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인터뷰] 마루노조위원장 최우영이 말하는 독립노조. 어느날 밤 문득 작업 현장 아파트 창 밖으로 바라본 해운대 불빛, 그리고 ‘평떼기’ 대신 일당을 원하는 이유. (🕰️23분)

민노 인터뷰

똥 아니면 과로사 말고… 그 모순의 구조에도:
최우영 마루노조위원장 인터뷰

질문, 정리: 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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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년 10월 14일(월) 진행한 4시간 남짓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맥락화하거나 소제목으로 표시하고, 최우영 위원장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인터뷰 공간을 내주신 ‘권리찾기유니온’에 감사를 표합니다.

하나 더, 23분짜리 인터뷰를 읽겠다고 ‘결심’한 독자라면, 그 전에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 프렌들리 소사이어티: 독립노조가 스스로 돕는 법을 먼저 읽으면 더 좋습니다. (편집자)

“소원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겁니다. 7시 출근해서 5시 퇴근하고 싶습니다. 마루 노동자는 다른 건설 노동자처럼 일당으로 돈 받지 않고 평당 가격으로 받습니다. 20년 동안 평당 1만 원에서 1만 3천 원 정도로 3천 원 올랐습니다.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우영(마루노조 위원장), 2024 지리산포럼, 2024.10.03.

2024 지리산포럼에서 처음 ‘마루노조’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듣고 어감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건설 현장에서 ‘바닥’을 시공한다. ‘마루’라는 부드러운 어감보다 ‘바닥’이라는 단어가 마루 노동자의 현실을 더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이하 최우영 마루노조위원장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똥 혹은 존재의 조건


최우영: 마루노조하면 2년 전쯤 사회를 꽤 떠들썩하게 한 ‘인분 아파트’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다. 우리 마루노조가 인분아파트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노조다.

“저 같은 경우는 골조 공정을 하기 때문에 주변에 콘크리트, 벽, 바닥, 천장, 기둥밖에 없는데요. 그 천장에 인분 봉투가 나온 것은 골조 후속 공정에서 인테리어나 그런 관련된 인부들이 좀 해결하고 간 것 같아요. (…중략…) 원청사들이 비용 절감을 하기 위해서 편의시설, 예를 들면 화장실, 휴게실, 세면실 그런 것들과 안전시설물들이 설치가 되게 미흡해요. (…중략…) 강남이든 어디 압구정이든 뭐든 어느 건설 현장에서든 건설노동자들에게 화장실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건설 노동자, “신축 아파트 인분, 전국 다 그래…이유를 아세요?”,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22.07.28. 중에서.
골조 노동자 빠지면 간이 화장실도 빠진다

골조 노동자(건설노조의 중심 노동자)와 마루 노동자는 서로 마주칠 일이 없고, 골조 노동자가 철수하면 그제야 마무리를 위해 마루 노동자나 도배 노동자들이 투입된다. 그런데 골조 노동자가 철수하면서 간이 화장실도 철거한다.

골조가 끝나면 그 간이화장이 있는 공간도 조경하고, 놀이터를 만들어야 해서, 간이 화장실 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핑계를 댄다. 골조 노동자를 탓할 일은 아니고, 시공사나 ‘오야지'(중간관리자)를 탓할 일이다.

그래서 마무리 공정에 투입된 실내 건설노동자들은 작업하는 곳은 아파트 맨 끝인데, 엘리베이터 25층을 타고 내려와서 1km를 뛰어 화장실에 가곤 한다.

‘인분 아파트’ 공론화 후, ‘탁상행정’… 멍청한 시행령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노조가 ‘인분 아파트’ 문제를 공론화했다. 많은 언론이 ‘인분 아파트’ 기사를 썼다. 개인적으로는 노조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큰 보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남자는 노동자 30명 당 한 개의 간이 화장실, 여자는 20명당 한 개의 간이 화장실를 필수적으로 현장에 설치하고, 관리자 업무로 담당하게 하는 시행령을 마련했다. 탁상행정이다. 이거 누가 정했나. 국회 토론회나 간담회에 가면 이제 시행령이 있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반문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난다. 이 시행령 바꿀 때 누구와 상의했냐. 거기에 배석한 사람이 누구냐. 내가 물었다. 노동부 공무원이 답했다. 건설사 직원, 노동부 추천 전문가, 건설노조(민노총이나 한노총), 기타 등등. 거기에 마루 노동자는 없었다. 현장에는 한 번이라도 가 보셨는가.

정말 말이 안 되는 시행령이다. 요즘 아파트는 대부분 고층 아파트다. 25층, 30층 고층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에게 1층 화장실은 그림의 떡이다. 누가 거기까지 용변 보러 가겠는가. 현실성 없는 시행령이다. 예산 낭비다.

‘인분아파트’로 검색한 구글 이미지 검색 화면 모습. 2022년 7월쯤 기사들이 많다. ‘인분 아파트’를 만들어내는 구조보다는 소비자(입주민)의 관점에서 ‘똥’ 자체를 자극적으로 전시∙소비하고 형식적이고 관료적 대책을 피상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들이 많다.
간단한 해법: 5층마다 방 정해 기존 변기 쓰고, 공사 끝나면 새로 교체

현장 노동자는 같은 목소리로 요구한다. 굳이 1층에 간이 화장실 만들 필요 없다. 5층마다 하나씩 기존 화장실(입주 예정자 주택에 설치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된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그 변기만 새것으로 교체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입주민도 노동자도 시공사도 모두 윈윈이다. 입주 예정자는 ‘인분 아파트’로 걱정할 필요 없어서 좋고, 건설 노동자는 생리 현상을 그때그때 해결할 수 있어서 좋다. 자기 일하는 작업 현장에 똥오줌을 남기고 싶은 노동자는 없다. 그런 노동자가 있을 리 없지 않나. 모두 쾌적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똥오줌이 널려 있는 현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입주민, 노동자뿐 아니다. 건설사도 경제적인 면에서 이익이다. 사실상 사용할 수도 없는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는 비용보다는 5층마다 한 개씩 501호든 502호든 정해 놓고, 거기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게 하고, 작업이 끝나면 변기를 새것으로 교체하면 모두에게 좋은 방식이다.

무엇보다 작업 현장이 쾌적해진다. 아무리 약품처리를 해도 똥오줌은 위생상으로 문제 있다. 입주자들은 이런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입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다. 골조 노동자고, 실내 노동자고 할 것 없이 모두 문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현장은 똥 밭이다. 한번은 토요일에 서울 한 현장에 갔는데 냄새가 엄청난 거라. 똥이 너무 많아서 이게 사람 혼자서 치울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아파트 세대에서 이틀 동안 작업했는데, 냄새가 배어서 빠지지 않았다. 입주자도 이런 걸 원하진 않을 거다.

똥은 항상 존재의 본질에 관해 질문한다. 그것은 ‘존재의 최전선’이다.
‘똥과 과로사’로 건설 현장 모순을 퉁친다… 그 구조엔 관심 없다

마루노조로 상징되는 건설 현장의 모순에 관심을 두고,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언론사는 결국은 몇 곳 안 된다. 매일노동뉴스, 한겨레, 프레시안과 경향 정도? 건설 현장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왜 마루 노동자가 더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두는 언론사는 별로 없다. 다들 ‘똥 아니면 과로사’ 같은 다소 선정적인 이슈, 눈에 보이는 것만 기사를 쏟아낸다. 그것도 아주 수박 겉핥기식으로 반짝이다. 똥과 과로사 자체에만 주목한다. 건설 현장의 모순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냥 인분 아파트로 과로사로 건설 현장 모순을 퉁친다.

올여름 특히 무더위가 심해서 야외 노동자 안전에 관심이 쏠렸다. 실내 노동자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외면받았다. 그래도 매일노동뉴스가 실내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졌다. 한여름 야외 노동에는 물과 그늘 그리고 휴식, 이게 3대 원칙이다. 똑같이 고통스러운데, 실내 노동에는 그런 원칙도 없다. 물론 야외 노동이 더 힘들긴 하겠지만, 사람 한계를 넘는 건 똑같다. 우리는 물도 우리 돈 주고 사 먹는다. 여름에 비가 오면 그게 시원한 게 아니라 습기에 실내를 가득 채워서 한증막에서 일하는 것과 똑같다. 야외 노동의 괴로움이 땡볕이라면 우리는 장마철 사우나가 그만큼 고통스럽다. 거기에 장시간 노동의 고통이 겹친다.

마루노조는 독립노조다


마루노조는 독립노조다. 독립노조는 상급단체가 없는 노조를 부르는 말이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같은 곳이 상급단체다. 공식적으로 가입을 신청하지는 않았다. 안 될 게 뻔해 보여서다(이 점은 건설노조에 직접 확인한바 사실. 몇 해 전 마루노조와 한옥노조의 가입을 논의한 적 있지만 결과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편집자).

이상헌 박사 인터뷰(프렌들리 소사이어티: 독립노조가 스스로 돕는 법)를 잘 읽었다. 이 박사 말씀처럼 큰 노조가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더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연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처음엔 좀 서운했다. 노동자면 다 같은 노동자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런 기대가 없다. 서운하다는 생각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한다. 마루일을 하기 전에는 현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적 있는데, 그때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정말 너무 달랐다.

온종일 바닥만 보면서 일한다

민노씨가 책(‘나는 얼마짜리입니까’)에서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사례 말한 대리운전 공제회 ‘카부기’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단체다. 그런데 거기는 지역(부산울산경남)이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정서적으로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다. 우리는 전국 건설 현장을 다닌다.

전체 아파트가 한 800세대 정도 규모면 우리 일이라는 게 한 달 안에 끝난다. 그 정도 아파트에 한 20명 정도가 투입된다. 다른 건설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마루 노동자도 현장에서 서로 마주칠 일이 없을 정도다. ‘오야지’가 작업 지시를 하면, 온종일 바닥만 보면서 혼자 일한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게 아니다. 일의 특성상 온종일 바닥만 보면서 홀로 일하는 거다. 점심 식사도 바쁘니까 혼자 간단히 도시락 김밥 같은 걸 먹으면서 일할 때가 많다.

그래서 현장에서 동료의식이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마저도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전국으로 다시 흩어진다. 그런 점이 부족하다. 그런 아쉬움을 매일 느낀다. 하지만 그래도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유령 노동자… 새해엔 ‘마루공’ 처음 인정받는다


정부는 건설업을 다시 127개 직종으로 세분한다.

유령, 국가 승인 직종에 ‘마루’는 없었다

하루 3천 원, 4천 원씩 적립되어야 하는 퇴직공제금도 안 주고, 건설 근로자인데 4대보험커녕, 법적 의무인 고용보험, 산재보험도 안 들어주고(이른바 ‘3.3 계약’), 127개 건설 분야 국가 승인 직종에서도 빠져 있다. 마루 노동자를 ‘유령 노동자’라고 하는 이유다.

선배들은 관행이라고 하더라. 거기에서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127개 건설 직종에 포함되는 게 중요한 건, 정부가 승인한 건설업 직종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로 산출한 각 직종별 일평균 임금으로 공공 건설, 가령 정부나 지자체 건설 사업의 입찰 기준 단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3년을 싸운 끝에 내년(2025) 1월 1일부터 ‘마루공’이 그 국가가 인정하는 건설 직종의 하나로 인정받는다. 2024년 봄쯤인가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대통령)도 한마디 하긴 했다. “마루 직종이 있는 줄 알았는데, 현장 노동자 말씀을 듣고 (마루 직종이 없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물론 그 말 한마디하고 그 후론 깜깜무소식이긴 하다(웃음).

“국가 승인 직종에 ‘마루공’은 없다”는 한겨레 기사(2024.05.15). 기사 말미에 최우영 위원장의 짧은 인터뷰가 있다. “마루공이라는 이름이 있고, 이름에 맞는 평균임금을 알아야 우리가 싸우든 합의하든 할 수 있다.”
전기는 기술 영역, 마루는 숙련 영역

전기 배선이나 수도 작업 등을 다루는 건설 노동자보다 마루 노동자의 작업이 쉬워 보일 수도 있다. 전기나 소방이나 배관이나 그런 영역을 나는 기술 영역으로 보고,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마루 일은 기술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숙련된 기능이 필요하다. 가령, 전기 작업은 이론 책도 봐야 하고, 학원에도 다녀야 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 비교적 손쉽게 누구나 현장에서 간단한 실습을 거쳐 일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이론을 아무리 배워도 1년 정도의 수습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시공할 수 없다. 만약에 전기 노동자에게 1년을 수련하라고 하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거다. 나는 마루를 시공하는 일을 숙련 기능으로 표현하고 싶다.

억울하면 골조 노동하면 되잖아?

억울하면 골조 하라는 이야기는 같은 시공자에게도 많이 듣는 이야기다(웃음). 골조 노동해서 건설노조로 가든가 하지 왜 마루를 하는가. 그런 식의 이야기. 그런데 나는 마루 일이 적성에 맞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목적인 ‘투명하고 건강한 작업장이 된다면’ 나는 마루 노동자로서 자부심이 있고, 마루 시공하는 일이 꽤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와의 관계만 정상화하고, 다른 건설노동자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같은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으면 마루 시공하는 일은 나에게는 아주 재밌고 보람 있는 직업이다.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해선 안 된다.

마루가 깔려야 그제야 집 같다. 한남동 부촌 단지에서 마루 작업한 적 있다. 가장 싼 집이 70억 원을 호가하는 부자 단지였다. 오스트리아산 원목 마루였는데, 우리가 시공했다. 왠지 최고급 아파트는 더 고숙련 마루 시공자가 작업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나 같은 마루 노동자, 똑같은 마루 노동자가 시공한다. 그 집에 유명 연예인이 산다고 하니까 ‘그런 사람 집 마루를 내가 깔았구나!’ 하는 그런 느낌도 들었다. 물론 고급 주택이라고 더 돈을 주는 건 아니다. 똑같이 준다. 변두리 아파트나 초호화 아파트나 시공 단가는 같다. 서울에서 작업하나 부산, 제주도에서 작업하나 단가는 한결같다.

노조 활동 목표… 평떼기 대신 일당으로 받고 싶다!

노조하면서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부당한 일을 겪은 동료 노동자의 여러 문제, 가령 산재나 부당해고 같은 문제를 해결했을 때, 퇴직공제금, 임금체불 등 문제를 해결했을 때 작업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큰 보람을 느낀다. 어느 날은 밤 늦게 전화가 온다. “내가 직접 나서진 못하지만, 항상 응원한다.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그러면서 카톡으로 커피 쿠폰을 보내온다. 그런 게 참 고맙다. 노조하는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일당제 전환이 목표다. 다른 건설 노동자들처럼 정해진 일당을 받고 싶다는 거다. 공공 영역에서는 이제 새해(2025)부터 건설 직종 일평균 임금에 따른 일당으로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민간 건설 부문에서는 ‘평떼기’(평당으로 노임을 받는 관행)다.

매일건선신물 최근 보도. 127개 건설 직종을 중분류한 표다. ‘마루공’은 아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내년에 드디어 국가가 인정한 건설 직종으로 인정받는다.

‘평떼기’


마루 시공 경력은 8년, 마루를 택한 이유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IMF가 터져 희망퇴직으로 불리는 반강제 퇴직을 하고, 신문배달을 잠깐 하다가 삼성을 거쳐 한국까르푸에 입사했는데, 본국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그때 또 잘렸다(웃음).

처음엔 노동운동을 안 좋게 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일하는 건 비슷한데 먹는 식당도 다르고, 입는 옷도 다르고, 버는 돈도 달랐다. 현대에서 봤던 하청 노동자의 사활을 건 투쟁을 모른 채 하는 정규직 노동자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때가 90년대 말이다. 노동자는 같은 노동자인데… 내가 비정규직이라서 더 그랬을 수 있다.

까르푸에서는 검수팀 대리까지 하면서 열심히 일했고, 삼성캐피탈 채권 센터에서는 송무를 담당하고 소장도 작성했다. 그런데 삼성캐피탈은 망해서 삼성카드만 남았고, 앞서 말했듯, 까르푸는 본국으로 철수했다. 삼성캐피탈 사무실에서 2002 월드컵을 보며 ‘치맥’ 하면서 직원들과 함께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그 동료들과는 연락한다.

그렇게 내가 항상 을인 직장생활을 하다가 내가 좀 주체적으로 갑이 되는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해서 건축자재회사를 했다. 당시 울산 건축경기가 호황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사업이 성장하나 싶더니 사기꾼을 만났다. 외상 대금이 늘고, 함께 일하면서 형 동생 했던 직원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 일했던 선배도 그 뒤를 따르고…

미친 듯이 일했다

사업체가 부도를 맞고 사기꾼은 감빵에 갔지만, 손해는 돌려받지 못했다. 치킨 배달도 하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면서 몇 년을 버텼다. 그러다가 결국은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내 앞으로 살 수 있는 게 없었다. 중장비 기사를 할 수도 없다. 5년 동안 신용거래, 대출 등이 막혔다. 신용카드 발급도 안 된다. 오로지 체크카드만 쓸 수 있다.

최우영 위원장 본인의 작업 모습을 담은 사진. 마루노조 제공.

그렇게 절망 속에서 몇 년 후면 내 나이도 지천명인데… 지난 삶을 돌아봤다. 내 몸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싶었다. 정직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벌고 싶었다.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건축 자재 일을 했던 경험 때문에 건설 현장은 좀 친숙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마루 일을 선택했다.

2년 동안 죽어라 했다. 처음 1년 수습 기간은 하루 12시간 이상일하고 200만 원 정도 벌었다. 그렇게 수습 기간이 끝나자 하루 12시간 일하고 500만 원 넘게 벌 때도 있고, 13시간 14시간 일하면서 월 900만 원까지도 벌었다. 오전 5시에 나와서 밤 10시까지 일했다.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 그게 지금은 정말 도망치고 싶은 ‘평떼기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떼기’는 정말 사라져야 한다.

넉 달 동안 2일 쉰, 과로사한 동료

900만 원 벌던 그때를 돌아보면 좀 아찔하다. 진심으로 후회한다. 그렇게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함께 일했던 동료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두 현장에서 함께 일했다. 두 달, 두 달씩 총 넉 달 정도를 함께 일했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친구였다. 금요일 오전, 그날 마지막이다. 그때 보고 더는 보지 못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먼저 갔는데, 다음 주 월요일에 현장소장이 작업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한다는 이야기가 이랬다:

“공기가 촉박합니다. 안전하게 빨리빨리 해주시면 됩니다.”

우리끼리 그랬다. “저게 뭔 소리야” 그런데 그때 금요일에 먼저 조퇴한 그 동료가 죽었다는 걸 알았다. 일요일에 별세했다. 그래서 난리가 났다. 확인해 보니 4달 동안 2일을 쉬었더라. 작업 현장이 동대구 근처라서 모텔비가 비쌌다. 월 80만에서 90만 원 정도 한다. 담배도 안 했는데 건설사는 과로사한 동료에게 지병이 있었다고 그러더라.

윤석열 정부가 69시간 유연화를 공론화한 이후 첫 과로사였다. 현장 동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내가 저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현장만큼은 준법투쟁 하자고 했다. 건설사에 사과를 요구했다.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해라.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마루 노동자 과로사’로 이미지 검색한 모습. 2023년 3월 한 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마루를 시공하던 작업자가 숨진 사건. 사진 중간중간 최우영 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버는 만큼 나가는 돈

마루 노동자는 월평균 450만 원 정도를 버는 것 같다. 그중 100만 원은 모텔비. 달방이 90만 원 100만 원. 밥값 국밥이 만 원. 두 끼 먹으면 2만 원. 60만 원. 객지는 경비 비용 때문에… 그러면 결국은 300만 원. 12시간 일해서 300만 원이라면, 직업군을 봤을 때 건설공조회에서 발표한 하루 일당 25만 원을 보면, 우리는 결국은 하루 일당 10만 원밖에 안 되는 거다. 그러면 딱 최저임금이다. 그게 마루 노동자의 현실이다.

개인 사비로 구입한 장비들. 마루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와 위상을 방증한다. 마루노조 제공.
3년 전, 노조 해야겠다고 결심한 해운대의 밤, 그 따뜻한 불빛들

여름 해운대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한밤에 일하다가 문득 30층에서 내려다봤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현장에서 이동식 랜턴을 켜고 창밖을 봤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그 아래를 보니 아름답더라. 돈은 번다고 하지만 몸은 골병이 들었다. 마루일 하면서 13Kg이 빠졌다.

문득 ‘평떼기’가 아니라 일당으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 일하는 만큼만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저기 사람들이 불빛 속에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그 모습 속에 나도 어쩌면 함께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유기견을 키우는데, 어느 날 보니 어느새 세월이 흘러서 개까지 늙었더라.

그날 노조를 하기로 결심했다.

평떼기-안전-하자의 삼각관계


민간 영역에선 여전히 ‘평떼기’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에서 발의를 했는데, 흐지부지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공공 영역 공사보다는 민간 영역 공사가 훨씬 더 많다. 민간 영역은 새해(2025)가 와도 여전히 평떼기 관행이다.

평당으로 하면 시간에 쫓기고, 하자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기 이익까지 손해보면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시공할 마루 노동자는 없다. 차라리 평당 금액이라도 높게 잡아주면, 그렇게 하겠지만, 20년 동안 1만 원 하던 단가가 3천 원 정도 올랐다. 그래서? 평떼기는 부실시공을 구조화하는 일이다.

마루 노동자에게 ‘평떼기’는 건강과 안전의 문제다. 그런데 입주민에게도 결국 하자 위험이 커지니 손해다. 건설 현장의 ‘왕서방’ 같은 존재인 시공사 입장에서도 하자 보수 책임을 생각하면 이익인 것만은 아니다. 유일하게 마루회사만 그 사이에서 이익을 본다.

매년 하는 주택 하자 민원 조사에서 항상 3위 안에 드는 게 마루다. 순위가 업치락뒤치락하는데, 항상 하자 순위 1, 2, 3위는 타일, 마루, 도배가 도맡는 편이다.

마루 타일 도배… 하자 빅 3!

앞서 말했지만 마루 시공의 하자 문제는 ‘평떼기’에서 비롯하는 구조적 문제다. 타일과 도배에서도 일당으로 받는 노동자가 80% 정도, 나머지 20%는 평당으로 돈을 받는다. 당연히 평떼기 하는 20%에서 더 많은 하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타일은 특히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당도 좀 차이가 난다. 한국인 일당(25~27만, 지방으로 가면 30만 원에 숙식 제공)은 외국인 타일 노동자 일당(22만 원 정도)보다 꽤 높은 편이다. 이들은 대개 아침 7시에 출근하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도배에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몰리는 편이다. 여성도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다. 도배에는 왜 하자가 많은가 하면, 면적이 가장 넓다. 그다음이 마루다. 도배는 아무래도 작업 면적이 넓어서 그 면적에 비례해 하자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공정 순서가 맞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마루 공정을 끝낸 뒤에 도배 공정이 들어와야 맞는데, 통상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도배가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마루, 전기, 현관문, 방문 등이 마무리하는 게 현장에선 더 익숙하다.

개념 있는 현장소장이 있으면 공정이 순서대로 돌아가는데, 대부분 현장에서는 도배를 먼저 배치한다. 왜? 그게 공기(공사기간) 단축에 유리하니까. 도배는 좀 작업이 세분화된다. 벽(바라시), 석고 사이에 버티(빠다), 그걸 매끈하게 하는 샌딩 작업까지. 그 위에 초배라고 해서, 초벌 작업까지 필요하다. 그 후에야 도배를 한다. 공정 절차가 많으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먼저 작업하면 훼손될 걸 알면서, 품질이 낮아지는 걸 알면서, 공기 단축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하자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가장 말하고 싶은 건 ‘고용 형태’


처음 노조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많은 면에서 개선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문제 삼는 ‘고용 형태’ 면에선 전혀 개선이 없다.

세 가지 고용 형태

마루 노동자의 고용 형태는 크게 세 가지다.

  • A. 정상 고용(마루 회사의 직고용): 관리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원청이 작업을 지시하는 형태다. 4대 보험도 보장된다. 현장에서 이런 정상적인 고용 형태는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 B. 마루회사가 고용한 관리자(‘오야지’,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에 의한 고용: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정상적인 고용과 ‘가짜 3.3’ 계약(개인사업자 소득세 3.3% 때문에 붙여진 이름. 세금을 덜 내기 위한 편법 계약)을 병행한다. ‘오야지’가 정상적으로 신고할 때도 있고, 3.3으로 신고할 때도 있다. A와 B는 같은 현장에 들어가도, 대접과 취급은 똑같은데 고용 형태만 다르다. 공사 기간은 통상 1달이다.
  • C. 불법하도급. “칼질”(임금 도둑질): 독립 노조라서 협상력이 낮고, 정부로부터도 건설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유령’ 취급받는 마루공은 시공사나 현장소장이 건설 노동자의 노임을 배정할 때도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 그렇게 좋지 않은 계약 조건에서 20년 동안 1만 원에서 1만 3천 원으로 겨우 3천 원 오른 ‘평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크게 세 가지 고용 형태가 존재한다. 지금은 투쟁 성과로 근로계약서는 마루회사와 작성하고, 임금도 마루회사에서 받는다. 단, 마루회사가 중간에 오야지에게 전달할 뿐, 실질적으로는 마루회사 노동자다. ‘오야지’는 실내건축면허(건설기본법상)를 필요로 한다.

발주자(시행사, 시공자, 가령 LH, 건축조합, 시공자)는 종합건축면허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마루회사는 실내건축면허를 가진 법인사업자로서 실내건축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 몇 명 이상, 사무실, 사업 실적 등 일정한 요건과 포트폴리오 및 규모를 요구한다. 그래서 마루 노동자끼리 회사를 만들기도 힘들뿐더러, 그렇게 만든 회사가 기성 업체와 경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오야지

‘오야지’는 마루회사 혹은 불법하도급 소속의 중간관리자다. 이 사람들은 현장소장 아래에 각 직종 공정 관리자로 일한다. 건설 현장 하나에 통상 마루 노동자 20명, 거기에 오야지 1명 정도가 배정되고, 매일 출근해서 작업 지시를 하고, 관리감독한다.

오야지들 중에서도 마루 노조 일을 겉으론 응원하지 못해도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은근슬쩍 고기도 사주고 그런 분들도 있다. 하청업체 오야지라고 해서 다 악당이고 적이고 그런 게 아니다.

그럼에도 하청을 대변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서 시공자(마루 노동자)를 대변했다가는 자기 일이 위험하니까. 회사는 아무래도 회사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을 오야지로 뽑을 거고…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라서 간단하지 않다.

마루회사 입장?

처음에는 우리를 많이 무시했다. ‘쟤네 뭐야?’ 이런 느낌이랄까.

지금은 눈엣가시랄까, 우리를 조금은 의식하는 것 같다. 구체적인 제안이 있었던 회사는 없었지만, 직원을 통해서 “도대체 뭘 원하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투명하고, 건강한 마루 현장을 원한다”고 답한다. 근로기준법 적용하는 고용 형태를 원하고, 평떼기 대신 일당을 원한다고 말한다. 오야지도 회사에서 직접 파견하고, 중간 불법하도급 단계를 없애달라고 요구한다.

지금까지 마루회사 관계자는 3~4명 정도 만났다. 그러면 회사 직원은 “위원장, 그렇게 하면 회사 문 닫아요!” 말한다. 그러면 나는 “왜 망합니까”라고 답하면서 한숨짓는다. 그러다가 언쟁이 생기도 했다. “그럼 계속 쓰레기통에서 불법으로 할 거야?””왜 평지풍파를 일으키세요…”

주무부처?

노동부가 좀 더 주무부처다. 노동부 80%에 국토부 20% 정도로 체감한다.

근로자의 근로기준법 적용과 4대보험 가입을 회피하기 위한 가짜 계약이다. 이하 권리찾기유니온 ‘가짜 3.3.’ 설명 페이지를 참고해 요약한 내용이다.

가짜 3.3의 유형 :

  1. 근로계약서가 있지만,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3.3%)를 원천징수하는 유형(무작정형)
  2. 도급∙위탁∙용역계약 등 체결하고 사업소득세(3.3%)를 원천징수하는 유형(이상한 계약형)
  3.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사장님으로 위장하는 경우(사장님 위장형)

가짜 3.3의 목적: 근로자에겐 최악, 사업자에겐 ‘나쁜’ 요술방망이

  • 근로자가 아니라며 초과수당과 유급휴가를 주지 않음.
  • 맘대로 해고한 뒤에도 퇴직금, 실업급여도 안 된다고 억지 부림.

최근 경과: ‘3.3 과세정보 연결’ 개정 근로기준법 공포 축하!!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22일 공포됐다. (중략) ‘가짜 3.3’으로 고용하면 호되게 당한다는 사실부터 알려야 한다. 정부에 물류산업부터 전수조사 들어가라고 지겹도록 반복했다. 이제 3.3 제보센터에 접수된 시민 제보를 상시 제공할 테니 대놓고 ‘가짜 3.3’ 고용하는 업체들에 대해 즉시 근로감독을 실시하라. 새로 단장한 근로기준법의 공포를 자축하며 친절한 마음으로 조언한다.

노조위원장은 무엇으로 사는가


생계 걱정과 소홀해진 가정… 동료가 가장 힘들다

개인적으로 힘든 건 생계다. 조합일 하면서 아무래도 생업에 소홀해진다. 처음에는 사측(마루회사, 예: 이건산업, KCC, 동아, 한솔 등)만 상대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노조일을 1~2년 하다보니까 정부도 상대해야 하고, 노동청도 상대해야 하고, 법원에도 갈 일이 많아졌다. 특히 정부는 법이 있어서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지금 가장 힘든 건 같은 일 하는 동료 노동자다. 단결하면 다 해결될 텐데, 머릿속에서는 백 번, 천 번 그런 생각을 한다. 힘을 합치면, 단결만 하면 우리도 힘을 가질 수 있는데… 현장은 그렇지 않다. 현장 노동자를 만나면, 먼저 눈에 보이는 걸 가져오라고 한다. 지도부가 뭔가 가져와야 한다는 거다. 지도부가 먼서 솔선수범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여긴다. 마루 일을 하는 노동자 평균 연령이 대략 50대 중반이다. 그 분들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나는 잘 모르니까, 똑똑한 위원장이 다 해주쇼. 좋은 결과 내면 가입할 테니까.”

마루 노동자는 약 5천 명, 마루 노조원은 100명

많은 마루 노동자와 이야기했다. 전국 건설 현장이 대략 250개 정도고, 한 현장에 20명 정도 마루 노동자가 있다고 치면, 마루 노동자 전체 규모는 약 5천 명 정도로 추산한다. 노조를 하면서 한 1천 명은 만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면, 노조가 돌파구를 찾아 회사와 제대로 협상해서 현장 노동 환경을 바꾸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주면, 내가 만난 사람들 8할 9할은 노조에 가입한다고 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 패배감이랄까, 노예근성도 있다. ‘오야지'(중간 관리자)에게 지시받고, 혼자 온종일 일하고… 어떤 기자는 마루 노동자를 “21세기의 마지막 소작농”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계속 그렇게 바닥만 보면서 억눌려 사는 게 익숙해진 거다. 그걸 깨려고 노력한다. 그러려면 어떤 결과물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야지'(중간 관리자)보다 노조가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면 바뀔 거라고 모두 생각한다. 고용안정과 작업환경 개선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면, 모두들 가입할 거라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노조가 회사와 동등하고 당당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지금은 100명 정도, 정확히 106명의 노조원이 있다. 힘들어도 이 사람들을 ‘배신’할 수는 없다. 힘들어도 할 수밖에 없다. 배신할 수 없다. 아내도 큰 힘이 된다(최우영 위원장의 아내는 유희원 마루노조 사무국장, 편집자).

300명까지 늘던 노조원이 준 이유

처음 권리찾기유니온과 함께 마루 노동자의 법률적인 권리를 알려드렸더니 그게 충격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노동부가 바로 답해주고 해결해 줄 것 같았는데 제대로 답하지 않고, 그게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이정식(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처음에 마루 노동자의 노동자성(근로자성, 직원성)을 인정했다면, 우리 조직이 굉장히 커졌을 거다.

처음엔 ‘와! 그래요?’ 했던 기대감이 점점 수그러들면서… 최대 375명까지 늘었던 노조원이 174명으로, 불법하도급을 고소∙고발하니까 하도급업체도 노조 방해 활동(겁주기)하면서 한때는 70명까지 떨어졌다. 현 지도부가 7명인데, 그 당시 지도부는 나를 빼곤 한 명도 없다. 많은 위기를 겪고 겨우 추슬러서 현재는 106명이다(2024.10.14 인터뷰 현재).

온종일 바닥만… 이제 문을 열자, 열면 노조가 있다

일단 마루노조가 있다는 건 마루 시공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비유하면 이제 세상으로 나오라고 계속 방문을 두드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노조가 할 수 있는 건 방문을 두드리는 일, 거기까지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건 한 명, 한 명의 노동자다.

그분들께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바닥만 보지 말자. 하늘도 보고, 세상도 보자. 문을 열고 나오면 노조가 있다. 어떻게 그 문을 열 수 있게 도울 것인가.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똑똑’하고 두드리기만 하면 문이 활짝 열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지 않더라.

문을 열면, 사람들이 회사나 관리자가 자신을 지켜볼 거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노조가 해야 할 일은 당당히 문을 열고 나와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별 노동자에게 신념과 용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마루 노동자의 생계와 고용에 노조가 먼저 확신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조에 가혹한 과제이긴 하지만, 우리 지도부와 열성 노조원 20명~30명의 과제다. 구조 자체가 그렇다. 온종일 혼자서 방바닥만 보고 일하는 구조라서… 세상에 나오는 걸 더 힘들어 고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단톡방’ 소통

매일 메시지로 소통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기 쓰듯이 남긴다. 단톡방 회원은 101명, 글을 읽는 수는 50% 정도다. 관심 동료로 표시한 분들은 218명. 내년 상반기 목표는 500명이고, 그 이후로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안하고 불쌍하고 고맙다


가족과 친구들

부모님들은 걱정하시지… 친한 친구들은 왜 너만 손해 보면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걱정 반 잔소리 반으로 이야기하고. 아들이 25살이고, 딸이 고3인데, 딸은 이렇게 인터뷰 기사 같은 게 실리면, “오, 아빠 대단한데?” 그러면서 한두 마디 더 하고 그런다. 그냥 그런 거지.

내 마음은… 미안하지. 주변 사람에게 다 미안하다. 동지든 가족이든. 내가 부족한 것 같고. 그래도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고 싶다. 한 동료가 “한 75살에 죽으면, 이제 20년쯤 남았다. 보람 있는 일 한 번 하자!” 그러더라. 나도 그런 마음이다. 먼 훗날, ‘그래도 내 인생에 그 일은 정말 하길 잘했어’ 스스로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포기를 못 하겠다. 3년 동안 믿고 따라와 준 30명 정도 되는 헌신적인 동지를 배신할 수 없다. 끝까지 갈 수밖에.

스스로 나를 바라보면…? 좀 불쌍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가끔은 넘어서는 것 같기는 하다. 유체이탈해서 나를 보면, 좀 불쌍하달까. 몇몇 조합원이 현장에서 고생이 많다고 하면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합시다!’ 하면 기운이 난다. 이런 조합원이 내 옆에 있구나.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저버릴까… 생각한다.

그래도 후회되는 건, 아내와 싸울 때다(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최 위원장 부인도 마루 노동자인 유희원 마루노조 사무국장. 편집자). 아내는 늘 그런다. “우리 한 시간만 더 일하자. 힘들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빚도 갚아야 하니까.” 그런데 나는 정말 체력이 바닥이 나 있는 경우가 많다. 노조와 생업을 동시에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몸은 말을 안 듣고, 잠도 부족하니까 짜증이 난다. 그러면 ‘툭’ 하고 성질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럼 아내는 말한다. “그럼 돈은?” “야, 또 돈 얘기냐?” 그렇게 다투곤 한다. 그런 내가 좀 불쌍하다(웃음).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최우영 마루노조위원장.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실. 2024.10.14.
정치권?

그동안은 그나마 정의당이 들어줬다. 민주당과 국힘은 한 번도 들어준 적 없다. 그건 많이 아쉽다. 왜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변하지 않나. 정작 자기 자신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떤 분은 ‘왜 마루노조 위원장이 윤석열 민생토론회에 가셨습니까’ 그런 얘기를 한다. 나는 마루노조에 도움이 된다면,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마루 노동자가 제대로 건설 노동자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은 거다. 나는 마루 노동자를 위해서는 김정은 빼고는 다 만날 수 있다.

소감?

이렇게 대화로서 장시간 들어주신 건 3년 동안 손가락에 드는 것 같다. 매일노동뉴스와 한겨레 기자가 그렇게 길게 내 얘기를 들어 준 적 있다. 고맙다.

함께 하는 연대체들, 고마운 분들
  • 권리찾기유니온
  • 전태일재단
  • 노회찬재단
  • 노동사목위원회(명동성당)
  • 녹색병원
  • 권리찾기 위원회(노무사)
  • 민변
  • 법무법인 오월
  • 카부기공제회
  • 삼성화재 애니카지부
  • 청년유니온
  • 비정규직철폐연대
  • 작은책
  • 꿀잠
  • 서울중구고용센터
  • 정의당
  • 노동당
  • 이음나눔유니온
  • 공무원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소통하고 얘기 들어준 노동부 최충훈 사무관
  • 진짜 딱 한명 마루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한 대구노동청장 김규석 노동청장
권리찾기유니온의 홍보 캠페인 모델로 등장한 최우영 마루노조위원장(가운데)과 유희원 마루노조사무국장(왼쪽). 두 사람은 부부 사이다.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이 우리 노조에 관심을 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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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감사합니다.
    막막한 환경에서도 “보람있는 일 한 번 하자.”는 생각을 실천해 주고 계시는 최우영 마루노조위원장께 감사하고
    이런 기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노동자의 기초적인 권리에 대해 일깨워주신 민노씨께도 감사합니다.

  2. 비돌 님께

    여러 번 정리하고 검토하고 했는데도 다시 읽어보니 오타가 두 곳이나 있네요…;;;
    부족한 정리지만, 비돌 님께서 주신 격려 말씀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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