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함으로써 연방 차원에서 보장되었던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임신중지권 보장은 이제 각각의 주 정부와 의회의 권한이 되었지요. 임신중지권은 당사자의 건강과 일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자기결정권 중 하나입니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전 지구적 인권의 가치를 부정하는 심각한 역행이라고 볼 수 있지요.
[box type=”info”]
로 대 웨이드 사건 (1973 판결, 2022 폐기)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 410 U.S. 113, 1973년)은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가 낙태의 권리를 포함하는지에 관한 미국 대법원의 가장 중요한 판례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중 하나로서 낙태할 권리를 존중한 판결이다. 그때까지 미국 대부분 주는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닌 한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여성의 성적 결정권을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인해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은 미국 수정 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이므로 헌법에 어긋나는 법(위헌)이 되었고, 이로 인해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미국의 모든 주와 연방의 법률들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 진영은 이 판결을 뒤집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다. 이후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대법원 판결들, 공화당 성향의 주정부는 주법률의 제개정으로, 최대한 낙태 합법화를 저지하는 조치를 취해왔고, 결국 2022년 6월 24일에 도브스 대 잭슨 여성 건강기구 사건(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597 U.S., 2022년)에 대한 판결에 의하여 무효화되었다. (이상 위키백과,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발췌)
[/box]
동시에 임신중지권 및 재생산권과 관련된 안전하고 객관적인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온라인 공간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습니다. 월경 기록 앱의 직접적인 데이터부터 시작해 온라인 검색 기록, 주고 받은 이메일과 메시지, 의료기관에 방문한 위치정보까지- 일상적으로 수집되는 수많은 데이터들은 임신중지의 ‘증거’가 되어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 이전부터 임신중지 허용 기준을 제한시켜 사실상 임신중지를 금지시켰던 미시시피나 텍사스와 같은 보수적인 주에서는 법 인터넷 검색 기록과 같은 디지털 데이터를 근거로 임신중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기소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건강 및 의료와 관련된 서비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앱과 플랫폼들이 광고와 감시 목적으로 데이터 수집과 무분별한 공유를 지속하는 한, 온라인 공간은 임신중지권에 대한 정보를 안전하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사생활과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공격 도구로 변할 것입니다.
역사가 후퇴하는 것은 미국만의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한국에서는 2019년 봄 헌법재판소가 형법의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낙태죄가 사라졌지만, 임신중지권에 대한 보장은 갈 길이 여전히 멀어 보입니다.
3년이나 지났지만 입법은 멈춰있고, 일부 보수 세력은 반동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었음에도, 지난 해 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임신중지와 관련된 정보와 의료적 도움을 제공하는 위민온웹(Women on Web)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차단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끝없는 투쟁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