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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부산교구에서 운영하는 장애인거주시설인, 여주 “오순절 평화의 마을” 산하 천사들의 집과 평화재활원에서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고 법인의 비리와 거주인 인권침해 상황 등을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로 몇몇 직원이 해고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지난 2013년 1월, 인권단체 연석회의 등 10개 단체가 모여 “사회복지법인오순절평화의마을인권침해해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오늘(2013-02-06) 오후 2시부터 여의도 이룸센터 2층 교육실에서 열린 “사회복지법인 오순절평화의마을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발표된 평화의 마을 거주자 가족 장혜영(해멍) 님의 증언을 싣고 이어서 향후 경과를 지켜보며 독자들께 알릴 예정입니다. 또한, 이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반론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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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장혜정의 친언니입니다.

혜정이는 저보다 한 살이 어립니다. 어릴 때 저는 무엇을 하던 혜정이와 항상 같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더는 그것이 불가능해졌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자 집에는 더 이상 실질적으로 동생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열네 살, 혜정이가 열세 살 때 혜정이는 여주 평화재활원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친동생을 다른 사람 손에 보냈다는 죄책감에 무섭게 시달렸습니다. 지적장애 1급을 가진 동생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저는 잘 알았고, 가족인 나도 가끔 화가 치밀면 손이 먼저 올라가는데 남의 손에 맡기면 오죽할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돌봐도 내가 돌보고 때려도 내가 때려야 하는데 스스로가 어리고 힘이 없다는 핑계로 동생을 시설에 보냈다는 자책만 들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오순절평화의마을 인권침해 증언대회
사회복지법인 오순절평화의마을 인권침해 증언대회

동생은 나와는 다르지만, 엄연히 자신만의 삶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큰 착각임을 깨달았습니다. 동생은 관리당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는 다르지만, 엄연히 자신만의 삶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동생이라는 여리고 독특한 존재를 잘 돌보고 키워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동생의 곁에는 누군가가 항상 붙어서 동생을 지켜야 했는데, 그러기에 집에 남은 가족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돌보는 것도 벅찼습니다. 한편으로 내가 혜정이의 언니이니까 내가 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또 가장 잘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독선적이고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의 가족인 것과 이 아이가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제멋대로 동생의 행복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해보니 고개를 가로젓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생은 다른 언어를 씁니다. 저는 이렇게 말로 의사를 표현하지만, 동생은 제가 쓰는 이 말과는 다른 말, 몸짓, 표정 등으로 자기를 표현합니다. 제 언어와는 다른 동생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오랜 관찰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관찰과 노력을 지적장애인들의 각 가정에서 각각 쌓아나가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기관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각 가정에서 쌓기 힘든 전문성을 사회적인 자원을 통해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지적장애인들과 실질적으로 소통하며 그 삶의 질을 높여가는 것이 지적장애인 사회복지기관의 일입니다. 기관이 그러한 자기의 역할을 다 할 때, 비로소 각 가정은 신뢰를 가지고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하나의 환경으로서 사회복지기관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돌보는 것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 이것이 가정에서 지적장애인들을 생활시설로 보내는 전제입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11월부터 불거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의 일상적인 인권침해 폭로 사태는 이러한 신뢰를 무참히 짓밟아버렸습니다. 저는 같은 해 여름 운동회에서 열린 학부모회의에서 선출되어 학부모회장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회의는 시설입소 기준에 최고 45세까지라는 나이제한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습니다.)

재활원에서 일어난 일은 생활이 아니라 생활처럼 보이는 ‘사육’

신해 전 평화재활원 사무국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시설 내에 일상적으로 만연된 인권침해 행동들이 몇몇 교사들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요 피해자 가운데에는 동생 혜정이의 이름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눈앞이 아득했지만, 정신을 추스르고 최대한 일정을 당겨 여주로 내려갔습니다.

도착해 들은 이야기는 전화로 들은 것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자료를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재활원에서 일어나는 것은 생활이 아니라 생활처럼 보이는 ‘사육’이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생활교사들은 아무런 직업윤리나 전문성 없이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아이들을 대했고 심지어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자기들의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이 오히려 억울하다는 태도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돌보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닌데 자기들에게 너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이러한 직원들을 감싸는 이사회의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신해 사무국장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 한결같이 이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부산의 법인 대표이사 신부는 신해 사무국장에게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자기 대신 사무처장을 서울로 보내 저를 만나게 했습니다.

법인 사무처장은 제가 신해 사무국장의 이야기에 말려들었으며 문제 교사들의 처벌을 미루는 것은 이사회가 아니라 신해 사무국장과 노조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총책임자인 이사회가 아이들의 인권침해상황을 수수방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자 사무처장은 무서운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사회는 직원들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애들 돌보는 일이 피곤하고 어려운데 그러다 보면 등짝도 한 대 때릴 수 있고 하지요. 그런 걸 가지고 징계를 주는 건 사실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라고 사무처장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적인 문제는 알아서 해결할 것이니 자기들을 믿고 이 문제를 조용히 넘어가 달라고 저를 회유했습니다. 저는 거절했고, 그 이후 이사회는 이사회를 통해 저를 멋대로 경질하고 다른 학부모회장을 세웠으며 이제는 저를 ‘시설파괴자’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회유하다 안 되니 ‘시설파괴자’로 매도

저는 이 자리에 오순절 평화의 마을 관리자들의 땅에 떨어진 도덕성을 말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회복지시설로서 그 생활교사와 관리자들의 직업의식의 부재와 비전문성, 직무유기를 고발하고 증언하고자 나왔습니다. 지적장애인의 가족들이 아이들을 시설에 맡기는 것은 생활재활교사 등 직원들의 양심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시설의 전문성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는 아이들을 잘 돌볼 것임을 믿고 맡길 그 어떠한 사회복지시설로서의 전문성도 없습니다.

종종 동생을 만나러 갔을 때 생활교사들이 아무런 자각 없이 원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해왔습니다.

동생은 커피에 집착하는 아이입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자고, 선생들과 다른 아이들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재활원에서는 동생에게 커피를 금지했습니다. 하루는 어느 교사가 동생 바로 앞에서 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이건 내 거야. 너는 안 돼.”

하며 동생을 미치게 하는 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대놓고 뭐라 하지 못했습니다. 혹여 제가 돌아갔을 때 동생에게 해코지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는 묵인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12년 11월에 터진 일은 해가 바뀌고 1월이 되도록 해결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동생은 아직도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그대로 있습니다. 저는 이사회 및 교사들, 심지어 몇몇 학부모들에게도 공공의 적이 되었고 그 압박은 지금도 하루하루를 시설에서 보내는 동생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점에 대해 동생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또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사실 동생 하나만을 위한다면 그냥 동생을 집으로 데려오거나 더 나은 다른 시설로 보내는 선택도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서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한 동생은 한국 사회에서 어느 사회복지시설에 가더라도 비슷한 상황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긴 증언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오순절 평화의 마을 원생 장혜정의 친언니이자 전 학부모회 회장 장혜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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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10년전 이맘때 즈음 저도 생활시설에 있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비인가시설이었는데 지적장애인이 대다수였어요. 나이 많은 언니가 있었는데 지적장애가 심해서 대화가 어려운 언니였어요. 그래도 언니는 누가 자기 좋아하는지 누가 자기 싫어하는지도 다 알고 있었어요. 언니는 머리가 굉장히 짧게 관리되고 있었고 여성이라기보단 중성적인 느낌이었어요. 알고보니 자궁적출을 했더라구요. 시설에서 관리가 어려우니까 부모의 동의를 받아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진행한거였어요. 시설을 나오고 나서 자궁을 적출하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 그래서 그 언니가 그런 느낌이었구나 싶었지요.
    그곳에서도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폭행이 있었지만 저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시설 입소자였으니까요. 한참 지나고 나서 에이블뉴스에 칼럼을 기재하긴 했지만 그곳에서는 아직도 그런 일이 생기고 있겠죠. 동생분의 일이 잘 해결되길 기원합니다. 힘내세요,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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