 압도적 과반을 차지해도 세상의 실제 주인은 조선일보와 친일파라고 생각하는가. 히틀러가 총통이 되어도 독일의 주인이 유태인이라고 생각하는가.
[dropcap font=”arial” fontsize=”44″]6.[/dropcap]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무리의 공격에 맞서 우리편을 지켜내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 우리의 허물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일단 이기면 된다는 이 계속되는 앙상하고 성마른 진영론, 괜찮은 걸까. 이번 싸움이 친일과 반일의 싸움이면, 다음 싸움은 또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 될까. 김일성이 무하마드 알리를 응원하면, 노무현은 무하마드 알리가 아닌 조지 포먼을 응원했어야 했나. 맞는 것은 맞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하면 그렇게 안 되는 걸까.
누가 이기는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리그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롯데 자이언츠가 반칙과 편법으로 우승하는 것보다 약물과 승부조작과 난투극과 상호비방 없이 페어플레이를 해서 패배하는 쪽이 나는 더 아름답다. 그런 리그가 되어야 우리 편의 승리도 값진 것이 된다. 누군가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리그를 운용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지식인과 언론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어쩌다 우리 선배님들은, 우리를 지도하고 계도했던 명철했던 눈빛의 우리 선배님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편이 이기기만 바라는 극성분자가 되었을까.
[dropcap font=”arial” fontsize=”44″]7.[/dropcap]핑계를 대지 말고 이제 그만 어른스러워지려무나. 알겠니, 운동권 선배들아. 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