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3일,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10개월 만에 다시 발생한 테러로 프랑스 전역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 파리 연쇄 테러로 130명이 사망했고, 352명이 부상당했다. 피해자의 규모만으로도 2차 대전 이후 파리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였다. 테러 이후, 프랑스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테러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 언론은 추모 특별 페이지로 희생자를 추모했고, 파리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추모 메모를 공식 기록물로 지정해 관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언론의 추모 페이지들
테러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소셜 미디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테러가 있었던 11월 13일 자정부터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또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서 많은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프로필 사진을 프랑스 삼색기로 장식하고, ‘파리를 위한 기도'(Pray For Paris)라는 글로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그리고 곧이어 언론사들 역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리베라시옹은 테러가 일어난 지 이틀 후, 사이트에 희생자들의 프로필을 올리는 페이지를 마련했고, 이들에 관한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 소개하기 시작했다. 10여 명의 기자가 이 임무에 투입이 됐다.
또한, 11월 16일 월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두 페이지에 걸쳐 지면에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이들의 프로필을 게재했다. 웃는 얼굴 혹은 서로 껴안고 있는 커플, 찡그린 얼굴 등 다양한 표정을 한 희생자들의 사진과 간단한 소개 글이 함께 실렸다. 더불어 전체 희생자 130명에 대한 정보를 모두 모을 수 있도록 앱을 만들기도 했다.
프랑스 공영방송의 뉴스 전문 사이트인 프랑스 TV 엥포(France TV Info) 역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들의 이름과 얼굴, 국적, 출생지, 테러를 당한 장소, 생년월일, 직업 등 간략한 정보들에 대한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제공한다. 프랑스 TV 엥포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둔한 프랑스 군인들 중 사망한 88명의 추모 페이지를 2013년에 마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진 희생자들에 대한 정보 중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몇몇 온라인 매체들이 가디언이나 CNN, 텔레그래프에 실린 파리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과 프로필을 그대로 자신들의 사이트에 올렸지만, 프랑스 TV 엥포는 테러 발생 이틀 후부터 조사에 착수하고, 확인된 정보만을 올리는 방식을 취했다.
희생자의 ‘삶’에 초점 맞춘 르몽드
르몽드는 조금 더 자세하게 희생자를 소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리베라시옹이나 프랑스 TV 엥포보다 한참 늦은 11월 24일, 테러가 일어난 지 11일째부터 희생자 개개인의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한 르몽드는 사이트에 마련된 추모 특별 페이지에 이렇게 밝혔다.
“희생자들이 130명이라는 숫자나 피해자라는 신분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또한 그들을 알고 있는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희생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삶을 알리고 싶었다.”
르몽드는 신문지면에도 희생자 추모를 위한 특별페이지를 마련해 매일 5~6명씩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싣기 시작했다. 희생자들에 관한 일화, 그들이 좋아했던 것, 일상생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지인들과 인터뷰를 통해 조사한 후 르몽드 기자들이 소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2월 9일에 실린 32살의 세실 미쓰(Cécile Miss)에 대한 페이지는 장-빌라르(Jean-Vilar) 극장의 프로덕션 책임자였던 세실에 대한 동료들의 기억, 예술과 여행을 사랑했던 세실의 일상, 음악 사이트를 통해 만나 사랑에 빠진 칠레에 거주 중인 세실의 애인이 들려주는 추억, 테러로 사망하기 이틀 전 세실이 너무나 기뻐하며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는 어머니의 증언 등 세실의 지인들이 들려주는 세실에 관한 기억들로 꾸며졌다.
희생자의 가족과 지인이 슬픔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매우 민감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인터뷰를 아예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모든 희생자의 소개 글을 다 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르몽드 기자 300명 중 70여 명의 기자들이 이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9.11 테러와 ‘슬픔의 초상들’
이러한 추모 방식을 프랑스 언론이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뉴욕타임스는 ‘슬픔의 초상들’(Portraits of grief)이라는 특별 페이지를 마련해 3천 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프로필을 가족이나 친구들이 남긴 짧은 문장과 함께 실었다. 9월 15일부터 시작되었던 이 작업은 3개월 이상 걸렸고, 12월 31일에야 ‘슬픔의 초상’은 지면에서 사라졌다. 물론 온라인 추모페이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언론학자 마이클 셧슨(Michael Schudson)은 이 추모 페이지를 희생자들 각각의 존재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보여주려는 시도로 보았으며, 희생자에 관한 부음 기사라기보다는 진정한 뉴스 기사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저널리스트들의 추모와 증언, 위로가 담긴 일종의 ‘짧은 추도시’라는 것이다(Sudson, 2006).[footnote]Michael Schudson(2006).“L‘extraordinaire retour du journalisme politique ordinaire”, in La terreur spectacle, pp. 153-163, De Boeck[/footnote]
이러한 시도가 사건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저널리즘의 객관성’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했다. 그러나 ‘슬픔의 초상들’의 편집책임자였던 웬덜 제이미슨(Wendell Jamieson)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희생자의 삶에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저널리스트의 일이 아니던가? 폭력적인 사건에서 숨진 경찰이나 전쟁터에서 사망한 군인, 혹은 타이타닉호 침몰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01년 9월 11일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겠지만, 이 추모페이지는 이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게 할 것이다. 치유 불가능한 손실은 그 규모가 아무리 막대하다 해도 숫자만으로는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파리시, 추모 메모들 공식 기록물 관리 결정
추모객들이 테러 희생자들에게 쓴 편지, “나는 파리다”(“Je suis Paris”)라는 문구가 쓰인 벽보, “당신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On ne vous oubliera jamais”)라고 쓰인 삼색기, 그리고 아이들이 남긴 그림이나 짧은 글귀까지도 모두 공식 기록물로 남겨질 예정이다.
파리시가 지난 11월 17일 바타클랑 극장 앞, 레퓌블릭 광장, 볼테르 가 등 파리 곳곳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 추모객들이 남겨놓은 메모와 그림 등을 공식 기록물로 관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MYO590Az4n0
이를 위해 파리 기록 보관소는 지난 12월 10일, 바타클랑 극장 주변에 놓여있던 비에 젖은 추모 메모들을 박스에 수거해 말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록 보관소는 이 메모와 그림들을 말리고 먼지를 제거한 다음, 분류작업을 거쳐 디지털화할 예정이다.
이미 추모 메모들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넘쳐나고, 게다가 아직도 추모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 작업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가능한 한 많은 메시지를 보존하기 위해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해도 이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목적은? 파리 역사의 한 부분, 즉 130명의 삶을 앗아간 2015년 11월 13일의 밤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다.
슬픔을 기억하는 방법,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
희생자들을 집단적 기억 속에 아로새길 수 있도록 하는 것. 뉴욕타임스의 ‘슬픔의 초상’처럼 프랑스 언론사들이 추모 페이지를 마련하거나 파리 기록 보관소가 추모 메모들의 보존 작업에 착수한 것도 바로 이를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모든 삶은 고귀하고 특별하므로. 모든 개인은 그 존엄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으므로. 무엇보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의 희생자들은 록음악과 여행, 예술을 사랑하고, 주말이면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의 담소를 즐기던 평범한 시민들인 동시에 파리의 상징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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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그 비극의 성격은 다르지만, 파리 테러를 다루는 프랑스 언론의 태도는 세월호를 대하는 우리 언론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세월호 직후 우리 언론 다수는 “선정적인 비극 관람”(슬로우뉴스, 2014년 4월 17일)으로 “참사마저 돈벌이 수단으로”(한국기자협회, 2014년 5월 14일) 삼는 참혹한 수준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세월호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겨레의 시도는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며칠 전 세월호 청문회가 끝났다. 하지만 새롭게 밝혀진 진실은 많지 않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우리의 다짐 역시 빛바랜 사진처럼 점점 더 희미해진다.
세월호라는 비극을 잉태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그 원인과 책임자를 밝혀 이런 비극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당위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면서, 동시에 희생자로만 기억되어선 안 되는 ‘세월호의 아이들’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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