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코로나 영웅’의 총파업 예고, 시험대에 오른 이재명 정부 사회적 대화의 시금석. ‘9.2 노정(의료개혁)합의’ 복원 방안은? (이주호/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7분)

보건의료분야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가 ‘9.2 노정합의 이행체제 복원’을 촉구하며 7월 산별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새 정부 들어 첫 대규모 산별파업이라는 점에서 소년공 출신 대통령과 `새벽 총리’, 코로나 영웅 보건복지부 장관후보,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자 철도기관사 출신 노동부 장관후보가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파업의 과정과 결과는 새로운 노정관계 수립과 이재명표 사회적 대화 모델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보건의료노조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위생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의무기록사, 치과기공사) 등 의사를 제외한 전체 의료∙보건 직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조합원의 규모는 2025년 기준 8만5000명이고, 전국 최초로 기업별노조에서 ‘산업별노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편집자, 위키백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참고)
‘코로나 영웅’에서 ‘토사구팽’까지
기실 이번 7월 산별총파업은 코로나19 이후 4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헌신해온 공공의료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억눌린 요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들은‘덕분에’라면서 ‘코로나 영웅’으로 칭송받다가 ‘토사구팽’ 당하고, 그 후 1년 5개월 동안 의료대란의 한복판에서 환자 곁을 묵묵히 지켰다. 새 정부는 7월 산별총파업을 해결하기 위해 수면 위의 쟁점만 볼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 가려진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해야한다.

노조는 ‘9.2 노정합의’라고 부르지만 나는 정확한 의미를 살리기위해 ‘2021 코로나 사회적합의’라고 말하고 싶다. 2021년 당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권덕철 복지부 장관이 서명한 9.2 노정합의는 총 26개항, 11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합의는 코로나 위기가 보건의료분야에 던진 시대적 과제인 ‘공공의료 강화와 보건의료인력의 확충 및 처우개선’을 해결하기 위한 ‘정의로운 건강 전환’(just health transition)의 가치를 담았다.
노조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의 이익과 사회연대 관점에서 추진된 사회적합의라는 점에서 보기 드문 ‘노동참여 의료정책 거버넌스’라는 노정협치의 성공모델로 평가받았다. 후속으로 공공의료 강화와 보건의료인력정책개선을 위해 `합의이행협의체’가 만들어졌다.
‘한겨레’는 그해 9월 3일자 사설에서 “보건의료 노정합의, ‘공공의료 강화’로 결실맺기를 바란다”며, 지향점을 제시했고,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의료대란 피했지만 ‘코로나 피로’ 방치했다간 파국 올 수도” 있다면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보상 관련 근본 대책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파국을 맞았다.
의정 갈등 해결에 밀리는 ‘9.2 노정합의’

보건의료노조가 7월 총파업결의를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다행히 윤석열 탄핵과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9.2 노정합의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만 노조는 ‘9.2 노정합의 이행’이 아닌, ‘9.2 노정합의이행체제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그 차이는 명확하다. 26개 항의 주요 내용인 공공의료 확충과 인력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합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노정간의 대화와 소통, 사회적 대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노조의 외침은 의정 갈등 해소가 의료 정책의 최우선순위가 되면서 후순위로 밀리는 모양새다. ‘2021년 9월 2일 새벽, 극적인 노정합의 타결…그때의 다급함은 어디로 사라졌나?’라는 ‘라포르시안’ 7월 3일자 기사는 이런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대화가 통합을 위한 핵심축
나는 2021년 당시 9.2 노정 합의 관련 교섭담당자였다. 지금은 한 대학 연구소에서 초기업교섭과 사회적 대화 발전 방안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보건의료노조 7월 총파업 관련해 새정부에 세 가지 해법을 제안한다.
첫째, 새 정부는 윤 정부에서 중단된 2021년 노정합의를 다시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정기획위원회에서 9.2노정합의 주요 내용을 국정과제에 구체적으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보건복지부는 물론 고용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산별총파업이 예고된 7월 24일 전에 노조 7대 요구가 원만히 타결되도록 성의를 보여야 한다.
다만 노조의 요구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했던 것처럼 별도의 9.2 노정합의이행협의체를 만들어 1:1 노정대화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9.2 노정합의 이후 간호법 제정과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상황이 복잡해진 만큼, 오히려 신속한 처리가 중요하다. 이른 시일 안에 이행협의체를 열어 새 정부의 의지를 뚜렷이 밝히되, 주요 의제인 공공의료와 인력문제 해결은 인력수급추계위원회, 공공의료정책위원회, 보건의료정책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노조 참여 및 관련 분과 구성 등을 통해 이행 방안을 구체화하고, 필요할 때 노정이 만나면 될 것이다.
둘째, 이번 기회를 9.2 노정합의 이행협의체제 복원을 넘어 보건의료분야에서 ‘이재명표 새로운 사회적 대화체제’를 모색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사회적 대화의 성공여부는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이 함께 만나는 사회적 대화 구축이라고 확신하기에 각 산업별 의제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초고령사회 준비와 일자리 창출의 핵심인 보건의료산업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일자리위원회 구성과정에서 보건의료분야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이해한 이용섭 부위원장이 일반 의제위원회가 아닌 ‘보건의료특위’를 만들어 일자리위원회 활동을 선도했고 상당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새 정부에서도 그런 발상과 시도가 필요하다.

최근 의정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총리가 의사 대표를 만났다고 한다. 이는 시의적절한 소통 행보이다. 다만 국민적 요구인 의료개혁과제를 뒤로 하고 특정 단체와 만나 무원칙하게 합의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노조, 의사, 그리고 시민사회, 환자단체, 광장의 요구를 한꺼번에 묶어 공약에서 제시된 ‘의료개혁을 위한 국민참여 공론화위원회’를 조속히 구성,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 국회에서 진행된 국민연금 공론화위원회 과정을 참고하여, 모든 이해당사자와 국민이 참여하는 숙의민주주의, 국민 공론화 방식의 이재명표 사회적 대화를 바로 여기서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보건의료노조 파업사태 해결을 넘어 더 근본적으로‘이재명표 새로운 사회적 대화 체제’ 추진 전략을 제안한다. 나는 대선 전에 ‘새 정부에 바란다 :‘노동연대 대통령’이 100일안에 해야 할 3가지 과제’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한 걸음 더 나아간 제안을 하고자 한다.
새 정부 들어 성장과 통합 두 개의 키워드가 부각되고 있다. 성장 관련해 많은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통합 관련해서도 실용주의적 인사와 함께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 등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노동부 장관후보 등이 두루 강조하고 있는 ‘사회적 대화 체제 구축’의 큰 그림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사회적대화가 사회통합의 핵심축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행정’은 정해져 있는 것을 하는 것이고 ‘정치’는 없는 걸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이재명표 사회적 대화’는 기존의 익숙한, 정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사실 그동안 많은 대통령과 총리들이 정권 출범과 함께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사회적 대화가 가장 쉬운 듯하지만 가장 어려운 정치 공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의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
많은 이들이 유럽의 역사적인 대타협 모델을 이야기하지만, 한국의 노사관계 토양은 전혀 다르다. 외형적으로는 노사정 대표가 만나는 간단한 그림이지만 그 이면에는 초기업 노사관계 미성숙으로 인한 초기업 타협문화와 노사자율교섭문화의 미비, 노사 중앙조직의 대표성 문제와 내부정치의 과잉, 정파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중장기적 전략과 투자 없이 현안 중심으로 눈앞의 성과만 바라는 정부의 무 철학, 미숙한 업무 처리 등등 풀어야할 숙제가 산적해 있어 대통령과 노사정이 악수하는 상징적 장면 이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근본 문제에 대한 성찰과 정교한 대책 없이 사회적 대화에 성공하겠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새 정부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딛고 성공하는 사회적 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구체적 일정이 중요하다. 대통령 또는 총리가 스웨덴식 목요클럽 같은 정례적인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면서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고, 노동부 장관이 실제 총괄 역할을 하면서 사회적 대화의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 경직된 틀에 갇힌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문턱을 과감히 없애고, 국회 등과 연계해서 개방형 실용적 대화 플랫폼을 만들어 진정성 있고 실효성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실에 사회적 대화 추진 전담 인력을 두고,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노조와 노동부 간 노동의제만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는 늘 합의사항 이행과정에서의 한계는 물론 여러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교섭대상이 될 수 없는 노동기본권 보장 의제를 다루면 노조 내부에서는 자본에 들러리 선다는 비판과 함께 무원칙한 양보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노사정이 제로섬이 아닌 윈윈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책임지기 어려운 전국단위 쟁점을 최소화하고, 중범위 수준에서의 산업정책과 노동정책, 그리고 노동과 지역이 만나는 지점에서 의제를 선정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재정 확보, 업무분장 등 성공을 위한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장관 임명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9.2 노정합의 이행 관련 김민석 국무총리의 정치적 역할이 중요하다. 2021 합의서에는 ‘합의사항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점검하고, 국무총리실은 부처 간 역할조정 등을 지원한다’고 명시되어있다. 당시 합의 과정에서 김부겸 총리가 직접 방문하고 대통령까지도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보건의료분야에서의 합의 내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만이 아니라 기획재정부, 노동부 등 관련 부처의 협력이 절실하며, 이를 총괄하는 부서가 국무총리실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03년부터 주민조례에 의한 성남시립병원 건립운동을 보건의료노동자들과 함께 해왔다. 이들이 어느 때보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큰 이유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2023년 12월 국회 앞 단식 농성장을 직접 방문해서 가장 좋아하는 구호라면서 방명록에 서명했던 그 문구를 모든 보건의료 노동자는 기억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노동과 진정성있게 소통하는 이재명 정부가 가야 할 길이 이 문구에 담겨있다.
“‘돈보다 생명을’ 코로나 영웅들을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이재명(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20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