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서울시와 마포구는 ‘쓰레기 소각장’ 이슈로 다투고 있다. 양측은 마포구 상암동에 소각장을 신설하는 문제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최근까지도 기존 마포 소각장 이용 연장 협약을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 일부 마포 구민들은 지난달부터 매일 밤 소각장 반입 차량을 가로막고 시위 중이다.

일각에서는 마포구와 주민의 반발을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라고 힐난한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구민들은 ‘소각장 반대’를 넘어서는 대안과 비전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발족한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가 대표적 사례다.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는 지난해 12월부터 마포 전역에서 자원순환 도시를 만들기 위해 활동한 다양한 주체들이 머리를 맞댄 단체다.

마포구는 지난해 11월 국제소각대안연맹(GAIA)과 함께 폐기물 소각 반대 포럼을 개최했다. 마포구청장 박강수와 미국 세인트로렌스대 환경화학부 명예교수 폴 코넷의 모습. 사진=마포구청 제공.

도시를 위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전환.

  •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는 소각장 건설보다 ‘쓰레기 감량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로 웨이스트는 도시 쓰레기 정책을 다시 설계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 기존 쓰레기 관리는 폐기물을 자원으로 전환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시스템으로 안착한 분리수거와 재활용이 한 사례다.
  • 반면, 제로 웨이스트는 애초에 자원이 폐기물이 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핵심이다. 어떤 것도 소각하지 않으며, 환경과 인체 건강에 해가 되는 물질을 토양, 물, 공기 중으로 배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체 무해한 쓰레기 소각은 존재할 수 없다.

  •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2000년 출범한 국제소각대안연맹(GAIA, Global Alliance for Incinerator Alternatives)은 환경 정의와 제로 웨이스트 실현을 목표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다. 전 세계 92개국 1000여 개 환경 단체의 글로벌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다.
  • 마포구는 지난해 11월 연맹과 함께 폐기물 소각 반대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자원순환 운동가인 미국 세인트로렌스대 환경화학부 명예교수 폴 코넷은 “다이옥신 수치가 0이라고 주장하는 네덜란드 하를링겐의 최신식 소각장조차 토시코워치(Toxico Watch, 환경 유해 물질을 조사·분석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가 4주간 장기 측정을 한 결과 460배에서 1290배까지 높은 결과가 도출됐다”면서 “현재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에 대한 측정은 주로 6~7시간에 불과한 단기 측정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어떤 기술적 방법으로도 인체와 환경에 무해한 쓰레기 소각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쓰레기 문제는 산업 구조 문제.”

  • 7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 공동대표 오현주(45)는 “쓰레기 문제는 개인 실천을 넘어서는 산업 구조 문제”라며 “제로 웨이스트는 입법 정책과 조례 제정으로 풀어야 할 정치 문제”라고 강조했다.
  • 오현주는 지난 2월 발효된 유럽연합(EU)의 포장재 및 포장폐기물 규제(PPWR, 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사례를 들었다. PPWR 내용을 보면, 2030년까지 유럽에서 모든 포장재는 재활용이 가능해야 한다. 일회용 포장은 금지되며, 플라스틱 포장재의 경우 재활용 원료의 최소 함량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 국제사회 규제는 국내 수출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법무법인 지평은 “EU 역내에서 상품을 생산·유통하거나 EU 역내로 상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이 PPWR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판매 금지 및 벌금 부과의 불이익을 받는 것에 더해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게 될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2023년 3월 덴마크 코펜하겐시 소재의 쓰레기 소각장 ‘아마게르 바케’를 방문했다. 사진=서울시청 제공.

‘친환경’ 덴마크 소각장의 이면.

  • 서울시장 오세훈은 2023년 3월 덴마크 코펜하겐 소재의 쓰레기 소각장 ‘아마게르 바케’를 방문했다.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코펜하겐시는 2017년 폐기물 관리와 에너지 생산,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연면적 4만1000㎡(약 1만2400평) 규모로 아마게르 바케를 조성했다. 노후화한 소각장을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다목적 시설로 재편했다.
  • 특히 지붕 경사를 활용한 스키장 등 레저 시설이 강한 인상을 줬다. 오세훈은 상암동에 설치하려는 신규 소각장을 아마게르 바케와 같은 랜드마크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오세훈은 “(소각장을) 좀 더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시설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일부 언론들은 ‘친환경 소각 시설’, ‘지역 명소’ 수식어로 아마게르 바케를 주목했다.
  • 정작 유럽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GAIA의 유럽 지부 역할을 하는 ‘제로 웨이스트 유럽’2019년 11월 보고서에서 “폐기물 소각 프로젝트인 아마게르 자원 센터(ARC)는 기술적, 재정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혹평했다.

박강수의 쓴소리 “오세훈, 제로 웨이스트 도시를 벤치마킹하라.”

  • 2020년 9월 폴리티코 보도를 보면 덴마크는 10년간 소각 용량을 30% 감축할 계획으로, 덴마크 기후 장관은 “우리는 소각장 여유 용량을 사용하기 위해 플라스틱 함량이 높은 폐기물을 수입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영국 시사 월간지 ‘프로스펙트’도 지난 3월 “아이러니하게도 스키 슬로프 때문에 소각장이 불필요하게 커졌다”며 “청정 생활을 추구하는 덴마크 사람들은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지 않는다. 아마게르 바케는 수입 폐기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은 영국에서 운송됐다”고 지적했다. 소각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웃 국가로부터 폐기물 처리 수수료를 받고 쓰레기를 수입하는 역설적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 마포구청장 박강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신 소각장을 만든 덴마크 아마게르 바케를 견학할 것이 아니라 소각장을 없애고 제로 웨이스트 정책을 펴고 있는 이탈리아 ‘카판노리시(市)’나 필리핀 ‘바기오시(市)’를 벤치마킹해주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소각과 매립을 우선순위에서 제거하라.”

  • 오현주는 다음과 같은 대책 수립을 주문했다.
  • 첫째, 지자체 차원에서 포장재·제품 등을 재설계하여 순환경제 기반의 새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라.
  • 둘째, 예산은 원천 감량, 재사용, 재활용 순으로 우선순위에 따라 차등 배분하라.
  • 셋째, 원천 감량, 분리수거 고도화, 재사용 및 재활용 정책을 확대 시행하라.
  • 넷째, 폐현수막 재활용보다 친환경 현수막을 촉진하는 조례를 제정하라.
  • 다섯째, 자원 재생은 에너지 회수가 아닌 물질 중심의 회수로 설계하라.
  • 여섯째, 소각과 매립을 최하 우선순위가 아닌 부적절한 단계로 재설정하라.

서울시 쓰레기 전수조사 시급하다.

  • 지난달 30일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 발족식과 함께 열린 세미나에서 GAIA 정책연구원 문도운은 “현재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전수조사하고, 처리가 까다로운 폐기물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부터 발생을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지금처럼 쓰레기 처리 시설의 설계와 운영 단계에서 이뤄지는 폐기물 상태 조사가 아니라 쓰레기 발생 예방과 산업 디자인 개선을 목적으로 한 연구·조사가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 특히 수리, 재사용, 재활용, 퇴비화가 불가능한 제품과 포장재에 대해서는 산업계가 해당 제품을 순환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개선하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거리나 해변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포장재의 브랜드 순위를 매겨보자는 것이다.
  • 문도운은 “폐기물을 고열로 처리하면서 대기로 배출되는 오염 물질에는 다량의 온실가스도 포함돼 있어 각 도시가 수립한 탄소 중립 목표에 배치된다”며 “에너지 회수를 수반하더라도 1톤 폐기물을 소각할 때 그 상태와 성질에 따라 0.7~1.7톤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덧붙였다.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 공동대표 오현주가 7일 서울 마포구에서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내일 당장 ‘쓰레기 없는 도시’는 아닐지라도.

  • 쓰레기 없는 도시가 가능한가. ‘제로 웨이스트’라는 말이 허황된 낙관은 아닐지 의심이 들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정책은 주민과 지역사회가 변화할 유인을 준다는 점이다. 내일 당장 쓰레기 없는 도시는 어려울지라도 쓰레기 감축을 유도하는 정책 설계는 얼마든 가능하다.
  • 일례로 종량제 봉투 가격이 늘면 생활 쓰레기는 줄어든다. 인천연구원 2020년 정책 보고서를 보면, 실제 종량제 봉투 가격 1% 증가 시 생활폐기물은 0.165~0.1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3년 20L 종량제 봉투의 전국 평균 가격은 장당 394원이었는데, 2023년에는 505원으로 20년간 약 1.3배 상승에 그쳤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에 미치지 못한다.
  • 오현주는 “유럽의 어떤 지자체는 일반 쓰레기에 비해 재활용품 수거 빈도를 높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재활용 분리수거를 더 고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정책이 변화하자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더 철저히 분리하게 됐고, 그로 인해 실제 쓰레기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 공동대표 오현주의 발제문.

쓰레기 감축 성공 사례 만들 수 있을까.

  • 반입량 관리제를 강화하는 것도 방안일 수 있다. 반입량 관리제는 각 자치구별로 공공처리시설 반입이 가능한 쓰레기 총량을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쓰레기 감량 목표를 설정하는 제도다. 감축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받는다.
  • 서울 중구는 지난해 5만1592톤으로 설정된 반입 할당량보다 5309톤을 덜 배출해 지난 3월 서울시로부터 7억 6200만 원 규모의 보상(인센티브)을 받았다. 할당량의 10.3%를 감축해 ‘쓰레기 감량 2년 연속 서울 최우수구’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이다. 오현주는 “제도를 더 강화한다면 지자체 스스로 쓰레기 감축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쓰레기 감축은 의지와 정책 문제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는 마포구청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30%를 감축하는 사업을 마포구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신청했다. 하루 동안 청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규모가 100Kg이라면 일단 70kg로 줄여보자는 것이다. 쓰레기 감축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실험에 이목이 모인다.
  • 인터뷰 말미 오현주는 쓰레기 소각장을 ‘짐승’에 비유했다. “일단 짐승(소각장)을 만들면, 계속 먹이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덴마크처럼 거대 짐승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 우리도 부러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을 필요가 있다.

관련 글

첫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