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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오늘(2015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박 대통령은 끝내 외면했습니다. 이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입법예고 시한(11월 2일)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필자(심용환)는 역사교육을 전공한 20년 경력 강사입니다. 국사, 근현대사, 한국사로 이어져 온 지난 10여 년간의 교과서, 수십 종의 한국사 참고서, 지난 12년간의 모든 수능 기출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편집자)[/box]

박근혜 대통령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2015년 10월 27일, 국회 본회의장,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951333.html
박근혜 대통령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2015년 10월 27일, 국회 본회의장,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이럴 수는 없습니다.
사관 위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있습니다.
역사를 저술하는 목적은 사람이나 권력이나 국가가 아니라 역사 그 자체입니다.
역사가의 윤리는 권력의 명령이 아니라 국민의 명령을 따릅니다.

간섭하면 안 됩니다.
들춰 보면 안 됩니다.
독재자들만 했던 짓입니다.
하늘의 뜻이 사관의 뜻에 닿게, 믿고 지원해주시는 것이 지도자의 본분입니다.

제가 20년 동안 가르친 현행 교과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1. 패배주의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1948년 정부 수립까지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이 다소 복잡하고 혼란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는 정통 보수 우파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우파는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이시영 등은 현실주의 노선을 택합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단독정부 수립에 총력을 다합니다. 심지어 장준하 역시 당시에는 김구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규식, 안재홍 등은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인 듯합니다. 좌우합작이라는 상당히 까다로운 목표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여운형 등과 합작했고 좌우의 요구 사항 가운데 타협을 도모했습니다.

김구는 끝끝내 이상주의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친 김규식을 설득하고, 자존심 상하는 북행을 선택하고, 성공할 수 없었던 남북협상을 위해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였습니다.

김구

당시에는 참으로 커다란 갈등이었겠지만 되돌아보십시오. 북한의 역사에 비해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역동적이며, 얼마나 많은 시사점을 지금 우리에게 던져줍니까. 이는 패배주의가 아니라 우월함의 선언입니다. 이렇게 역동적이었고 다양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또 내일의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까.

또한, 아픔과 갈등과 문제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대범함과 이런 솔직한 서술은 선진국 교과서에나 나옵니다. 패배주의다, 자학 사관이다, 모두 일본 보수 우익에서 1970년대부터 하던 말입니다. 그래서 침략을 부정하고, 그래서 위안부를 부정해서 학생들이 역사의식을 마비시킨 일본의 교육. 그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합니까.

2.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현행 교과서는 6·25전쟁을 남과 북의 공동책임이라는 식으로 간단히 써놓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전면적 남침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고, 다만 1947년 냉전의 본격적인 시작을 전후한 남한 내 좌우갈등, 남북 간의 휴전선에서의 갈등 정도를 간략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여러 원인에 대한 섬세한 연구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교과서는 6·25전쟁을 국제전의 시각으로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왔고,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과 중국군의 개입, 그로 인한 국제전으로의 확산에 대해서 명확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냉전의 책임을 둘러싼 세계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 또한 수용한 것이지요.

누군가 외칠 수 있습니다. 왜 북한을 더 나쁘게 서술하지 않았느냐, 왜 이승만의 책임을 더 구체적으로 쓰지 않았느냐, 왜 미국과 소련의 책임을 더 상세하게 기술하지 않았느냐. 이런 고민은 시민들이나 역사학계의 고민일 것입니다. 교과서는 그런 모든 내용을 다 반영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모든 고민의 시발점이 되는 자료들에 대해서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이고 ‘북한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 글입니까.

한국전쟁 6.25

이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인 5.10총선거 당시 정치권의 갈등이 워낙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95% 이상의 국민이 참여했고, 제헌국회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했으며, 농지개혁, 반민특위, 귀속재산처리 같은 시대의 문제에 대해 열심히 해결해 나갔다고 구체적으로 서술했습니다.

더구나 과정상 문제가 있었던 것들, 결국 실패한 것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객관적으로 서술해서 다시는 미래에 그런 일이 없도록 충분한 시사점도 던져주고 있습니다. 제한적인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한민국의 역동적 노력을 모두 서술했고, 학생들에게 오늘의 문제로 고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행 교과서는 북한에 대한 서술 비중이 사실상 없고, 잘 배우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있는 내용도 김일성 유일체제 확립, 경제 건설 운동의 실패와 개혁 개방 정도입니다. 쉽게 말해 수많은 정적을 죽이며 독재 국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개혁개방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매우 보수적인 현재의 정치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오히려 보수적인 교과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3. 통일을 준비하는 교과서 맞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현행 역사교과서가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서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서술돼 있다. 복잡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미래세대가 혼란을 겪지 않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역사교육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줘야 통일 시대를 대비한 미래세대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다.”

– 박근혜 (2015년 10월 22일 청와대 5자 회동, 재인용 출처: 데일리한국)

과연 그렇습니까? 현행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7.4 남북공동성명에 관해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또한, 노태우 정부 때 있었던 북방정책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1998년 소 떼를 끌고 방북한 내용도 서술합니다.

통일을 이루려면 박정희 대통령이 합의했던 것처럼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과정을 통하여 민족 대단결’을 이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내용이 모두 교과서에 정확히 기술되어 있는데 왜 우리 미래세대가 혼란을 겪을까요? 교육의 목적은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증오를 뛰어넘고, 증오를 이겨낼 수 있는 비전 그 자체 아닌가요?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여자 한국-북한 경기장 관중석의 한반도기(2005년 8월 4일, 전주월드컵 경기장,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027723.html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여자 한국-북한 경기장 관중석의 한반도기(2005년 8월 4일, 전주월드컵 경기장,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박 대통령께선 현행 교과서를 좌편향과 패배주의로 여기시는 듯합니다. 역사 선생으로서 자괴감이 듭니다. 주변에서 누가 이런 무고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들에게 증빙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해주십시오.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를 해보십시오. 말 못할 것입니다. 결국, 시중에 떠도는 몇몇 ‘찌라시’를 보고 옮겨댄 소리일 테니까요.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정약용이 ‘탕론’이라는 글에서 분명히 지적했듯 왕조차도 백성이 필요에 따라 뽑는 것입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중국의 유학자 황종희도 ‘명이대방록’을 통해 거듭 지적한 바입니다. 심지어 선진시대 맹자 역시 군주가 군주인 이유는 ‘천명’을 따를 때일 뿐이지, 천명이 없다면 그는 소인배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돌이켜주십시오.

바로 그 지점에서 국민 대통합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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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아무리 읽어봐도, 심용환 선생이 쓴 글에 대한 반박에서는 제대로 된 반박이 없는걸요…? “교과서는 심용환 선생이 말한 바와 다르게 썼다”가 아니라 “교과서의 어느 부분은 심용환 선생이 말한 바와 다른 느낌을 준다”라는 말 외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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