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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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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o.Jung, “택시 드라이버” (CC BY SA)
콜을 알면 진짜 기사다.
나는 온종일 여자 말을 들으며 산다. 내비게이션 여자가 제일 말이 많다. 쉬지 않고 떠들지만 즐겁게 들어야 한다. 속도위반도 막아주고 모르는 길을 잘 가르쳐 주니 삶의 지침이다. 또 한 사람은 콜 무전이다. 한창 바쁘게 콜이 들어올 땐 정말 쉬지 않고 무전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집에서도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사상으로 살고 있다. 요즘에는 마누라보다 딸래미가 더 잔소리가 많아졌다. 어디서든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
택시기사가 되기 전부터 늘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택시를 타면 들리는 그 이해하기 힘든 야릇한 콜 무전이었다. 무미건조하면서 높낮이 없는 목소리. 콜 무전의 세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기 이화”
“중산 글로리아”
“중산 글로리아 분대”
삼우타운에서 손님을 내리던 나는 얼른 무전 콜을 잡는다. 이때 ‘대기이화’는 이화 대기 장소에 서 있는 택시가 있는가를 묻는 말이다.
있으면 그 택시가 우선권을 가진다. 그러나 즉시 답이 없으면 바로 두 번째 무전이 날라 오고 이것은 3분 내 올 수 있는 택시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며 ‘분대’는 5분 내 올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때 내가 콜을 잡았기 때문에 5분 내 갈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가야 한다.
“44호! 중산 글로리아 102동 15라인 큐”
44호는 내 차의 콜 번호이다. 중산동 글로리아 아파트 102동에 가라는 뜻이다.
“글로리아 102동 큐 3(쓰리)!”
“큐 4(퍼)!.”
이때 큐 쓰리는 “승객이 없는데요?” 라는 뜻이고 “큐 4” 는 “ 알겠다. 행운을 빈다.” 뭐 이런 인사이다. 큐 쓰리는 매우 황당하고 또 힘이 빠진다. 콜을 불러놓고 지나가는 빈 택시를 타지는 말아야 한다.
공항에서 기사들끼리 대화 중 이런 경우가 있다.
“시내에 일찌감치 나가게 되어 ‘큐 2(투)’로 오전 내 일관했다.”
이 소리는 콜 손님이 아닌 ‘일반 손님’을 의미한다. ‘큐 투’는 거리에서 손들어 타는 손님인 것이다.
“ 44호! 큐 세븐!”
“ 44호! 투 채널!”
큐 세븐은 지금 콜 센타에서 44호 차의 위치를 묻는 뜻이다. 빨리 대답을 하지 않으니 투 채널! 그러니까 무전 전체 본 망이 원 채널이라면 개인적 대화를 위해 채널을 바꿔 들어오라는 명령이다. 보통 이런 경우 페널티를 먹게 된다. 워낙 많은 콜 손님과 씨름을 하다 보니 “44호 기사 아저씨.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00 손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빨리 가보세요.” 뭐 이런 식의 대화는 없다. 아주 무미건조하게 최대한 축약해서 빠르게 무전을 날리고 빠르게 답해야 한다. 기사들은 여기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처음 콜을 하면서 두 번이나 12시간 배차정지를 먹었다.
호계콜은 북구 내 콜이다. 따라서 북구 내 움직일 땐 상관없으나 북구를 벗어난 손님이 북구로 들어오려고 콜을 신청했을 땐 기사가 손님을 태우면서 “도착”이라고 연락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제 시간 내 도착해서 손님을 태웠는지 확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페널티를 받았다. 정신이 확 든다.
북구 안에서도 바로 앞이라고 3분대를 막 누르면 안 된다. 북구 안에는 “매곡대기”, “달천대기”, “천곡대기”, “아진대기”, “신천대기”, “이화대기” 이렇게 여섯 곳의 대기 장소가 있다. 이 중 신천은 야간에만 적용되고 낮에는 자유경쟁지역이다. 매곡은 월드 메르디앙 앞, 달천은 그린카운티 상가, 천곡은 블루밍 아래 버스정류장, 이화는 중산 글로리아 앞이다. 이곳에 대기 중인 택시는 순서에 따라 콜을 받게 된다. 대기 장소에 순서를 잡고 기다릴 땐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울 때이다. 그러나 대기 장소에 한 대의 택시도 없을 땐 옆의 대기 장소에서 아무리 가까워도 3분대 콜을 누를 수 없고 5분대부터 누를 수 있다. 아주 중요한 룰이다. 그냥 달리고 있는 택시 우선인 것이다. 이것을 처음엔 잘 이해를 못 해 페널티를 받았다.
현대 백화점 정문 건너편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그런데 백화점 뒤 나팔꽃 사거리에 또 하나 있다. 이것을 잘못 알아 콜을 잡았다가 혼났다. 손님은 기다리고 있는데 3분 안에 못 가면 큰일이니 마음이 너무 급하다. 정신없이 그 곳에 달려가려고 하니 사고가 난다. 차를 롯데 백화점 앞에 세워 두고도 “롯데 호텔 승강장!”을 찾는데 누르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근처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때 눌러야 한다. 아주 살벌한 경쟁의 세계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집중해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아 고생했다. 가장 신기한 것은 택시 대기 장소에서 기사들끼리 웃고 농담하면서도 무전기에 울리는 소리에 느닷없이 잡아내는 능력이었다. 같이 대화하다가도 무전을 받아 달려가는 모습은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나도 휴식하러 차에서 내릴 때 무전기를 들고 내린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울산대학교 산학 5관”
“울산대학교 산학 5관 분대”
“울산대학교 산학 5관 7분”
나는 얼른 콜을 눌렀다. 제일중학교 앞에서 손님을 막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째 콜을 눌렀으니 7분 안 거리에 있다는 의미이다. 산학 5관이 어디 있는지 잘 몰라 콜 센터에 무전을 날렸다. 당연히 “큐 세븐”이다. 센터에서 기사에게 “큐 세븐!” 을 외치는 것은 “기사는 지금 어디 있는가?”를 묻는 것이고, 기사가 센터에 하는 것은 그 장소의 구체적 위치를 묻는 의미이다. 산학5관을 모르는 나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큐 세븐을 날려야 하는데 그만 “큐 쓰리!”라고 외쳤다. “큐 쓰리”는 기다리는 손님이 없다는 뜻인데 7분 내 가겠다고 한 기사가 느닷없이 ‘큐 쓰리’를 날리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는데 그땐 진땀이 흘렀다.
두 번의 페널티를 받고 몇 번이나 잔소리를 듣고 진땀을 흘리며 어느 정도 콜에 안정감이 생겼다. 선배들이 말한다.
“이제 기사가 되었네.”
2012년 8월 26일 일요일 맑음
비겁함의 극치
며칠 전, 차량운행 중 휴대폰이 울리고 화면에 회사 전화번호가 뜬다. 약간 기분이 안 좋다. 보통 전화가 오는 경우 좋은 소식보다 좋지 않은 소식이 많기 때문이다.
“0월 0일 00 지역에서 속도위반 하셨네요. 범칙금 고지서 날라 왔는데 이번 달 월급에서 제할게요.”
“아, 예. 그렇게 하세요.”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다만 가슴이 아주 쓰리다. 그전에도 차를 몰다 보면 가끔 속도위반 딱지가 집에 날아오는 경우를 접한다. 늘 억울했지만 할 수 없이 거액의 돈을 냈다. 그리고 금세 잊어버렸다. 그런데 온종일 허리 아프고 기관지 천식으로 고생하면서 택시 일을 하고 눈물겹게 돈을 벌어 범칙금을 내야 할 땐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할까.
그러던 중 오늘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았다. 다니는 차량이 없이 한적하여 파란불일 때 진장동 하나로 마트 앞에서 유턴을 했다. 갑자기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 소리를 내며 경찰차가 한 대 나타났다. 분명히 없었는데…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걸까? 이런. 의경 같아 보이는 아주 젊은 경찰이 다가온다.
“신호위반을 하셨습니다. 면허증을 내주십시오.”
“아이쿠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워낙 급해서.”
무조건 시인하고 봐달라고 하는 것이 순서이다. 잡아떼도 소용없다.
“안됩니다. 면허증을 주십시오.”
가만 보니 막 순경이 된 듯하다. 슬쩍 말을 놓으며 친근감을 표시해 본다.
“경찰 아저씨. 혹시 집안에 택시 모는 사람 없나? 그 분을 생각해 보시게.”
“아저씨. 운전을 업으로 하시는 분일수록 교통법규를 잘 지키셔야지요.”
“여보게. 한 번만 봐 주시게. 삼촌 같은 사람 아닌가?”
“소용없습니다. 빨리 면허증 제시하세요.”
이쯤 되면 면허증은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사정하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
“이거 딱지 떼면 온종일 일한 거 다 날린다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뭐가 남겠나?”
잠시 머뭇거리는 표정이 나타난다.
“길이 텅 비어 있지 않나? 그리고 유턴 코스이기도 하고.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나?”
“그래도 안 됩니다.”
뭔가 기록을 시작했다. 이때는 얼른 작전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벌점 없는 걸로 해주게. 면허정지 나오면 생업에 지장이 생기니까.”
다시 한 번 머뭇. 얼른 이를 포착하여 “그렇게 해주시게나. 이왕이면 싼 걸로.”^^ 했다. 결국 이 의경 30,000원짜리 무슨 지시 불이행 뭐 이런 애매한 딱지를 떼고 대단히 미안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붙인다. 비통한 표정으로 딱지를 받아 들었다. 속으로 그나마 선방했다고 돌아서는데 뒤통수가 뜨끈했다. 에효, 이렇게 비겁할 수 있다니.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온종일 번 돈 범칙금으로 다 날렸다.
정말 궁금하던 거였는데 감사합니다^^
콜 불렀다가 지나는 택시를 잡을 뻔 했던 경험이 최근에 있어요. 진작에 알았으면 그런 거 고민안 하고 기다릴텐데..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